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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22화 (1,417/1,497)

< 1422화 > 1422. 아카데미의 구원자

“팀! 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건가요? 내가 비싼 돈을 들여 당신을 고용한 건 그딴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클라라가 소리쳤다. 분노가 담긴 그 목소리에 주위 공간이 요동쳤다. 그녀의 능력이 그녀의 감정에 반응한 것이다.

팀이라 불린 남자는 그 기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주춤거렸다.

"크, 클라라 씨. 진정하시고 내 말 좀 들어주십시오."

클라라는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붙잡았다.

"…진정했어요. 당신의 대화를 한 번 천천히 들어보죠. 하지만 이건 확실히 하죠. 당신은 제게서 선수금으로 300만 달러를 받아 간 브로커예요. 1달 전에 당신은 햄슨 헤밍포드가 저를 포기하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죠."

팀은 정장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정작 땀을 흘리는 얼굴은 닦지 않고 있다. 저건 일종의 습관이나 버릇인 듯했다.

“예, 예. 그랬지요. 선수금 300만 달러에 보수 2,000만 달러 잊지 않고 있습니다.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와서 못 하겠다고요? 장난해요?"

"못 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절반의 성공… 이라 할 수 있겠군요. 클라라 씨에겐 마음에 안 드시겠지만…. 물론 제 잘못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닙니다. 보수는 500만 달러만 받겠습니다."

"…1달 전에 봤을 때와는 많이 다르네요. 그때는 아주 자신만만하더니."

“미국에는 헤밍포드 가문을 싫어하는 권력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때론 서로 뭉쳐 헤밍포드 가문을 견제하죠. 아무리 헤밍포드 가문이라 해도 미국을 완벽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저는 그들을 움직여 햄슨 헤밍포드가 클라라 씨를 포기하게 만들 계획을 짰습니다."

“네. 꽤 좋은 계획이었어요. 제 마음에도 드는 계획이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 그 계획이 안 된다니? 이게 장난하는 게 아니면 뭔가요?"

“…저는 햄슨 헤밍포드가 클라라 씨를 포기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겨우 여자 한 명 때문에 가문이 막대한 손해를 입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저는 협상 테이블에 그와 함께 앉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지요."

팀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쥔 손수건이 찌그러진다.

“그런데 직접 마주한 햄슨 헤밍포드는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이었습니다. 햄슨 헤밍포드는 클라라 씨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가문이 입을 손해까지 감수하면서도 제가 포섭한 인물들을 역으로 포섭했습니다. 그가 포섭하지 못한 자들은… 실종되었고요."

"……."

클라라가 두 눈을 찌푸렸다. 실종. 시체를 찾지 못했기에 실종이라 불리는 것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국 정부와 히어로 협회가 나서서 헤밍포드 가문을 제재했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햄슨 헤밍포드는 더 날뛰었겠지요."

“…제재. 어느 정도 수준이죠? 의미가 있긴 한가요?"

“있습니다. 헤밍포드 가문이 보유한 사업체에 타격을 받아 최소 2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볼 거라 예상됩니다. 아무리 헤밍포드 가문이라도 2억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닙니다."

"당신 계획이 실패했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군요. 제가 왜 미국으로 돌아가 헤밍포드를 만나야하죠?”

"햄슨 헤밍포드는 제게 확답했습니다. 당신과 차분히 대화를 나누고, 차근차근 관계를 진척시키겠다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고 있으며, 당신과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 하하.”

클라라가 웃음을 흘렸다.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실소였다. 호선을 그린 입가와 달리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팀. 그놈의 말을 믿어요?"

….햄슨 헤밍포드는 막대한 손해를 봤습니다."

“헤밍포드 가문 입장에선 별거 아닌 손해겠죠. 그리고 제가 원하는 건 그 개자식과의 대화가 아니에요. 마주보기는커녕 목소리도 듣기 싫어요. 그 자식이 내게 사과하고 차근차근 관계를 진척한다? 개소리 좀 작작해요. 그 자식이 그럴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건 그 개자식이 제게서 관심이 완전히 끄는 거예요!"

클라라의 목소리가 격해지고, 팀은 찌그러진 손수건을 다시 펴서 손을 닦았다.

“…햄슨 헤밍포드가 당신에게 이렇게까지 목을 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까? 클라라 씨가 그에게 반항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에게 순종했더라면… 그는 얼마 안가 당신을 잊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막대한 부를 누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겠죠."

"……팀. 지금 제 앞에서 그따위 말을 지껄여요? 전 그 자식의 노리개가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에요."

"예, 예. 그러시겠죠.”

팀은 무언가 포기한 듯 초연해졌다.

클라라는 팀에게서 꺼림칙함을 느끼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팀. 계약은 끝이에요. 먼저 계약 위반을 한 건 당신이니 보수는 없어요. 두 번 다시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5,000만 달러."

"……?"

"햄슨 헤밍포드가 제게 약속한 돈입니다. 당신을 미국에 데려가는 것만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죠."

“이 쓰레기 같은 작자가…!"

"네. 쓰레기입니다. 그런데 돈이 너무 좋은 걸 어쩝니까. 아, 물론 저도 아무 리스크 없는 건 아닙니다. 제가 실패하면… 전 죽겠지요. 마음 같아선 보수의 절반을 당신에게 줘서라도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지만… 당신은 겨우 2,500만 달러에 몸을 팔진 않겠죠."

그의 범상치 않은 태도에 위기감을 느낀 클라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막대기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라 피리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타이밍을 잿다.

'저 팀이란 놈. 딱 봐도 뭔가 준비했구만. 클라라가 위험할 때 나서야지.'

천안(天眼)을 이용해 주위를 살폈다. 매복해 있는 적들을 찾아보기 위해서인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방심하지 않고 팀을 주시한다.

“그래서 그 2,500만 달러는 당신을 붙잡아가기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일본에는 제 요청에 기꺼이 응해주는 집단이 있더군요."

"…빌런을 고용했다는 거야?"

"예.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요."

클라라는 입에 바로 피리를 갖다 댔다. 하지만 그것보다 빨리 팀의 손수건이 빛난다. 팀이 손수건을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의 빛은 오망성의 형태를 이룬다. 이윽고 빛이 폭발한다.

쿠쿠쿠쿠쿵!

폭발해 사라진 빛을 대신해 나타난 것은 8명의 사람이다. 죄다 일본도를 차고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인 건 그 중심에 있는 남자다. 남색 유카타 한 장만을 걸친 그는 염소수염을 긁적이며 클라라를 바라봤다.

“이 여자요?”

팀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클라라 페이레드. 한국 마루한 아카데미의 재학생이자, 유명한 가수죠. 야요 씨, 미리 말씀해드린 대로 큰 상처를 입혀선 안 됩니다."

"음, 알고 있소. 재미를 못 본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돈을 받았으니 해야겠지. 얘들아. 포위해라."

"야요 님. 저희가 구속하겠습니다."

"이런 계집, 야요 님이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이 여자를 상처 입혀선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나선다. 너희는 이 여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만 해라."

야요가 허리춤에서 일본도를 빼 들며 앞으로 나선다.

나는 눈을 크게뜨고 놀랐다.

야요.

'핫토리랑 같은 마도정의 간부잖아. 이놈이 여기서 나올 줄이야. 물어볼 게 있었는데 잘 됐군.'

클라라는 망설이지 않고 피리를 불었다. 청량한 피리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흐른다. 아마 듣는 이의 정신을 흔드는 종류의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나는 절대정신이 있기에 아무렇지 않지만, 저들은.

클라라는 피리에서 입을 떼며 야요를 노려봤다.

"왜 멀쩡한 거지?"

“소리를 이용하는 능력이라 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대비했지.”

야요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 사무라이 같은 모습을 보면 정말 그가 사무라이가 아닌가 싶지만, 저건 페이크다. 야요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마법사였다. 지금도 모종의 마법으로 클라라의 능력을 무효화한 것이다.

"피곤하게 굴지 말고 이쯤 포기해라. 대우는 나쁘지 않게 해주마."

"……."

클라라는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에 피리를 물었다.

"귀찮게 하는구만."

야요가 일본도를 치켜들며 클라라에게 접근한다.

'지금이다!'

망토를 역소환하며 야요를 향해 달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기척의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들의 놀란 표정에 짜릿함을 느꼈다. 특히, 클라라의 눈동자가 마음에 든다.

'마키나, 스톰브레이커 소환!'

스톰브레이커는 거창의 형태로 나타나 부서져서 내 갑옷이 되었고, 마키나는 내 의지를 받들어 영체화 상태로 갑옷에 스며들었다. 갑옷의 형태가 순식간에 변화한다. 색깔은 붉은색으로 변하고, 투구는 악마처럼 변한다. 갑옷도 몸에 착 달라붙어 미래 전투 슈트 같은 느낌이다. 그 성능을 따지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제트 엔진.'

-제트 엔진 가동!

등 부분이 열리며 제트 엔진에서 불꽃이 방출되었다. 추진력이 더 강해졌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야요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날아갔다.

콰아아앙!

내 주먹과 야요에 배리어가 부딪쳤다. 야요는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났다. 한국의 빌런이군. 이름이 적광이었나?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마도정의 간부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또 아라시 아카데미를 습격하러 왔나?”

"보고 있으면 알 텐데. 우리 목적은 아라시 아카데미가 아니라 저 여자다. 넌 이만 빠져라, 그럼 못 본 척해주마."

“크크. 너, 내 얼굴 봤잖아. 내가 왜 내 얼굴을 보여준 줄 아나?"

"나를, 우리를 죽이겠다는 뜻이군. 죽는 건 네가 될 거다."

키이이이이잉!

내가 놈의 배리어를 부수기 전에, 놈이 손에 쥔 일본도가 울부짖는다. 그 도신에는 작은 마법진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경고! 경고! 저건 위험해! 대체 얼마나 되는 마법을 칼에 새겨넣은 거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위로 점프한다.'

야요가 휘두르는 칼을 피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놈은 칼을 더럽게 못 썼다. 검술을 배운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칼을 고수하는 저 꼴이 꽤 웃겼다.

팅팅!

무언가가 날아와 내 갑옷에 막혀 튕겨 나갔다. 수리검이었다. 클라라를 포위하고 있던 놈들이 내게 단도와 비수를 날린것이다.

-이 벌레들이! 그딴 무기를 나한테 날려?! 유진! 놈들을 공격하게 해 줘! 이대로 당하고 살 수는 없어!

'좋아, 허락한다.'

대량의 마나가 갑옷으로 쑤욱 빠져나갔다.

직후 갑옷 곳곳이 작게 열리더니 총구가 튀어나왔다.

-파괴광선!

클라라를 제외한 모든 적에게 붉은 레이저 수십 줄기가 발사되었다. 야요만이 배리어로 광선을 막아냈다. 브로커인 팀도 죽었다.

'…야. 다 죽이면 어떡해?'

-뭔 소리야? 원래 다 죽이는 거잖아.

'놈들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고.'

-저기 아직 한 놈 남아 있어!

나는 혀를 차며 주먹을 꽉 쥐었다.

철컥! 건틀릿에서 블레이드가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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