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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21화 (1,416/1,497)

< 1421화 > 1421. 아카데미의 구원자

아라시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문화제에 진심이다. 그들은 문화제를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문제는 이 준비 과정에서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 발휘된다는 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자기들 손으로 하려고 하니….'

간판 제작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나무 목판을 가져와 페인트칠하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간판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으니까.

'의자랑 테이블을 직접 만들겠다는 건 뭐야.'

이해하기 힘들었다.

요즘 시대에 문화제를 위해 의자와 테이블을 직접 만드는 건 오히려 시간 낭비 아닌가? 아카데미 학생들이라고 해서 의자까지 잘 만들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기업에서 만든 의자와 테이블이 더 예쁘고 가치 있으리라.

'뭐, 예산 문제라고 하면 가구 제작도 그럴 수 있어.'

문화제를 위해 각 반마다 예산이 할당됐다. 예산은 빈말로도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한화로 하면 1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문화제에 무엇을 하냐에 따라 받는 예산이 다른 모양이지만… 메이드&집사 카페는 최소한으로 집행된다.

'근데 왜 옷까지 직접 만드냐고.'

나는 투덜거리면서 아라시 아카데미 밖으로 나와 시내로 향했다. 오늘 내 임무는 집사&메이드복의 재료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혼자온 건 당연히 아니었다. 저 멀리 거리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한 여인을 바라본다.

신보 레이카.

엘프의 피가 섞인 그녀가 걸을 때마다 싱그러운 녹색 머리카락이 찰랑인다.

과연 엘프라고 할까. 주위에 있는 모든 남자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향했다. 어떤 남자는 빤히 쳐다봤고, 어떤 남자는 안그러는 척하면서도 레이카를 의식한다.

아카데미 밖이라 그런 걸까. 레이카는 사복이었다.

청바지에 하늘색 티셔츠.

특별할 것 없는 패션이지만, 쭉 뻗은 팔다리와 풍만한 E컵 가슴이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더군다나 레이카는 키도 큰 편이다. 그녀가 걷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시내 거리는 마치 런웨이처럼 느껴질 정도다.

레이카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주위에 있는 남성들의 질시 어린 시선이 내게 향한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들을 비웃어 줬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레이카가 말했다. 청량한 목소리였다.

“아니. 10분 정도? 그리고 약속 시간에 늦지도 않았으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나저나 오늘 옷 예쁘네."

“그, 그래? 대충 입고 나온 건데 이상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

정석적인 칭찬인데 레이카는 얼굴을 붉혔다. 여기서 그녀의 남성 경험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졌다.

'이런 간단한 칭찬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칭찬 싫어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남자도 칭찬을 좋아한다. 특히 호감을 품고 있는 상대가 칭찬해주면 더욱더.

'보자. 지금 레이카의 호감도가….'

『레이카의 호감도: 64」

'어제 봤을 때 보다 3 높아졌네. 첫 데이트 보정인가?'

호감도 64면 진지하게 연애를 생각하는 수준이다.

'다시 말해 작업만 제대로 하면… 따먹을 수 있다는 거지.'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느려진 세상에서 느긋하게 계획을 짠다. 오늘 우리가 만난 이유는 집사&메이드복의 재료를 사기 위해서다. 여기서 중요한건 앞으로다. 데이트 분위기를 풍기며 리드해야 한다.

"레이카. 잠깐 카페에 들렀다 가지 않을래? 내가 살게."

"카페에?”

"목도 마르고… 우리가 문화제 때 하는 게 카페잖아. 직접 카페에 가서 어떻게 운영하는지 보는 거지. 메이드 카페나 집사카페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더 큰 도시에 있겠지.”

메이드 카페? 집사 카페? 그런 곳은 있어도 안 간다. 데이트하기 적절하지 않은 곳이다.

"알았어. 들렀다 가자."

“카페는 자주가?"

"차는 많이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가끔씩 들리는 정도?"

"나도 그래."

"…의외네. 너는 홍차를 잘 타니까, 차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었어. 애들은 네가 카페에서 일했다고 말하던데."

“카페에서 일한 적 없어. 홍차는 뭐…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카페를 찾아다닐 정도는 아니야. 넌 커피? 아니면 녹차랑 홍차?"

"커피로 부탁할게."

나는 커피와 생과일주스를 주문했다. 카페의 맛 없는 커피와 차를 먹을 바엔 차라리 생과일주스를 먹는 게 훨씬 낫다.

'진짜로 목말라서 카페에 온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분위기 잡기였다.

나와 레이카는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주로 한국 아카데미에 대해 물었고, 나는 이그드라실 기사단에 관해 물었다. 카페를 나온 이후에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옷감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예산이 많지 않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비교해 봐야 할 것 같아. 신보, 시간 괜찮아?"

"에산 문제라면 어쩔 수 없지. 시간이라면 괜찮아."

이후에 옷감을 알아보기 위해 시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내 계획은 저녁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후식을 핑계 삼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모텔로 그녀를 유인한다. 보통이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만… 현재 레이카의 호감도는 64.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저녁을 뭘 먹을까. 일본에 왔으니 역시 초밥을 먹을까?'

돈은 충분히 있기에 고급 초밥집이 떠올랐다. 찾아보면 어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카가 부담을 느낄 수 있었기에 고민된다.

이럴 때는 역시 직접 물어보는 편이 최고다. 내가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어느 길모퉁이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검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가 어딘가로 바쁘게 걷고 있었다.

'…미야카도 미에코잖아?'

나는 얼굴을 굳혔다. 츠쿠요미 신사의 무녀인 그녀가 아카데미 밖으로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온갖 이유를 들먹이며 같이 아카데미 밖에서 놀자고 해도 응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녀다.

'사복까지 입고 밖에 나와 있잖아. 굳은 표정을 보면 놀러 온 건 아닌 듯한데….'

무슨 일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성. 미안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헤어져야 할 것 같아."

갑자기 레이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뻔했다. 미에코를 따라가려는 거다. 레이카와 미에코는 나름대로 친분이 있으니 신경 쓰이겠지.

‘거절할 이유는 없군. 억지로 매달려봐야 호감도만 떨어질 테고…. 무엇보다 나도 미에코가 궁금해.'

레이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대신 다음에는… 음료수라도 사 줘."

"콜라를 좋아한다지? 오늘은 갑작스럽게 헤어져서 미안."

레이카는 미에코가 향하는 방향으로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모카.'

천둥부엉이 모카를 소환한다. 실체화는 시키지 않고 눈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모카는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미에코를 감시해.'

내 몸속의 마나가 움직이더니 눈으로 향한다.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변한다. 정령안을 발동한 것이다.

오른쪽 시야가 바뀌었다.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야. 정령안의 능력 중 하나인 시야 공유다. 나는 계약한 정령과 시야를 공유할 수 있다.

'이걸 이용하면 미행 정도는 껌이지. 천천히 다가가 볼까.'

앞으로 걸어가던 나는 멈칫했다. 모카의 시야에 클라라가 보였기 때문이다.

'얘는 또 왜 여기 있어?'

인기인인 클라라는 미에코 정도는 아니지만,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물론 가수 일을 할 때는 제외하고 말이다.

‘가수 활동인가? 아니지. 혼자 있잖아. 가수 활동이면 매니저나 경호원들이 따라붙었겠지.'

놀러 나온 건 당연히 아닐 것이다. 당장 클라라의 얼굴은 미에코 못지않게 심각했다. 나는 뺨을 긁적였다. 저도 모르게 선택지를 상상한다.

-미야카도 미에코를 따라간다.

-클라라 페이레드를 따라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숙사로 돌아간다.

세 개의 선택지. 원작이라면 이렇게 떴을 것이다.

가장 안 좋은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뭐든 간에 해야 이벤트가 발생하지.'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둘 다 선택하기로 했다.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 꼭 선택지 하나만을 선택하란 법은 없지.'

내겐 모카가 있었다.

'모카. 넌 미에코를 따라가.'

미에코의 뒤는 레이카가 뒤쫓고 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레이카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다는 거다.

반면 클라라는 혼자다.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못한다.

클라라가 가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내 외곽 쪽으로 가는군. 대체 무슨 일이지?'

모카의 시야에서 클라라가 보이지 않았다. 모카가 미에코를 따라가면서 클라라가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다. 미에코는 고급 호텔로 들어갔다. 모카도 호텔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내가 말렸다.

'들어가지 마. 호텔을 지키는 결계가 있어. 들어가는 순간 영체화한 너라도 들킬 거야. 창문을 통해 호텔 내부를 들여다봐.'

-꾸욱.

모카는 내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1층 로비 창문으로 호텔 내부를 들여다본다. 미에코는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다. 턱수염이 있는 중년 남자였다. 사각 턱이고 인상은 빈말로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야쿠자라기보다는 형사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안심했다. 원작에 나오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야쿠자도, 형사도 아니었다.

'히라기 지로 마도정에 원한을 가진 정보상인. 원래는 효도 유우키와 접촉하는데… 바뀌었군.'

원작 내용이 바뀌는 건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중요한 건 미에코가 정보상인을 만나는 이유인데….

'뻔하지. 미야카도 미에코는 츠쿠요미 곡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

원래는 직접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효도 유우키가 나서지 않고 있었다. 본래 미에코와 유우키가 힘을 합치지만. 내가 끼어들면서 이것도 바뀐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모카 계속 호텔을 지켜보고 있어.'

그리고 나는 쉬지 않고 뛴 덕분에 클라라를 쫓을 수 있었다. 클라라는 정장을 입은 갈색머리 외국인 남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외국인이라. 대충 감이 잡히네.'

클라라를 노리는 헤밍포드 가문일 것이다. 여긴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니 헤밍포드가 개입할 여건이 충분히 있었다.

'보아하니 우선 대화로 풀어가려는 모양인데… 이런 건 내가 끼어들어야지. 숨어서 타이밍 좀 볼까.'

나는 귀신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그들에게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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