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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13화 (1,408/1,497)

< 1413화 > 1413. 아카데미의 구원자

뒤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효도 유우키였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시종일관 좋은 사람처럼 굴던 놈이 작정하고 정색하니 긴장감이 서린다.

'미에코 때문이겠지. 겉으로 보면 미에코가 내 품에 안긴 것처럼 보이니까.'

유우키는 소꿉친구인 미에코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 그가 신토과에 들어온 이유도 미에코가 신토과에 속해 있어서다.

나는 미에코에게 기대던 몸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선 계속 기대고 싶지만.. 유우키뿐만이 아니라 신보 레이카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한다.

"…부상이 심각한 건 알고 있으니, 계속 제게 기대도 됩니다."

"괜찮아. 네가 마법으로 치료해준 덕분에 부상은 많이 좋아졌어. 움직일 수 있어."

나는 그리 말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신사는 반파되어 있고, 시야 너머에 있는 아카데미 곳곳에는 여전히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계속 울리던 폭발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상황은 거의 끝났군.'

츠쿠요미의 곡옥을 보관하던 장소를 바라본다. 츠쿠요미의 곡옥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핫토리의 분신이 츠쿠요미의 곡옥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도망친 모양이다. 대신 핫토리의 시체는 텐라이 나기사의 발치에 있었다.

시체를 바라보는 나기사의 얼굴은 빈말로도 좋지 않았다.

'츠쿠요미의 곡옥을 빼앗겼으니 심각한 건 당연하지.'

나는 원작과 달라진 점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다.

'마도정의 핫토리가 죽었어.'

원래 핫토리는 이 시점에서 죽지 않는다.

'성하리가 아라시 아카데미에 있었다는 게 변수지. 덕분에 텐라이 나기사가 훨씬 빨리 신사에 도착했어.'

그 변수로 인해 핫토리는 죽었다. 그리고 핫토리는 자기 목숨을 바쳐 임무를 완수했다.

'다음 스토리로 이어지겠군. 또 기회가 있긴 한데… 이미 원작 스토리와 달라져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본래 핫토리는 츠쿠요미의 곡옥을 탈취하든, 탈취하지 못하든 살아남는다. 그리고 다음에 나타나 죽는다. 허나 핫토리는 이곳에서 죽었다.

'마도정의 다른 간부가 나오려나?'

어찌 됐든 당분간은 평화로운 일상이 주어질 것이다.

아라시 아카데미의 습격 사건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될 테지만…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아라시 아카데미는 마도정의 습격을 받았으나, 죽은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기껏해야 나를 포함해 상처를 입은 자들이 전부였다. 문제는 그 상처 입은 사람 중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거다.

내 옆구리 상처를 확인한 성하리의 눈이 돌아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학장인 텐라이 나기사에게 따지러 갔다. 폭발음이 아라시 아카데미에 울렸다. 마도정에게 습격당할 때보다 더 큰 폭발음이었다.

돌아온 성하리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있었다.

"유진아. 엄마가 약 받아 왔어."

"약? 옆구리면 괜찮아. 포션도 써서 내일이면 흉터도 없이 말끔히 나을 거야."

완전 회복은 일부러 쓰지 않았다.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이점이기 때문이다. 이 부상을 이유로 수업에 빠질수 있고, 미에코와 레이카에게 부상을 들먹이며 접근할 수 있다.

"겉은 멀쩡할지 몰라도 내부는 심각한 상태일지도 몰라."

"의사가 멀쩡하다는데 무슨."

"에잇, 아들. 엄마 말 들어. 이 약만 먹으면 깔끔히 나을 거야."

성하리가 유리병을 내게 건넸다. 병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린다.

『후지산의 만년 정수

랭크: S

복용 시 능력치가 상승한다.」

“생수?"

"영약이야. 후지산의 기운이 녹아있는 만년설을 정수해서 만든 약. 엄마가 이거 얻으려고 할망구… 아니, 텐라이 나기사 학장이랑 1시간 동안이나 대화했어."

정말 대화만 했을까? 나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지금 내 능력치는 높아. 영약으로 능력치를 올리는 건 효율이 안 좋아. 차라리 이시은이나 최다연에게 주는 게 더 효과적일 텐데….'

날 바라보는 성하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가 영약을 먹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떨어지지 않을 생각이다.

"빨리 마셔. 어서!"

그녀의 재촉에 유리병의 마개를 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엄마가 마시는 편이… 읍?!"

성하리가 유리병을 빼앗더니 그대로 내 입에 쑤셔넣었다. 입안에 영약이 들어온 뒤에야 그녀의 행동을 알아차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신속했다.

"엄마 명령이야. 빨리 마셔."

꿀꺽.

영약을 마셨다. '후지산의 만년 정수'는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차가운 기운이 몸 곳곳에 퍼져나간다.

『일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이름: 성유진

근력: B+ 체력: B 민첩: B 내구: B-마나: A+

특성: 정령안(S) 악마 사냥꾼(S)

스킬: 정령계약(A) 정령강령(A) 역장(C+) 검술(B+)

카르마: 선(뽐) 34」

일부 능력치의 상승.

'근력과 내구가 1단계 오른 게 전부잖아. S랭크 영약을 마셨는데 겨우 이 정도라니… 생각대로 효율이 별로군.'

영약에는 한계가 있었다. 영약만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돈 많은 놈이 전부 해 먹었을 것이다. 물론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게 영약이긴 하지만.

성하리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내 옆에 누우면서 한 손으로 내 몸을 끌어안았다.

"네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어."

"히어로는 부상 정도는 늘 상 입잖아. 겨우 이런 거로 호들갑은."

“어쩔 수 없다는 거, 엄마도 알아. 하지만 엄마는… 유진이가 안 다쳤으면 좋겠어."

성하리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두 눈을 감은 성하리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산발이 된 성하리의 머리를 정리했다.

이윽고 우리는 알몸이 되었고, 방 안의 공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흐응, 으응! 아아앙! 아앙!"

신토과는 이번 습격으로 박살 났다. 신사의 재건까지 못 해도 최소 2개월은 소요된다.

덕분에 신토과에 속해 있던 나와 미에카, 유우키는 붕 떠버렸다. 신토과에 인원이 많았다면 다른 곳에서 활동을 이어갔겠다만, 현 신토과는 3명이 전부였다.

텐라이 나기사는 우리에게 말했다.

"원하는 전공과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서 배우거라. 그게 아니라면. 학생회를 돕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문화제를 앞두고 학생회는 여러모로 바쁜 모양이니 너희를 두 손 들고 환영할 테지. 어쩔 테냐?"

유우키가 미에코의 눈치를 살피고, 미에코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원작에 따르면 미에코는 결국 학생회를 선택하게 된다. 미에코에게 마음이 있는 유우키에게 괜한 의심을 받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 친다.

"학생회에 들어가겠습니다."

"음. 알겠다. 너희는? 시간이 더 필요하느냐?"

미에코가 나섰다.

"결정했습니다. 신사가 재건될 때까지 학생회에 들어가겠습니다."

"잘 생각했느라, 미에코."

"저, 저도 학생회에 들어갈게요."

“셋 다 학생회인가. 인재들이 들어가니 학생회는 좋아하겠구나. 너희들에겐 학생회의 일이 조금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나쁜 경험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는 학생회의 일을 기분 좋게 추억할 수도 있겠지. 자, 학생회로 가보거라."

나기사의 덕담을 듣고 학생회로 향했다.

학생회는 4층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한국의 마루한 아카데미와 달리 일본의 아라시 아카데미의 학생회는 그 권력이 막강했다. 교사들도 학생회를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1층 입구에 건물 지도가 붙어 있었다. 행정부, 집행부, 감사부 등의 부서가 적혀 있었다.

"텐라이 학장님에게 사정을 들었습니다. 신토과 여러분들이시죠?"

교복은 입은 여자였다. 안경을 착용했고, 오른쪽 팔뚝에는 학생회를 뜻하는 노란색 완장을 차고 있다. 전체적으로 수수한 여자였다. 미모도 평범했다.

“행정부의 아이카와 아유미입니다. 학생회장실로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와 주세요."

그녀를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카와 아유미에게 물었다.

"우리가 학생회에 들어가면 어느 부서에 들어가는지 알고 있어?"

아유미는 나를 힐끗 바라봤다. 내 반말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인가? 꼬우면 그쪽도 반말하던가. 나는 당당하게 나섰다.

“아마 학생회부에 속하게 될 거예요."

"학생회부? 거긴 뭐 하는 곳이야?"

"학생회장 직속 산하 부서입니다. 학생회장의 명령을 수행하고, 다른 부서를 지원합니다."

“거기 빡세나?"

“문화제를 앞두고 있는지라 부서 관계없이 학생회 모두 바쁩니다."

학생회장실에 도착했다. 안내는 끝낸 아이카와 아유미는 바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우리는 학생회장실의 문을 노크했다. 권위를 상징하는 것일까. 무척 고풍스러운 나무문이었다.

“네. 들어오세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회장실은 기업의 회장실처럼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등진 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건 백금발의 여인이었다. 긴 백금발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앉아있는 자세는 한 마리의 우아한 백조처럼 고고하다. 그녀는 누가 봐도 서양 백인이다.

'가슴은… 폭유군. I컵인가?'

책상 위에 명패가 당당히 놓여 있었기에 이름을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학생회장 레이첼 크레이그.

"학생회에 어서 오세요. 전 학생회장인 레이첼 크레이그예요. 츠쿠요미 신사가 재건될 때까지 여러분은 제 지속 부서인 학생부에 속하게 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유창하면서도 우아한 일본어였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개의치 말고 질문해주세요."

"정확히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미에코가 물었다. 레이첼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렁. 머리보다 더 큰 거대한 가슴이 내 시선을 끌었다. 내 곁눈질 스킬은 만렙인지라 상대에게 들킬 일은 없었다.

"손님이 오셨으니 차를 대접해드리죠. 홍차와 녹차. 어느 쪽이 좋으신가요?"

"녹차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전 그냥 물로 주세요."

나는 물을 선택했다. 차를 보니 죄다 티백이었다. 맛없는 차를 마실 바에야 차라리 생수를 마시는 게 낫다.

"미야카도 미에코 양은 문화제 때 츠쿠요미 신사의 무녀로서 일해주셨으면 합니다."

“신사는 재건 중이에요. 신사가 재건될 때까지 최소 2개월은 기다려야 해요. 문화제까지는 도저히…."

"알고 있어요. 설계를 다시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특수한 결계까지 설치한다죠. 학생회는 문화제를 위한 시설을 축소한간이 신사를 만들 예정입니다. 문화제인지라 외부 인력을 불러올 수 없는지라 퀄리티는 낮아지겠지만… 일본의 신토 문화를 빠뜨릴 순 없습니다. 츠쿠요미 신사에 참배하기 위해 문화제를 찾는 외부인들도 많고요. 미야카도 양. 도와주시겠어요?"

“…츠쿠요미 신사의 모든 관리 권한을 제게 주신다면… 츠쿠요미 신사의 무녀로서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아요. 미야카도 양에게 간이 신사의 일을 맡길게요. 그리고 다른 두 분은…."

레이첼의 눈이 나와 유우키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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