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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12화 (1,407/1,497)

< 1412화 > 1412. 아카데미의 구원자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나는 화련비도를 손에 쥐고 전력을 다해 앞으로 뛰쳐나갔다. 지나치게 격렬히 움직이면서 귀신 망토가 효과를 잃었다. 내기척과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마무리를 위해 레이카에게 걸어가던 핫토리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붉은 번개를 품은 칼날이 허공을 가른다. 깜짝 놀란 핫토리가 뒷걸음질 치며 내 검격을 받아냈다.

"…큭! 보통이 아니군…!"

핫토리의 몸에서 분신이 튀어나왔다. 분신은 나를 무시하고 레이카로 뛰어간다. 레이카를 먼저 죽이려는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반응이 한발 늦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로 분신을 순식간에 따라잡는다. 한 번 더 찰나를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핫토리의 분신을 베어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찰나를 사용하지 않았다. 레이카의 앞에 나타나 분신의 손날을 몸으로 막았다.

옆구리가 찔렸다. 피가 튀었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칼을 휘둘러 분신의 목을 베어냈다. 분신이 사라졌다.

"너, 너는 교류생…! 왜 날 구한거지?!"

깜짝 놀란 레이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당연히 널 꼬시려고 그랬지.'

라고 속내를 비칠 수는 없었다. 나는 잠깐 머리를 굴린 뒤에 입을 열었다.

"널 구하고 싶어서 구했어. 그뿐이야."

최대한 라노벨 주인공스럽게 말했다.

"뭐?"

레이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내 생각보다 반응이 미적지근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해한다. 나중에 여류가 생길 때 지금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겠지.

“…뇌성의 아들이군. 전해 들은 대로의 인상착의다. 쯧.”

혀를 찬 핫토리가 분신을 만들었다. 2명. 4명. 8명. 16명. 32명. 분신은 수십 명으로 늘어나더니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는다.

"꺼져라. 꺼지지 않으면 죽이겠다.”

레이카를 죽이려 했던 주제에 갑자기 꺼지라고 말한다?

'나를 의식하고 있군. 정확히는 성하리를 의식하고 있는 거겠지.

나를 죽이면 성하리가 진심으로 마도정과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걸 저쪽도 알고 있는 것이다.

"성! 신보! 무사해?!"

“이 무도한 자들이! 당장 츠쿠요미의 곡옥에서 물러나세요!!”

시커먼 일본도를 손에 쥔 효도 유우키와 무녀 복을 입은 미야카도 미에코가 나타났다. 평소 무감정해 보이던 미야카도 미에코는 진심으로 화를 내며 분노의 일갈을 터트렸다.

"방해꾼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군. 내 인내심도 한계다. 너희는 여기서….”

핫토리는 말을 도중에 끊더니, 분신들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핫토리가 있던 장소에 하늘에서 구슬이 떨어진다. 지면에 닿은 구슬은 폭발하여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핫토리는 서늘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화려한 붉은 기모노를 입은 어린아이가 하늘에 부유해 있었다.

"텐라이 나기사…!"

"오랜만이구나, 핫토리. 나는 지금도 20년 전에 너를 죽이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었느니라. 오늘 너를 죽여 그 후회를 털어내겠노라."

“어떻게 벌써 온 거냐! 아무리 너라고 해도 난바를 단시간에 쓰러뜨릴 순 없을 텐데!"

"그 성가신 마수 말이냐? 확실히 나라도 처리까지 시간이 걸리는 놈이었다만, 지금 아카데미에는 나 말고도 놈을 상대할 인재가 있더구나. 그 아이게 떠넘기고 왔다."

“……관천의 뇌성."

"궁금증은 풀렸느냐? 그럼 이제… 미련은 손에서 놓고 죽도록 하거라."

나기사는 허공을 향해 작은 손을 내밀었다. 수십 년을 견딘 손이라 하기에는 너무 말랑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손이 허공을 쥔다.

그 순간, 핫토리와 분신들이 존재하는 공간이 구겨진 종이처럼 찌그러진다. 핫토리와 분신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공간과 함께 찌그러져 사라졌다.

"흐음?"

나기사는 핫토리가 있던 장소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핫토리의 시체가 없기 때문이다.

"본신이라 생각했거늘 분신이었던가. 예전보다 실력이 늘었구나."

어디선가 핫토리 수십 명이 나타났다. 핫토리의 분신들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나기사를 포위했다.

"역시 수월(水月)의 공희(空姬)로군. 세월이 흘러도 그 강대한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군."

"나는 여기서 죽음을 감수하겠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하리라."

“사나다 님! 부디 대의를 이루소서!"

“마도정에 영광을!"

분신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들의 몸에서 악마의 힘, 마력이 솟구친다. 분신들의 외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태에서 벗어나 괴물이 된다.

『악마 사냥꾼(S)이 마인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악마에 대한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마인으로 변한 핫토리의 분신과 텐라이 나기사가 전투를 벌인다. 공간이 흔들리고, 충격파로 인해 주변이 파괴된다. 핫토리와 나기사의 전투에는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끼어드는 순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뛰어들 필요도 없어. 결국 승자는 나기사가 될 테니까. 그것보다 내가 해야할 일은….'

나는 레이카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레이카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내 손을 잡았다.

"네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나 혼자 어떻게든 할 수 있었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위험했을지도 몰라. 도와줘서 고마워. 이름이 성유진이라고 했던가?"

“그래."

짧은 대화가 끝났다. 레이카는 날 연신 힐끔거리다가 고개를 위로 올려 핫토리와 나기사의 전투를 지켜본다.

'핫토리의 본신은 따로 있다.'

나기사는 속인 모양이지만, 내 눈은 속이지 못했다. 핫토리는 츠쿠요미의 곡을 보관하는 장소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는 수리검을 휘두르며 억지로 결계를 파괴했다.

"핫토리 님! 이러지 마십시오! 이러다간 저희도… 아아아아아악!"

"결계가 크아아아악!"

결계가 억지로 부서지며 주변에 있던 부하들을 전부 휘말려 온몸이 터져 죽었다. 핫토리도 무사하지 않았다. 몸의 반신, 오른쪽 부위가 터진 것이다. 덕분에 하얀 갈비뼈와 내장과 근육 등이 훤히 보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치명상이지만, 그는 마인이었다.

핫토리는 남은 손으로 츠쿠요미의 곡옥을 쥐었다.

“이게 츠쿠요미의 곡옥…. 과연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군."

핫토리는 분신을 만들어 츠쿠요미의 곡옥을 넘겼다.

“가지고 가라. 반드시 사나다 님에게 전해라. 그게 네 임무다."

분신이 내달렸다.

“이놈!!"

하늘에서 나기사가 노성을 터트린다. 그녀는 품에서 쥘부채를 꺼내 칼처럼 휘둘렀다. 공간이 갈라진다. 핫토리는 묵묵히 분신의 앞에 서며 공간을 가르는 검기를 한 손으로 후려쳤다. 검기가 땅바닥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죽는 한이 있어도 붙잡아라."

핫토리는 피투성이의 손으로 나기사를 가리켰다. 그의 분신들이 나기사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펑! 펑펑펑!

분신이 나기사에게 달려들어 자폭한다. 분신의 자폭력은 아무리 나기사라 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안 돼! 츠쿠요미의 곡옥을 내놔!"

미야카도 미에코가 츠쿠요미의 곡옥을 쥐고 도망치는 분신을 따라가려한다. 핫토리는 그런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갈 수 없다."

핫토리의 수리검이 움직인다. 수리검이 노리는 곳은 미에코의 목이었다. 귀신 망토를 쓰고 몰래 분신을 쫓아가려던 나는 계획을 바꿨다.

“미에코!!"

효도 유우키가 미에코를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것보다 빨리 내가 나섰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핫토리의 수리검을 칼로 쳐내고, 미에코의 허리를 한 팔로 휘감아 뒤로 물러난다. 그 깔끔한 동작에 핫토리가 감탄사를 흘렸다.

"아카데미 학생이라 보기 힘들 정도의 숙련이다."

키이이이이잉!

땅바닥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불길은 내 주위를 감쌌다.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불의 결계다. 그곳에서 고생 좀 하도록.”

핫토리의 모습과 목소리가 사라졌다.

불타는 숲이었다. 모든 것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열기가 확 뻗어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일종의 구속 결계군.'

억지로 나가려고 하면 나갈 수 있었다. 천심을 쓰면 된다. 하지만 나는 쓰지 않았다. 이유는 품에 안고 있는 미야카도 미에코 때문이다.

메이코를 꼬시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거 놓으세요! 저는 츠쿠요미 신사의 무녀로서 츠쿠요미의 곡옥을 되찾아야 합니다!"

"진정해. 아무 대책 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불에 타 죽을 거야. 그럼 곡옥이고 뭐고 되찾지도 못해."

“츠쿠요미의 곡옥은 마도정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됩니다! 반드시 되찾아야… 꺄아아아악! 지금 어딜 잡으시는 거죠?"

내 손은 미에코의 풍만한 가슴을 잡고 있었다. 정신이 없는 듯하여 은근슬쩍 붙잡았는데 설마 10초 만에 정신을 차릴 줄 몰랐다.

"아, 미안. 널 말리려 하다 보니… 실수였어."

나는 손을 내려 미에코의 허리를 잡았다. 웃감 너머로 미에코의 탄탄한 허리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가슴과는 정반대인 감촉이다.

"당신은…! 아니요, 됐습니다. 이거 좀 놓아주시죠.”

"안 돼. 내가 놓아주면 넌 불 속에 달려들 거잖아."

“달려들지 않습니다. 전 이미 냉정을 찾았어요. 상황은 이미 제가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갔죠.”

"목소리를 들어보니 냉정을 되찾은 것 같긴 하네. 그래도 못 믿겠으니 얌전히 있어."

"……."

미에코는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조용히 기회를 보며 내 손에서 벗어나려던 그녀는 내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옆구리에 상처가?!"

“아, 아까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상처가 벌어졌나 보네. 응? 내 옷은 왜 벗기는 거야? 설마."

"치료해 드릴 테니 가만히 있어요."

미에코의 손에서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녀는 마법진을 내 옆구리에 가져다 댔다. 옆구리가 간지럽다.

"치료 마법? 무녀랑 마법이라니… 안 어울리네."

미에코는 내 말을 무시하고 치료에 집중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났다고 느낀 걸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저를 구해주신 거죠? 당신과 저는 아무 사이가 아닙니다만."

"네가 죽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이해할 수 없군요. 당신의 상대는 마도정의 간부인 핫토리였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당신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안 죽었잖아. 그리고 내가 널 선의로 구해줬는데 꼬치꼬치 캐물을 거야?"

“저는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습니다. 선의는 위선일 뿐입니다. 제가 당신의 친구이거나, 가족이었다면 그나마 이해했겠습니다만… 저와 당신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저 인사만 한 사이일 뿐,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눠본 적 없습니다."

"구하고 싶어서 구했어. 그뿐이야. 내가 아니라도 효도 유우키가 널 구했을걸?"

"효도와 당신은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까. 말하기 싫으시다면 됐습니다. 어쨌든 빚을 받았으니… 언젠간 이 빚도 갚겠습니다."

미에코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름: 미야카도 미에코

근력: D+ 체력: D 민첩: D 내구: D 마나: A

특성: 신토의 무녀(S)

스킬: 마법(B+), 주술(C), 정화(A)

호감도: 33」

호감도 33.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몸에서 힘을 쭉 뺐다. 내 몸이 미에코를 끌어안듯이 덮쳤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죠?"

"미안, 상처 때문에 힘이 없어…."

“하아. 어쩔 수 없군요…. 잠시만 제게 기대도록 하세요. 이 결계가 사라질 때까지만 제가 당신을 부축하겠습니다."

“고마워."

나는 은근슬쩍 미에코의 촉감을 즐겼다.

불의 결계는 5분 뒤에 사라졌다. 핫토리가 나기사의 손에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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