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1화 > 1411. 아카데미의 구원자
콰아아앙! 쾅!
연신 폭발음이 울렸다. 전쟁이라도 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폭발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아라시 아카데미의 교사와 학생들을 흔들기 위한 눈속임이지.'
습격자들은 아라시 아카데미와 본격적인 전쟁을 치를 생각이 없었다. 놈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도둑이었다. 폭발은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인명피해도 거의 없을 것이다.
콰아앙! 쾅!
복면을 쓴 남자가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며 폭탄을 던지는 게 보였다. 폭발력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소리가 컸다.
'시끄럽군.'
바로 근처에서 폭탄을 던져대니 귀가 아팠다. 귀가 아프니 짜증이 일어났고, 저놈이 무척 거슬렸다. 내 발은 어느새 복면을 쓴 놈에게 향해 있었다.
놈을 향해 대놓고 뛰어갔다. 그럼에도 놈은 내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귀신 망토의 효과다.
『귀신 망토
랭크: S
모습과 기척을 감춘다.」
귀신 망토는 내가 가진 투명화 물건이 일루시터와 달랐다. 일루시터는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줄 뿐이지만, 귀신 망토는 기척까지 감춘다. 이렇게 대놓고 뛰어도 상대방은 내 기척을 못 느끼는 것이다.
'완벽한 물건은 아니야. 기척에 예민하거나, 탐지 능력이 뛰어난 놈이라면 알아차리겠지.'
돌아다니며 폭탄이나 뿌리는 놈은 딱 봐도 말단이었다. 귀신 망토로 감춘 기척을 알아차리기에는 기량이 부족하다.
놈의 뒤에 도달한 나는 손을 뻗어 놈의 머리를 붙잡았다. 놈이 반응하기도 손에 힘을 주어 지면에 처박는다.
"크악!"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손을 냉정하게 움직였다. 허벅지에 달린 주머니에서 날카로운 단도를 꺼낸 것이다. 단도의 칼날이 빛난다.
‘검기는 아니군. 스킬인가?'
그게 뭐든 당하기 전에 쓰러뜨리면 그만이다.
'뇌전.'
파지지지직!
손에서 발생한 전류가 놈의 머리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좀 조용해졌군.'
귀의 평안을 찾은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멈칫했다. 죽은 남자의 몸에서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악마 사냥꾼(S)이 마인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마인에 대한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악마 사냥꾼(S)이 반응하는 것과 동시에 놈의 시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몸집이 커지고 등에 6개의 칼날이 돋아난다.
"마인화군. 감전으로 죽었던 것 같은데… 악마의 힘인가."
마인.
악마와 계약해 힘을 얻은 인간.
이 세계의 사람들은 마인을 두고 인류의 배신자들이라 말한다.
'화련비도 소환.'
놈이 일어나기 전에 화련비도를 휘둘러 목을 베었다. 서격! 놈의 머리가 바닥을 구른다. 마인화가 진행되었던 몸은 시체가 되었음에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인을 사냥했습니다. 체력과 마나를 일부 회복합니다.」
딱히 별 느낌은 없었다. 애초에 체력이나 마나를 소모하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마인의 시체를 뒤로하고 츠쿠요미 신사로 달렸다.
츠쿠요미 신사는 전투로 인해 엉망진창이었다.
신사를 지키던 결계는 해제되어 있고, 건물들 대부분이 박살 났다. 건물 잔해는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전투는 진행 중이었다. 복면을 쓴 자들이 아라시 아카데미 교사들과 싸우고 있다. 효도 유우키도 칼을 든 놈과 싸우고 있으며, 츠쿠요미 신사의 무녀인 미야카도 미에코 또한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투 양상은 아라시 아카데미 쪽이 밀리고 있다. 내가 참전한다면 전세는 바뀌겠지만, 내 목적은 아라시 아카데미를 도와적을 물리치는 게 아니다.
'학장인 텐라이 나기사는 안 보이는군. 원작대로 발이 묶인 모양이야.'
일이 원작대로 흐르고 있었다. 내겐 좋은 일이었다. 귀신 망토를 두른 나는 츠쿠요미 신사 안쪽으로 향했다. 사방은 전투로 바쁘다. 내가 대놓고 신사 안쪽으로 향하는데도 기척에 민감한 사람들도 내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큭큭. 일이 잘 풀리는군.'
나는 신사 창고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복면을 쓴 적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심에는 붉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창고 안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왼쪽 눈에 검은색 안대를 차고 있었다.
마도정의 간부인 핫토리다.
그의 주위에 있는 부하들은 무언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핫토리는 가만히 서서 창고 안쪽을 바라봤다.
"결계를 해제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하지?"
"우리의 예상 이상으로 견고한 결계입니다. 20분은 필요합니다."
"10분 주마. 결계를 해제해라.”
"10분은 너무 짧습니다!"
"10분."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10분이라고 말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마도정의 간부인 핫토리는 나도 쉽게 볼 수 없는 강자다. 섣불리 다가갔다간 100% 걸리고 말 것이다.
'원작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기회는 올 거야.'
기회가 오면 찰나를 이용해 물건을 낚아챈다. 그리고 공간 이동 주문서로 자리를 뜬다. 얼굴이야 귀신 망토로 가리면 그만이고.
'자, 물건이 있나 한 번 볼까."
천안(天眼)을 사용해 물건을 살핀다.
창고 아래. 결계로 보호 받는 그것은 붉은색 곡옥이었다. 크기는 주먹만 하다.
『츠쿠요미의 곡옥
랭크: SSS
츠쿠요미의 힘이 담겨있다.』
무려 랭크 SSS의 물건이다.
한 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일본 정부도 이 물건의 존재를 알면 당연히 보물로 지정하며 특별관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일본에서 곡옥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은 극소수지.'
츠쿠요미의 곡옥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텐라이 나기사는 일본 정보를 믿지 않는다. 이 보물이 이곳에 있는 이유였다.
'엄청난 물건이다 보니 가진다고 해도 사용하기가 쉽지 않아.'
원작 게임에서는 획득하는 순간 단순한 아이템으로 분류되어 뒷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게임에서는 츠쿠요미의 곡옥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장비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지.'
효율이 좋은 건 후자인 강화 방식이었다.
'무기를 강화하면 30% 확률로 100% 방어 무시 공격을 입히는 효과가 생기지."
방어 무시는 마법에도 포함되는 효과였다.
나는 행복 회로를 돌렸다.
'저걸 가지고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에 가는 거야. 헤파이스토스의 미션이 있으니까. 츠쿠요미의 곡옥으로 화련비도나 스톰브레이커를 강화하고… 크큭.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군.'
그때였다. 가만히 서서 츠큐요미의 곡옥을 주시하던 핫토리가 고개를 돌렸다.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던 차라 깜짝 놀랐다. 그러나 다행히도 핫토리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었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아라시 아카데미의 입학 순위 1위인 신보 레이카였다. 그녀의 에메랄드와 같은 눈동자가 자신감으로 빛난다.
레이카는 손에 쥔 은색 레이피어를 핫토리에게 겨눴다. 산뜻한 기운을 흘리는 은색 레이피어에서 익숙한 정령의 힘이 느껴졌다.
나는 레이카를 보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쟤가 왜 여기에 있는데?!'
갑자기 원작이 비틀렸다. 그 이유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바람이 말해주고 있어. 이 일의 원흉은 너지?! 당장 아라시 아카데미에서 사라져!"
“…들은 적 있다. 신보 레이카. 이그드라실 기사단의 최연소 기사라지? 널 죽이면 일이 복잡해지니 죽이지는 않겠다. 허나, 팔 하나 정도는 상관없겠지. 잘난 듯 지껄일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보지."
핫토리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수리검 3개를 동시에 투척했다. 수리검의 속도는 총알과 비슷했다.
"에이리스!"
그녀 앞에 바람의 장벽이 나타났다. 수리검은 바람의 장벽에 막혀 바닥에 떨어졌다.
'중급 바람의 정령이군. 에이리스는 바람의 정령의 이름인가.'
정령안을 발동해 전투를 지켜봤다. 바람의 정령은 바람에 숨어 있었으나, 내 정령안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나는 바람의 정령을 포착했다.
에이리스는 정령 중에서도 드문 인간형, 그것도 여성체 정령이었다. 물론 중급답게 디테일한 부분은 인간과 제법 달랐다.
젖꼭지도 없고, 보지도 없었다.
'보통의 정령사와 다르게 싸우는군.'
정령사는 정령을 앞세워서 싸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령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카는 자기가 직접 레이피어를 들고 싸운다. 바람의 정령은 보조를 전담한다.
'위력은 다소 떨어져도 정령의 힘을 효율적으로 쓰는군.'
핫토리와 레이카의 전투가 이어진다. 핫토리는 여유로웠다. 레이카가 입학 순위 1위라 하더라도, 핫토리는 A급 히어로도 상대하기 힘든 실력자다.
"전투 센스는 나쁘지 않다. 딱 거기까지다."
핫토리의 옆에 또 다른 핫토리가 나타났다. 분신이다. 전투 상황은 순식간에 2대1이 되었다. 핫토리의 발차기를 맞은 레이카가 바닥에 쓰러졌다.
"난 아직 더… 싸울 수 있어…!"
레이카가 피를 토하며 일어났다. 그녀의 전투 의지를 꺾이지 않았다. 핫토리의 시선이 차가워진다. 핫토리가 수리검을 손에 쥐었다. 수리검의 검날이 길쭉하게 늘어난다.
"보아하니 오른손잡이인 것 같더군. 오른팔을 가져가마. 앞으로는 만용부리지 말고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살아라."
"에이리스! 전부 날려버려!!"
레이카가 외친다. 직후, 하늘에서 거대한 바람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바람은 레이카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모든 것을 믹서기처럼 갈아 버린다.
이 공격에는 핫토리도 어쩔 수 없었는지 뒤로 멀찍이 물러나며 방어에 집중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멀찍이 떨어져 역장을 전개하며 내게 오는 바람을 막아낸다.
바람은 갈수록 기세를 잃어가더니 사라졌다. 레이카의 주위에는 날뛴 바람의 흔적만 있을 뿐이었다.
털썩.
레이카가 바닥에 무릎 꿇었다.
핫토리는 혀를 차며 천천히 레이카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오른팔에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발악은 꽤 쓸만했다. 원래는 오른팔로 끝내려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너는 훗날에 귀찮아질 것 같군. 전초제근이라 했다. 여기서 널 없애겠다."
나는 신사로 뛰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효도 유우키다. 레이카의 바람을 보고 전력을 다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핫토리는 레이카를 죽이는데 정신이 팔려 유우키의 접근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젠장. 이 상황은….'
주인공이 히로인을 구하는 전형적인 일본 라노벨 스토리다! 주인공이 아슬아슬하게 히로인을 구하고, 그 히로인은 주인공에게 반해버리며 하렘의 일원이 되는 스토리!
'안 돼! 레이카는 내가 노리는 여자란 말이다!'
짧은 순간 고민이 됐다.
내가 먼저 나서서 레이카를 구하느냐, 이대로 기다렸다가 츠쿠요미의 곡옥을 얻을 기회를 보느냐.
'시발! 고민할 것도 없잖아!'
당연히 여자가 먼저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나는 화련비도를 손에 쥐고 전력을 다해 앞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