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0화 > 1400. 아카데미의 구원자
어두운 밤.
나는 해선무의 뒤를 따라 걸었다.
원래 이런 늦은 시간에 기숙사 밖으로 나오는 건 교칙 위반이지만, 혈기 왕성한 학생들은 가끔 교칙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는 법이다.
'누가 강령술사 있는 곳 아니랄까 봐. 주변은 더럽게 음침하군.'
시내 외곽 쪽이었다.
강원도답게 자연이 울창했다. 가로등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해선문은 언덕 위의 폐가로 향하고 있었다.
"저기라고?"
"어, 응. 저기야. 나도 그를 찾아가는 건 처음인지라… 이렇게 어두울 줄은 몰랐어."
해선무는 스마트폰으로 빛을 밝히며 앞으로 걸어갔다.
'원작과 다르긴 하군. 원작의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폐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폐가에 도착했다.
끼이이이익.
폐가의 문이 열린다.
그 안에서 나온 건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였다. 검은색 옷으로 몸과 팔다리, 머리카락까지 전부 가리고 있고, 몸만 빼꼼히 내밀었다. 어떤 만화 영화에 나오는 가오나시 같은 놈이다.
"해선무. 다른 사람과 같이 왔군. 그쪽도 고객이냐?"
강령술사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의 텅 빈 동공은 영 꺼림칙했다.
"좋은 물건은 가지고 있나?"
“강령부 같은 부적은 얼마든지 있다. 3,000만 원이다."
“들었던 것과 다르군. 이 녀석은 2,000만 원에 강령부를 샀다고 말했다."
"인기가 좋아서 가격이 올랐다. 시장 원리가 그런 법이다. 돈이 없다면 꺼져라."
"이렇게 나올 거야?"
“히어로 협회에 신고라도 하려고 하나? 난 이미 여길 떠날 준비를 끝마쳤다. 히어로 협회는 날 잡지 못한다."
"오케이. 내가 잘못했어. 다른 물건은 없나?"
"몇 가지 있다. 하지만 강령부를 살 돈도 없는 네가 다른 물건을 구입할 것 같지는 않군. 이만 꺼져라.”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지고 온 가방을 꺼냈다. 강령술사가 보는 앞에서 가방을 열어보여줬다. 5만 원권 지폐가 가득 들어있었다.
"2억을 가져왔으니 좀 보여주지? 어차피 남들에게 대놓고 못 파는 물건이잖아."
“…2억. 현찰인가. 돈은 있군. 들어와라."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뒤를 따랐고, 해선무는 불안함에 떨면서 따라 들어갔다.
문을 넘어서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어떻게 보면 익숙한 냄새기도 했다.
'시체 썩은 냄새.'
인간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모른다. 확실한 건 이 낡은 집 어딘가에 시체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 강령술사 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군. 자기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과시하는 건가?'
효과는 있었다. 해선무의 얼굴은 이젠 거무죽죽해져 있었으니까.
끼이이이익.
강령술사가 낡은 문을 열었다.
"여기다."
동시에 강령술사의 마나가 움직였다. 순식간에 주위 공간을 장악한다. 무표정하던 강령술사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의 어깨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보였다.
『저주(A)에 당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 저하됩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몸을 잡고 끌어당기는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크어어억! 억! 어어어억! 모, 몸이… 어어억!"
해선무는 바닥에 무릎 꿇었다. 입을 벌리며 숨 쉬는 것에 집중한다. 저주 때문에 숨까지 쉬기 힘든 모양이었다.
"넌 저주 내성을 가지고 있는 건가? 저 녀석의 또래로 보이는데… 제법이군."
“이게 뭐하는 짓이지? 손님을 이렇게 대접하나?"
"손님? 넌 손님이 아니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돈을 갖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멍청한 놈…. 널 죽이면 2억은 내 것이 된다. 2억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면… 이제 이 지긋지긋한 일도 청산하고 일반인처럼 살 수 있겠지…."
놈의 목적은 돈이었다.
좀 김이 샜다. 인체 실험 같은 이유였다면 좀 자극적이었을 텐데.
나는 그에게 돈 가방을 내밀었다.
“……너희를 살려둘 순 없다. 여기서 살려 보내면 협회로 달려가 신고하겠지…. 쫓기는 일은 질색이다."
"너무하네. 살려달라고 하잖아."
강령술사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날 바라본다.
"목숨을 구걸하는 말투와 목소리가 아니다. 감히 지금 장난치는 거냐?"
“이제야 눈치챘냐? 병신 새끼."
바닥을 박차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파지직, 뇌전을 휘감은 주먹이 놈의 명치를 노린다.
쾅!
배리어에 주먹이 막혔다. 주먹에 힘을 더 주었다. 배리어가 부서진다. 놈은 이미 거리를 벌려 내 주먹에서 벗어났다.
"내 배리어를 이렇게 간단히 박살 내다니…. 한 가닥 하는 놈이군."
“대충 어느 정도로 때려야 할지 알았으니 다음은 없을 거다."
나는 놈에게 다가가려고 다리를 들어 올렸다. 올라가지 않았다. 무언가가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시선을 내려 확인해보니 바닥에서 솟은 썩은 손 여러 개가 내 종아리를 꽉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파직.
뇌전을 살짝 일으켰다. 푸른 전격이 썩은 손을 불태운다.
나는 다시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놈의 어깨에 있던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놈의 가슴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강령술을 사용했음을 알았다. 썩은 손은 그저 강령술을 위한 시간 벌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강령술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아나?"
"내가 정령술사라서 좀 알지. 귀신을 부릴 수 있는 거?"
"흐흐, 맞다. 강령술사는 귀신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지. 하지만 강령술의 진정한 힘은… 귀신의 힘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거다. 한 시대를 풍미한 검객이 될 수 있고, 잊혀진 마법사가 될 수도 있지.”
놈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근육이었다. 못해도 3배 이상 근육이 커졌다. 갑작스럽게 커진 근육은 괴물의 것처럼 보였다.
"근육 괴물도 될 수 있나 보군. 딱히 부럽지는 않아."
"흐흐. 이 근육은 볼프레의 근육이다. 나는 볼프레의 영혼을 내 몸에 넣어… 볼프레가 된 것이지."
"볼프레가 누군데?"
"200년 전,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름을 떨쳤던 천재 권사를 모른다는 말이냐?! 이 무식한 놈!"
"시발. 내가 볼프레인지 물프레인지 뭘 어떻게 알아? 유명하지도 않은 놈 같구만…."
"이 빌어먹을 놈이! 감히 내 선조를 모욕해?! 네놈의 영혼을 붙잡아 고문한 뒤에 소멸시켜 버리겠다!"
놈의 말투가 갑자기 무식해졌다. 어눌해진 느낌도 있었다. 강령술의 부작용 같았다.
나는 정령안을 보며 무엇인 문제인지 알아차렸다.
'육체에 강령시킨 영혼이 육체의 주도권을 더 많이 쥐었군.'
간단히 말해서 강령술사는 귀신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근육남이 된 강령술사가 내게 다가왔다. 근육은 우스꽝스럽다 못해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지만, 걸음걸이는 무술인의 그것이었다.
'찰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일이 귀찮아지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놈에게 바로 접근한다. 놈이 주먹을 들어 올리는 것보다 먼저 허공에서 화련비도를 소환해 칼자루를 잡고 내리그었다. 강령술사의 왼팔이 잘렸다.
"크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과 달리 놈의 몸은 격투기의 달인처럼 반응했다. 몸을 회전하며 다리에 힘을 실어 옆차기를 날리는 것이다.
'이건 피하기 힘들군. 맞으면 아플 테니 맞기 싫고. 찰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순간적으로 빨라진 몸으로 옆차기를 피하며 칼을 휘둘렀다. 서걱! 다리를 베어낸다. 균형을 잃은 놈의 몸이 쓰러진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놈이 완전히 쓰러지기 전에 다시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남은 팔과 다리가 잘렸다.
“으으으으으…."
사지를 전부 잃은 강령술사는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의 몸속에 강령되었던 영혼이 빠져나오더니 사라졌다. 괴물 같은 근육도 사라졌다.
"게임 끝났지?"
"죽여라…."
"내 질문에 잘 대답해라. 그럼 편하게 죽여주지."
"……."
놈은 날 올려다봤다. 내 눈을 몇 초간 주시하더니, 무언가를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 같은 놈을 몇 번 봐왔지…. 최대한 협조하는 게 좋다는 것도 안다. 물어봐라. 전부 대답해주지…."
"협조적인 태도! 아주 마음에 드는군. 넌 깔끔하게 죽여줄 걸 약속하지."
"……."
"첫 번째 질문이다. 넌 왜 이곳에 있는 거냐?"
"……아카데미 근처는 경계가 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담한 놈이라도 아카데미 근처에서는 숨죽일 수밖에 없지. 아카데미를 건드리는 순간… 협회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테니까."
"내 짐작으로는 넌 어딘가에서 도망쳐왔어. 어디 출신이냐?"
"중국이다."
"귀락곡이냐?"
"귀락곡을 아는 모양이군. 그래. 귀락곡에서 도망쳤다."
"왜?"
"귀락곡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예전의 귀락곡이 아니다…. 나는 그놈들의 소모품으로 죽고 싶지 않았다. 아니, 죽어도 죽는게 아니게 되겠지. 귀락곡 놈들은… 귀신을 잡아 노예로 부리니까."
“으음. 생각보다 별거 없었군."
푹!
놈의 심장에 칼을 꽃아준 나는 몸을 일으켰다.
“헉!"
해선무가 숨을 삼켰다. 나는 그를 조용히 쳐다봤다. 해선무가 뭘 생각했는지 덜덜 떨며 바닥을 기었다.
"해선무."
"사, 살려줘! 여기서 본 건 아무에게도 안 말할게!"
"뭔 소리야. 협회에 신고해.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말고 여길 우연히 발견했다고 해. 거래에 관해선 말하지도 마라."
“그,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거래를 먼저한 건 나니까…."
“아, 협회 말고 담임 쌤 한테 먼저 말해. 그럼 도움받을 수 있을 거야."
해선무가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을 본 나는 방안을 돌아봤다. 기괴한 물건들이 제법 많았으나, 쓸데 없는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물건은 딱 하나였다.
'찾았다.'
벽에 걸려 있는 허름한 망토.
나는 망토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귀신 망토
랭크: S
모습과 기척을 감춘다.」
무려 S랭크의 아이템!
S랭크 치고 지나치게 심플한 능력 같지만, 그만큼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게 있으면 특수 던전 몇 개를 날로 먹듯 공략할 수 있지.'
매우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