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3화 > 1393. 신의 아틀란티스
식수 통제령을 내린 하루 만에 렐티아의 시민들은 광장에 단체로 모였다.
그들이 하는 건 시위가 아니었다. 어제 시위를 하던 5,000명이 한순간에 증발하듯 학살당했다는 건 시민들도 알았다. 날 두려워하는 그들은 감히 시위할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들은 광장에서 무릎 꿇고 내게 용서를 빌며 식수를 나눠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갈사자가 발생했다.
식수를 통제한 지 하루 만에 죽은 것이다. 시민들은 갈사자의 시체를 들이밀며 물을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여기가 사막이라고 하더라도 식수를 통제한 지 하루 만에 갈사자가 발생하는 건 이상했기 때문이다.
주술사 에나스는 갈사자에 대해 조사하고 내게 다가와서 고했다.
“갈사자는 노예였습니다. 이미 일주일 정도 주인에게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즉, 죽은 건 내가 식수를 통제해서가 아니란 뜻이군."
"네. 그런데도 시민들은 천마님이 식수를 통제해서 사람이 죽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전혀 모른 채로."
"누군가의 선동인가. 건방지군. 아주 건방져. 그 노예의 주인을 잡아 와라."
"네. 천마님."
갈사한 노예의 주인은 2시간도 되지 않아 마교인들에게 붙잡혀 궁전으로 끌려왔다. 이 도시를 내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뭐, 도시 외곽에 마교인들을 풀어 도망가는 걸 막았으니 당연했다. 간단한 결계를 펼쳐 공간 이동 주문서도 당연히 막았고.
"천마님! 사, 살려주십시오!"
남자는 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에 부복했다. 나는 화려한 의자에 앉아 남자를 내려봤다.
"왜 그랬지?"
앞뒤 다 자르고 물었다. 다행히 노예 주인은 눈치가 없는 놈이 아니었다.
"저, 저는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누구한테 돈을 받았지?"
"그게… 모르겠습니다. 그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오늘 새벽에 찾아와서 돈을 주고 노예가 곧 갈사해서 죽을 테니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말만 했습니다."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식은땀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다.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에나스. 어떻게 생각하나?"
내 옆에 공손히 서 있는 주술사, 에나스에게 물었다. 에나스는 무력적으로 약하다. 할 줄 아는 주술도 적다. 기껏해야 사막늑대를 부리고, 경환자를 치료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무력만 따지면 에르시아가 더 강할 거다.
대신 에나스는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났다. 거기에 권력욕도 가지고 있다. 머리도 잘 돌아간다. 내가 없는 동안 궁전만큼은 지켜왔을 정도로 수완도 제법 있다.
"렐티아의 부호들이 수작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사람들을 선동하는 겁니다. 렐티아의 모든 시민들이 일어나면 천마님을 끌어 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겠지요."
"개돼지들이 날 끌어 내려?"
“개돼지들은 자기가 개돼지라는 걸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테지요. 자신들을 전부 학살할 수는 없을 거라고."
렐티아의 인구는 30만 정도.
이 중 절반만 죽여도 렐티아의 힘은 팍 꺾일 것이다. 어제 있었던 5,000명의 학살도 도시 입장에선 꽤 큰 타격이다. 인구수는 곧 노동력이니까.
"버러지들이 귀찮게 구는군. 전부 죽여버릴까."
"천마님. 개돼지들은 그저 무지몽매할 뿐입니다. 선동가들을 제거하면 개돼지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깨달을 겁니다."
"부호들을 잡아… 아니지, 굳이 마교인들을 움직일 필요는 없다. 에나스! 개돼지들에게 알려라. 부호들을 알아서 잡아 오라고. 그놈들을 잡아 오기 전까지 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남자는 어떻게 할까요?"
나는 부복한 상태로 덜덜 떨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주름진 손을 비비며 살려달라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목과 사지를 자르고 광장에 내걸어라."
"네. 모든 것은 천마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으아아아아아! 천마님! 한 번만! 한 번의 자비를 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재산을, 제가 가진 재산을 바치겠습니다!"
남자는 마교인에게 질질 끌려나갔다.
"웃기는군. 개돼지에게 재산은 없다. 네 재산은 원래 내 거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렐티아의 모든 것은 천마님의 것입니다."
에나스의 말은 듣기 좋았다. 아첨이라는 걸 알면서도 미워할 수 없었다. 나긋한 어조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날 찬양하는데 어떻게 미워할까.
나는 손을 뻗어 에나스의 옷을 잡아 옆으로 펼쳤다. 육덕한 몸매가 드러났다. 하얀 피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붉은색 문양이 그려져 있다. 살짝 처진 젖가슴 끝의 옅은 유두는 발기해 있었고, 사타구니 사이의 음부에는 머리카락 색과 똑같은 잿빛 보지털이 수북하다. 나는 그녀의 보지털을 헤집으며 보지를 찾았다. 선홍색 보지에서 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너도 내 것이지."
"맞습니다. 저는 천마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우선 내 위로 올라와라."
"네, 천마님. 하으으읏…!”
사막은 지독하다.
특히 전갈 사막의 뜨거운 태양은 아틀란티스 서쪽 구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지독하다. 이런 곳에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갈사한다.
사막인들에게 있어 물이 곧 생명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지배자라도 사막의 물을 함부로 이용하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사막인들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며 지배력이 약해질 테니까. 렐티아의 이전 지배자도 식수 통제라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식수를 통제당한 사막의 사람들은 분노한다. 분노는 쌓이고, 계속 쌓인다.
천마의 식수 통제.
누군가가 물을 먹지 못해 갈사했다.
입이 바싹 마르고, 침마저 분비되지 않기 시작하며 막대한 갈증이 사막인들을 괴롭혔다. 갈증을 견디다 못해 자기 오줌을 먹는 이들이 흔했다. 가축의 피를 먹는 자들도 있었다.
궁전에 앞에 모여 엎드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는 일이 또 일어났다.
차별.
어느 사람들은 궁전에 들어가 마음껏 물을 마셨다. 천마의 하렘에 들어간 미녀들의 가족들이었다. 천마는 여자를 좋아했고, 미녀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렘으로 끌고 갔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렐티아의 여자들은 하렘에 들어가는 걸 꿈꿨다. 하렘에 들어가 천마에게 몸을 바치는 것으로 인생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오아시스의 깨끗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사막에 없는 진귀한 요리와 과일도 맛볼 수 있다. 적지 않은 돈까지 매달 준다. 거기에 가족들까지 어느 정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도 하렘에 속한 여자들의 가족들은 궁전에 들어갔다가 시원한 얼굴로 밖에 나온다. 그들에게 갈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분노가 쌓인다.
쌓이고 또 쌓인다.
임계점은 이미 넘었다.
폭발해야 한다. 분노가 터져 무기를 손에 들고 궁전으로 달려가야 한다. 천마에게 증오를 퍼부으며 생명의 물을 마셔서 이 증오스러운 갈증을 없애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누구 한 명 분노를 터트리지 못했다. 분노를 터트리고 천마에게 반기를 든 자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그 가족과 친구들까지 죽었다.
렐티아의 시민들은 궁전 옆에 있는 언덕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 언덕은 사람의 시체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는 사람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1,000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렐티아의 모든 시민을 학살하고도 태평하게 하품이나 할 작자라는 걸 렐티아의 모든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천마는 이름 그대로 하늘에서 온 악마였다.
그때, 한 남자가 궁전의 대문을 열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천마신교의 소속을 뜻하는 검은색 옷을 입은 그는 궁전을 향해 엎드린 시민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님의 말씀을 전하겠다. 귀를 열고 똑똑히 들어라."
남자는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 적힌 이름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이상 127명! 이들을 잡아 궁전으로 데려와라! 127명이 모두 모이면, 오아시스의 물이 렐티아에 흐를 것이다!"
마교인은 127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궁전 벽에 붙이고는 돌아갔다.
그때까지 계속 바닥에 부복하고 있던 렐티아의 시민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눈빛은 굶주린 짐승처럼 빛났다.
그들의 분노가 터졌다. 다만, 분노의 방향은 천마에게 향하지 않았다.
"잡아! 이 새끼들을 잡아!"
“이놈들만 잡아 바치면! 물을! 물을 마실 수 있어!"
“이 새끼가 어딨는지 내가 알아!"
"뭣들 하는 거야! 빨리 가서 잡으라고!"
"바라코스는 우리가 잡는다!"
"너희는 벨리만을 잡아!"
3시간도 지나지 않아 127명의 부호들과 반란자들이 시민들에게 잡혀 궁전으로 이송되었다.
이중 20명 정도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시민들에게 얻어맞은 것이다. 죽은 놈들은 1명도 없었다.
"에나스. 개돼지들에게 광장에서 기다리라고 해."
"네. 천마님."
나는 가장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에게 다가갔다. 진한 눈썹과 멋드러진 수염을 가진 남자였다. 얼굴도 깔끔해서 상당한 미남이다.
"바룬. 네놈이 주동자라는 걸 알고 있다. 물론 네놈이 반란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도. 아는 것을 전부 불어라. 그럼 편하게 죽여주마."
"천마여. 너는 이 렐티아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 사막을 위해서라도 네놈은 사라져야 한다!"
손톱을 휘둘렀다. 검은 검기가 날아가 바룬의 오른쪽 귀를 잘랐다. 철퍽. 귀가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바룬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건방진 새끼. 아직도 네 처지는 모르는 거냐? 넌 이미 끝났다. 네가 선택할 할 수 있는 건 반란자들의 정보를 불고 편하게 죽거나, 같잖은 신의를 지키고 고통받으며 죽는 것. 그 두 가지뿐이다."
"흐흐, 너는 내 입을 절대 열지 못할 거다. 그리고 곧 있으면 카록이 군대를 끌고 돌아와 너를 죽일 테지."
바룬이 붙잡힌 순간 자결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였다. 카록이 돌아와 나를 죽이고 5,146 구역, 전갈사막의 지배권을 찬탈할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천마!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우리의 정신과 신의는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신의는 무슨. 결국, 원하는 건 돈과 권력인 주제에. 넌 마지막에 하고 다른 놈들부터 조져봐야겠군."
"헛수고다. 이들은 카록의 정확한 정보를 모른다.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좋게좋게 가려고 했더니… 귀찮게 구는군."
나는 인베토리에서 거울을 꺼냈다.
미러 터널.
이 거울의 반대편으로 순식간에 공간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
"너희에겐 이젠 죽음은 없다. 그 선택을 후회하며 생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아라."
나는 놈들을 생지옥에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