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2화 > 1392. 신의 아틀란티스
"천마신교는 오아시스의 독점을 포기해라!!"
"오아시스는 모두의 것이다! 우리는 물을 마실 권한이 있다!"
"물을 줘!!"
대규모 시위였다.
내가 왔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도 사람들은 궁전을 향해 바락바락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시위에서 광기마저 느껴졌다.
'카샤의 말로는 오아시스의 물을 무료로 베풀었다고 들었는데.'
원래는 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지만, 렐티아는 반란까지 일어나 뒤숭숭한 상태였다. 천마신교는 시민들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 물을 무료로 베풀었다.
'욕심 때문이군. 그리고 이놈들을 선동한 놈들도 있겠지.'
광장에 들어섰다. 궁전에 향해 있던 시위대의 조금씩 내 쪽으로 향한다.
"천마다!"
“천마가 왔다!"
"천마는 오아시스를 개방해라!"
"세금을 낮춰라!"
"북쪽 도로가 더럽다! 도로를 다시 깔아라!"
그들은 나를 향해 소리 지르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요구했다.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친 건가?
미치지 않았다. 그들의 시위는 광기처럼 느껴지지만, 하나, 하나 따지고 보면 광기도 뭣도 아니다.
이것들이 내 앞에서 저토록 당당할 수 있는 건 숫자를 믿기 때문이다.
5,000명이 넘는 숫자.
내가 5,000명이 넘는 자신들을 학살하지 못할 거라는 믿음이 마음 한구석에 깔려 있다.
‘그 믿음을 박살 내주마.'
천마신공을 운용한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시커먼 마기가 섞여 나오고, 몸에서 새어 나온 마기가 위로 올라간다.
자신들의 요구를 떠들어대던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공포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처, 천마님! 아닙니다! 저는…!"
“제, 제가 잠깐 미쳤었나 봅니다!"
“사실 부르파에게 돈을 받았습니다! 그가 시위에 참가하면 돈을 준다고 했어요!"
“사, 살려 주십시오!"
너무 늦은 목숨 구걸이었다.
시커먼 마기는 바람이 되어 내 몸을 휘감았다. 손바닥을 펼치자, 검은 바람이 손바닥의 중심에 모여들어 압축한다. 압축된 바람은 내 통제 아래에서 회전했다. 나는 일행들을 향해 눈짓했다. 눈치 빠른 아마드가 일행들을 데리고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회천마풍(回天魔風).
바람을 놓았다.
내게서 풀려나간 바람은 처음에는 느끼기도 힘든 미약한 바람이었다.
바람은 허공을 질주하며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검은 바람과 검은 바람이 부딪친다. 부딪친 틈에서 날카로운 진공의 칼날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을 덮쳤다.
마풍을 피를 몰았다.
바람에 피가 섞인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내가 있는 곳만큼은 조용했다. 이곳이 폭풍의 눈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은 시끄러운 바람 소리에 묻혔다.
30초 정도 지났을까.
광장을 휩쓸었던 검은 바람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건 잘게 잘린 살덩어리와 대량의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밖에 없었다.
“이제 도시에 숨어 있는 버러지들을 찾아내 죽이면…."
오싹.
뒤에서 거대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굳히며 뒤를 돌아봤다.
카샤 일행이 있었다. 그녀들은 거대한 힘의 파동에 당황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단 한 명, 힘의 파동을 내뿜고 있는 에르시아를 제외하고.
에르시아는 정상이 아니었다. 붉은색 눈동자는 마약 중독자의 눈처럼 풀려 있고,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다. 길쭉한 송곳니가 엿보인다. 분홍색의 입술에서 타액이 줄줄 흘렀다.
'침도 삼키지 못하고 있다. 의식을 잃은 건가? 갑자기 왜? 공격이라도 받았나?'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용길공주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뭐 하느냐? 네 딸, 지금 폭주하고 있잖느냐. 가서 막거라."
"폭주라고?"
“에르시아는 뱀파이어 이상으로 피에 민감하다. 아마 혈마지체라는 고유 특성 때문이겠지. 입구에서부터 대량의 피를 보고 상태가 안 좋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났구나. 이대로면 폭주하다 죽을 테지."
광장 바닥을 채우고 있던 피 웅덩이가 요동친다. 그 모습은 물이 팔팔 끓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피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진다. 피에 남아 있는 5,000 명의 생명력이 에르시아에게 모이고 있다.
"폭주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에르시아를 기절시키거라."
"…이미 기절한 애를 또 기절하라고?"
"에르시아는 기절한 게 아니라, 본능에 휩쓸려 폭주했을 뿐이니라. 의식은 어느 정도 남아 있을 거다."
"……."
피 웅덩이는 회오리치며 에르시아를 감싸고 있다. 지금 내게 남은 마기는 2할 정도다. 이대로 에르시아에게 다가가면 죽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떠맡길 수도 없다. 카샤나 아마르는 버티지 못할 테니까.
"가장 쉬운 방법은 네가 에르시아를 죽이는 거다. 자아,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네 딸을 죽일 테냐?"
용길공주의 눈이 흥미진진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매우 기대하고 있다.
역시 신이란 것들은…. 나는 쯧 혀를 찼다.
"용길공주. 혀나 풀고 있어."
"혀를 풀어?"
“내 똥구멍 핥아야 하니까."
“이 미친놈이…!"
분개하는 용길공주를 뒤로하고 에르시아를 향해 걸어갔다.
발을 내디딘 순간 피 웅덩이가 치솟아 나를 방해한다. 몸에 닿는 핏방울이 무겁다.
'…내가 가장 강해서 견제하는 건가?'
핏방울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콰득, 콰드드드득!
땅바닥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핏물로 이루어진 회오리 3개가 땅바닥을 갈면서 내게 접근한다. 회오리는 점점 커지고있다.
'힘이 더 강해지고 있다. 힘을 아낄 때가 아니군.'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진각을 밟으며 공간을 장악한다. 공간이 흔들렸다. 회오리가 균형을 잃고 사라진다. 나는 다시 천마군림보를 내디뎠다.
공간을 뛰어넘어 에르시아의 앞에 나타나려고 했으나, 에르시아에게 몰린 에너지 덩어리가 공간 장악을 방해했다.
'정면으로 다가가는 수밖에 없군.'
한 발짝, 한 발짝 밟으며 걸어간다.
이 상황에서 가장 편한 건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거다. 전력을 다하면 에르시아를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겨우 이런 일로 딸을 죽일 순 없지.'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빠드드득.
갑자기 나타난 피의 충격을 왼쪽 어깨로 막았다. 왼팔이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씁. 호신강기를 뚫을 줄이야. 무시무시하군. 혈마술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스킬이었나?'
아니다. 이곳에 있는 5,000명의 생명과 피가 터무니없을 뿐이다. 까놓고 말해 5,000명을 제물로 사용한 거나 다를 바 없다. 강력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앞에서 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이 만들어진다. 창끝은 나를 겨누고 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天魔修羅).
멀쩡한 오른손에 천마기를 집중했다. 피의 창이 날아온다. 나는 오른손으로 창의 끝을 잡아 옆으로 쳐냈다. 창이 바닥에꽃히더니 폭발했다. 핏물이 내 몸을 뒤덮더니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몸을 털었으나, 피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피부가 삶아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천심을 사용했다.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바닥에 고인 핏물이 내 몸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천심이 발동되는 1분 동안 그 무엇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5M.
에르시아와 나의 거리였다.
나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숨만 쉬어도 짓눌릴 것 같은 에너지다. 천심이 없었다면 진작에 다리가 무너졌을 거다.
‘폭주했다고는 하나 이 정도의 힘을 다루는 건가? 특성과 스킬의 영향을 받았다곤 해도… 가진 재능이 대단하지 않으면 별볼 일 없지. 에르시아는 천재군.'
언젠가 온전히 재능을 개화하면 세계에 손꼽히는 강자가 될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뚜벅.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
강력한 에너지가 내 몸에 침투해 내부부터 엉망으로 만든다. 천마신공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군. 에르시아, 너에 대해 너무 몰랐다. 다음번에는 조심하마."
에르시아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힘 조절에 주의하면서 천마기를 움직인다.
"딸아. 날 죽이고 천마가 되기에는 100년은 이르다.”
쩌엉!
에르시아의 머리에 충격을 가해 강제로 기절시켰다. 성인 남성이라면 맞고 뒤질 정도의 충격이지만, 에르시아의 능력치를 생각하면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머리에서 손을 떼자마자 에르시아의 눈이 위로 올라가 흰자를 보였다. 나는 쓰러지는 에르시아의 몸을 오른손으로 받아들였다.
주변을 사납게 짓누르던 에너지도 사라진다. 일부는 에르시아가 흡수한 것 같았다.
'에르시아에겐 기연이겠군.'
부서진 왼팔과 몸통의 내부가 엄청나게 아팠다. 완전 회복을 쓸까 하는데 용길공주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의외구나. 나는 네가 에르시아를 죽일 거라 생각했노라."
“고작 이런 일로 뭘."
용길공주에게 에르시아를 밀었다. 용길공주는 에르시아를 부드럽게 안았다. 그 모습을 보니 용길공주는 에르시아를 나름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궁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천마님! 저는 천마님이 돌아오실 거란 걸 믿고 있었습니다!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잿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미녀가 내 앞에서 무릎 끓으며 외쳤다. 그녀가 입은 검은 옷에는 온갖 뼈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에나스.
천마신교의 주술사였다.
몸이 육덕졌다. 가슴은 H컵으로 아래로 처진 편이고, 옆구리와 허벅지에 군살이 많았다.
그런 그녀는 광신도 비슷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후후…. 천마님이 돌아오셨으니 이제 역도들은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
"에나스. 궁전에 있는 모든 마교인들에게 명해라. 개돼지들이 렐티스에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고 도시 외곽을 감시해라."
"네, 천마님!"
“그리고 지금부터 물깨스다."
“…네?"
"식수 단속이라고. 지금부터 렐티아의 개돼지들은 내 허락 없이 물을 먹지 못한다.”
“아아…! 당장 실행하겠습니다! 개돼지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군요!"
에나스가 미친년처럼 웃었다.
내가 없는 동안 렐티스를 관리하면서 많이 시달렸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