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9화 > 1389. 신의 아틀란티스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에이플랜 레기온에서 바쁘게 활동했다.
다른 구역 레기온과의 마찰을 해결하고, 새롭게 발견한 던전을 공략하고, 훈련을 통해 능력치도 올렸다. 3개월이란 시간이 1개월처럼 느껴질 정도로 바빴다.
에이플랜 레기온의 일정이 끝나고 각자 개인만의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겼다.
에이플랜 레기온 마스터인 강명진은 어딘가로 훌쩍 떠났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강명진은 가끔씩 개인 활동을 하니까.
'원작의 정보를 바탕으로 능력치를 올리러 간 거겠지. 그게 아니면 무기나 아이템을 얻으러 갔거나.'
강명진은 지나칠 정도로 성실한 남자였다. 나는 강명진이 푹 쉬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원작에서도 강명진이 쉰다는 구절은 못 본 것 같고….'
어쨌든 중요한 건 여유 시간이 생겼다는 거다.
나도 잠시 미뤄뒀던 일을 할 시간이 왔다.
'헤파이스토스의 미션을 언제까지고 계속 미뤄둘 수는 없으니까.'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에이플랜 레기온에서 일하는 틈틈이 특수 용광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이 넓고 넓은 아틀란티스 대륙에 현재 알려진 특수 용광로는 2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법 용광로는 올피스라는 거대 레기온이 소유하고 있다. 레기온 전체가 마법 용광로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법 용광로를 하루 빌린다? 그러려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올피스 레기온이 내게 협력할 이유도 없었다. 듣자하니 마법 용광로의 가동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모양이고.
'다른 특수 용광로는 지옥 용광로. 이건 누가 소유하고 있는 용광로가 아니지만….'
지옥 용광로는 지옥 구역에 있는 특수 용광로다. 즉, 지옥 용광로를 이용하기 위해선 지옥 구역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지옥 구역에서 고생고생해서 돌아왔는데 다시 지옥 구역으로 가라고? 지랄.'
더 최악인 건 지옥 용광로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점이다. 지옥 용광로를 찾으려면 지옥 구역을 돌아다녀야 하는데…그건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지옥 구역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야. 지옥 용광로는 포기한다.'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건 나 혼자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엘레나였다. 엘레나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아이돌까지 시켰는데 또 도와달라고는 할 수 없지.'
다음으로 강명진이 떠올랐다. 강명진은 유능한 일 중독자다. 그는 내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움을 청하기엔 너무 늦었지. 지금 강명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잖아. 게다가 강명진에게 도움을 받으면… 날 의심할지도 몰라. 머리 좋은 놈이니까 조심해야지.'
다른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놈.
내가 어디 소속인지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군.'
나는 에이플랜 레기온의 성유진이었고, 헬텐의 간부인 천마이기도 했다.
'헬텐을 이용한다.'
「이름: 성유진
클래스: 천마(天魔)
칭호: 보지의 수호자
신좌: 마천의 왕
소속: AL 401 지구.
근력: 125 민첩: 111 체력: 118 마나: 130 행운: 66
고유 특성: 기만(SS)
특성: 천마지체 (S)
스킬: 천마신공 (SSS) 종속 (S) 마풍신공 전수(SSS), 전투 회복(S), 생지옥(S)
(상태창 적용중)」
천마가 된 나는 에이플랜 레기온을 나와 헬텐의 보스인 사무엘을 만났다. 마침 그가 에이플랜 레기온 근처에 있었기에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무엘은 근처 마을에 고고학자로서 고대 유적과 관련된 것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고고학자는 그의 대외 신분 중 하나다.
"오랜만이야, 천마. 천마신교가 날이 갈수록 번성한다는 소문은 듣고 있어. 축하해.”
“천마신교? 아."
순간 사무엘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의아했다가, 곧 내가 세력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서쪽 구역에는 오랫동안 가지 않아서 천마신교에 대해선 잊고 있었다.
"잊고 있었어? 이거 참…, 천마신교 레기온 마스터께서는 상당히 무심하신걸.”
"곧 찾아갈 생각이다."
사무엘이 천마신교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놀랍지 않았다. 원래 이런 놈이니까. 사무엘은 원작에서 흑막 비슷한 역할이다.
아틀란티스의 웬만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천마신교. 나쁘지 않은 세력이야. 잘 키워둬. 나중에 도움이 될 테니까.”
"내가 알아서 할 거다."
"방치해 놓고 알아서 하기는…. 뭐,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긴 하지. 내게 물을 게 있어 찾아왔지? 뭐가 궁금해?"
"특수 용광로에 관해서 물으러 왔다만…. 뒤에 있는 여자는 누구지?"
나는 사무엘의 뒤쪽을 쳐다봤다. 나무 벽에 기대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검은색 로브를 입었고, 얼굴에는 하얀색의 얼굴없는 가면을 썼다. 몸을 완전히 가려져 있다. 보이는 건 가면에 뚫린 두 눈뿐이다. 여자라고 말한 것은 직감이었다.
"신입이야. 화이트라고 해. 그녀의 정체는 말할 수 없어. 근데 넌 회귀자니까 화이트의 정체도 알고 있지?"
"……."
모른다.
'원작에서 사무엘이 나오는 시기는 후반부니까. 지금 사무엘과 같이 다니는 여자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아.'
나는 사무엘의 과거를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개입하면서 원작 내용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근데 내 생각에 저 여자의 정체는….'
화이트의 정체를 속단하지 않았다. 이런 쪽으로는 신중하게 가는 편이 좋았다. 화이트의 정체를 확신한다고 해서 당장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수 용광로를 찾고 있다고 했지? 마법 용과로와 지옥 용광로는 들어 봤어?”
“기본적인 조사는 했다. 마법 용광로는 올피스 레기온이 소유하고 있고, 지옥 용광로는 지옥 구역 어딘가에 있다더군.”
"지옥 용광로가 있는 구역을 알려줄게. 짐작 가는 곳이 두 곳 있어."
"또 지옥 구역에 갈 생각은 없다."
“그래? 지옥 용광로를 가지면 꽤 쓸만한데…. 음. 고대 용광로는 심해 속에 있어서 당장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하고…. 직접 만들 수밖에 없겠네."
"…특수 용광로를 만들라고? 그게 쉽게 가능했다면 대형 레기온들이 기본으로 특수 용광로를 소유하고 있었겠지."
"대형 레기온이 특수 용광로를 제작하지 않는 건 설계도가 없기 때문이야. 설계도가 있고, 돈과 사람만 있다면 얼마든지 특수 용광로를 만들 수 있어."
"……혹시 특수 용광로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나?"
“아니. 하지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 반짝이는 찾아가 봐. 아, 반짝이가 누군지는 알지?"
반짝이.
헬텐의 간부다.
본명은 하르모. 서쪽의 거상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상인이다. 아틀란티스의 서쪽 지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력가다. 우스갯소리로 그는 황금이 나오는 우물을 가졌다고 한다. 그만큼 돈이 많다는 뜻이다.
“서쪽의 거상과 거래를 하라는 거냐? 젠장. 돈은 별로 없는데."
“회귀자가 돈이 없다니…. 못 믿을 소리를 하네. 내가 회귀했다면 우선 돈부터 긁어모았을 거야. 그리고 돈 걱정은 그리하지 않아도 될걸. 아마 반짝이는 네게 돈을 요구하지 않을 테니까."
"그가 뭘 요구할지 알고 있나?"
"글쎄."
그는 의문스럽게 웃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표정을 풀고 몸을 돌렸다. 어찌 됐든 특수 용광로에 관한 정보는 얻었으니까.
집을 나가려는 데 사무엘이 나를 불렀다.
"천마."
"말해라."
"나는 네게 기대를 걸고 있어. 너는 우리 목적의 중요한 키가 될 거야. 단순히 예감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
제 8,111 구역. 지하의 피라미드.
정말 오랜만에 8,111 구역에 돌아왔다. 내 여자들이 머무는 곳인 만큼 자주 찾아야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할 일이 많았다. 에이플랜 레기온에도 내 여자들이 많다 보니 굳이 찾을 필요가 없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동안 까먹고 있었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간다.
“…음?"
내부가 바뀌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피라미드는 입구에서부터 삭막한 벽과 복도가 나와야 했다. 그런데 지금 벽에는 하얀 벽지가 붙어 있고, 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천장에는 LED 형광등이 빛난다. 거기에 미술품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사람 사는 느낌이 나는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구조도 좀 바뀌어 있었다. 벽을 허물고 방을 만들어 문을 달아놓은 것이다. 방을 열어봤는데 대부분의 방은 비어있었다.
철컥. 이번에도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던 여자가 인기척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긴 남청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가진 미녀였다. 다리는 길쭉했고, 가슴은 풍만했다. 그녀는 아직 감은 눈을 비비며 졸린 목소리로 말한다.
"일어났다. 일어났다고…. 잔소리는 하지 말거라, 옥…정…?"
용길공주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커진다.
"오랜만이야, 용길공주. 대낮부터 아주 늘어져 있구만."
"너, 너! 왜 갑자기 찾아온 거야?!"
"내 구역에 내가 오는게 이상하냐? 오랜만에… 할까?"
"꺼져!"
용길공주가 내게 베개를 던졌다. 그 건방진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벌을 줄 명분도 섰고… 비데공주란 별명답게 내 똥구멍이나 빨게 시켜 볼까.'
나는 용길공주에게 베개를 다시 던졌다.
"악!"
얼굴에 베개를 맞은 용길공주의 침대로 넘어진다. 베개에 마나를 담았기 때문이다.
"피라미드나 한 번 둘러보고 올테니, 여기서 딱 기다리고 있어라."
"너…!"
쾅!
용길공주가 뭐라하기도 전에 문을 쾅 닫고 피라미드 위로 향했다.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옆에 부엌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요리를 진행 중이었다.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의 여자였다. 키는 150cm로 작았는데 가슴과 엉덩이는 상당히 컸다. 용길공주의 시종 역할을 자초하고 있는 옥정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더니 손에 쥔 국자를 떨어뜨렸다.
"처, 천마님?!"
"오랜만이야. 벌써부터 저녁 식사 준비 중이야?"
"오늘 할 요리는 손이 좀 많이 가서….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돌아오신 거예요?"
"비데공주는 보고 왔지. 카샤는 어딨어?"
"카샤는 조금 이따가 돌아올 거예요."
“그래? 그럼 할 일도 없는데… 섹스나 할까?"
"바토리 님이랑 에르시아는 안 만나고요?"
"바토리? 나중에 만나도 돼. 근데 에르시아는 누구야?”
"아, 모르시는구나. 에르시아는…."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투다다다, 하고 밖에서 누군가가 식당으로 달려왔다.
"옥정 언니! 우유 한 잔만 주세… 요…?"
창백한 피부를 가진 검은 머리의 꼬마 여자아이는 나를 보고 붉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