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3화 > 1383. 신의 아틀란티스
"……."
아프로디테가 처녀다.
그 아프로디테가 처녀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아프로디테와 처녀. 그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공존하는 걸 목격할 줄이야.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6,700 구역에 있는 아프로디테는 진짜가 아니라 위신(僞神)이니까. 저 하늘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 아프로디테와는 근원은 같으나,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
위신인 릴리트도 처녀다.
아프로디테가 처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럽게 안 어울리긴 하지만.'
계획이 꼬였다. 아니, 꼬인 수준이 아니라 망했다.
지금 6,700 구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아프로디테의 스캔들은 아프로디테가 문란하다는 전제하에 통용되는 스캔들이다. 아프로디테가 자신의 순결성을 증명해 버린 지금 스캔들은 신빙성을 잃고 찌라시만도 못한 헛소리로 전락한다.
나는 인터넷 여론을 확인했다.
기사가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었다. 아프로디테와 비너스 엔터를 까던 기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프로디테를 찬양한다. 6,700 구역의 상징이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은 나는 포비츠 멤버들을 바라봤다. 표정이 좋지 않은 그녀들의 얼굴에도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이러면 나가리잖아."
주서현이 혀를 찼다. 나 때문에 아이돌이 된 그녀지만, 내가 원하는 게 6,700 구역의 지배권임을 알고 있다. 그녀가 순순히 협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배권 때문이기도 하고,
"그 아프로디테가 처녀라니…. 망했네요.”
미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안쓰러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러면 아프로디테의 인기가 더 오르겠군요. 이대로라면 포비츠가 1위를 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유리아가 현 상황을 냉정하게 말했다. 충성스러운 메이드이기에 희망적인 말을 하지 않고 차가운 현실을 가감 없이 말한다.
"유진. 이제 어쩔 거지? 6,700 구역을 포기할 테냐?"
팔짱을 낀 엘레나가 물었다.
포기한다고? 웃기는 소리.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할 거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을까?"
"있습니다."
"있다."
유리아와 엘레나가 동시에 대답했다.
“어떤 의미로 주인님의 전문 분야라 할 수 있겠군요.”
"판이 엿 같으면 판을 엎어야겠지.. 깽판을 쳐라. 고귀한 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귀한 자를 끌어내려라."
“아프로디테를 끌어내린다라…. 과연. 천마가 되어야 하는군."
아프로디테를 끌어내리는 법.
간단하다.
아프로디테를 강간한다.
강간당한 아프로디테. 대중들은 그녀를 불쌍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순결을 잃은 그녀에게 흥미를 잃겠지. 동정과 인기도는 다르다.
"네 알리바이는 내가 만들어주지. 그러니 마음껏 날뛰어라."
"엘레나. 네가 그렇게까지 도와준다니… 의외네."
“이 내가 무대 위에서 춤까지 춰가며 너를 도왔다. 그런데 6,700 구역의 지배권을 갖지 못한다고? 그건 안 되지. 내가 고생한 시간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건 절대 안 되지."
엘레나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직접 나설 것처럼 보인다. 그건 내가 원하지 않았기에 그녀를 진정시켰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끝내야지.'
아프로디테는 가진 무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 물론 아프로디테가 가진 권능은 무력의 차원을 넘어 성가시다. 일단 평범한 남자는 아프로디테를 보는 것만으로도 투지를 잃고 노예가 될 것이다.
'절대정신을 가지고 있는 난 괜찮아.'
다음 문제는 아프로디테를 지키는 엘프 궁수다. 그 실력은 절대 만만치 않고, 비너스 엔터테인먼트 건물에서는 피해도 입지 않는다.
'밖으로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깽판. 비너스 엔터를 제외한 6,700 구역을 박살 내는 거지.'
사실, 이 정도 생각은 누구나가 떠올릴 수 있었다. 허나 그 누구도 실행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망가진 6,700 구역의 지배권을 얻어봤자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으니까.'
이익이 없으면 지배권을 얻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선 말이다.
'…난 이익이 없어도 6,700 구역의 지배권을 얻어야겠어.'
아프로디테와 엘프 궁수가 비너스 엔터 건물에서 나을 때까지 6,700 구역을 박살 낸다.
끝까지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때는 6,700 구역이 사막이 될 뿐이다.
나는 기만(SS)으로 모습을 바꿔 천마로서 날뛰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악!"
"천마다! 천마가 나타났다!"
"도망쳐!!"
나의 등장만으로 시민들은 겁에 질려 사방팔방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사람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았다. 나는 딱히 시민을 학살하기 위해 온 건 아니니까.
터벅터벅 걸어서 '헤리존'이란 가계로 들어간다. 헤리존은 6,700 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옷가게였다. 본사 건물은 무려 6층짜리 커다란 빌딩이었다.
건물에 기름을 붓고 라이터를 던져 불을 붙였다. 불길이 치솟으며 건물을 태우기 시작했다. 비상벨이 울리고, 건물 내에 있던 사람들이 헐레벌떡 도망친다.
"이, 이 새끼! 내 가게에 무슨 짓거리야!!"
뒤늦게 건물에서 나온 중년 남자가 나를 향해 삿대질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 부러뜨린 뒤, 멱살을 잡았다. 남자는 두려워하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대형 사업체의 주인인 만큼 제법 강단이 있었다.
“보면 모르냐? 불을 지르고 있잖냐."
"저, 저 안에 있는 옷들이 얼마인지 알아?! 빌딩 4~5개는 살 수 있는 재산이라고!"
“그래서 네 목숨보다 비싸나?"
"……."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냉정함을 되찾았는지 식은땀을 줄줄 흘린다. 나는 남자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고 불타는 건물로 던지려고 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목숨 구걸이 좀 늦었군.”
"도, 돈을 원하십니까? 드리겠습니다…!"
"너희 같은 놈들은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건 너희의 오만이다. 설령 천만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왜냐? 돈이야 죽이고 빼앗으면 되거든."
“이, 이 미친놈이!!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
"비너스 엔터."
“…뭐?"
"비너스 엔터와 계약하고 꾸준히 의상을 협찬해준다지?"
"그건 정당한 비즈니스 사업이다! 가장 잘나가는 연예인들을 다수 보유한 비너스 엔터와의 계약은 누구나가 원하는 일이라고! 그 과정에서 부정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정한 일? 누가 뭐라고 했나? 난 그저 비너스 에널와 계약한 너와 너의 회사가 마음에 안들 뿐이다. 혼자 죽는다고 외로워하지 마라. 비너스 엔터와 관련된 놈들은 싸그리 다 죽여줄 테니까."
"이, 이 미친 새끼! 네 목적은 비너스 엔터를 무너뜨리는 거였나…! 이딴 방법으로 그 비너스 엔터가 무너질 것 같으냐!!"
"나도 웬만하면 이런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근데 뭐 어쩌겠나.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박살 내고 죽이는 것뿐인데."
놈을 들고 불타는 건물에 가까이 다가갔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자 바락바락 대들던 놈이 다시 얌전해졌다.
"혀, 협력하겠다. 네게 협력할 테니… 살려다오. 아니, 살려주십시오."
"네가 죽는 게 날 도와주는 거다."
그를 던졌다.
건물과 함께 그의 몸이 불타오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놈이 죽는다.
나는 뒤로 돌아봤다.
기감을 퍼뜨리면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겁 없는 시민이거나, 특종을 문 기자겠지.
삐용삐용삐용!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달려온다.
난 천마신공을 운용하며 천마기를 주먹에 모았다.
"잘 들어라. 날 방해하는 놈은 그 누가 됐든 간에 살려두지 않겠다."
천마신공(天魔神拳) 용권(竜拳).
내 주먹에서 발사된 천마기가 도로 위를 질주한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달려오는 경찰차와 부딪쳤다. 천마기는 먼저 부딪친 경찰차를 박살 내고, 줄지어 달려오는 경찰차를 연달아 박살 낸다.
그리고 도로를 달렸다.
굳이 자동차를 탈취할 필요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동차보다 내 다리가 더 빠르다.
콰아앙!
빌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나는 폭발하는 빌딩을 보며 주먹을 매만졌다. 주먹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내 피는 아니고 적들의 피다.
'6,700 구역에도 숨어 있는 강자들이 꽤 있군.'
방금 내가 터트린 빌딩은 비너스 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하는 은행이었다. 그곳의 보디가드들은 내가 마냥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그래 봤자 결국 이기는 건 나였지만.
‘100명 단위로 모여서 날 덮치는 게 아니면… 날 어떻게 할 수 없지.'
나는 바보가 아니다. 멍청하게 전면전을 고집하지 않는다. 위험할 것 같으면 기만(SS)을 이용해 바로 도망쳤다.
'이걸로 터트린 비너스 엔터 협력사는 총 4곳. 슬슬 사람들도 알아차렸겠지. 내 목적인 비너스 엔터라는 걸.'
설령 모르더라도 알게 해주면 된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을 확인했다.
데이비드는 일을 잘해주고 있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여론을 선동하고 있었다. 천마가 날뛰는 이유는 오직 하나, 비너스 엔터테인먼트 때문이라고.
'날 욕하는 놈들은 대다수지만… 그 중 일부는 비너스 엔터를 욕하고 있지. 천마를 건든 건 네놈들이니 책임지라는 식으로.'
불합리한 비난이다! 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꽤 심각했다. 나로 인해 죽은 시민만 1,000명이 넘어가고, 불타고 무너진 빌딩만 4개다. 벌써부터 6,700 구역의 경제는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비너스 엔터는 빡치는 동시에 내가 두렵겠지.'
그때였다.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엘레나에게 온 메시지였다.
-비너스 엔터 직원이 찾아왔다. 널 의심하고 있더군. 네 인형을 보고 아무 말 않고 떠났다.
엘레나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덕분에 내 정체가 들키는 일은 없었다.
메시지는 또 왔다. 이번에는 데이비드다.
-아프로디테가 부하들을 이끌고 비너스 엔터를 나왔습니다. 공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프로디테가 직접 움직였다고? 결착을 볼 생각인가. 좋은 일이긴 한데… 자기가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어느 쪽이든 결착을 볼 때가 왔다.
공원으로 움직인 건 전투로 인한 피해가 최대한 적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지.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공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