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76화 (1,371/1,497)

< 1376화 > 1376. 신의 아틀란티스

엘레나와 유리아는 시트콤에 출연하기로 했다.

'6,700 구역의 육남매'라는 시트콤이다. 2년 전부터 방영되는 장기 프로그램으로 그 내용은 무척 가벼우나 즐겁다. 주인공들이 연예계에 도전하는 내용이기도 해서, 연예계 고증이 제법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육남매의 시청률은 60%. 잘 나올 때는 70%에 달한다. 이번에 포비츠가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 시청률 70%는 가볍게 넘을 것이다.

'원래는 이렇게 쉽게 육남매 출연이 결정되지 않지만….'

시청률이 높은 만큼 육남매에 출연을 원하는 연예인들도 많다.

'릴리트 엔터가 힘을 썼어.'

엘레나와 유리아를 데리고 촬영장에 왔다.

예능 프로그램 촬영장과 달랐다. 예능 프로그램은 가볍고 편안한 느낌인 반면에, 시트콤 촬영장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이해는 해. 시트콤은 일주일에 5번을 촬영해야 하니까. 바쁘겠지.'

육남매 감독에게 향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포비츠의 티아와 유리아입니다. 저는 포비츠의 프로듀서인 성유진입니다."

"왔습니까?"

지저분한 턱수염의 감독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유리아와 엘레나를 스윽 훑어보고는 손짓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저희는 바쁩니다. 연기를 못하더라도 대충 넘어갑니다. 그러니 발연기 논란은 그쪽이 알아서 감당하시고요."

“저희 애들은 연기 잘합니다. 하하.”

"그건 나중에 보면 알겠죠. 뭐, 고작해야 1~2분 출연이니 사고만 일으키지 마십시오. 지금 이거 찍고 숏 들어갈 테니… 저기 가서 10분 정도 대기하십시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엘레나와 유리아에게 굳이 인사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평생 연예인을 할 것도 아니니 싸가지가 없다는 소문이 나도 상관없었다. 물론, 그럴 경우 내가 나서서 감독의 팔다리를 찢어 입 단속을 시킬 테지만.

10분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는데 촬영이 길어져 30분이나 기다렸다.

"유리아 씨! 티아 씨! 숏 들어갑니다! 앞으로 나와 주세요!"

유리아와 엘레나가 카메라 앞에 섰다. 부잣집 아가씨라는 단역에 걸맞게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했다. 보통 연예인들이라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꼴이 나지만… 그녀들에겐 아니었다.

그녀들에겐 오히려 명품이 부족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녀들이 가진 품위가 명품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내용은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주인공이 가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두고 부잣집 아가씨 둘이 서로 싸우게 되는 내용이지.'

딱 시트콤에서나 나올 법한 가벼운 내용이다.

유리아는 팔짱을 꼈다. 엘레나보다 더 풍만한 가슴을 강조한다. 분위기 때문일까. 천박하지 않았다. 우아한 카리스마가 감싼다.

"거기 당신. 그 목걸이, 나한테 넘겨요."

유리아의 오만한 표정, 깨끗한 발성, 풍기는 매력. 그 모든 게 완벽했다.

“…대단하군."

감독이 바로 감탄할 정도.

엘레나도 유리아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제국 정치계를 휘어잡았던 귀족이 바로 그녀다.

“장난해? 내가 먼저 왔어. 그 목걸이는 내 거야. 아가씨. 그 목걸이는 나한테 넘겨."

“어, 어, 그게…. 먼저 오신 건 아가씨가 맞는데… 이분이 먼저 카드를 내밀어서…."

유리아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여주인공을 재촉했다.

"맞아요. 계산 먼저 하면 장땡이지. 뭐해요? 빨리 계산해요."

"아가씨. 나 여기 VVIP야. 나 몰라?"

"흥. 누군 VVIP 아닌 줄 아네."

"아 씨. 너 뭐야, 저 목걸이 내가 찜했으니 여기서 꺼져."

"꺼져? 네까짓 게 감히 나한테 막말한 거야?! 이게 미쳤나?!"

"미쳐? 너 진짜 돌았어?"

"미쳤다. 어쩔래?!"

짜악.

유리아가 엘레나의 뺨을 갈겼다.

대본 대로다. 그러나 그 소리가 유독 크고, 엘레나의 머리가 획 돌아갔다. 살벌한 기세를 느낀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둘 다 연기 실력이 엄청나다 보니 순간적으로 연기가 아닌 줄 알았잖아.'

엘레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날카로운 두 눈이 유리아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지금… 쳤어?”

“그따위로 노려보면 어쩔 건데? 저 목걸이는 내가 사기로 했으니 포기하고 꺼져. 더 험한 꼴 당하기 싫으…."

짜악!

엘레나의 손바닥이 유리아의 뺨을 때렸다. 유리아의 은발이 흩날린다. 유리아는 고개를 바로 돌려 엘레나를 노려봤다.

"……."

"……."

원래는 여기서 여주인공이 치고 들어와 중재해야 한다. 그러나 여주인공은 감히 끼어들 생각을 못 하고 몸을 덜덜 떨고 있다. 유리아와 엘레나의 기세에 겁을 먹은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지켜보고 있는 나도 긴장될 지경이니까. 컷을 외쳐야 할 감독은 무언가에 홀린 듯 지켜보고만 있다.

“진짜 해보자는 거야?"

"내가 못할 것 같아?”

"이년이!"

"저년이!"

유리아와 엘레나가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들은 서로의 머리채를 쥐고 고성을 터트렸다. 본래 소리를 지르면 목소리가 탁해지길 마련이지만.… 그녀들의 목소리는 무척 깨끗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악! 이거 놔!"

"네가 먼저 놔! 아아악!"

"놓으라고!"

"네가 먼저!!"

“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여주인공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그녀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아, 아가씨들! 진정해요! 진정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 부를 거예요?!"

"커어어어엇!"

감독이 소리쳤다. 그는 마음에 든다는 듯이 씩 웃었다.

“이거이거.… 감독답지 않게 몰입해서 봐버렸습니다. 좋은 영상이 나왔으니 기대하십시오. 아, 다음 씬 준비하십시오. 아가씨들이 주인공의 중재를 받아 화해하는 씬입니다. 경찰도 있으면 좋겠군요."

“감독님. 경찰은 대본에 없습니다만…."

“경찰복만 가져오면 할 수 있지 않나? 조감독, 신입처럼 굴지 마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여유 시간이 생겼다.

나는 긴장한 채로 엘레나와 유리아에게 다가갔다. 산발 상태의 머리카락, 손바닥 자국이 선명한 뺨.

"뭘 당연한 걸 묻고 있나. 우리가 설마 진심으로 싸웠을까?”

"예. 진심으로 싸웠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엘레나 님에게 딱히 악감정이 없습니다."

“…사실 나는 악감정이 약간 담겨 있었다. 유리아, 기억 안 나나? 저번에 나는 너한테 당해 죽었다.”

"글쎄요. 기억이 안 나네요."

"이년이…."

말과 다르게 엘레나의 얼굴은 평온했다. 으르렁거리듯이 내뱉은 건 그냥 해본 말인 듯했다. 진짜로 그녀들이 싸우는 거 아닌지 걱정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쉬는 시간, 그녀들은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촬영은 완벽히 끝났다.

유리아와 미령을 소환한지 3주 차에 접어들었다. 포비츠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인기도는 꾸준히 오르고 있어. 문제없어.'

「포비츠의 인기도: 3,151,698」

「포비츠의 인기 순위: 11위.」

아직 10위 권 내로 진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주부터 인기도는 변할 것이다.

'이번 주부터 준비한 것들이 터지기 시작하니까.'

이번 주부터 포비츠가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방영을 시작한다. 각 멤버들이 예능에 나가며 촬영한 프로그램은 10개가 넘고, 오직 포비츠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4개에 달한다. 그것들이 전부 이번 주에 터질 예정이다.

'인기도란 결국 인지도이기도 하지.'

포비츠는 6,700 구역을 폭풍처럼 휘몰아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주 마지막에 포비츠는 신곡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번에는 에트월을 갈궈서 의상도 이상하지 컨셉에 맞게 제작했고, 릴리트 엔터의 모든 지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어.'

릴리트 엔터의 반대도 있었다. 포비츠의 이미지 소모가 너무 극심하다는 것이었다.

'모르는 소리. 익숙하지 않을 때 몰아쳐야지. 그래야 자극이 더 크니까. 6,700 구역의 지배권을 얻기 위해선 포비츠가 단 한 순간, 딱 한 순간만 1위를 찍으면 돼.'

포비츠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멤버들은 각각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냈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개성. 그리고 포비츠의 순결성은 팬들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포비츠의 인기도: 5,004,395」

「포비츠의 인기 순위: 9위.」

인기도가 미친 듯이 오른다. 동시에 순위도 오른다.

"딱 좋은 시기야! 지금 비너스 엔터는 비너스 스튜디오가 박살 나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거든! 이 기회를 틈타서 포비츠가 연예계를 지배하는 거야!"

릴리트가 기뻐했다. 포비츠가 인기를 얻을수록 기획사인 릴리트 엔터가 얻는 이익도 증가한다.

“솔직히 말해 봐. 천마. 그거 성 PD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모르는 척하겠다고? 좋아. 하지만 여러 가지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비너스 엔터는 손을 쓸 때 화끈하게 쓰는 편이니까. 아프로디테와 관련된 신화는 들어봤지? 그년, 성격이 상당히 안 좋아."

“직접 쳐들어오기라도 합니까?"

“그럴 수도 있어."

"……."

시간이 지난다.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포비츠의 미담을 퍼뜨린다. 물론 조작된 미담이다. 허나 멍청한 개돼지들은 미담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기획사에서 돈을 받고 포비츠에 대한 악질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나타났다.

기사 내용은 포비츠가 음원 사이트에 돈을 뿌리고, 프로듀서인 나와 부적절한 관계라며 떠벌린 것이다. 그 외에도 악질적인 스캔들을 일으키며 포비츠의 성장세를 꺾으러 들었다.

다행인 점은 사이버 렉카들이 조용하다는 점이다. 팍씨TV의 박순철의 자살 영상에 겁에 질린 상태라 그렇다. 물론 개중에는 정신 못 차린 놈들이 포비츠를 물어뜯었지만…. 그때는 사이버 렉카와 기자를 찾아가 협박했다. 친절하게 팔 하나를 찢은 뒤에 믹서기에 갈아 먹여주니 알아서 조용해졌다.

「포비츠의 인기도: 7,712,928」

「포비츠의 인기 순위: 7위.」

순조롭다.

순조롭게 포비츠의 인기도가 오르고 있다.

“성유진 PD. 요새 포비츠의 인기가 심상치 않은 건 알고 있습니다. 포비츠를 더욱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릴 방법이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릴리트 엔터의 이사인 콜린이 내 앞에 나타나 말했다. 갈색 머리의 중년인 그는 은근히 무시하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일단 한 번은 참았다. 그는 릴리트 엔터의 이사니까. 어쩌면 정말 좋은 제안을 가져왔을 지도 모른다.

"들어 보죠."

"6,700 구역은 소수의 기득권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인기도 순위의 1위는 아프로디테 여신이긴 하나, 그들이 없으면 6,700 구역의 사회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들의 권력과 재력은 6,700 구역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콜린 이사님. 용건만 말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좀 바빠서 말이죠."

"사흘 뒤에 그들의 은밀한 파티가 열립니다. 거기에 포비츠를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포비츠에게 성 상납을 하라고?"

"성 상납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성희롱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보상을 생각하십시오. 10개가 넘는 광고, 포비츠가 1년 동안 출연할 수 있는 고정 프로그램 2개…. 포비츠에게 말하길 껄끄럽다면 제가 포비츠를 설득하겠습니다. 그녀들과 만나게 해주… 아아아아아아악!"

콜린의 사지를 찢었다.

최고급 포션을 사용해 사지를 재생시키고 찢기를 반복했다.

마음 같아선 몸통도 찢어버리고 싶으나, 그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너는 오래 살아야겠다."

나르 엔터의 데이비드를 불렀다.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해 콜린이 가진 정보를 뽑아낸다. 놈은 포비츠를 바치는 조건으로 현금과 새로운 기획사의 투자를 받기로 했다. 포비츠에게 손을 뻗으려고 한 놈들도 전부 알아냈다.

데이비드는 마른 침을 삼키며 내게 물었다.

“……그들을 찾아가 죽이실 생각입니까?"

“그건 너무 쉽지. 그리고 지금 놈들을 전부 죽이면… 한창 인기도를 올리고 있는 포비츠의 기세가 꺾이잖아."

"명령만 하시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데이비드. 난 그 새끼들이 죽이지 않아. 살릴 거야.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살릴 놈들이 제법 많아."

포비츠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로 생활하는 동안 온갖 놈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포비츠의 공식 메일로 알몸 나체 사진을 보내는 놈도 있었고, 콜린 이사처럼 은근히 스폰을 제의하는 놈들도 있었다. 선 넘는 악플을 다는 놈들, 포비츠를 쫓아다니는 사생팬들, 포비츠를 죽이겠다며 인터넷에 어그로를 끄는 놈들.

나는 그놈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유진 님의 계획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이 도시 지하에 농장을 만들 거다."

"농장. 말입니까?”

“그래. 인간 농장. 오직 주제도 모르는 버러지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인간 농장."

데이비드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는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알고 있다.

"벌레들은 자신의 육체와 오물을 먹으며 평생을 살아가게 될 거야."

「마천의 왕이 웃습니다.」

「마천의 왕은 행복합니다.」

「떨어진 별이 당신에게 감탄합니다.」

「황금 수집가가 당신을 인정합니다.」

「죄를 삼키는 자가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신성한 불이 당신을 경멸합니다.」

「삶과 죽음의 순환이 당신을 경계합니다.」

「천공의 주인은 흥미를 느낍니다.」

「마천의 왕이 당신에게 선물을 내립니다.」

허공에 시커먼 보석이 나타났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생지옥의 핵

생지옥을 만들 수 있다.

생지옥에 있는 자들은 죽지 않는다. 영원히 고통받는다. 구원은 없다.

생지옥의 관리자는 생지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랭크: SSS」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보군. 데이비드 선택해라. 농장의 관리자가 될 거냐?"

나는 일부러 생지옥의 핵을 그에게 보여줬다.

데이비드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벌레가 되기 싫으면 잘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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