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71화 (1,366/1,497)

< 1371화 > 1371. 신의 아틀란티스

-소피아의 식당

소피아의 식당이란 프로그램은 유명한 토크쇼 프로그램이다.

소피아라는 유명한 MC가 식당에 게스트를 초대해 토크를 하는 간단한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은 10%도 되지 않지만, 연예계 매니아들은 꾸준히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엘레나가 나가게 됐다.

"오늘은 한창 6,700 구역을 달구고 있는 포비츠의 티아 씨가 찾아오셨습니다!"

소피아는 밝은 얼굴로 엘레나를 반겼다. 엘레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소피아의 식당은 살짝 어두운 분위기의 식당이다. 살짝 고급스럽고, 조금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호오. 분위기는 나쁘지 않군.”

"저는 안 반겨주시나요?"

엘레나의 옆에 한 여성이 볼멘소리를 냈다. 소피아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물론, 소피아의 식당은 당신도 환영해요, 유리 씨. 근데 너무 자주 오시는 거 아니에요?"

“계속 불러주시니까, 오는 거죠, 뭐."

연유리.

현 최고의 아이돌 걸그룹인 핑크 러브의 리더인 그녀가 엘레나와 함께 들어선 것이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식탁 앞에 앉았다. 카메라에 잘 노출되는 곳을 선점한 것이다.

'강아지처럼 웃는 주제에 여우처럼 행동하는군.'

나는 연유리의 행동에 감탄했다. 과연 대세 연예인이라 해야 할까. 행동 하나, 하나에 짬이 느껴졌다.

엘레나는 바로 의자에 앉지 않았다. 그녀는 식당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메인 PD가 당황하지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마치 식당을 품평하는 듯한 엘레나의 태도가 무척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손짓과 발짓에 품격이 있어. 역시 고위귀족이라 해야 하나….'

정작 엘레나 본인은 노리고 행동한 듯한 태도는 아니었다. 엘레나의 시선을 끈 건 와인 냉장고였다.

“티아 씨. 와인에 관심 있나요?"

"와인은 삶의 활력소지. 여기에 꽤 좋은 와인이 많군. 꺼내도 되나? 방송이라 안 되나?"

"괜찮아요. 와인을 찾는 손님이 처음이긴 한데… 저희 방송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취해선 안 돼요. 엄연히 방손이니까. 와인잔 꺼내 드릴게요. 유리씨도 마실 거죠?"

"와인은 잘 모르지만… 티아 씨가 저렇게 반응하니 무척 궁금하네요. 한 번 먹어볼게요."

"202 구역의 화이트 와인이 있군. 산뜻한 맛이 있어서 와인을 처음 맛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좋아하지.”

엘레나는 화이트 와인을 가지고 식탁으로 향했다. 소피아의 행동이 분주해졌다.

"어, 잠시만요. 와인오프너가 어디에 있을 텐데…."

"괜찮다. 오프너는 없어도 된다."

엘레나가 와인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마법진이 나타나 와인병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하자 촬영장이 술렁거렸다.

메인 PD와 함께 녹화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조용히 혀를 찼다.

'마법은 될 수 있으면 쓰지 말라고 했는데….'

나쁜 건 아니었다. 마법사란 요소는 엘레나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 줄 테니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에서 마법을 사용했으면 더 화제를 모을 수 있었을 텐데.'

마법으로 와인을 오픈하는 엘레나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녀는 화이트 와인을 다른 여인의 와인잔에도 따라주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한 모금 마신다.

"괜찮은 와인이군."

엘레나가 마음에 든 듯 씨익 웃었다.

"맛있어요!"

"후아…. 이런 와인이 있었을 줄이야. 이렇게 괜찮은 와인인 줄 알았으면 진즉에 맛보는 건데… PD님! 이런 와인이 있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안 알려준 거예요?!"

소피아가 메인 PD에게 버럭 소리쳤다. 메인 PD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전부 찍었다.

“유리 씨. 어떤 음식을 해드릴까요? 저번에 먹은 김치볶음밥?"

“김치볶음밥… 좋아하긴 한데… 오늘은 소피아 언니가 추천해주는 요리를 먹고 싶어요."

“그럼 라면으로?"

“……진짜요?"

"후후. 농담이에요. 사실 오늘 티아 씨가 온다고 해서 준비한 요리가 있어요."

"티아 씨를 위해서라니… 부럽네요."

"유리 씨를 위한 요리는 저번에 해드렸잖아요. 오늘은 티아 씨에게 양보하세요."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던 티아는 자신을 위한 요리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담담했다. 전혀 기대되지 않는듯한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녀는 숙소 생활을 하는 동안 유리아의 거의 매끼마다 먹었다. 평범한 요리로는 그녀의 혀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무슨 요리지? 미리 말해두는데… 라면 같은 건 딱 질색이다."

"후후. 귀족 출신의 티아 씨에게 라면을 먹일 순 없죠. 제가 준비한 요리는 코코뱅이에요."

"코코뱅. 와인으로 삶는 닭요리인가."

“어머. 알고 계셨네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자주 먹는 만큼 웬만한 코코뱅은 내 혀를 만족시키지 못하지."

“아. 뭔가 괜히 더 긴장되네요."

소피아가 요리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토크가 진행되었다.

나는 방송 시작 전에 연유리에게 분량이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였다. 토크의 중심은 엘레나였다. 엘레나의 존재감이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녀는 여유롭게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이 식당을, 이 프로그램을 지배하고 있다.

"티아 씨가 마법사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마법은 언제부터 익히셨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익혔다. 아버지가 마법사였지. 뭐, 흔히 있는 마법사 가문이다."

"마법사는 귀족이 되기 쉽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나요?"

“옛날에는 그랬지. 요즘에는 마법사라는 이유만으로 귀족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업적을 달성하거나, 공적을 쌓아 능력을 증명해야만 귀족이 될 수 있다."

"6,700 구역은 귀족도, 뭐고 없어요. 아시죠?"

"뭐, 지금은 그렇겠지."

"유리 씨는 대한민국 출신이시죠? 그 나라에는 귀족이 없다던데…."

"아, 맞아요. 한국에는 귀족도 왕도 없어요. 6,700 구역과 비슷해요."

요리가 완성되었다.

코코뱅을 한 입 맛본 연유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맛있어요! 처음 먹어보는데 엄청 맛있네요!"

연유리가 감탄했다.

소피아의 요리 실력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듣자 하니 연예인이 되지 않았다면 요리사가 되었을 거라고 한다.

'엘레나! 맛있다고 말해!'

나는 엘레나의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엘레나가 마침 이쪽을 바라본다.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그녀의 눈이 빛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럭저럭이군."

"……."

엘레나의 평가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마음에… 안 드셨나요?"

소피아는 웃고 있는 얼굴이지만,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그녀는 코코뱅을 3일 밤낮으로 준비했다고 아까 말했었다.

"맛없다고 한 게 아니다. 평범할 뿐이지.”

"잠깐만요! 그게 맛없다는 뜻이잖아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맛없다고요?! 귀족 컨셉 때문에 그러는 거죠? 억지 부리지 마세요!"

연유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엘레나를 노려봤다. 그 기세가 사뭇 사나웠다. 허나 엘레나는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

“억지?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을 뿐이다."

"먹어봤으니 알잖아! 소피아 언니의 요리는 무시받을 만한 요리가 아니야! 네가 뭐라고 소피아 언니의 요리를 무시하는 거야?!”

연유리가 엘레나에게 삿대질한다.

연유리가 이렇게 오버하는 이유는 소피아 때문이다. 6,700 구역에서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한 손에 꼽히는 소피아를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나는 메인 PD를 불렀다.

"PD님."

"아, 성 PD님. 괜찮습니다. 편집하면 되니까요. 그냥 지켜보시죠. 위험할 것 같으면 저희가 나서서 말리겠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곧 소피아 씨가 나설 테고."

"지금 위험한 상황입니다만."

“유리 씨가 드세 보이지만 손을 쓰진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뇨, 제가 위험하다고 말한 건 티아가 아니라 유리 씨입니다."

"네?"

나는 메인 PD에게 경고는 했다.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 보아하니 메인 PD는 연유리와 엘레나가 싸우기를 원하는 것 같고.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엘레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일어선 연유리를 바라봤다.

"나는 그저 내가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이다. 소피아의 요리를 무시한 적 없다."

"언니의 요리를 그럭저럭이라고 말했잖아!"

“그래. 그럭저럭 최상급 요리사 수준의 실력이다. 대귀족 가문의 주방장을 맡을 정도의 실력이지."

“그건… 칭찬이야?”

"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그런데… 언제까지 삿대질을 할 생각이지?"

"……!!"

엘레나의 기세가 식당을 가득 채운다. 그녀의 마나가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공간을 짓누르고 있다. 이곳에 있는 일반인 대부분이 엘레나에게 압도되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엘레나는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기세를 풀었다. 연유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소피아는 식탁을 잡으며 간신히 버텼다.

“미안하다. 지금의 나는 귀족이지만, 아이돌이지. 한순간 그 사실을 망각했다. 뭐, 사과만으로 납득하지 못하겠지."

엘레나가 손가락을 튕긴다.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지고 그곳에서 음식이 담긴 접시가 튀어나왔다.

“우리 가문의 요리사가 만든 코코뱅과 유리아가 만든 코코뱅이다. 한 번 맛봐라."

“…티아 씨는 요리를 아공간에 가지고 다니시나요?"

“아공간은 편리하지. 음식을 넣어두면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야식이 당길 때는 보통이 아니다."

딱딱하게 굳어졌던 소피아는 엘레나의 너스레에 표정을 풀었다.

“아공간 그게 있으면 따로 냉장고가 필요 없겠네요. 부러워요. 유리아 씨는 티아 씨의 동료죠? 먼저, 유리아 씨가 만든 코코뱅부터 먹어볼까요?”

“아니, 가문의 요리사가 만든 걸 먼저 먹어봐라."

“네. 그러죠."

한입 먹은 소피아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린다.

"……제가 만든 코코뱅은 말 그대로 그럭저럭이네요. 요리사 분의 이름을 알 수 있을 까요?"

"비밀이다."

"……알려지면 곤란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요."

"뭐, 그렇지."

"다음은 유리아 씨의… 헉…!"

유리아의 코코뱅을 먹은 소피아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몸을 떨면서 손을 계속 움직였다.

"말도 안 돼…! 이런 수준의 요리라니…! 이건 이미 사람의 경지가 아니야! 이거 정말 유리아 씨가 만든 요리인가요?!"

"내가 네게 거짓말할 이유는 없다."

"엄청나요! 유리아 씨의 코코뱅에 비하면. 제 요리는 쓰레기네요."

"소, 소피아 언니?!"

“유리 씨. 유리 씨도 먹어봐요. 이렇게 좋은 걸 저만 먹을 수는 없죠.'

"그, 그렇게 맛있어요?"

"안 먹으면 평생 후회할 거요?"

연유리가 유리아의 코코뱅을 먹었다. 연유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코코뱅에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위기가 풀렸군. 진짜 사고 날 뻔했는데… 잘 됐다.'

그러나 여기서 끝내선 안 된다.

"PD님. 아까 장면은 편집해 주시죠."

"편집이요? 이거 딱 좋은 장면이에요. 문제없이 해결됐잖아요."

"편집해 달라고 했습니다."

살의를 담아 말했다. 메인 PD가 움찔 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알겠습니다."

이 일은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포비츠에겐 시간이 없어. 굳이 위험한 길을 선택할 이유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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