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6화 > 1366. 신의 아틀란티스
나는 의자에 앉았다.
데이비드는 내 앞에 무릎 끓었고, 잭슨은 구석에서 조용히 내 눈치만 살피고 있다.
데이비드는 죽이지 않았다.
원래는 3시간 정도 고문한 뒤에 죽일 계획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데이비드는 꽤 쓸만한 놈인 것 같았다.
'나르 엔터. 비너스 엔터, 릴리스 엔터와 함께 6,700 구역에서 손꼽히는 대형 연예 기획사. 즉, 내게는 경쟁자지.'
데이비드는 나르 엔터에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해왔다. 그는 나르 엔터의 비리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데이비드를 이용하면 포비츠의 강력한 경쟁자인 나르 엔터를 치울 수 있다. 일이 몇 배는 편해지는 것이다.
'놈을 바로 죽이는 건 보류다. 이용한 뒤에 죽이자.'
나는 놈에게 살려준다고 말했다.
놈이 가진 고유 특성, 거짓말 탐지기라면 내 말이 거짓임을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놈은 발악하지 않았다.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내 말을 받았다.
'나한테 뭐라 따지면 팔 하나를 찍으려고 했는데, 운이 좋은 놈이군 …아니, 눈치가 좋은 놈인가.'
이 상황을 모면하고 도망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충성을 맹세해."
"맹세하겠습니다. 기꺼이 당신의 발을 핥겠습니다."
"내 발을 핥아? 네가? 상상만 해도 기분 나쁘잖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넌 나한테 충성을 맹세했어. 맞지?"
"네. 맹세했습니다. 부디 살려만 주십시오."
「마풍신공의 전수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나는 데이비드에게 손을 뻗었다. 손바닥 위에서 검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었다. 검은 기운은 데이비드에게 날아가 흡수되었다. 데이비드의 양 팔목에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문신이 생겼다.
마풍신공(魔風神功) 전수.
내가 가진 SSS 랭크 스킬이었다. 능력의 효과는 충성을 맹세한 대상에게 마풍신공을 전수한다.
대상은 마풍신공을 이용해 빠르게 강해질 수 있으나, 몇 가지 부작용이 있다.
그중 하나는 마성(魔性)이 생기고, 마성에 정신이 먹히면 마물이 된다는 점.
그리고 다른 부작용은 천마(天魔)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내 노예가 된다는 거지. 뭐, 종속에 비해 강제력이 약하긴 하지만.'
나는 데이비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풍신공을 강제로 전수 받은 데이비드는 무릎 끓는 것을 넘어 내 발치에 머리까지 조아렸다.
'흥분하지 않고 완벽히 스스로를 절제하고 있군. 꽤 재능있는 놈이군.'
살짝 감탄했다.
그뿐이었다. 쓸모가 다하면 죽인다는 계획은 여전했다.
놈이 가진 고유 특성인 거짓말 탐지기?
쓸만한 고유 특성이란 건 부정하지 않는다. 활용도만 따져도 엄청나다. 상대를 심문할 때, 협상할 때 등등 온갖 곳에서 도움이 될 테지.
그러나 목매달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라고 하면 또 아니다.
‘거짓말 탐지기로 못 알아내는 것들도 있을 테고…. S 랭크도 아니고 A 랭크잖아.'
미련은 없었다.
"왜 몰카를 설치하는 방법을 선택했지? 몰카 영상으로 릴리트 엔터를 협박하려고? 설마 포비츠를 직접 협박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 정도 영상은 협박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잘 찍혀봤자 알몸도 아니고 속옷일 테니. 영상은 손에 넣자마자 바로 터트리려고 했습니다."
"왜?"
"청순형 아이돌이란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긴. 청순형 아이돌에겐 이미지가 중요하긴 하지. 그게 전부야?"
"네. 일단은 그게 전부입니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나는 데이비드의 발로 퍽퍽 찼다.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렸다.
"데이비드라고 했지? 긴말 안 한다. 포비츠는 한 달 내로 6,700 구역에서 1위 해야 해. 알아서 협조해라. 방해되는 놈들은 치우고. 만약, 포비츠가 1위 하지 못한다? 넌 영원히 살게 될 거야."
“……영원히 산다는 뜻은…?"
“궁금해? 실망 시키지 않을 걸 약속하지.”
"……."
데이비드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어쨌든 이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나는 널브러진 시체들을 둘러보며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여긴 알아서 정리해라."
"…예. 뒤처리는 맡겨주십시오."
“성 상납 할 수 있다고 했지? 근처 호텔에 있을 테니, 여자도 데려와. 인기 좋은 여배우면 좋겠군.”
"시간이 필요합니다."
"몇 시간?"
"2시간만 기다려주십시오.”
"못 기다릴 정도는 아니네. 못생긴 년을 데려오면… 바로 죽여버린다. 진짜.'
나는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잭슨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집 밖으로 나갔다.
D-day.
데뷔의 날이 밝았다.
숙소는 아침 7시부터 부산스러웠다. 다른 때보다 훨씬 빨리 잠에서 깬 그녀들은 쉬지 않고 숙소를 돌아다녔다.
"……."
주서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소파에 앉아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 뉴스는 포비츠의 데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이게 뉴스에 나올 정도의 정보인가 싶지만, 여긴 6,700 구역이었다. 연예계 소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앞치마를 맨 유리아가 아침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맛있는 미역국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프로듀서님!"
미령이 나를 불렀다. 방금 막 샤워를 끝낸 그녀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몸은 수건으로 돌돌 말아 겨우 가리고 있다. 그녀의 양손에 속옷이 걸린 옷걸이를 쥐고 있었다.
“어느 속옷이 좋을 것 같아요? 골라주세요!”
“속옷이라…. 의미 있어? 어차피 무대 의상을 입을 때는 속바지를 입을 건데."
"프로듀서님이 보잖아요. 그러니 저한테는 중요해요.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나는 좀 더 진지한 눈으로 속옷을 바라봤다. 둘 다 안쪽이 살짝 비치는 망사 팬티로 디자인은 비슷했다. 다른 점은 색깔이다. 블랙 앤 레드. 내 손가락은 검은색을 가리켰다.
“이쪽이요? 저도 검은색을 생각했는데… 우리 통했네요."
“아이돌이 입기엔 너무 야한 속옷 아니야?"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니 괜찮아요."
미령은 방으로 들어갔다.
쿵. 쿵쿵. 쿵쿵쿵.
내 시선은 식탁 쪽으로 향했다. 가장 늦게 일어난 엘레나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조차 하지 않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주먹이 식탁을 쿵쿵 내려치고 있었다. 미간은 인정사정 할 것 없이 구겨져 있었다.
"왜 그래?"
"…이 내가, 발데르트의 가주인 내가 앞으로 몇 시간 뒤에 무대 위에 올라 춤을 춘다…. 딴따라가 되는 거다…. 어떻게 이런 현실이 있을 수 있는 거지…?"
"현실 도피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아? 그리고 널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거야. 네 환술이잖아."
"…환술. 그래. 환술로 6,700 구역 전체를 속이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1,000만 명을 너 혼자 속일 수는 없어. 왜 갑자기 불안해하는 거야?"
"후우. 연습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데뷔라니…. 연습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좀 더 완벽하게…. 그래. 기왕 하는 거 완벽한 아이돌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연습 시간이 겨우 일주일이라니 그마저도 절반은 너랑 섹스한 기억밖에 없다…. 이게 무슨 아이돌이냐고…."
완벽주의 기질이 있는 엘레나의 한탄은 10분 정도 더 지속되었다. 의외의 면모를 발견했다.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포비츠 멤버들을 데리고 미용실로 데려갔다. 전문가에게 헤어 스타일링을 받고, 무대 의상을 점검했다.
“이게 무대 의상…?"
무대 의상을 보고 충격받은 주서현이 몸을 비틀거렸다.
"정신 차려요, 언니!"
미령이 주서현의 등을 받쳤다.
“이건… 심각하군.”
엘레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꼭 이런 옷을 입어야 하나요?"
유리아마저 두 눈을 찡그렸다.
나는 그녀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 무대 의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 요정?'
동화 속의 요정이 입을 법한 반짝이는 드레스였다. 디자인이 전체적으로 유치하고 촌스러웠다. 화룡점정은 드레스 등에 달린 날개였다. 날개 하나 때문에 무대 의상이 아니라 코스프레 의상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 무대 의상을 디자인한 건 에트월이다. 그와 한 약속 때문에 무대 의상은 반드시 입어야 했다.
"어쩔 수 없어. 입어야 해.”
"…날개만. 저 날개만 떼자."
주서현이 날개를 잡아 뜯으려고 손을 뻗는다.
"안 돼요! 언니! 이 옷이 없으면 데뷔 못 한다고요!"
"히익! 어, 어딜 잡는 거야?!"
"언니 가슴이 좀 크네요. 그래도 저보다는 작지만요."
"이거 놔…!"
“에이, 왜 이래요. 우리 이미 볼 것 다 본 사이잖아요."
"으긋…."
주서현이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청하지는 못하고 시선만 보내는 것이다. 나는 그녀들의 뒤로 다가가 미령의 가슴을 만졌다.
"꺆!"
미령은 비명을 질렀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주물주물.
나는 미령의 가슴을 주무르고, 미령은 주서현의 가슴을 주물렀다.
스윽.
유리아가 내 뒤로 다가왔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내 가슴을 만졌다.
“하아… 주인님….”
귓가에 유리아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지가 설 것 같았다.
"뭐 하는 거냐."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엘레나가 우리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차놀이요! 엘레나 언니도 같이하죠?”
"됐다. 그런 천박한 놀이를 누가 한다고…."
"저번에 침대에선 했잖아요."
"……그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잊어라."
엘레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TKT 방송국.
포비츠는 TKT 방송국에서 데뷔한다. 정확하게는 TKT 방송국의 음악 방송 프로그램인 ‘뮤직킹덤'에서 데뷔한다.
무대는 첫 번째 무대.
임팩트를 따지면 마지막 무대가 좋지만, 마지막 무대는 음방 1위를 위한 무대였다.
'다음 주부터는 포비츠가 마지막 무대에 서게 될 거야.'
조금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음방 데뷔는 필수다. 이 구역의 음방 시청률은 무려 50%에 달하니까.
'50%…. 지구에선 말도 안 되는 수치의 시청률이지만…. 이 구역에선 가능해. 뭐라고해도 6,700 구역의 중심은 연예계니까.'
"좋네요. 보통 신입은 다른 팀과 대기실을 같이 사용하는데…."
사마라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대기실 문을 쳐다봤다. 대기실 문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포비츠’라는 단어 하나만이 적혀 있었다.
포비츠는 꽤 좋은 대기실을 배정받았다. TKT 방송국 측에서 포비츠를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옆에 붙어 있고, TV나 냉장고도 있었다.
"포비츠는 보통 신입이 아니니까."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멤버들은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며 소파에 앉았다. 시간을 확인했다. 리허설 시간까지 50분은 남았다.
"성유진."
주서현이 나를 부른다.
"프로듀서라고 부르라니까."
“…프로듀서.”
"왜? 서현아."
"보통 신입들은 선배들을 찾아가 인사한다고 들었는데… 우린 이대로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거야?"
"괜찮아. 그런 거 안 해도 돼. 푹 쉬어."
관례 따윈 좆까라지.
2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똑똑똑.
누군가가 대기실 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핑크 러브입니다! 인사하러 왔어요!"
발랄한 여자 목소리였다.
핑크 러브.
비너스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이돌 걸그룹이다. 현 6,700 구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걸그룹이다. 그리고 포비츠의 가장 큰 경쟁 상대다.
나는 사마라에게 눈짓했다. 사마라가 대기실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