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4화 > 1364. 신의 아틀란티스
나는 30분 동안 문답 무용으로 로버트를 고문했다.
전기 고문은 물론이고 손톱을 뽑고, 입술을 찢고, 허벅지 피부를 칼로 뜯어내기도 했다. 오른쪽 눈을 뽑아 강제로 입에 넣어먹이기도 했다.
“으, 으으….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나는 로버트의 왼쪽 귀를 손으로 잡아 뜯으며 물었다.
"왜 그랬어?"
"나르… 나르 엔터의 데이비드 실장이 포비츠의 영상을 비싼 값에 사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그래서 몰카를 설치했다?”
“네, 네. 돈이 필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자수하겠습니다."
대화를 좀 해주니 희망이라도 생겼는지 죽여달라는 말에서 살려달라는 말로 바뀌었다.
파지지직.
보답으로 놈에게 전류를 흘려보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나르 엔터테인먼트.
릴리트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6,700 구역에서 손꼽히는 대형 연예 기획사다. 예전에는 중소형 기획사였는데, 요즘에는 릴리트 엔터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몰카 영상을 유포하려고 이놈에게 시켰나? 아니면 몰카 영상을 빌미 삼아 협박하려고?'
어느 쪽이든 마음에 안 드는 개수작이었다.
퍼억.
로버트를 발로 찼다. 로버트가 비틀거리며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화장실 바닥은 피투성이였다. 모두 로버트의 피였다.
“나르 엔터의 데이비드 실장이라…. 잭슨 감독. 뭐 아는 거 없어?"
구석에 쪼그려 앉아 벌벌 떨고 있는 잭슨에게 물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사실, 데이비드 실장은 어제… 제게 돈을 줬습니다."
"뭐? 너한테 돈을 왜 줘?"
"그… 포비츠의 뮤직비디오를 대충 찍으라고 의뢰해 왔습니다."
“이런 시발. 그 새끼가 또 수작을 부렸다고?"
"데이비드 실장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엔터에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데이비드 실장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습니다만, 데이비드 실장의 로비스트 능력만큼은 확실합니다."
"아, 짜증 나게. 나르 엔터에 찾아가서 다 죽여야 하나. 야, 잭슨. 뮤직비디오 대충 만들 거야?"
"절, 절대 아닙니다! 성심성의를 다해 포비츠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겠습니다! 데이비드 실장에게 받은 돈도 성 PD님에게 다 드리겠습니다."
"그딴 푼돈에 관심 없어. 우리 애들 뮤비나 잘 찍어. 만약, 뮤비가 개쓰레기 같이 나왔다? 그럼 넌…."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로버트를 가리켰다. 잭슨은 로버트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바지를 적셨다.
"바, 반드시 최고의 걸작으로 만들겠습니다!"
“믿을게. 잭슨 감독."
나는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로버트의 목을 한 손으로 꽉 잡고 역수로 쥔 나이프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퍽! 퍽퍽퍽! 퍽퍽퍽!
로버트의 몸에 나이프를 연신 쑤셨다. 로버트의 숨통이 끊겼음에도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화풀이하듯 시체가 된 놈의 몸을 계속해서 나이프로 쑤셨다.
퍽! 퍽! 퍽! 퍽! 퍽!
"씨발놈이! 감히 몰카를 설치해! 이 씨발!!"
퍽! 퍽! 퍽! 퍽! 퍽!
내가 손을 멈춘 건, 120번 정도 더 나이프를 휘두른 후였다. 고깃덩어리가 된 로버트의 시체를 보며 몸을 일으킨다. 온몸이 피로 끈적했다.
'일단 시체는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적당한 곳에 버려야겠군.'
피투성이 화장실은 대충 물로 한 번 씻겨내면 될 것이다. 시체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로버트는 실종 처리될 것이고, 살인 사건은 사건도 뭣도 아니다. 물론 목격자인 잭슨이 입을 닥치고 있어야 하겠지만.
“잭슨 감독님."
잭슨을 불렀다. 고개를 숙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던 잭슨은 바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 네. 성 PD님. 말씀하십시오."
"뮤직비디오. 잘 만들어 봅시다. 네?"
"네. 네! 맡겨만 주십시오! 영혼을 갈아 넣어서라도 최고의 걸작을 만들겠습니다!"
“못 만들면 로버트 새끼가 부러워지게 될 겁니다."
"미, 믿어 주십시오!"
"믿습니다. 믿어요. 자, 촬영하러 가시죠. 아, 가기 전에 화장실 청소 좀 하시고."
“제, 제가요?"
“그럼 내가 하냐? 이 씹새끼야?"
"아,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죠!"
잭슨 감독은 10년은 늙은 듯한 얼굴로 감독 자리에 앉았다. 그는 흠뻑 젖은 옷을 바라봤다. 피가 묻어있었다. 몇 번이나 물로 씻었는데도 피 얼룩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옷에 배인 피 냄새도 마찬가지다.
"감독님?"
갈색 머리의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로버트 AD의 후임인 레베카다.
“그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난 괜찮다."
"아. 그럼 다행이구요. 혹시 로버트 AD 보셨어요? 아까부터 안 보이네요."
로버트.
그 이름이 나오자 잭슨 감독은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그 새끼는 알 게 뭐야. 촬영이나 시작하지.”
잭슨 감독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레베카는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 잭슨 감독을 자극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최악의 경우 촬영일이 펑크날 수 있었다. 레베카는 로버트 AD가 없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촬영 시작합니다! 막내는 포비츠 분들 데려와!"
성유진 프로듀서와 함께 포비츠가 나타났다.
잭슨은 실실 웃고 있는 성유진을 보며 치솟는 두려움을 느꼈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방금 사람을 잔인하게 죽여 놓고… 어떻게 저리 웃을 수 있는 거지? 저놈은 미친놈이다…! 상종해서는 안 되는 미친놈…!'
잭슨은 도박 빚 때문에 깡패에게 시달린 적 있었다. 그때도 이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깡패도 최소한의 앞뒤를 가리며 사람을 죽이니까. 하지만 성유진은 아니었다. 짜증 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일 놈이었다.
"감독님?"
“…시작해."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진다.
포비츠 멤버들은 테니스복을 닮은 산뜻한 옷을 입고 있었다. 밝은색의 옷과 하늘하늘한 치마. 의상은 청순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몸매는 청순과 좀 거리가 멀었다. 모두 가슴과 엉덩이가 컸기 때문이다. 청순한 옷과 청순한 노래, 청순한 안무…. 청순 그 자체인데 묘한 색기가 느껴졌다. 잭슨은 그게 포비츠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청순 속에 숨은 섹시…. 나쁘지 않군.'
포비츠의 데뷔곡인 '데이트'의 컨셉은 첫 데이트의 설렘과 청춘을 의미한다. 곡명이 데이트이긴 하나 뮤비에 다른 남자는 나오지 않는다.
‘춤도 잘 추는군. 일단 포비츠는 데뷔하자마자 뜨겠어.'
잭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편집을 통해 성유진이 만족할만한 좋은 작품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컷! 단체 안무씬은 완벽합니다! 포비츠 여러분은 의상 갈아입고 오세요!"
의상은 3개 준비되어 있었다. 단체 안무 영상을 다른 의상으로 3번을 찍어야 한다는 말이다.
잭슨은 포비츠에게 10분의 시간을 줬다.
그러나 10분이 지났음에도 포비츠는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레베카는 잭슨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 잭슨은 이럴 때 연예인들에게 욕을 쏟아 냈다.
“가, 감독님. 포비츠 분들에겐 제가 따끔하게 욕하고 올까요?”
"뭐?! 포비츠에게 왜 욕해?! 너 미쳤어?!”
“예? 그, 너무 늦는 것 같아서…."
“쓸데없는 짓 말고 가만히 있어. 옷을 입다 보면 좀 늦을 수 있지 왜 이렇게 나서려고 그래?"
“……네. 죄송합니다."
고개 숙인 레베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잭슨의 성향을 맞춰서 나섰는데 괜히 욕만 들었다. 평소의 잭슨을 생각하면 억울한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성유진이 하품을 쩍쩍하며 잭슨에게 다가왔다. 잭슨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우리 애들이 점심을 못 먹어서 말이죠. 밥 좀 먹고 할 건데. 괜찮죠?"
"무,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근데 아까 찍은 건 잘 나왔나? 좀 보여주시죠."
"네. 네. 여기 있습니다. 포비츠는 정말 뛰어난 걸그룹이다. 제가 뮤비만 수십 편 찍었는데 포비츠 만큼은 뛰어난 걸그룹을 찍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캬아. 영상 잘 나왔네."
포비츠는 1시간 뒤에 나타났다. 잭슨 반사적으로 무슨 점심 식사를 1시간 동안 처먹었냐고 욕할 뻔했으나, 옆에 있는 성유진을 보고 말을 삼켰다. 성유진은 포비츠를 아끼고 있었다. 괜히 뭐라고 했다가 자신에게 불똥이 될 것이다.
"촤, 촬영 시작해!"
촬영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뮤직비디오는 무대 영상과 다르다. 계속 춤만 추는 영상을 내보낼 수 없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선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 이야기는 곡명처럼 데이트였다.
유리아&엘레나.
미령&주서현.
각각 둘로 나뉘어서 평상복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데이트하는 영상을 찍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멤버 개개인의 개성과 매력을 영상에 담는 것이다.
'이야기는 부족해도 비주얼 자체가 예술이야.'
예술은 잘은 몰라도 끌리게 되는 무언가다. 완성된 포비츠의 뮤직비디오는 대중들의 시선을 끌 것이다.
유리아&엘레나는 성숙한 여인들의 데이트였다. 야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어두운 공원 길을 둘이서 조용히 걷는다. 분위기가 성숙한 느낌이다.
반면 미령&주서현은 활기찬 느낌이다. 친구끼리 노는 듯한 데이트다. 미령이 주서현의 손을 잡으며 분위기를 이끌고, 주서현은 어색해하면서도 미령에게 어울린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옷가게에서 재미있게 논다.
촬영은 밤 10시가 되어서 끝났다.
잭슨은 작업실에 가서 영상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틀 내로 영상을 편집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원래는 로버트 AD와 같이 편집했겠지만….'
그 로버트 AD는 죽었다. 시체는 성유진이 가져갔기에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다.
‘…뮤비가 놈의 마음에 안 들면… 나도 로버트처럼 되겠지. 걸작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영상은 만족스러우니 내 편집 실력이라면… 가능하다!’
부르르르르.
잭슨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편집에 집중하던 잭슨은 눈살을 찌푸리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데이비드 실장이다.
그는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잭슨 감독님. 저, 데이비드 실장입니다. 지금 작업실에 계시죠? 만나서 대화하고 싶은데… 지금 작업실로 가겠습니다.
"작업실로 찾아오겠다고? 당신 미쳤어?"
-급한 일입니다. 로버트 AD에 관해서도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덤으로 포비츠에 대해서도요. 사실 이미 거의 도착했습니다.
잭슨은 창문 밖을 쳐다봤다. 검은색 자동차 3대가 자신의 작업실로 오고 있었다.
'이 새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날 협박할 생각인가?!'
데이비드 실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잭슨은 경찰을 떠올렸다.
'아니야. 데이비드, 이 새끼라면 경찰도 구워삶았을 거야.'
잭슨은 고민하다가 성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차마 성유진에게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