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3화 > 1363. 신의 아틀란티스
일단 나는 사마라와 함께 의상실로 향했다. 증거 확보를 위해서였다.
내가 의상실에 들어갔을 때, 분위기는 싸했다.
엘레나는 의자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고, 유리아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다. 미령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책상 위에 놓인 카메라 3개를 노려보고 있으며, 주서현은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휘두를 것 같은 살벌한 기세를 흘리고 있다. 물론, 그녀에게 칼은 없었지만.
"이게 그 카메라야?”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똑같은 카메라 3개가 놓여 있었다. 크기는 엄지 정도로 작았다.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쪽이 아니라, 저장되는 쪽으로 보였다.
"네. 천장과 벽, 의상 행거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따로 찾아봤지만, 이 3개 말고는 없습니다."
유리아가 말했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녀들에게 물었다.
"탈의 장면이 카메라에 찍힌 건 아니지?"
"유리아가 오자마자 발견했다. 6,700 구역의 연예계가 더럽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데뷔도 하기 전에 몰래카메라에 당할 위험에 처할 줄이야. 보통이 아니군."
엘레나가 혀를 쯧쯧 찼다.
나는 카메라를 노려보며 해킹을 사용했다.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카메라를 50분 동안 해킹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카메라는 아침부터 설치되어 있었고, 설치한 사람의 모습은 교묘하게 찍히지 않았다.
내 옆에 있는 사마라가 분노 서린 목소리로 의견을 말했다.
"성 PD님.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당장 경찰을 부르고 범인을 잡아내야 합니다!"
"진정해, 사마라. 경찰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해결해 주지 않아. 그리고 경찰을 부르면 이 일이 알려질 수밖에 없어. 데뷔도 하기 전에 몰래카메라 이슈가 터지는 거지. 기자들이 이 일을 어떻게 쓸 것 같아?"
기자들.
그 말을 들은 사마라는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세계의 기자들은 대부분이 기레기였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악질적인 기사를 쓰는 건 기본이고, 기삿거리를 이용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직접 돈을 달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이번 일은 그대로 묻고 지나가게요?"
"그럴 리가. 내 여자들… 아니, 포비츠가 몰래카메라에 찍힐 뻔했는데 미쳤다고 그냥 넘어가? 내 뜻은 어디까지나 대중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일을 해결하자는 거지."
나는 카메라를 챙겼다.
“사마라. 의상실을 샅샅이 뒤져서 혹시 모를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해. 그리고 의상은… 자동차에서 갈아입자. 여긴 찜찜해서 못 갈아입겠어. 너희도 그렇지?"
"네. 카메라는 없지만 찝찝하네요. 제 몸을 볼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인데 말이죠. 범인은 꼭 잡아 주세요, 프로듀서님."
“이 세상엔 쓰레기가 넘쳐나는군…."
미령과 주서현의 말이었다. 의상에 대한 일은 사마라에게 맡기고, 나는 곧바로 잭슨 감독을 찾았다.
"성 PD님. 무슨 일입니까? 얼굴이 많이 굳어 계시는군요. 하하, 살인자의 얼굴 같습니다."
감독 의자에 앉은 잭슨이 웃는다. 그는 돈 봉투를 받은 뒤부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주위를 한 차례 둘러봤다. 다른 스태프들은 촬영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잭슨 감독에게 다가갔다.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나이프를 잭슨 감독의 목에 갖다 대며 살기를 담아 말했다.
“감독님. 저랑 둘이서 이야기 좀 하시죠."
"……."
잭슨 감독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그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내가 이딴 협박에 굴할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나, 잭슨. 도박판에서 손모가지를 잃을 뻔한 적이…."
푹.
작은 나이프의 칼날이 잭슨의 목으로 들어갔다. 전부 들어간 건 아니다. 경동맥도 피했다. 실제로 생명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닌 절묘한 위치다. 대신 차가운 칼날이 목에 들어왔다는 감각은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야기 좀 하자고, 새끼야. 아니면 여기서 뒈지고 싶어?"
새파랗게 질린 잭슨은 함부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이야기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받은 돈도 드리겠습니다…."
"화장실로 가자.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잭슨을 데리고 공중화장실로 들어왔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바로 잭슨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복부를 차인 잭슨이 화장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끄으으윽…!”
"이 새끼가, 어디서 엄살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일단 잭슨을 발로 밟았다. 머리를 밟고, 팔과 다리를 부러뜨렸다. 복부를 걷어차는 건 기본이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흐으으윽….”
잭슨을 눈물을 흘리며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나는 잭슨을 오른손을 잡았다. 뚜둑, 뚜둑. 손가락을 하나씩 꺾어 부러뜨린다.
"아아아아아아악!"
오른 손가락 5개가 작살 났다.
"하, 아직도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네? 이 독한 새끼. 진짜 손가락을 잘라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나?"
"저, 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받은 돈도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잭슨이 절박한 어조로 말했다. 놈의 무너진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벌어진 입에서는 부서진 이빨이 보인다. 이쯤 되면 자기 죄를 고할 때도 됐는데….
'……잭슨이 범인이 아닌가?'
문득, 몰래카메라 영상에 잭슨이 찍히지 않았다는 걸 떠올랐다. 어쩌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건 잭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새끼의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감독이란 놈이 관리도 제대로 못 해?'
화가 나서 잭슨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잭슨이 꺽 소리를 내며 벌벌 떨었다. 죽기 직전까지 잭슨을 팬 뒤에는 포션을 꺼내 잭슨의 몸에 들이부었다. 자잘한 상처가 사라지고 부러졌던 손가락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친절히 몸을 회복시켜줬음에도 잭슨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놈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일으켰다.
“아아아악! 어깨가…!"
"엄살 부리지 마. 네가 저지른 짓을 아직도 몰라?"
“저, 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우리 애들 의상실에 몰카 설치했잖아. 그것도 1개도 아니고 3개나."
"그, 그게 무슨.…”
잭슨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자기는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다.
"네가 설치한 거 아니야?"
"아닙니다! 제가 뭐하러 카메라 같은 걸 설치합니까! 걸리면 제 커리어가 다 박살 나는데…!"
"너 도박 빚 때문에 돈이 필요하잖아."
"그렇게 많은 빚은 아닙니다! 몇 달간 일하면 갚을 수 있는 돈입니다! 저 이래 보여도 업계에서 알아주는 뮤직비디오 감독입니다! 제가 뭐하러 몰카 같은 위험한 범죄를 하겠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긴 했다.
"그래도 의상실에 몰카가 설치된 상태였다는 건 사실이야현장 관리는 네 몫이잖아. 그러니 네가 책임을 져야지."
"채, 책임이라뇨?"
나는 서늘하게 웃으며 칼을 들어 목을 겨누었다.
"내가 장난하는 것 같아?"
"저, 정말 제가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네가 아니면 누가 했는데? 스태프 중에 의심 가는 놈 있어?"
"있습니다! 의상실은 로버트 AD가 설치하고 관리하는 담당입니다! 로버트 AD도 카메라를 만질 줄 압니다!"
"다른 스태프일 수도 있잖아."
"의상실에 남의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출입 가능한 스태프는 로버트 AD가 거의 유일합니다! 그리고 로버트 AD에겐 동기도 있습니다!"
"동기는 뭔데?"
“저번에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동안 모은 돈을 주식에 꼬라박았다고 했습니다. 그 주식은… 얼마 전에 폭락했습니다."
“그 새끼도 너처럼 돈이 필요하다는 거군."
“저, 저는 로버트 AD 정도로 궁핍하지 않습니다!"
"닥치고 그 새끼 여기로 전화해서 불러. 개수작 부리면… 알지?"
"네. 네. 부르겠습니다."
잭슨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전화를 연결한다.
-잭슨 감독님? 어디 계십니까? 현장 연출 거의 끝났습니다. 감독님과 배우들만 나오면 바로 촬영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 어, 로버트. 내가 지금 화장실에 있거든…."
잭슨이 나를 연신 돌아본다. 나는 나이프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잭슨이 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휴지가 없어. 네, 네가 휴지 좀 가지고 와."
-아 막내 보내겠습니다.
"막내 말고 네가 직접 와.”
-제가 직접요?
"씨발. 쪽팔리게 막내 시키지 말라고. 막내한테 시켜서 내 권위를 떨어뜨리려고 하지? 너 혼자 아무도 몰래 화장실로 오라고! 씨발!"
-아, 옙. 바로 가겠습니다.
잭슨은 전화를 끊고 내 눈치를 봤다.
"빠릿빠릿한 놈이니 금방 올 겁니다."
“너 나한테 욕한 거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제가 평소에 욕을 자주 해서… 욕을 안 쓰면 로버트가 의심할 듯해서 썼습니다."
"……."
나는 의심 가득 한 눈으로 잭슨을 바라봤으나, 딱히 뭘 하진 않았다.
3분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공중화장실 문을 두들겼다.
"감독님! 저 로버트입니다!"
손가락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잭슨은 눈치 빠르게 알아들었다. 그는 조용히 구석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나는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로버트의 목을 잡고 안으로 끌어당겨 바닥에 내팽개쳤다. 다시 문을 잠그고 로버트를 있는 힘들다해 팼다.
"끄아아아아악!"
한동안 미친 듯이 로버트를 패던, 살기를 듬뿍 담아 놈에게 물었다.
"너야?"
“무, 무슨 말입니까?! 가, 감독님! 도와주십시오! 저 미친놈이…!"
로버트가 피를 토하며 잭슨에게 도움을 청했다.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잭슨은 내 시선을 받자마자 발작하듯 외쳤다.
"너, 너잖아! 씨발! 네가 의상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잖아!"
"몰래카메라?! 아, 아닙니다! 제가 뭐하러 그런 짓을 저지릅니까?!"
"네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
“아, 아니라고요!"
딱 감이 왔다.
카메라를 설치한 몰카범은 로버트가 맞을 것이다.
'이놈이 아니라도 상관없지. 한 명씩, 한 명씩 스태프를 전부 조지면 돼.’
의상실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이니 스태프 중에 범인이 반드시 있을 거다. 소지품을 검사해보면 몰카와 관련된 증거품이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로버트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넌 이제 뒤진 목숨이야. 아, 물론 그냥 죽이지는 않아. 깜찍한 짓을 했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지."
파직.
뇌전을 일으킨다.
전류가 놈의 정수리를 통해 전신으로 퍼진다. 전기 고문이다.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 있지만… 나는 이 짓거리를 몇 번이나 해왔다. 상대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는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파지지지직!
전류가 흐른다. 놈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다. 감전은 온몸이 잘게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나는 놈의 몸에서 손을 뗐다. 계속하면 죽일 수도 있으니 쉬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딱 30초만 쉬게 해줄게.”
“으, 으으…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짓 안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발….”
“이 새끼가. 시작한 지 몇 분 지났다고 바로 자백하네?"
나는 포션을 꺼냈다.
몰카로 내 여자들의 알몸을 찍으려 하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