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1화 > 1361. 신의 아틀란티스
릴리트의 스마트폰에서 전화가 왔다. 번호를 확인한 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야, 브릭 국장. 무슨 일로 전화했어?
-릴리트 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강녕? 이젠 그런 단어도 쓰네. 나야 뭐, 잘 지내고 있지. 저기, 브릭 국장. 용건만 간단히 말해주지 않겠어? 지금도 내 휴대폰에 연락이 계속 오고 있어서… 내가 좀 많이 바빠."
-그, 그러시군요. 릴리트 님. 그… 이번에 데뷔하는 걸그룹 있지 않습니까.
"포비츠?"
-네. 포비츠. 그 친구들과 만ㄴ라 수 있겠습니까? 아, 제가 만나고 싶은 건 아니고… 의류 기업인 알레드의 대표 이사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의류 기업 알레드.
6,700 구역에서 명품 의류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그리고 브릭 국장의 KRC 방속국을 후원하는 기업이었다.
릴리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브릭 국장. 스폰이야?"
-한 번만. 딱 한 번만 대접해주면 됩니다. 알레드 기업의 광고는 물론이고, 우리 방송국도 포비츠를 최대한 밀어주겠습니다. 포비츠를 위한 프로그램 편성은 물론이고… 음방 1위도 약속드리겠습니다.
"브릭 국장…. 그렇게 안 봤는데…. 많이 실망스럽네."
-…릴리트 님. 이런 일은 한, 두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딱 한 번이면 됩니다. 한 번으로 많은 걸 얻을 수 있습니다. 거기 대표가 저한테 어찌나 지랄… 아니, 요구하는지. 협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제발 저 좀 도와주십시오.
"내가 성접대에 관대한 건 알지? 하지만 그 뜻은 요구하면 바로 나간다는 뜻이 아니야. 연예인은 창녀가 아니야."
-왜 이러십니까. 지금까지 잘 해왔지 않습니까.
"난 소속 연예인에게 성상납을 요구하지 않아. 제안할 뿐이지. 지금까지 성상납을 한 애들은 성공하기 위해 자기 의지로 선택했을 뿐이야. 브릭 국장. 포비츠를 어떻게 생각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개들이 대단한 건 인정합니다. 비주얼만 공개됐을 뿐인데 연예계를 달구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주얼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알레드 대표 이사의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 인간은 분명 포비츠의 앞길에 똥을 뿌릴 겁니다.
"우리가 그걸 두려워할 것 같아? 브릭 국장. 내가 누군지 몰라?"
-하아…. 릴리트 대표님을 모르겠습니까. 이 제안은 불쾌해하지 마시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이미 불쾌해. 제안은 당연히 거절이야. 알레드 대표 이사에게는 알아서 말해."
뚝.
릴리트는 통화를 끊었다. 그녀는 펜을 들고 종이에 알레드 기업을 적었다. 사전에 성접대를 요구하는 기업과 인간을 적어서 알려달라는 성유진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PD가 어떻게 나오려나? 멤버들이랑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일종의 블랙리스트인가? 그게 아니면… 물리적으로 쳐들어가려고?'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릴리트는 새로운 자극이 기대될 뿐이었다. 그 여파로 연예계가 박살 나도 괜찮았다. 릴리트는 이미 즐길 건 다 즐겼다. 조금씩이지만 슬슬 이쪽 일도 지겨워지는 중이고.
또 다른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릴리트는 생글생글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릴리트 입니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시고 전화하셨나요?"
-르상스의 대표인 발렌타인입니다. 늦은 시간에 전화 드린 건 정말 죄송합니다. 애가 타서 릴리트 대표님에게 직접 전화 드렸습니다. 저희 르상스는….
광고 제의였다.
그 이후로도 릴리트의 스마트폰은 계속 불이 났다. 이날, 릴리트는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퇴근했다.
포비츠의 데뷔까지 앞으로 D-6
포비츠의 데뷔 소식에 치를 떠는 여자들이 있었다.
릴리트 엔터테이먼트 소속의 연습생들이었다. 적게는 몇 달. 많게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데뷔만을 바라보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던 그녀들은 나타난 포비츠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보통 한 엔터테이먼트에서 아이돌이 데뷔하면 그 텀이 3~5년 정도 되기 때문이다. 즉, 그녀들의 데뷔가 뒤로 밀려나며 3~5년을 더 기다리게 생긴 것이다.
차라리 다른 엔터테이먼트로 떠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릴리트 엔터테이먼트만큼의 대형 기획사를 미련 없이 떠나는 건 쉽지 않다. 대형이 괜히 대형이겠는가. 가진 능력이 중소 엔터테미언트와 남달랐다.
그래서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위쪽에 항의하는 것이었다. 대표에게 직접 항의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힘들었기에, 그녀들은 A&R 팀장에게 찾아가 따졌다.
"하아. 나도 어제 인터넷 기사를 통해 포비츠의 데뷔 사실을 알았어. 릴리트 대표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언질 하나 주지 않고 있어. 내가 콜린 이사님에게 물어봤는데… 포비츠는 대표님이 밖에서 선별해서 데려온 애들이라나 봐. 따로 팀을 만들어서 운영한다나. A&R팀의 팀장은 난데 일언반구도 해주지 않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팀장님. 그럼 저희 데뷔는요?"
"너희? 너희는 일정대로 내년쯤에 데뷔할 거야."
데뷔 일정이 취소된 건 아니었다. 연습생들은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화가 풀리는 건 아니었다.
"대체 그 애들은 뭐에요? 갑자기 나타나서 데뷔라니…. 개들이 그렇게 잘났어요?"
"나도 몰라. 근데 잘나긴 했지. 너희도 걔들 사진 봤을 거 아니야. 비주얼만으로도 살 떨리 지경이더라. 아무튼, 너희는 평소처럼 지내면 돼."
연습생들은 터벅터벅 걸으며 연습실로 향했다. 아까보다 마음이 편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분노와 짜증은 남아 있었다. 그러다 연습실을 쓰고 있는 포비츠를 발견했다. 4명 모두 뛰어난 외모로 격렬한 댄스곡을 연습하고 있다.
노래와 춤을 본 연습생들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이건 회사가 우리한테 준 곡 중 하나잖아!'
데뷔 때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연습하라는 곡 중 하나였다.
'감히 우리 곡을 빼앗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연습생들은 냉정한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녀들은 포비츠가 사용 중인 연습실로 쳐들어갔다.
"너희들 뭐야?!"
"……."
포비츠는 연습을 멈추고 갑자기 쳐들어온 연습생들을 바라봤다. 총 11명의 연습생은 팔짱을 끼고 매섭게 포비츠를 노려봤다.
미령은 밝에 웃으며 그녀들의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릴리트 엔터 연습생분들이시죠? 아직 못 들으신 모양인데… 오늘부터 이 연습실은 저희 포비츠가 쓰기로 했어요. 여려분은 다른 연습실을 이용해 주세요."
"이 연습실은 우리거야. 너희가 다른 연습실로 가. 그리고 후배 주제에 어딜 선배를 노려보고 있어? 눈 안 깔아?!"
연습생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표독스러운 눈동자와 일그러진 입매는 상대를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허나 포비츠의 그 누구도 그녀에게 겁먹지 않았다.
미령은 실실 웃었다. 그녀의 눈웃음은 점점 서늘해졌다.
"선배요? 에이. 그건 아니죠. 저흰 다음 주에 데뷔하는데… 여러분은 내년에나 데뷔하신다면서요? 연예계는 데뷔 때부터 경력으로 치니 저희가 선배죠."
연습생은 자신을 놀리는 듯한 미령의 어조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버릇이 없네.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히 데뷔할 수 있을 것 같아?"
"저희의 데뷔에 간섭하시려고요? 여러분은 연습생에 불과하잖아요. A&R팀에 징징거려도 안 들어줄 텐데."
"하, 내가 너희 인성을 대중들에게 폭로할 거야. 대중들이 너희들 어떻게 생각하겠어? 너흰 데뷔하지도 못할 거야."
"한다는 협박이 고작 그건가요? 어처구니없네요. 릴리트 대표님에게 일러 버릴까~. 실력도 없는 연습생들이 괴롭힌다고~. 그럼 여러분은 바로 퇴출당하겠죠? 으응. 좀 불쌍하네. 아니지. 대표님에겐 오히려 호조일지도. 외모랑 인성이 떨어지는 아이돌 따윈 없는 편이 더 좋을 테니까요."
"이게 말 다 했어?!"
"다 했다면요?"
짜악.
연습생의 손이 미령의 뺨을 때렸다. 미령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미령은 천천히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웃음기를 지우고 빨갛게 변햔 뺨을 손으로 잡았다. 뺨이 화끈했다.
짜악!
미령의 손바닥이 연습생의 뺨을 때렸다. 실린 힘이 어찌나 센지 연습생이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고개를 든 연습생의 입에서 피 한줄기가 흐른다.
"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제가 맞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요. 괜찮아요?"
"너,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애들아!"
연습생들이 앞으로 나선다. 미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소매를 걷어 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때, 유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만하시죠. 일이 커지면 저희뿐만이 아니라 당신들도 곤란해집니다. 데뷔가 확정된 저희는 잔소리로 끝날 테지만…. 당신들은 정말 퇴출당할 수도 있습니다. 손은 그쪽이 먼저 썼지만, 저희 막내도 잘했다고만 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
연습생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유리아의 카리스마가 분위기를 장악한다. 미령에게 뺨을 맞은 연습생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정신 차려! 우리가 피해자야! 저년들이 우리 곡을 빼앗아 갔다고! 저년들이 없었으면 우리가 데뷔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저년들에게 계속 빼앗기고 살 거야?!"
그녀의 말에 동조하며 연습생들이 분노를 표출하려고 할 때였다.
따악.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연습생들의 행동이 멈췄다. 연습생들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유리아는 엘레나를 돌아봤다.
"환술을 거셨군요."
"내가 아니었다면, 주서현이 나섰을 거다. 그럼, 일이 더 복잡해졌겠지."
주먹을 돌리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주서현은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자 조용히 주먹을 폈다.
"일이 커지지 않게 기억을 조작하고 돌려보내는 편이 좋겠군요."
"기억을 조작해? 뭐하러? 이년들은 이미 우리를 향한 질투와 시기로 가득하다. 기억을 조작하더라도 또다시 우리에게 시비를 걸러 올 테지. 이럴 때는 이년들의 목줄을 손에 쥐는게 맞다."
엘레나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조작했다. 카메라 기능을 켜고 손가락을 튕긴다.
연습생들이 일제히 옷을 벗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래가 없음에도 그녀들의 춤은 서로 완벽하게 일치했다.
"연습생답게 춤은 제법 잘 추는군."
유표되는 순간 끝장인 영상을 손에 넣은 엘레나는 싱긍벙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