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59화 (1,354/1,497)

< 1359화 > 1359. 신의 아틀란티스

그룹명은 포비츠로 결정되었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엘레나가 중얼거리며 날 바라봤다. 다른 멤버들도 날 바라본다. 솔직히 그렇게 바라봐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 연습?"

아이돌이 뭐하겠는가. 춤추고 노래 부르는 연습하지.

포비츠의 곡이나 안무는 없으니 다른 걸그룹의 노래와 춤을 연습하는 게 맞을 것이다.

'목표는 일주일 내로 데뷔하는 거야. 그러려면 곡이랑 안무가 필요한데… 이건 기획사에 부탁하는 수밖에 없겠군. 대형 기획사니 쟁여둔 곡이랑 안무 몇 개는 있겠지.'

“뭘 하긴! 당연히 계약서부터 써야지!"

흥분한 릴리트는 우리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장과 안경을 쓴 깐깐해 보이는 중년인과 함께 다시 연습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릴리트 엔터테인먼트의 법무팀장인 스테판입니다."

차분한 음성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포비츠 멤버들을 조용히 둘러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대표님이 흥분하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비주얼만으로도 어마어마하군요. 데뷔한다면 연예계가 들썩이겠습니다."

“스테판! 계약서부터 꺼내!"

“그리 재촉하지 마십시오. 자, 계약서입니다. 내용은 주서현 씨의 것과 똑같습니다만, 잘 읽어 보시고 서명하시기를.”

멤버들에게 계약서를 건네준 그는 나를 바라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릴리트 엔터테인먼트에서 이질적인 존재다. 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선 내 존재가 꺼려질 것이다.

"솔직히 저는 이런 계약서는 마음에 안 듭니다."

유리아와 엘레나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반면, 미령은 계약서를 대충 훑어보더니 펜을 들고 사인했다. 그녀는 내옆으로 쫄래폴래 다가오더니 계약서를 자랑하듯 보여준다.

“프로듀서님! 어때요? 제 사인 멋지죠? 오늘처럼 데뷔하는 일이 있을까 해서 평소에 사인을 준비해뒀죠."

“…준비해뒀다고?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거야?"

"혹시 모르니까요."

미령의 사인을 바라봤다. 한글로 미령이란 글자를 휘갈겨 쓴 사인이었다.

"원래는 한자로 하려고 했는데… 획수가 많아 귀찮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한글로 썼어요. 예쁘죠?"

예쁘긴 했다. 이 정도 사인이면 팬들도 이 사인을 받고 싶을 것이다.

“계약서인데 이렇렇게 적어도 되는 거야?"

내 당연한 물음에 답한 것은 스테판이었다.

"괜찮습니다. 본인이 사인했으므로 계약의 조건은 만족합니다."

「현재 담당 연예인: 주서현, 미령」

「담당 연예인의 인기도에 따라 공헌도를 획득합니다. 매월 공헌도만큼 AP를 획득합니다.」

「주서현의 인기도: 2」

시스템 알림창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유리아와 엘레나도 계약서에 사인했다.

「현재 담당 연예인: 주서현(포비츠), 미령(포비츠), 유리아(포비츠), 엘레나(포비츠).」

계약서를 회수한 스테판은 안경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것으로 여러분은 릴리트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야호! 대박 건졌다!"

릴리트가 과장된 얼굴로 좋아했다. 그녀는 히죽거리며 웃다가 곧 대표답게 분위기를 잡았다.

"너희는 비주얼만으로도 합격이지만… 그래도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해야겠지? 본격적인 연습은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테스트부터 보자."

"대표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 스테판. 가기 전에 말해줘. 얘들. 포비츠는 어떻게 될 것 같아?"

"뜰 겁니다. 이 정도 비주얼인데 뜨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20위권 안에는 들어가겠죠. 여기서 실력만 받쳐준다면… 5위권 내도 노려볼 수 있을 겁니다."

"정점이 된다는 말은 안 하네?"

"지금 정점이 얼마나 괴물인지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그 재수 없는 여신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스테판이 연습실을 나갔다.

릴리트는 멤버들을 한 차례 둘러보며 씩 웃었다.

"모두 긴장하지 마. 이건 테스트에 불과하니까. 자, 누구부터 할까? 그래. 미령이가 먼저 하자.”

"네? 저부터요? 갑자기?"

"원래 이런 건 막내부터 하는 거니까."

“조, 좋아요. 개인 방송으로 다져진 노래와 춤 실력을 보여드리죠!"

"개인 방송을 했어?"

"다른 세계에서요."

"아하. 경력 있는 신입이었네. 노래는 어떤 게 좋아?"

"여름바라기요. 근데 이 노래 있어요?"

"한국 노래지? 웬만한 노래는 다 있다니까.”

미령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와아….”

릴리트는 양손을 맞잡고 입을 벌렸다. 미령의 노래와 춤은 거의 완벽했기 때문이다.

"좋아. 미령아. 엄청 잘하네. 내가 딱히 지적할 곳도 없겠어. 굳이 지적하자면… 춤이 좀 끈적하다고 해야 할까? 자극적이야. 개인 방송을 해서 그런가."

"타고난 색기라 어쩔 수 없어요. 전 남자를 홀리는 구미호거든요."

"응? 그런 컨셉이야? 나쁘지 않네. 근데 너희는 청순 컨셉의 걸그룹이라며? 색기는 좀 줄이는 게 좋겠다.”

"청순…."

미령은 주위를 둘러봤다.

청순이라 하기엔 멤버 모두가 몸매가 뛰어났다. 가만히 있어도 색기가 나오는 수준이다. 그나마 엘레나가 청순형에 가까웠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고말고."

“네. 프로듀서님이 그렇게 말한다면… 할 수 있겠죠."

미령이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주서현과 유리아가 이쪽을 반히 쳐다본다. 엘레나는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 여우. 프로듀서에게 너무 달라붙는군. 데뷔도 하기 전부터 논란을 만들 생각이냐?"

"에이. 이 정도로 뭘요. 보는 사람도 없고 상관없잖아요. 그냥 친애의 표시라구요."

단순한 친애의 표시라고 하기에는 등에 닿는 가슴이 너무 물컹했다. 보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서 다행이지, 누가 보도라도 문제 있는 스킨십이다.

그렇다고 미령을 두둔하지는 않았다. 그저 입 다물고 태풍이 피해가기를 기다렸다. 여기서 미령을 두둔해봤자 상황만 심각해질 것이다.

다음은 유리아가 테스트를 받았다. 릴리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유리아. 너도 개인 방송 같은 거 했어? 노래나 춤이 거의 완벽한걸? 지적할 곳을 찾으려 해도 힘들 지경이야."

"아이돌 춤이라면 예전에 몇 번 연습해본 적 있어서 그렇습니다."

유리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유리아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녀는 [백환] 세계에서 아이돌 댄스와 노래 등을 연습한 적 있다. 그녀와 메이드들이 춤추는 걸 보고 싶었던 내가 명령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엘레나였다.

"노래는 괜찮은데… 춤은 좀 밋밋하네. 티아는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 아닌가 봐?"

“이런 춤을 춰보는 건 오랜만이다. 검술에는 그럭저럭 자신 있는데… 춤은 좀 다르군."

"괜찮아, 괜찮아.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니까. 조금만 연습하면 될 거야."

"……."

엘레나는 입을 꾹 다물고 팔짱을 꼈다. 눈동자에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하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다른 멤버들 보다 춤을 못 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서현이도 한 번 테스트하자.”

릴리트 대표가 멀뚱히 서 있는 주서현에게 말했다.

“…저도요? 전 어제 췄습니다."

"에이. 그때는 모두가 없었잖아. 빼지 말고 하자. 응?"

주서현은 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냈지만, 얼굴에 철판을 깐 릴리트는 그녀에게 계속 달라붙었다. 주서현은 결국 멤버들 앞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오오…. 춤은 어제보다 더 좋아졌는걸?!"

릴리트가 호들갑을 떨었다. 춤을 끝낸 주서현은 제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숨 한번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의 체력이면 아이돌 댄스 10곡을 연달아 춰도 문제없을 것이다.

"자, 그럼…. 일단 앉을까? 앞으로의 일정을 대략 설명해줄게."

릴리트의 주도하에 모두가 바닥에 앉았다.

깡.

주서현이 바닥에 앉으며 깡 소리가 났다. 마침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에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주서현에게 향했다. 주서현의 뺨은 붉게 달아올랐다.

“이, 이건… 그러니까….”

"왜 그렇게 당황해요? 스마트폰을 뒷주머니에 넣어 둔 것뿐이잖아요. 근데 스마트폰은 괜찮아요? 소리가 좀 크던데."

미령이 주서현에게 다가갔다. 주서현은 움찔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령을 피했다.

"왜 피해요? 저 아무것도 안 해요. 제가 더러워요? 너무하다, 정말."

“아니, 그게 아니라….”

미령의 눈이 주서현의 엉덩이로 향한다. 주서현은 조금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어? 뒷주머니가 없네요? 그럼 아까 소리는.…?"

“강철 팬티라도 입은 거 아니냐?"

"강철 팬티 굳이 강철로 된 팬티를 입을 이유는 없습니다. 정조대를 찬게 아닐까요?"

역시 유리아였다. 설마 주서현이 정조대를 착용하고 있는 걸 바로 유추할 줄이야.

"정조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착용한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서현 언니. 정조대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돼요?"

"뭐? 그, 그러니까 여기서 바지를 벗으라고?"

"우린 같은 멤버잖아요. 여자끼리만 있는데 어때요."

"아, 안 돼! 성유진이 있잖아!"

“그 정조대, 프로듀서님 때문에 착용한 거 아니에요?"

"……."

주서현은 얼굴을 붉힌 상태에서 반박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반박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 주서현이 괜히 괘씸해져서 정조대를 채웠다.

“자, 집중! 그런 문제는 나중에 따로 하고… 일정부터 말할게. 데뷔는 일주일 후야. 이건 내가 정한 게 아니라 성 매니저… 아니, 성 프로듀서가 정했어.”

엘레나가 미간을 좁혔다.

“일주일. 너무 빠듯한 거 아닌가? 나는 아이돌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일주일만으로 어떻게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만."

“아니, 너희라면 가능해."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 어조로 말했다. 그녀들의 실력과 재능이라면 일주일 내로 노래와 안무를 외우는 게 가능할 것이다.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서현은 좀 불안해 보였으나, 내 말에 거부하지 않았다.

“너희는 일주일 후에 있는 음악 방송을 통해 데뷔할 거야. 곡이랑 안무는 준비된 게 몇 개 있어. 너희에 맞춰서 좀 손을 보긴 해야겠지만… 내일이면 곡과 안무가 나올 거야. 그리고 이건 내 의견인데…. SNS를 통해 미리 홍보하는 게 어때? 요즘은 데뷔하기 전에 SNS로 팬을 확보하고 데뷔하는 게 추세야. 데뷔하기 전부터 많은 팬을 보유할 수 있다는 거지."

좋은 의견이다. 그녀들의 미모라면 많은 팬을 데뷔전부터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 방송에서 폭탄을 터트리듯 데뷔하는 것도 좋은데….'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 인기도를 높이려면 지금부터라도 SNS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 좋았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 이따가 SNS를 개설하고 대충 사진부터 찍자.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계획을 짜는 릴리트는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대표님. 뮤직비디오 찍어야 합니다. 그것도 일주일 내로요. 그래서 말인데… 예산은 어디까지 지원해줄 수 있습니까?"

"나는 포비츠에서 가능성을 봤어. 성공이 거의 확정된 아이돌인데 예산을 아낄 것 같아? 성 PD. 예산 걱정은 하지 마. 회사기둥 중 하나가 흔들려도 지원해줄 테니까."

“릴리트 대표님은 참으로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하하. 내가 좀 그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