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57화 (1,352/1,497)

< 1357화 > 1357. 신의 아틀란티스

엘레나의 섭외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제국오공(帝國五公) 중 한 명인 환상공(幻想公)이다. 또한 발데르트 공작가의 주인이다.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공작 가문의 체면이 걸려 있다.

제국의 공작이 아이돌을 한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비록 6,700 구역이 자기들만의 구역이긴 해도, 엘레나가 아이돌로 데뷔하면 알음알음 그 소문이 아틀란티스 전체로 퍼질것이다.

나는 연습실을 둘러봤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유리아와 미령이 보인다.

"아이돌이라…. 잘은 모르지만, 역시 청순한 컨셉으로 가는 편이 좋겠군요."

"아뇨, 언니. 저희는 섹시 컨셉으로 가야 해요. 청순 컨셉으로 가기에는… 너무 크잖아요?"

반사적으로 그녀들의 미드를 바라봤다. 그것은 풍만했다. 존재만으로도 야하다.

"하지만 노골적인 섹시 컨셉으로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그렇긴 하죠. 근데 저와 언니는 청순한 쪽은 아니잖아요."

유리아의 미간이 잠깐이지만 구겨졌다.

"그건 저에 대한 모독이군요. 저는 청순합니다. 고고한 한 떨기의 꽃과 같다고… 언젠가 주인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서방님이요? 그건 그냥 빈말인 것 같은데요. 유리아 언니의 섹시함은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에요."

미령이 몸을 뒤틀며 노골적인 섹시한 포즈를 취했다.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된다. 유리아는 미령의 가슴을 보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미령의 가슴은 유리아의 가슴보다 조금 더 컸다.

"…아무튼, 섹시함 만으로는 최고의 아이돌이 될 수 없습니다."

"에이. 서방님이 저러는 거 한, 두 번이에요? 어차피 이번에도 적당히 하다가 유야무야되겠죠."

"……."

유리아는 반박하지 않았다.

내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겹쳐 있었다. 그녀들을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이 30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30일 만에 아이돌로 데뷔해 연예계의 정점이 된다. …내가 듣기에도 좀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하지만 주서현과 유리아, 미령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내가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주서현과 유리아, 미령. 그녀들 모두 어마어마한 미모를 갖췄지만… 역시 걸그룹이라 하기엔 인원수가 빈약해. 최소 4명은 되어야 볼만해질 거야.'

그렇다고 아무 연습생을 데려올 수 없었다. 어지간한 미모가 아니고서야 그녀들에게 존재감이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걸그룹 멤버가 아니라 백댄서로 전락할 수 있었다.

'멤버들 간의 케미를 생각하면… 4번째 멤버는 엘레나밖에 없어.'

나는 다시 소라고둥을 들어 엘레나에게 전화를 시도했다. 엘레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엘레나. 아이돌 하자. 너밖에 없어. 이미 멤버는 준비되어 있어. 너만 오면 고야. 바로 데뷔할 수 있어."

-하아. 유진. 내 입장도 생각해라. 나는 발데르트 공작가의 주인이다. 그런 내가 아이돌을 한다? 내 위신이 바닥에 처박히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귀족들이 나를 업신여길 것이다.

“그러지 말고 좀 다르게 생각해 보자. 아이돌을 하면 평민들이 너를 친근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지배자에게 친근함 따윈 필요 없다. 권위만 떨어질 뿐이다. 인기나 친근함을 원한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얻을 수 있다. 재산을 베풀거나, 미담을 찍어내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지. 반면, 네가 말하는 아이돌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내가 뭣하러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춰야 하지?

"……."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백환]에서 영주로 군림하는 나다. 평민들이 얼마나 개돼지인지 내가 잘 알고 있다. 평민들은 조금만 잘해줘도 좋아하며 찬양한다. 재산만 어느 정도 베풀면 평민들의 인기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4인조 걸그룹에서 엘레나가 사라지지 않는다.

역시 엘레나가 필요하다.

“진짜 부탁할게. 명성이 문제라면 환술을 이용해서. 정체를 숨기면 되지 않아? 그리고 계속 아이돌 노릇을 해달라는 건 아니야. 30일이면 돼."

-…30일? 나도 아이돌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만, 겨우 30일을 활동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거기다 묘하게 절박하군. 아이돌은 구성은 네 개인적인 취미가 아니었나?

"날 뭐로 보고. 당연히 아니지!"

-…….

엘레나의 침묵에서 짙은 의심의 기색이 느껴졌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유리아와 미령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귀가 좋은 그녀들이다. 나와 엘레나의 대화를 듣고 있을 것이다.

'뭐야, 유리아랑 미령도 믿지 않는 거야?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긴 했지만… 좀 충격이네.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특히 유리아의 시선이 충격적이다. 그녀라면 날 300% 신뢰할 줄 알았다.

-설명을 자세히 듣지 않긴 했군. 들어는 줄 테니 한번 말해봐라.

“알았어. 또 설명하기는 귀찮으니 유리아, 미령. 이쪽으로 와.”

-잠깐. 유리아가 거기에 있다고?

“어. 걸그룹 멤버로서 소환했어."

-미령은 또 누구냐.

"여우?"

그때였다. 미령이 느닷없이 내게 달려들더니 내 오른팔을 가슴팍에 끌어안는다. 부드럽고 따뜻한 가슴 사이에 팔이 끼였다.

미령에게선 좋은 향기까지 났다.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서방님~! 전 서방님의 영원한 귀염둥이 여우예요. 제 마음, 아시죠?"

말 그대로 여우처럼 눈웃음친다.

유리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미령을 바라보더니, 내 곁으로 다가와 반대편 손을 조용히 끌어안았다.

"주인님. 제 몸과 마음은 모두 주인님의 것입니다. 영원히 주인님께 봉사하겠습니다."

양손의 꽃이었다. 나는 입술이 실룩거리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하아.

소라고둥에서 엘레나의 한숨이 들렸다. 어딘가 복잡한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았으나, 그녀는 곧바로 평소의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을 설명해라. 참고로 나는 말을 끊는 걸 싫어한다. 아니, 증오하는 수준이다.

“아, 예. 예. 그러니까 요점을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6,700 구역을 공략할 거야."

덧붙여서 엘레나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6,700 구역의 공략이라…. 그거 알고 있나? 제국은 한때 황실의 주도로 6,700 구역의 공략을 시도했었다.

"처음 듣는 말인데. 그랬었어?”

지금 6,700 구역의 상황을 보면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실패했을 것이다.

-6,700 구역은 제국과 다르게 발전한 문명이다. 마법 대신에 과학 기술이 있었지. 제국은 6,700 구역에 흥미가 많았다. 과학 기술은 마법과 다르게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문화적으로 제국 이상으로 발전한 곳이었으니까. 6,700 구역을 지배하고 분석하면 제국은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황제 폐하께서 판단하셨다.

그때의 황제의 권력은 지금보다 더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제 폐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제국 내의 날고기는 음유시인과 무희들이 모였다. 그들 중에서 최고의 음유시인과 무희, 그리고 최고의 실무진들을 뽑아 6,700 구역에 보냈다.

"그런데 실패했다고?"

-그것도 처참하게 실패했다. 10위권 내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제국은 6,700 구역을 너무 얕본 것이다. 황제 폐하는 6,700구역을 더 자세하게 조사하고 분석하라 명했다. 그 결과, 황제 폐하는 6,700 구역의 공략을 포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준비하는 체계적인 훈련 방식은 문화 쪽으로는 약한 유스티아 제국이 단숨에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제 폐하께서 포기하신 가장 큰 이유는 현 6,700 구역의 정점 때문이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테지?

"…무지개 거품.”

리 메이와 계약한 신좌.

미의 여신으로서 가장 유명한 신.

“아프로디테."

달리 비너스라고도 불리는 여신이다.

-6,700 구역을 지배한다는 것은 그 미의 여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작 아이돌 따위로 아프로디테의 인기를 뛰어넘을 수 있나?

"뛰어넘을 수 있어."

나는 확답했다.

아프로디테의 미모는 이미 봤다. 6,700 구역에서 아프로디테의 사진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녀는 미의 여신답게 아름다웠다. 주서현 혼자였다면, 아프로디테의 인기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아, 미령, 엘레나가 합류해서 걸그룹을 형성한다면… 아프로디테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눈에는 아프로디테 따위보다 너희가 훨씬 아름다워."

내 말을 들은 유리아와 미령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여자는 없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신에 차 있군.

엘레나가 투덜댔다. 하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면 기분은 나쁘지 않은 듯했다.

“실제로 그러니까.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완벽한 연예인이 아니야. 파고들 틈은 있어."

-호오. 그럼 말해봐라. 미의 여신의 틈은 뭐지?

"아프로디테는 너무 유명하다는 거야. 신화를 보면 알겠지만… 아프로디테의 문란함은 장난이 아니지. 그게 바로 약점이야."

내가 알기로 연예계는 결국 이미지 싸움이었다. 이 구역이 스캔들에 관대하다고 해도, 아프로디테가 여신이라고 해도, 아프로디테는 언젠가 그 이미지 때문에 추락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언젠가는 조만간이 될 것이다.

"아프로디테를 넘을 필요 없어. 그 근처까지만 가면 돼. 그럼 아프로디테가 추락할 테니까.”

-……멤버에 유리아가 있다지? 유리아가 있다는 말만으로도 공략 가능성이 높아지는 느낌이군.

"엘레나. 아이돌 하자."

-잠시만 기다려라. 계산 좀 하자.

엘레나가 조용히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나는 엘레나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양손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미령과 유리아를 희롱한다. 가슴을 만지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그녀들의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며, 분위기가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할 때였다.

-조건이 있다.

“어. 그럴 줄 알았어. 원하는 걸 말해 봐."

-우선, 나는 내 정체를 밝히지 않을 거다.

“어쩔 수 없지. 이해해."

-두 번째는 6,700 구역의 지분이다. 30%를 보장해라.

“그러지 뭐."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계획이 성공하면 지배권은 내가 얻는다. 유리아와 미령은 30일 뒤에 역소환될 것이고, 주서현은 내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주서현은 이런 일에 별 관심도 없다. 남은 건 엘레나인데… 30% 정도를 그녀에게 내주는 건 상관없었다. 지배권은 결국 내가 가지게 되니까.

-실수했군. 30%가 아니라 50%다.

“이러지 마, 엘레나. 내가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게."

-……그래. 30%로 만족하지. 대신, 6,700 구역의 물건 유통은 발데르트 가문이 맡는다.

“물건 유통? 6,700 구역의 물건은 유통이 불가능하잖아."

-지배자 권한으로 6,700 구역의 물건 생산량 1%를 외부에 유통할 수 있다. 몰랐나?

그런 세세한 이득이 있을 줄은 몰랐다.

1%.

현대 물건을 다른 세계에서 가져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내 기준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엘레나에겐 다를 것이다.

"알았어. 네 조건을 전부 받알즐일게. 대신 내일까지… 아니, 오늘 밤까지 6,700 구역으로 와. 티켓은 알아서 구할 수 있지?"

입장권은 딱히 걱정하지 않는다.

엘레나는 유스티아 제국의 공작이다. 돈과 권력. 두 개 모두 가지고 있는 그녀다. 6,700 구역의 입장권 정도는 쉽게 구할 것이다.

-하아. 어쩌다 이 내가 아이돌 따위를 하게 됐는지….

엘레나의 한탄이 들렸다. 나는 무시하고 미령과 유리아를 희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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