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2화 > 1352. 신의 아틀란티스
"…날 안고 싶다고?”
릴리트가 재밌다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건 안 되겠는데?"
“그럼 계약은 없던 거로 하죠."
“아니, 잠깐만. 말은 끝까지 들어봐. 당장 안 된다는 거지, 끝까지 안 된다는 거 아니야.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릴리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님 아니십니까."
"맞아. 그리고 한때 최고의 배우로 손꼽혔던 게 나야."
“…연예인이셨군요. 지금은 활동 안 하십니까?"
"생방송에서 재수 없는 년 귀싸대기를 날렸다가 나락으로 떨어졌거든. 대중에게 사과하면서 다시는 연예인 안 하겠다고 말한 바람에… 복귀가 안 돼. 그래서 기획사를 차렸지."
릴리트는 당당했다. 반성의 기미는 조금도 없었다.
"의외네요. 대중들의 말은 대충 무시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쉽지 않아. 여긴 한 번 흠이 잡히면 끝까지 흠이 잡히는 곳이거든. 그리고 적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근데 그게 성접대가 안 된다는 이유와 무슨 상관입니까?"
"수지가 안 맞잖아. 그리고 내가 널 뭘 믿고? 먹튀할 수도 있잖아."
뜨끔했다.
사실 먹튀하려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계약서? 어차피 이 구역을 벗어나면 안녕이다. 릴리트의 추적이 두렵지 않냐고? 전혀 두렵지 않다. 보나 마나 그녀는 이 구역에 소속된 위신이다. 대부분의 위신이 그러하듯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는 일에 제약이 있을 것이다.
“주서현이 탑 클래스 연예인이 되면… 내가 화끈하게 보지 벌려줄게."
"오, 오오…."
그녀의 거침없는 말에 감탄했다.
“그거 알아? 지금 난 처녀야. 이 몸으로 섹스를 해본 적 없거든."
“성접대를 안 했다고요?"
"난 능력이 있으니까. 성접대는 능력 없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야. 뭐, 성접대도 능력이긴 해."
“으음. 좋습니다. 계약하죠.”
"좋아. 변호사랑 얘기해서 계약서 다시 만들어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아, 대신 계약금은 없어. 수익 분배는 7대3. 오케이?"
“예. 예. 그러시죠."
나는 대충 말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텔 밖으로 나갔다. 나는 뒤늦게 에트월에 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성유진! 너 제정신이야?!"
내 허벅지 위에 앉아 있던 주서현이 몸을 돌리고 내 뺨을 양손으로 꽉 잡으며 소리쳤다.
"우린 여기 휴가온 거야! 연예인 같은 걸 하러 온 게 아니라고!"
"괜찮아. 영 아닌가 싶으면 도망치면 돼."
"네가 그 여자 때문에 받아들인 거 모를 줄 알아? 내가 왜 네 성욕 충족을 위해 연예인을 짓을 해야 해?!"
"그거야 당연히 네가 나한테 졌으니까. 꼬우면 이겼어야지."
“…크윽. 사흘 뒤에 결투하는 날이야. 알고 있지?"
“하하. 벌써 그렇게 됐나? 뭐, 이번에도 내가 이길 테지만."
"이번에는 절대 안 져."
“그 말만 수백 번은 들은 것 같네."
나는 주서현의 몸을 끌어안으며 입을 맞췄다. 곧이어 스위트룸은 주서현의 교성으로 가득 찼다.
릴리트가 가져온 계약서에 나와 주서현이 사인했다.
주서현은 연예인이 되었고, 나는 주서현의 매니저가 되었다.
「신분이 일반인에서 매니저로 바뀝니다.」
「현재 담당 연예인: 주서현」
「담당 연예인의 인기도에 따라 공헌도를 획득합니다. 매월 공헌도만큼 AP를 획득합니다.」
「주서현의 인기도: 2」
떠오르는 시스템 창을 훑어본다.
제 6,700 구역, 연예의 왕국은 연예인의 인기도가 곧 권력이다.
이 구역의 공략법은 인기도 1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인기도 1위는 넘사벽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서현의 인기도가 0이 아니네? 뭐, 도시 밖에서 중심에 있는 호텔까지 오면서 몇몇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긴 했지. 그 중에서 주서현을 눈여겨 본 사람들도 있을 테고….'
주서현의 외모는 S급이다. 스쳐 지나간 사람 중에서 주서현의 외모를 주시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좋아. 이젠 너흰 릴리트 엔터테이먼트 소속이야. 호텔 체크아웃하고 회사가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지내. 거기가 더 안전해."
계약을 성상한 릴리트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더 안전할 것 같은데요?"
"뭐,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신입이 이 호텔에 머물러봤자 괜히 구설만 오를 뿐이야. 기레기들이 좋다고 물어뜯으려 할걸? 데뷔도 하기 전에 스폰 의혹이 나오면 아주 골치 아파져. 아,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 테지만… 너희 관계는 숨겨. 딱히 섹스하지 말라고는 안해. 부탁이니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만 말아."
“예. 예. 그러죠.”
"……."
나는 대충 대답했고, 주서현은 얼굴을 잔뜩 붉혔다. 릴리트의 다소 노골적인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가서 어떤 능력이 있는지 테스트해보자. 요즘 씨가 마른 건 가수계야. 적당히 노래할 줄 알면 가수로 데뷔하자."
"…난 노래 할 줄 몰라."
주서현이 말했다. 가수로 데뷔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괜찮아. 그럼 배우로 데뷔하면 되니까.”
"……연기는 더 못해."
“그래도 괜찮아. 넌 와꾸랑 몸매가 죽여주니까. 모델로 데뷔하면 돼. 네가 데뷔하는 순간 광고가 쏟아질 거야."
"……."
릴리트의 행복 회로가 윙윙 돌아가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릴리트 씨.”
"대표님이라고 불러, 성 매니저."
"네, 대표님. 에트월을 찾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 그 패션 디자이너? 혹시 몰라 우리 기획사로 영입했어. 회사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혹시 에트월을 가지고 저희를 협박하려 했습니까?”
릴리트의 미소가 짙어진다.
“성 실장. 연예계는 더러운 곳이야."
“하하. 야반도주 마렵네."
"성 실장! 계약은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
릴리트의 부하 직원이 끌고 온 고급 SUV 자동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는 10층이 넘는 거대 빌딩이었다. 엔터테인먼트 건물답게 디자인도 뛰어났다. 이 구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은 허세가 아닌 듯했다.
주서현의 테스트에 앞서 에트월부터 만났다.
에트월은 몸이 비쩍 마른 금발의 남자였다. 키는 멀대처럼 컸고, 뺨은 병에 걸린 환자처럼 홀쭉 들어가 있었다.
나는 에트월에게 영입을 제한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습니다. 릴리트 대표님을 저를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던 거군요….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실력도 없는 저를 회사로 데려오지 않았겠죠….”
에트월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에트월에 관한 정보를 릴리트에게 들었다. 에트월은 3년 전에 6,700 구역에 들어왔고, 디자이너로서 활동했다. 그러나 디자이너로서 그에겐 재능이 조금도 없었다.
추방자인 그가 6,700 구역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지고 온 자금을 6,700 구역 기업들에 여기저기 투자하며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그걸로 추방자 특별세는 낼 수 있었으나, 형편이 확 좋아진 건 아니었다.
“에트월 씨. 저희랑 함께 에이플랜 레기온으로 가시죠. 에이플랜 클랜은 에트월 씨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줄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가 디자이너로서 재능이 없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건 제 꿈이기 때문입니다. 제 꿈을 이뤄주신다면… 아무 조건 없이 에이플랜 레기온에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그냥 납치해서 데려가면 안 되나 싶지만… 에트월은 3년이나 이 구역에서 버텼다. 꽤 독한 놈이라는 뜻이다. 억지로 데려가봤자 시키는 일은 안 하고 문제만 일으키겠지.
“그 꿈이 뭡니까?"
“최고의 아이돌이 제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걸 보는 게 꿈입니다."
꿈 한 번 병신 같네.
나는 옆에 있는 릴리트에게 시선을 보냈다.
"우리가 도와주기 어렵겠는걸. 현 최고의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걸그룹인 핑크 러브는 비너스 엔터테인먼트 소속이거든."
"돈을 뿌리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분하지만 거긴 6,700 구역 최고의 연예 기획사야. 로비 같은 건 안 통해."
"우리 회사에는 아이돌 없습니까?"
"없어. 그룹 2개가 있긴 했었는데… 다른 회사랑 계약했거든. 아, 생각할수록 열 받네. …그래도 연습생은 있어. 문제는 데뷔하려면 아직 한참 모자란다는 거지. 걔들이 데뷔한다고 해도… 핑크 러브를 넘어설 가능성은… 솔직히 전무해.”
릴리트의 말은 부정적이었다.
비너스 엔터테인먼트에 쳐들어가서 뒤집어엎어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했다.
"저는 제 꿈을 이루기 전까지 6,700 구역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에트월이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한 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성유진 매니저님."
그나마 다행인 건 에트월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는 부류라는 것이다.
"정 안되면 핑크 러브를 전부 강간하고 영상을 찍은 뒤에 협박하는 수밖에…."
「천공의 주인이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우스가 내 의견에 공감해줬다.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고신이다.
그 이후에 주서현의 테스트가 시작됐다.
주서현은 의외로 노래를 잘 불렀다.
“이 정도면 가수로 데뷔해도 괜찮겠는 걸? 뭐, 약간 꼼수를 쓰긴 해야겠지만. 중요한 건 역시 비주얼이니까."
"대표님. 주서현의 춤은 완벽하지 않습니까?"
"완벽해. 몸을 엄청 잘 쓰네. 섹스로 다져진 댄스인가?"
"섹스할 때는 마치 한 마리의 동물과도 같죠."
음담패설을 들은 주서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빽 소리쳤다.
"그, 그만 좀 해!"
다음은 연기 테스트였다.
연기는 꽝이었다. 대사를 할 땐 목소리가 떨렸고, 얼굴은 인형처럼 굳었다.
"연기는 영 아니네. 이건 편집이나 마법으로도 커버 못 해."
"뭐, 어쩔 수 없죠.”
주서현은 가수로 데뷔하기로 정해졌다.
그러나 나는 영 불안했다. 주서현은 미모가 뛰어나지만, 가수로 데뷔해서 탑클래스 연예인이 될 수 있을까? 릴리트는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연예계가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님을 안다. 거기에 릴리트의 입장에서 주서현을 최대한 이용하려면 주서현이 탑 클래스 연예인이 되어선 안 된다.
그리고 에트월의 일도 처리해야 한다.
'…생각해보니 동시에 하지 못할 것도 없잖아?'
나는 진지한 얼굴로 릴리트에게 말했다.
"대표님. 서현이 아이돌로 데뷔시키죠?”
"뭐? 아니,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서현이 노래 실력이랑 춤 실력 봤잖아요. 비주얼도 완벽하고. 할 수 있습니다."
주서현은 보란 듯이 얼굴을 구기고 있다. 하기 싫다고 온몸으로 의견을 내보인다. 허나 주서현에게 선택권은 없다.
“주서현은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연습생들이지."
"연습생들이 그렇게 엉망입니까?"
"응. 좀 심각해.”
“그럼 다른 여자들 데려와서 같이 데뷔시키죠."
"너무 쉽게 말하네. 이 업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 구하는 일이야. 서현이는 솔로 가수로 데뷔시켜."
"계약서 쓸 때 적혀 있을 텐데요. 서현이의 담당은 접니다. 저는 서현이가 아이돌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흥. 그럼 멤버는 네가 알아서 구해서 데뷔시켜."
"하하. 나중에 두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 손으로 키우는 아이돌!
언젠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문제는 내 눈에 차는 아이돌 멤버를 직접 찾아야 한다는 건데….
'정 안되면 유희 생활 어플을 이용할 수밖에. 인연 소환으로 유리아를 데려오는 거야. 엘레나도 부르면 올 테고…. 여분의 포인트로 미령이도 확정 소환할 수 있어.'
주서현, 유리아, 엘레나, 미령.
비주얼만으로도 최고의 아이돌 걸그룹이 될 것이다.
'뭐,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서 괜찮은 여자가 없는지 봐야겠군. 다른 기획사 연습생을 빼내오는 방법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