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49화 (1,344/1,497)

< 1349화 > 1349. 신의 아틀란티스

시체를 승합차에 챙기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신보라와 한 가위바위보에서 내가 졌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시선을 느꼈다. 조수석에 앉은 신보라의 시선이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이다.

'아마 북한군이나 북한 헌터겠지."

제대로 한국으로 넘어가는지 감시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괜히 국가적인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지지지직.

먹통이었던 무전기가 반응한다. 나는 한 손으로 운전하며 무전기를 받았다.

"성유진입니다."

-……백지은입니다. 드디어 연결됐군요.

익숙한 백지은의 목소리였다. 말투는 공손했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비밀인지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이렇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네. 백지은 씨. 일이 좀 꼬였습니다."

-장주석 씨와 김시엄 씨가 사망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오강후와 그 부하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장주석과 김시엄의 사망을 알고 있다?

'오강후에 관해 묻는 걸 보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건. …아니군 우리에게 무슨 수작을 부려놓은 건가? 생명 반응을 알 수 있도록?'

수작이 아닐 수도 있었다.

단순히 원거리에서 생명 반응을 확인하는 마법이나 능력자의 힘을 이용한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건 나중에 백지은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고….'

힐끗.

백미러로 신보라를 훔쳐봤다. 그녀는 창가에 기대어 멍하니 창밖을 지켜보고 있다. 나를 대신해서 협회에 보고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입을 열어 방금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김시엄이 장주석 씨를 죽이고 여러분까지 공격했다고요?

백지은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었다. 김시엄의 통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백지은의 성격상 일을 대충 하진 않았을 테니… 김시엄의 정보는 아무 문제 없었을 테지. 이건 김시엄이 철저하게 준비한거야.'

-후우. 성유진 씨, 신보라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 일은 협회의 실수입니다. 두 분께는 제 이름을 걸고 만족스러운 보상을 약속드리겠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

“실적을 원합니다."

-알겠습니다. 신보라 씨는?

“……생각 중입니다. 따로 만나서 말씀드리죠."

신보라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네. 천천히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데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북한 쪽 시선이 달라붙는데요."

내가 말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북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 조용히 한국으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성유진 씨. 협회 상부는 당신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입니다.

“오. 그거참 기대되는군요."

좋은 소식이 무엇인지 짐작 갔다. 내가 지금 협회에 바라고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드디어 A급으로 승급하나?'

덜컹!

차가 흔들렸다. 나는 괜히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도로가 왜 이래? 북한이라 그런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협회 직원을 만나 있었던 일을 전부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웠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

[유희를 시작합니다.]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에 들어왔다.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지옥에서 나오고… 발로르를 죽이고 보지 자리의 주인이 되고… 페데리카를 얻고….'

꽤 바쁜 일정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강명진은 내게 보름이라는 긴 휴가를 줬다.

나와 강명진이 속한 에이플랜 클랜이 승승장구하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15일은 무척 긴 휴가였다.

나는 히죽 웃었다. 남들이 뭐 빠지라 일할 때 취하는 휴가만큼 달콤한 건 없었다.

'이번 휴가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자. 그리고 뭐 빠지게 일하는 클랜원들을 지켜보며 이 휴가를 만끽하자.'

그러나 내 휴가 계획은 휴가 첫날부터 박살 났다. 갑자기 강명진이 나를 부른 것이다.

“……큭, 성유진….”

강명진의 집무실 앞에서 주서현과 마주쳤다. 큰 키와 매끄러운 긴 검은 머리카락. 새하얀 피부.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몸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미모를 가진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나와 몇백 번이나 몸을 섞었음에도 이런 반응이다.

참고로 그녀는 어젯밤에도 나와 몸을 섞었다. 내 다리 앞에서 무릎 꿇고 정신없이 자지를 빨던 주서현의 모습을 생각하니 또 자지에 힘이 들어간다.

"지나가는 길이면 좀 비켜주지?"

“…너야말로 비켜. 난 강명진이 불러서 왔으니까."

“우연이네. 나도 강명진이 불러서 왔거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주서현은 내 웃는 얼굴을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눈을 찡그리며 죽일 듯이 날 노려보고 있다.

'뭐지. 왜 주서현이랑 같이 부른 거야?'

웃고 있는 얼굴과 다르게 내 마음은 불길한 예감으로 타들어 갔다. 휴가 첫날부터 나와 주서현을 부른다? 어쩌면 휴가를 빙자하여 일을 시킬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일 중독인 강명진에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안 들어가냐?"

문 앞에서 가만히 있는 내게 주서현이 물었다.

"지금 들어가려고 했어."

나는 제발 예감이 틀렸기를 바라며 문을 열었다.

강명진은 아침부터 책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류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는 문이 열리자 우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같이 왔군. 두 사람은 언제봐도 사이가 좋군.”

“누, 누가 사이가 좋다는 거야?!"

빽 소리를 지른 건 주서현이었다. 그녀는 얼굴까지 붉히며 강명진의 말을 부정한다. 강명진은 아무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명진아. 나 오늘 휴가 첫날이야."

강명진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알고 있다. 너희에게 일을 시키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본격적인 휴가를 보내도록 도와주려고 너희를 불렀다."

“…나는 휴가 따위 필요 없어."

주서현이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주서현의 미모와 날카로운 분위기에 압도되는 편인데, 강명진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서현. 네겐 휴식이 필요하다. 매일 수련하는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나…, 넌 너무 지나치다. 보고 있으면 도리어 걱정이 될 정도지."

"나 보고 수련하지 말라고?"

“검에서 잠깐 손을 놓는 것도 수련의 일종이다. 성유진을 봐라. 너처럼 수련에 매진하지 않음에도 강하지."

"……."

주서현은 얼굴을 구겼으나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녀는 내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이 깊어졌다. 의외로 단순한 주서현은 어쩌면 휴식에 내 강함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휴가를 도와준다는 건 무슨 뜻이야?"

강명진에게 내가 물었다.

강명진은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서류 위에는 파란색 티켓 두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티켓의 정보를 확인했다.

「연예의 왕국 입장권

연예의 왕국에 입장할 수 있다.

랭크: C」

“…연예의 왕국 입장권?"

"오해하지 마라. 실제로 왕국은 아니다. 구역 이름이 연예의 왕국일 뿐이지."

강명진은 서류를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6,700 구역, 연예의 왕국. 이 입장권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구역이다. 반대로 나올 때는 자유다. 6,700 구역은 아틀란티스에서 드문 현대 배경의 구역이다."

"아니,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우리처럼 현대 시대가 고향인 추방자들에겐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니까. 그 때문에 휴가로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이 티켓. 구하기 꽤 힘들었을 텐데 용케 구했네?"

"어려울 뿐, 불가능한 건 아니다. 너희는 6,700 구역에서 휴가를 즐겨줬으면 한다.”

“……그냥 지원해주는 건 아니지?"

"겸사겸사 내 부탁도 들어줬으면 좋겠군.”

강명진이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 귀찮은 일 따윈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6,700 구역 연예의 왕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연예의 왕국. 앞에 있는 단어인 연예는 연예인 할 때 그 연예지.'

다시 말해 이 구역에는 연예인급 미녀가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고 언급만 된 곳이라 자세히는 나도 모르지만…. 내 좆집인 주서현도 같이 가니까…. 갈까.'

나는 손을 뻗어 티켓을 손에 쥐었다. 주서현은 여전히 머뭇거렸다. 나는 그녀의 티켓까지 챙겼다. 강명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가 바로 사라졌다.

"우리가 6,700 구역에서 해야 할 일은 뭐야?"

"일이 아니라, 부탁이다."

"그게 그거지."

"…에트월이란 남자를 우리 클랜에 영입해 줬으면 한다."

"뭐야, 스카웃 임무였네. 우리 클랜에 꼭 필요한 놈이야?"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물었다. 원작의 조연 중 에트월이란 남자는 없었다. 강명진의 성격을 생각하면 에트월은 반드시 얻어야 할 인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상관없는 인재다. …아니지. 에이플랜 클랜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지금 필요한 인재다."

“…성장에 필요 하다라…. 김만기 씨 부류의 인재야?"

김만기.

클랜의 행정을 책임자는 자다.

그가 없었다면 에이플랜 클랜은 행정 문제로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그래. 서포트에 특화된 인재다. 자세한 정보는 서류에 적어놨다."

"알았어. 그럼 갈게. 근데 보름 만에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상관없다. 하지만 되도록 귀환이 늦어지지 않았으면 하는군."

"난 한다고 한 적 없어."

초를 친 건 주서현이었다. 그녀는 클랜 마스터인 강명진을 대놓고 노려봤다.

강명진은 주서현을 설득하는 대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씨익 웃으며 주서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주선혀이 움찔 떨었다.

“같이 가서 놀자고, 이런 휴가. 좀처럼 받을 수 없어. 너도 알잖아?”

"나는 휴가 따위 필요 없어! 그리고 내가 왜 너랑 휴가를 보내야 하지?!"

“우리 사이잖아.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큭."

주서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주서현은 툭툭거려도 내 말을 거부하지 못한다. 나와 그녀 사이에 있는 내기 때문이었다.

"강명진. 주서현은 내가 설득할게."

"음. 그래주니 고맙군.”

"가자, 주서현."

나는 주서현의 어깨를 끌며 밖으로 나갔다. 내 시선은 주서현의 목에 향했다. 언젠가 선물했던 장미 목걸이를 늘 착용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장미 목걸이를 손가락을 만지며 물었다.

“항상 이 장미 목걸이를 끼고 있던데…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쓸만한 목걸이가 이것뿐이라 꼈을 뿐이야."

주서현은 어디까지나 도도하게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뻗었다.

부드럽고 탄력 넘치는 감촉 대신 딱딱함이 느껴졌다.

정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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