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47화 (1,342/1,497)

< 1347화 > 1347. 특수 작전

고스트 로맨스의 엔딩을 확인한 나는 잠깐 멍해졌다. 엔딩이 너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내가 퇴마 활동을 끝까지 할 줄이야.'

나였다면 퇴마 활동은 진즉에 관두고 여자들을 모아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이다. 심심해지면 귀신을 찾아내 싸우겠지만… 그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퇴마 활동을 할 정도는 아니다.

'……이번 세계에선 내가 퇴마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 모양이군.'

히로인들을 공략한다는 이유로 귀기도를 낮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귀신을 죽인 게 원인일 것이다. 특히 백귀야행의 귀신들을 죽인 게 결정적일 테고.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어.'

고스트 로맨스의 엔딩 같은 삶. 직접 한번 살아보고 싶긴 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녀들을 따먹고 임신시키는 삶이라니….

유희 생활 어플을 종료한 나는 샤워하고 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몸은 피곤하지 않으나, 쉬지 않고 고스트 로맨스 세계에 있어서 그런지 정신이 좀 피곤했다. 아니, 피곤하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고스트 로맨스 세계에서 푹 쉰 적이 거의 없군.'

나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유희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현실에 집중했다. 그간 유희 세계에 집중하며 현실 세계에 소홀했다. 현실의 감각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올라간 신체 능력에 적응할 필요도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잘 구분해야 해.'

유희 세계의 나는 각각 가진 능력이 다르다.

현실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착각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중요한 순간에 문제가 일어날 테니까.

'지금 내 신체 능력은 A급 헌터 평균 이상이야. 상위라고 하기엔 뭔가 좀 부족해.’

A급 헌터의 힘은 신체 능력이 전부가 아니다. 전투 경험, 각성 능력, 장비 등의 변수가 존재한다. 실제 내 강함은 A급 상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A급 상위와 만난 경험이 별로 없어서 어디까지나 짐작에 불과하지만.'

우우우웅. 우우우웅.

전화가 왔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다.

백지은.

협회 간부 말석을 차지한 여자다. 최면에 걸려 있는 그녀는 나를 소꿉친구이자, 섹스프렌드로 생각한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출세를 위해 한창 바쁠 그녀가 직접 전화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단 받아 볼까.

-성유진! 한가하지?!

백지은의 목소리가 울렸다. 활기찬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겠다.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시킬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영 내키지 않았다.

"바빠."

-웃기지 마. 네가 한가하다는 건 내가 다 알고 있어. 던전도 B급 던전에만 들어가잖아. 그렇게 해서 언제 정식 A급 될래?

나는 A급에 달하는 실력에 비해 등급은 아직 B급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A급이 되기 위해선 실력만이 아니라 실적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일을 통해 실적을 갖추는 방법도 있긴 한데…. 내 목표는 S급이다. 나중에 책잡힐 일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B급 던전에만 들어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A급 던전과 달리 변수가 거의 없다. 더군다나 A급 던전을 혼자서 공략하기 뭣하다.

"헌터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아니면 실적 좋은 일이라도 있어?"

-후후. 좋은 일이 있으니 네게 연락한 거야.

“무슨 일인데? 귀찮은 일이면 안 해."

-귀찮더라도 하는 게 좋을걸?

백지은의 목소리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나를 너무 얕보는군. 난 어떤 제안이라도 거절할 수 있는 남자야.'

-이번 일은 위에서 결정한 일이야. 조금 성가신 일이긴 한데, 유망주들에게 맡겨보자는 말이 나왔지.

"…유망주들?"

-응. S급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들.

“그 말은 즉, 그 일을 해결하면 S급 후보로 인정해 준다는 거야?"

-그건 아니야. 상부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확인해 보는 것뿐이야. 분기마다 젊은 A급 헌터들을 모아 한 번씩은 진행하는 일이니…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야.

"난 A급이 아니라, B급인데?"

-그 실력은 A급에 근접하잖아. 거기다 네 성장 속도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야. 남들보다 늦었음에도, 벌써 A급을 넘보고 있지. 상부가 널 주목할 이유는 충분해. 내가 볼 땐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만.

"…성공하면 뭐가 좋은데? 바로 A급이 되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빠르게 A급 헌터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한국 협회가 널 집중하게 돼. 좋은 의미로 말이야.

"이거 참 거부할 수 없는 일이네. 내가 뭘 하면 돼?"

-천수(千手) 길드와 관련된 일이야. 뉴스는 봤지?

“내가 뉴스를 볼 시간이 없어서… 그래도 천수 길드는 알고 있어. 나름 유명한 길드잖아."

천수 길드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중소 길드 중 하나다. 헌터의 대우도 좋고, 경력 없는 신참 헌터도 잘 받아주는 길드다. 때문에 헌터계에서 중소 길드치고는 평가가 높다.

-그 천수 길드는 3시간 전에 블랙 길드로 지정됐어. 천수 길드의 본사 건물은 협회가 점령 중이고.

"…천수 길드가 블랙 길드로? 탈세라도 했나? 아니, 탈세 정도로 블랙 길드로 지정될 리 없을 텐데…. 그놈들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블랙 길드. 범죄 길드를 뜻하는 단어였다. 다시 말해 천수 길드는 범죄 집단이라는 것이다.

잘 나가던 중소 길드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처박히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중국 쪽 블랙 길드와 손을 잡고 마약을 유통했어. 마약으로 벌어들인 돈이 8,000억 원으로 추정 중이야.

"마약인가. 근데 끝난 일 아니야? 협회가 본사를 점령했다며."

-유감스럽게도 길드 마스터와 수뇌부 몇몇을 놓쳤어. 이럴 때를 대비했는지 비싼 아티팩트를 구해놨더라고. 네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유망주들과 함께 천수 길드의 잔당을 추적하는 일이야. 생포가 최고지만.… 죽여도 상관없어.

"하아. 귀찮은 일이잖아…. 그래도 거절할 수도 없고….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파악하고 있어?"

-한국 협회를 우습게 보지 마. 이미 놈들의 위치 파악은 끝났어.

어떤 방식으로 위치를 찾았는지는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다. 뻔하기 때문이다. 마법, 아티팩트, 각성자의 능력 등등. 방법은 많다. 의외로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렸을지도 모르고.

"알았어. 내가 뭘 하면 돼?"

-문자 보낼게. 18시까지 장소로 와.

"18시면 1시간 남았잖아. 바로 나가야 한다는 거네.”

-싫으면 안 와도 돼.

“간다니까 그러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문 닫은 철물점 앞에 승합차 한 대가 놓여 있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승용차에 탔다. 나를 제외하고 3명의 A급 헌터들이 미리 와 있었다.

“시간 없으니 바로 출발합니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남청색 야구 모자를 쓴 남자였다.

"이거 의외군. 설마 B급이 우리랑 함께할 줄이야."

조수석에 앉은 남자의 발언이었다. 말투에 비해 목소리는 무덤덤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무시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는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었다.

"……."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유일한 여자였다. 키가 크고 몸이 말랐으며 눈매가 굉장히 날카롭다. 이 중에서 가장 비협조적으로 보이는 여자다. 외모는 평균 이상이긴 한데 미녀라 말하기엔 좀 애매하다.

“여러분. 미리 말합니다. 일인분만 하세요. 일인분만.”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내 말에 피식 웃는다.

"말에 거침없군. 마음에 들어. 자, 우리에 관한 정보와 적에 관한 정보다. 숙지해라."

그는 서류를 쥔 손을 뒤로 뻗어 내게 건넸다. 나는 서류를 받고 대충 훑어보기 시작했다.

우선 같이 일하게 된 3명의 정보를 확인한다.

운전대를 잡은 남청색 야구 모자를 쓴 남자는 김시엄. A급 헌터다. 능력은 강화. 자신의 육체나, 무장한 무기를 강화할 수 있다.

조수석의 근육질 남자는 장주석이다. 마찬가지로 A급 헌터이며, 능력은 블러드 컨트롤. 혈액을 조종하는 능력이다.

옆자리의 째진 눈의 여자도 A급 헌터였다. 그녀의 능력은 해머 크래시…. 능력 이름만 들으면 해머를 박살 내는 능력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해머를 일시적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만들 수 있는 해머는 총 6가지로 모두 특수한 효과가 존재한다.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오직 1개뿐이다.

이세 명은 모두 A급 헌터로 협회가 눈여겨보는 유망주들이다. 적어도 짐 덩어리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목표물의 정보를 읽었다.

'잔챙이는 무시하고 대빵을 노린다.'

천수의 길드 마스터 오강후.

따로 만독주(萬毒主)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A급 헌터다. 능력은 독약 제조. 그는 만독주라는 별명답게 온갖 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거기에 신체를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약도 만들 수 있다고 서류에 적혀 있다.

'독과 약을 만드는 능력이라…. 이 새끼 영약도 만들 수 있는 건가?"

의문을 느꼈지만, 기대는 없었다. 영약을 만들 수 있었다면 마약을 유통하는 짓거리는 안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 낸 영약으로 강해져서 이미 S급 헌터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았겠지.

“오강후가 상대입니다. 방심해선 안 됩니다. 성유진 씨. 뒤쪽 좌석을 보면 협회가 갖다 놓은 해독제가 있습니다. 3개 챙기십시오. 해독이 불가능한 독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적어도 중독되어 즉사하는 일은 막아줄 겁니다."

김시엄이 자동차 핸들을 꺾으며 말했다. 나는 대충 해독제를 챙겼다. 완전 회복과 천심이 있어서 해독제는 필요 없으나, 굳이 내가 쥔 패를 그들에게 까발릴 이유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서류를 바라봤다. 어처구니없는 말이 적혀 있어서 눈을 의심했다.

"…오강후가 북쪽으로 가고 있다고요? 내가 아는 그 북쪽 맞습니까?"

"맞다. 오강후는 북한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끝까지 쫓는다."

장주석이 정면을 보며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국가 문제가 될 텐데요?"

"협회가 알아서 한다더군."

대책 없는 말이 돌아왔다.

북한으로 가는 건 좀 오버인 것 같아서 백지은에게 전화를 걸어 따질까 고민할 때였다. 김시엄이 추가로 입을 열었다.

"협회는 이미 북한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조건은 이번 임무를 대외에 알리지 않는 게 조건입니다."

"북한이 허락한 게 놀랍군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확실하게는 모릅니다. 다만, 오강후가 중국 블랙 길드와 엮여있다보니 아마 중국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것이겠죠. 최근 북한과 중국은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요. 그게 아니면 저희를 전력을 파악할 목적이거나."

나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자잘한 것들은 모두 협회가 알아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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