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40화 (1,335/1,497)

< 1340화 > 1340. 고스트 로맨스

신오정: 누리 병원을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었다.

누리 병원은 이 지역에서 유명한 커다란 대형 병원이다. 물론, 내가 누리 병원에 관해 알고 있는 건 남들과 좀 다른 이유에서다.

누리 병원은 원작에서 나온 병원이니까. 정확하게는 설지영과 관련되어 있다.

'불치병에 걸린 설지영은 어렸을 적에 학교 대신 누리 병원에서 생활했지.'

성유진: 누리 병원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신오정: 너는 어딘가 상식이 어긋나 있으니 말이다.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오정: 그 반응을 보니 누리 병원은 알고 있나 보군.

신오정: 그럼 이것도 알고 있나? 누리 병원은 3개월 전에 폐허가 되었다. 폐병원이 된 거지. 인터넷에서는 심령 스팟으로 유명한 곳이다.

성유진: 3개월 전에 폐병원이 됐다고? 그 큰 병원이? 이유가 뭔데?

신오정: 귀신의 짓이다. …라는 건 내 나와 인터넷의 의견이고…. 실제로는 원장을 비롯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났다는 것이다.

신오정: 명확한 이유 없이 일제히 병원을 떠났지. 환자들은 각각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신오정: 그리고 어째서인지 병원은 방치되어 폐병원이 되었다.

신오정: 나는 누리 병원의 직원과 관계자들이 귀신에게 홀렸다고 예측한다.

성유진: 누리 병원이라. 한번 가봐야겠어.

신오정: 혼자 갈 건가? 누리 병원은 위험하다. 병원이 크다 보니 장례식도 매일 하던 곳이다. 온갖 귀신들이 모여 있을 거다.

신오정: 퇴마 협회에 도움을 청해라. 그게 아니면 네 가문에 도움을 청하던가. 네 가문은 퇴마로 유명하잖냐.

성유진: 난 귀신 따위에 안 져. 혼자서 충분해.

나는 차를 운전해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9시.

해가 저물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누리 병원은 폐병원치고 깨끗했다. 페병원이 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그렇다. 어울리지 않는 깨끗함에 더 오싹해진다.

『1. 폐병원에 들어간다.』

『2. 폐병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당신은 룰 브레이커를 사용합니다.』

룰 브레이커로 선택지를 무시한 나는 병원에 기름통을 던지고 불붙인 성냥을 던졌다.

'일단 불부터 질러보자.'

기름에 불이 붙으며 화르륵 타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픽 꺼졌다.

"……."

귀기.

귀신의 짓이 확실했다.

“재밌네."

퇴마봉을 쥔 오른 어깨를 흔들며 폐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폐병원 안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이 흔들리고, 내부에 있던 물건들이 덜컹거린다.

폴터가이스트 현상.

잡귀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나를 겁주려 하고 있다. 나는 옆에 있는 화분을 들고 정면을 향해 내던졌다. 화분이 큰소리를 내며 깨지고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와, 이 새끼들아! 오늘이 네놈들의 제삿날이다!"

쾅쾅!

벽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퇴마봉을 휘둘렀다.

"낄낄낄.”

"왔군, 왔어."

"멍청한 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오만하구나, 오만해."

귀신이 나타난다.

사방에서 나타났다. 유령은 물론이고 요괴의 경지에 이른 귀신까지 간간이 보인다.

'…씨발. 좀 많네?'

개개인의 역량만 따지면 빨간 마스크보다 못하다. 하지만 수가 많았다. 나를 포위한 귀신만 따져도 벌써 20마리가 넘어간다.

'좆된 것 같은데…. 다시 시작할 걸 생각해야 하나. 젠장. 그럼 오늘 돌아다니며 귀신을 퇴마한 게 전부 헛수고가 되잖아.'

그렇다고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는 퇴마봉을 들었다.

회귀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이미 수많은 창작물을 통해 알고 있다.

'죽더라도 그냥 죽지 않는다. 약간의 정보라도 빼내고 죽는다.'

예를 들면 여기에 있는 귀신들의 약점이라거나.

"드루와! 드루와!"

귀신들을 향해 손짓한다.

그러나 귀신들은 나를 포위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 귀신의 수는 이미 40마리가 넘어간다.

뭔가 이상하다.

원래 귀신들은 잘 모이지 않는다. 귀신들은 제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신오정이 말한 백귀야행?! ……백귀야행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귀신들인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이 찌푸려질 때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귀신에게서 들을 수 없는 발소리. 인간의 것이다.

귀신들이 양옆으로 쫙 갈라진다. 그 길에서 걸어 나온 것은 설지영이었다.

"지영 선배…?"

"안녕, 유진아.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

"지영 선배가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왜 여기에 있냐니 그거야 당연히 여기가 우리 집이니까, 그렇지."

"네?"

설지영이 웃으며 다가온다. 한기가 느껴진다.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귀신을 퇴치했음에도 그녀의 힘은 약해진 것 같지 않았다.

'…애초부터 방향을 잘못 선택한 걸지도 몰라.

퇴로는 이미 귀신들이 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여기서 설지영의 뚝배기를 깨는 수밖에.

"지영 선배. 제가 올 걸 알고 있었어요?”

"응. 언니가 가르쳐줬거든. 역시 언니의 말은 확실해. 언니의 말만 들으면 돼."

“그 설녀년. 아주 개년인데. 그 설녀년은 버리고 저랑 사랑의 도피나 하시죠."

설지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눈썹 끝이 올라간다.

"유진아. 그런 못된 말 쓰면 안 돼. 언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저보다 그년이 더 좋아요?"

“나는 너와 언니를 똑같이 좋아해. 그러니… 언니의 말대로 널 영원히 얼릴 거야. 그럼 우린 평생 함께할 수 있어."

"후. 안 되겠군. 선배. 오늘 선배의 뚝배기를 깨는 걸 용서해 주세요. 어쩌면 이게 답일지도 몰라요. 죽어도 괜찮아요. 제겐 다음이 있으니까.”

"네가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언니는 네가 미쳤대."

“으아아아! 미친 건이 세상이다!"

나는 설지영에게 달려들었다. 설지영이 손을 뻗는다. 냉기가 내게 날아온다. 피하기에는 너무 빨랐다. 냉기에 맞은 내 몸통이 얼어붙는다.

설지영은 얼어붙은 내 몸을 끌어안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설녀의 냉기가 당신의 심장을 얼립니다.』

『†당신은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시작 지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Day 4 체크 포인트가 저장되었습니다.』

아침으로 돌아왔다.

나는 바로 옆에 누워있는 유세미에게 달라붙었다. 심장이 얼어붙는 감각을 잊기 위해 유세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자 기분이 좋아진다.

"아앙, 유진아…?"

유세미와 섹스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유세미는 학교로 떠났고,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귀신을 퇴치해 귀기도를 낮추는 건 틀렸어. 병원에 있는 귀신들은 너무 많아… 나 혼자서 처리하는 건 불가능해.'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럴 때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유리아에게 물어보는 게 최선이겠지만… 일단 신오정에게 물어봤다. 신오정은 꽤 머리가 돌아가는 놈 같으니까.

신오정: 병원에 그렇게 귀신이 많았다고? 지옥의 육단봉이 처리하지 못할 정도라니… 심각한 상황이군.

성유진: 됐고. 뭐 좋은 방법 없냐?

신오정: 병원 자체를 없애면 되지 않나? 불을 지른다거나… 중장비로 철거한다거나.

성유진: 귀신이 너무 많아서 안 통해. 그 새끼들이 모여서 힘을 쓰면… 중장비도 어쩌지 못해.

신오정: 흠. 그럼 이쪽도 동료를 모으면 되지 않나.

성유진: 떨거지들은 도움이 안 돼.

신오정: 떨거지 말고. 네가 속한 퇴마 협회에 지원을 요청해라. 네 가문은 퇴마 협회에서도 알아주는 퇴마사 집안이 아닌가.

퇴마 협회가 네 요청을 무시하진 않을 거다.

신오정: 귀신들과 퇴마사들의 전쟁…. 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군.

성유진: 과연. 좋은 생각이다.

나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스마트폰으로 본가의 위치를 확인하고, 지다혜 집에서 자동차를 끌고 본가로 이동했다.

1시간 뒤, 나는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성유진! 갑자기 네가 웬일이냐? 저 차는 또 뭐고?"

꼬장꼬장해 보이는 영감이 지팡이를 들고 나를 반겼다. 이 세계의 내 조부다.

"창고에 두고 간게 있어서요."

"요즘 네 동네에 귀신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더니 참귀도(r)를 가지러 온 모양이구나. 쯧. 얼굴을 보니 어지간히도 몰린 모양이구나."

"몰리다니요? 제가요? 그깟 귀신들한테요?"

“모르는 게냐. 네 얼굴은 귀신처럼 일그러져 있다. 내 누누이 말한다만… 냉정함을 유지하거라. 귀신이 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거라. 귀신은 사람의 약한 부위에 파고든다. 지금 네 상태는 귀신이 파고들기 딱 좋은 상태다."

"……."

나는 얼굴을 만졌다.

확실히 얼굴이 좀 굳어져 있는 것 같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절대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영감은 내게 무언가를 던졌다. 열쇠였다.

"창고 열쇠다. 참귀도를 가져가거라. 원래 네게 주려고 했던 물건이니 사양할 것 없다."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고로 향했다.

사실 참귀도라는 칼이 있는지 지금에서야 알았다.

내가 본가에 찾아온 건 참귀도가 아니라 다른 물건이었다.

'겸사겸사 참귀도란 칼도 가져가면 돼.'

창고 문을 연다.

먼지와 함께 억제된 귀기가 느껴진다. 창고 주위를 둘러보면 부적이 엄청 많았다.

'원작에서 스쳐 지나가듯 주인공의 본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주인공의 조부는 유명한 퇴마사였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위험한 귀신을 퇴마했다고. 그리고 그중에 퇴마하지 못한 귀신은 봉인하여 창고에 넣어뒀다고 하지.'

신오정의 말대로 퇴마 협회에 지원을 요청하면 폐병원의 귀신들을 쉽게 퇴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설지영도 100% 퇴마 될 것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괜찮다. 몸에 씌인 귀신이 퇴마 될 뿐이니까.

'하지만 설지영은 설녀가 죽으면 같이 죽는다. 불치병에 걸린 설지영이 살아 있는 건 설녀의 힘 덕분이니까.'

따라서 퇴마 협회에 지원을 요청할 수 없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지.'

귀신이 내가 된다!

귀신의 힘으로 설지영에 맞서는 것이다.

창고 안에 들어온 나는 가장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원래 중요한 물건은 가장 깊숙한 곳에 놓아두는 법이니까.

그때, 칼 한 자루가 눈에 띄었다. 검집에 넣지도 않고 벽에 걸어둔 칼이다. 코등이 없이 칼자루와 칼날만 있다. 보자마자 알았다. 이게 참귀도다.

'^칼에서 귀기가 느껴지는군. 귀기를 이용해 귀신을 베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날카로움은 화련비도에 버금가는군. 마음에 들었어.'

참귀도를 오른손에 쥐고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하얀 항아리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항아리에 강력한 귀신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1. 나찰귀 도진의 봉인을 해제한다.』

『2. 나찰귀 도진의 봉인을 해제하지 않는다.』

'봉인된 귀신이 나찰이었나…'

나찰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귀신 중에서 격이 높은 귀신이란 알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 없었다. 나는 1번을 선택했다.

『1. 나찰귀 도진의 봉인을 해제한다. V』

참귀도를 쥔 손이 멋대로 움직이더니 부적을 잘라냈다.

머릿속에서 나찰의 목소리가 울렸다.

-크하하하하! 봉인이 풀렸구나! 네놈! 가증스러운 퇴마사의 후예여! 나의 힘을 바라고 있구나! 좋다. 내 힘을 주마! 대신, 네놈은 그 육체를 내놓아라!

봉인 풀린 항아리 속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나타나 내 몸에 달라붙는다.

"크흡! 큭…."

나는 일부러 저항을 포기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낀다. 무언가가 내 정신을 밀어내고 있다.

동시에 귀기가 내 몸에 흐른다.

우지끈.

몸속에서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팽창하며 찢어진다. 고통이 심각하다. 이대로 그냥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싶으나,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호오. 꽤 버티는군. 보통 인간이라면 기절하고도 남았을 것을…. 네놈도 어엿한 퇴마사라는 거냐. 크하하. 마음에 드는구나!

참귀도를 지면에 박고, 그 칼자루에 몸을 기댄다. 고통을 견뎌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고통은 둘째치고 내 기억이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네놈에 대해 대충 알겠다. 설마 여자 따위를 위해 내 힘을 탐할 줄이야…. 크크. 재밌군. 설녀는 내가 죽여버릴 테니 걱정하지 마라.

의식이 밀려난다.

우지끈, 빠드득, 꾸득, 까득.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찢어진다. 뼈는 보다 단단해져서 원래의 골격에 자리하고, 찢어진 근육은 재생되어 압축된다.

낡은 이빨이 후두둑 떨어지고 새로운 이빨이 자라났다. 짧은 머리카락은 길어져 허리까지 내려왔다. 키도 커지고, 손톱도 자랐다가 빠지기를 반복한다. 피부가 벗겨지며 분홍색의 뽀송뽀송한 피부가 새로이 돋았다.

그 과정을 3번 반복했다. 즉, 3번의 환골탈태를 겪은 것이다.

"좋군.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지는군. 이렇게 나랑 잘 맞는 육체는 처음이군."

성유진의 몸을 강탈한 나찰귀 도진이 몸을 일으켰다. 상의는 찢어져 압축된 상체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하의는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도진은 옷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참귀도를 손에 쥐었다.

본래는 귀신이 손에 쥐지 못하는 칼이지만, 현재 그는 인간의 육체를 가진 나찰이었다. 참귀도는 그의 손에서 얌전했다.

도진은 당당하게 창고 밖으로 나갔다.

웬 영감이 나타나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강대한 귀기가 느껴져 와봤더니만… 이놈 도진! 당장 내 손주 몸에서 썩 꺼져라!"

“하하. 성비월인가? 많이 늙었군. 원래는 네놈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죽일 생각이었다만… 보다시피 네 손주의 육체를 얻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고통 없이 단번에 죽여주마."

"이놈…!"

성비월이 급히 석장을 세웠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도진이 휘두른 참귀도는 석장과 함께 성비월의 몸을 깊숙이 베었다.

"도, 도진! 네이놈…!"

성비월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하하하하하하!”

도진이 입이 찢어지라 웃었다.

-병신인가. 늙은이 하나 단번에 못 죽여?

도진의 머릿속에서 성유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도진은 뚝 하고 웃음을 멈췄다.

"…아직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냐? 그 근성만큼은 대단하구나. 허나,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 육체는 이제 내 것이다. 내가 이 육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잠자코 지켜보고 있어라."

-그러고 있잖아. 병신 새끼야. 웬만하면 닥치고 있으려 했는데… 네놈 칼질이 오죽이나 병신같았으면 내가 입을 열었겠냐.

“이 건방진 새끼가…! 네놈 할애비가 죽어가고 있는데 감상은 그것뿐이냐!"

-그딴 늙은이가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귀찮아서 잠깐 몸을 빌려주는 거니… 제대로 해라.

짜증이 치솟은 도진은 성비월을 바라봤다.

"성비월! 네놈의 손주는… 이런. 죽었나?"

너무 쉽게 죽여버렸다고 혀를 찬 도진은 고개를 획 돌렸다.

거슬리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감히, 이 몸을 훔쳐보는 거냐."

화풀이로 딱 좋았다.

도진은 지면을 박차며 뛰어 숲속으로 이동했다. 인간의 도약력을 아득히 초월한 속도였다. 그는 수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귀기가 검기로 변하여 수풀을 베어 갈랐다.

털 뭉치 같은 생물이었다. 검기에 베인 털 뭉치는 하늘을 바라보며, 있는 힘껏 소리 쳤다.

"꽤애애애애애애애액!"

그리고 털 뭉치는 절명했다.

"잡귀였나. 보아하니 정찰병이었군."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거대한 귀기가 느껴진다.

도진은 씨익 웃었다. 이 현상이 무엇이 뜻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백귀야행…! 동쪽 섬의 떨거지들이 행차하셨군. 노리는 건… 이 애송이였나 보군. 60년간 봉인되었던 내 힘을 시험하기에 딱 좋은 상대로다."

하늘에서 칼을 든 오니가 도진을 향해 떨어진다. 도진은 피하지 않고 오니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칼과 칼이 부딪치며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오니가 힘에서 밀려나 옆으로 떨어진다. 도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니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지만… 오니의 몸은 상당히 질겼다. 그는 추가로 3번이나 칼을 휘둘렀다.

-칼질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닥쳐라, 좀. 단번에 놈을 죽이지 못한 건… 내가 이 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하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수천 명을 벤 나찰귀 도진이다!"

-네가 수천 명을 뺐으면, 난 수만 명을 뺐다.

"한마디도 지려고 하지 않는군, 이 건방진 것…! 제발 좀 닥쳐라!"

-네 칼질이 어설퍼서 그러잖아. 나한테 몸 넘겨. 진짜 칼질이 뭔지 보여줄게.

“웃기지 마라! 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 넌 조용히 지켜나 봐라! 이 몸이 저 백귀야행을 박살 낼 테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