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7화 > 1327.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이런저런 일들은 내팽개치고 금 간 화련비도의 칼날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어차피 전쟁 후의 수습은 내 몫이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사람이 아플 때는 의사를. 기계가 고장 났을 때는 엔지니어를. 무언가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전문가를 찾아가는 게 최선이다. 나는 테브라에 있는 드워프 노예 마을을 찾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백작님의 명령대로 매일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마을에 나타나자마자 드워프들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평소의 내가 온갖 걸로 지랄하다 보니 그들 나름 익힌 처세술이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서리 망치 부족을 둘러보며 말했다.
"명령이다. 모든 드워프를 집결시켜라."
드워프들은 불안한 얼굴로 내 명령을 마을에 퍼뜨렸다. 10분도 되지 않아 모든 드워프들이 마을 중심에 모였다.
“저 백작님. 혹시 납품한 물건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서리 망치 부족의 족장인 페서스가 두려움에 벌벌 떨며 말했다.
"히이이이이익?!”
다짜고짜 칼을 꺼내 들자 드워프들이 꼴사나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실수한 게 있다면 바로 잡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호, 혹시 저희가 쓸모없어졌습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랄하는 드워프들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본보기로 한 놈 죽여버릴까. 진심으로 그런 고민을 하다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을 깨닫는다.
“이걸 봐라! 화련비도의 칼날에 금이 갔다!"
"멀어서 잘 안 보입니다. 가까이서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조심히 봐라. 만약, 화련비도의 금이 더 커지거나, 화련비도가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네놈들은 모두 몰살이다."
“히이익! 조, 조심히 보겠습니다!"
페서스가 다가왔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금이 간 부분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백작님. 좀 더 자세히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페서스가 손을 내밀었다. 화련비도를 넘겨 달라는 뜻이다. 다른 이에게 화련비도를 넘기는 건 영 꺼려졌지만, 화련비도를 고치기 위해서니 어쩔 수 없었다.
"허어어억!"
페서스는 화련비도를 받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그대로 바닥에 화련비도를 떨어뜨렸다.
“이 새끼가!"
"히익! 죄, 죄송합니다!"
페서스는 허리에 달아놓은 장갑을 끼고 화련비도를 손에 쥐었다. 페서스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화련비도를 떨어뜨려서만은 아니다.
"너희들. 와서 이 칼 좀 봐라."
폐서스가 주위의 드워프들에게 말했다. 드워프들은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허어…. 이건 거의 요도에 가까운 상태로군. 이봐, 넌 마검 전문가잖아. 알고 있는 건 없나?"
"흐음…. 일부러 요도를 만든 적 몇 번 있지만… 이건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자연적으로 요도로 변하고 있다. 하물며 이 칼의 재료는 레드 드래곤의 비늘과 묵철이라 하지 않았던가? 인위적으로 요도로 만들려면 최소 수십만 명을 죽이고 원혼을 쌓아야 했을 텐데…."
"수십만 명을 죽였다고…?"
"그것도 최소 단위다. 칼을 봐라. 재련을 통해 칼에 담긴 원혼을 씻겨낸 흔적이 있다. 그런데도 이 상태다.”
"다시 재련하면 되지 않나?"
"미친 소리! 아까 족장이 칼자루를 잡자마자 비명을 지르는 거 못 봤나? 재련을 시도했다간 망치를 몇 번 두드리지도 못하고 죽을 수 있다. 이런 칼은 없애는 게 최선이다."
그 드워프는 말하고서도 아차 했는지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놈을 노려봤다. 놈이 시선을 깔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이, 이런 명도를 없애는 건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무, 물론이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도를 없애선 안 되지.”
그들은 모두 내 눈치를 살폈다.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화련비도나 수리해라."
드워프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급한 건 내 쪽이었다.
드워프들의 회의가 끝났다. 화련비도를 손에 쥔 페서스가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 백작님… 화내지 마시고 침착하게 들어주십시오.”
"네가 개소리만 지껄이지 않는다면 내가 화낼 일은 없을 거다."
"크흠…. 그, 그게…."
페서스가 망설였다. 그는 도움을 구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드워프들은 냉정한 눈으로 페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저희의 능력으로는 화련비도의 수리할 수 없습니다."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냐?"
"저, 절대로 아닙니다!"
“아까 너희가 하는 말을 들었다. 화련비도가 요도인가 뭔가라고 지껄이던데."
"요도. 다시 말해 마검입니다. 원혼이나 저주에 의해 무기가 변질되는 걸 말합니다.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대게 안 좋은 쪽인 경우가 많습니다."
"용건만 말해라. 용건만."
"…화련비도는 요도화가 진행 중인 칼입니다. 문제는 칼날에 금이 가면서 요도화가 멈춰진 상태입니다. 보통 이럴 때는 요기 그러니까 원혼이나 저주 같은 것들이 빠져나가며 평범한 쇠붙이가 되길 마련인데. 화련비도는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지?"
"수리를 시도하다가 저주와 원혼에 짓눌러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 물론 저희는 백작님의 화련비도를 수리하기 위해 목숨을 걸 각오했습니다. 하지만 괜히 시도했다가 저희가 죽으면… 화련비도와 저희. 둘 다 좋지 않은 결과를 맞지 할 겁니다."
"원혼인가 저주인가 뭔가를 없애면?"
“이미 재련을 한 번 한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정화하면… 화련비도가 견디지 못하고 부서질 겁니다."
“그럼 어쩌라는 거냐? 금이 가서 요도화도 멈췄다며? 아예 손 놓고 있으라고?"
"죄, 죄송합니다! 화련비도의 내구성은 뛰어나니 당장 부서질 일은 없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적어도 100년은 거뜬히 사용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 새끼가….”
"히이이익!"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무능한 드워프 놈들은 내 돈줄 중 하나였다. 그것도 평생을 빨아먹을 수 있는 돈줄. 홧김에 죽여버리면 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됐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군. 너희는 일이나 해라."
“그, 백작님. 화련비도의 상태를 보니 엄청난 존재를 죽인 것 같은데…. 어떤 존재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것도 알 수 있나?"
"평범한 존재를 죽여서는 그런 상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저희의 결론인지라…."
"흠. 레드 드래곤을 죽였다. 성체였지."
"헉! 그,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 상태가…."
페서스를 비롯한 드워프들은 무언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른 이들을 찾았다. 여기서 쉽게 화련비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페서스의 말로는 100년은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유희 생활 어플을 사용하는 내겐 100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광명승천도 세계에서 100년은 아무것도 아니야. 화련비도는 기본적으로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생활하겠지만….'
일단 유리아를 만났다. 어지간한 일은 그녀가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마침, 그녀의 곁에 샤르넬과 프리실라도 있었다. 프리실라는 에이션트 드래곤이니 조언을 구했다.
유리아는 화련비도의 상태를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대단하군요."
"둘리바드. 그 반쪽짜리의 원혼이 생생히 담겼군. 보통은 그럴 일은 없을 텐데….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칼이라 그런가?"
“나, 나는 봐도 잘 모르겠어."
유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어찌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닌 듯합니다."
“이건 섣불리 건들었다간 저주가 몸에 옮는다. 마도구로도 못 만들 재료다. 버리는 걸 추천하마."
그녀들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아와 프리실라가 포기했다. 즉, 이 세계에선 화련비도를 수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내게는 유희 생활 어플이 있다. 언젠간 화련비도를 수리할 수 있는 아이템 같은 걸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화련비도를 수리할 수 있는 세계에 가면 돼.'
착잡한 눈으로 화련비도의 칼날을 바라봤다. 금이 간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1cm도 되지 않지만, 내겐 너무 거슬렸다.
'……사포질하면 금이 없어지지 않을까?'
기분 탓일까. 화련비도가 약간 떤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멜리사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련 없이 아르헨 공작 위를 반납했다. 만인지상의 자리를 버리고 다시 나의 메이드로 돌아온 것이다.
아르헨 공작은 새로운 왕국을 선포했다.
아르헨 왕국.
둘리바드의 폭정과 계속된 전쟁으로 지쳤던 백성들은 아르헨 공작을 지지했다.
대륙 전쟁은 끝났다. 대륙을 불태우던 전쟁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멜리사와의 결혼은 아르헨 왕국이 정리가 된 뒤로 미뤄졌다.
나는 군대를 이끌고 귀향길에 올랐다. 거리가 멀어서 돌아가는 것도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간 뒤에 내가 얻을 것들을 생각하면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전쟁 후에 살아남은 병력은 5만…. 많은데?'
노예병 2만. 정예 병사 3만.
영지에서 출정할 때 12만의 병력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절반 이상이 죽었다. 이것만으로 엄청난 피해지만… 5만은 여전히 많았다.
'노예병을 너무 많이 잡았었나…. 적당한 시점에 죽여야겠군.'
라펠리 왕국으로 돌아가면 노예병과 정예 병사들은 자기 터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영지에 남는 병사는 1만 명도 되지 않는다.
'전쟁 경험이 있는 놈들이다. 그리고 약탈과 강간을 한 번 맛봤으니… 도적으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아.'
다른 국가에서 지랄을 하든, 뭐를 하든 관심 없었다. 하지만 라펠리 왕국은 내 구역이다. 내 구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꼬라지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없애버려야지. 전부 없애는 건 눈치가 보이고… 2만 정도만 남기자.'
3만 명을 어떻게 죽이느냐다.
대놓고 죽일 수는 없었다. 아군 병사들이 반항할 것이고, 내 명성에도 흠이 간다.
'악마를 이용하자.'
계획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나는 유리아에게 부탁해 대규모 함정을 만들었다. 군대는 함정으로 이끌었다. 마법으로 만든 자연재해가 일어났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졌다. 여기서 마법으로 악마의 모습도 만들어 병사들에게 보여준다.
“악마다! 악마가 우리를 죽이러 왔다! 악마를 죽여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이 모든 원인은 악마다. 그렇게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군 병력 3만 정도가 죽었을 때, 직접 나서서 악마를 처단했다.
"많은 희생이 있었으나, 우린 악마를 처단하고 승리했다! 자, 집으로 돌아가자!"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나는 속으로 병사들을 비웃었다. 멍청한 놈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라펠리 왕국에 돌아와 해군했다.
[유희를 종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