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19화 (1,319/1,497)

< 1319화 > 131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프리실라의 몽상 세계에 들어왔다.

나는 일단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이 많은 도시였다. 사람들의 안색이 좋았다. 활기 넘치는 도시다.

'날씨를 보면 일단 북부지방은 아니군. 중부나 남부 같은데… 복장이나 건물 양식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달라.'

흥미를 껐다.

이 도시가 어디에 있든, 어느 시대이든 상관없었다. 여긴 프리실라의 몽상 세계, 프리실라의 기억이 근원인 세계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프리실라와 함께 몽상 세계를 나가는 거지.'

그 방법은 프리실라에게 이 세계가 몽상 세계임을 알려주면 된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어.'

이 몽상 세계를 만든 몽상의 악마와 그 계약자인 베젤을 붙잡아 프리실라를 구한다? 악마는 몽상 세계에 갇히게 만들더라도 세부까지 제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몽상 세계를 닫아버리면 프리실라의 정신이 몽상 세계와 함께 무너질 수도 있다.

'놈들의 입장에선 프리실라의 정신이 무너지든 말든 상관없었겠지. 어차피 프리실라를 제물로 사용할 목적이었으니.'

나는 도시를 걸어갔다. 좀 걷다 보면 주변 공간이 바뀔 것이다. 원래 이런 곳이니까.

“드래곤이다!!"

시민 중 누군가가 외쳤다.

"드래곤?!"

"어디, 어디?!"

"저기 날아간다!"

공기가 묵직하게 밀려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의 50m에 달하는 블루드래곤이 하늘을 비행중이다. 커다란 빌딩 한 채가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프리실라? 아니, 아까 본 프리실라랑 모습이 좀 달라. 가죽도 좀 더 진하고…. 뿔 모양도 달라.'

드래곤은 금방 사라졌다.

놀라운 건 주변의 반응이다. 시민들은 드래곤의 등장에도 패닉 에 빠지지 않았다. 그저 놀랄 뿐이었다. 드래곤이 사라지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이 도시가 어느 시대인지 알 수 있었다.

드래곤을 흔히 볼 수 있었던 시대.

드래곤이 적극적으로 세계에 개입하던 시대.

약 3,000년 전이다.

'의미 없지.'

나는 옆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어차피 나를 인식하지 못 하리라.

"응?"

손바닥에 사람의 감촉이 느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생생한 감촉에 놀랐다.

"뭐야?"

어깨가 잡힌 남자가 획 돌아본다. 인상이 사납다. 짧은 머리와 송충이 눈썹, 뺨과 이마에 새겨진 칼자국.

남자는 날 꼬나보며 짜증 가득 담긴 목소리로 다그친다.

"너 이 새끼 손 안 떼?!"

“새끼가… 눈깔아."

"하, 이놈이 미쳤… 커억!"

화련비도를 소환해 목에 쑤셔 넣었다 뺐다. 남자가 목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진다. 아직 죽지 않은 남자의 머리를 발로 퍽퍽 차던 나는 싸늘해진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봤다. 지나가던 시민들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뭘 봐."

앞에 있는 남자에게 피 묻은 칼날을 겨눈다.

“히이익!"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근처에 있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도망치는 이들을 쫓아가 죽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놈들은 날 확실하게 인식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이 감각…. 진짜나 다를 바 없어. 처음 들어갔었던 몽상 세계랑 지금의 몽상 세계는 다르군. 차이가 꽤 커.'

그 차이는 모르겠다. 그때는 베젤이 몽상 세계를 다급히 만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지금 몽상 세계는 여유 있는 상태에서 천천히 공들여서 만든 것일 테고.

‘그게 아니면 베젤의 실력이 몇 년 사이에 더 발전했거나.'

이곳이 몽상 세계임을 알기에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던 나는 한쪽을 쳐다봤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나를 향해 우르르 몰려온다.

'병사… 아니, 몇몇은 기사군.'

기사와 병사의 구분이 없다. 라는 게 맞을 것이다.

'이 시대는 그런 시대인가 보군.'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시대의 기사가 가진 무력 수준은 궁금했다.

"어디서 온 놈이냐…!"

대장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버럭 소리쳤다.

대답으로 발아래에 있는 시체의 머리를 잘라 발로 찼다. 머리통은 놈의 발치에 떨어져 데구루루 굴렀다. 놈의 얼굴이 터질듯 붉어졌다.

"죽여라!!"

그 명령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나를 포위하고 한순간에 들어온다. 초인을 상대하는 일에… 아니,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전술이다.

'훈련 하나는 제대로 받은 모양이군.'

내가 아닌 다른 평범한 기사였다면 적들을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러 마스터다. 그것도 뇌전을 사용하는 오러 마스터.'

뇌천류(雷天流) 만뢰(卍雷).

나를 중심으로 뇌전이 회전하며 사방을 휩쓸었다. 나를 포위한 병사 대부분이 감전당해 죽는다. 뇌전을 버티는 병사들은 이를 악물며 내게 돌격했다. 나는 그들을 칼로 베어 죽였다.

"으아아아아악!"

병사들이 전멸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놈이다!"

“보통 실력이 아니다, 동료와 함께 전투에 나서라!"

“전하의 명령이다! 반드시 죽여라!"

개미 떼처럼 몰려온다.

나는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나는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마침, 내 힘이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했는데… 잘 됐군.'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걸 분출하듯 미칠 듯이 날뛰었다. 벼락으로 적들을 태우고, 검기로 사방을 갈랐다.

오러 마스터는 혼자서 도시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도시는 나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다. 건물은 불타오르고 평화롭던 시민들은 챙길 수 있는 물건만 챙기고 도망쳤다. 어디로 도망쳤는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여자 하나를 붙잡았다. 원래라면 다다익선이라 도시 내의 미녀를 싸그리 붙잡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나는 프리실라를 찾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흐윽, 읏! 이, 이 불한당 놈…! 아버지가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거다…!"

찌걱찌걱.

나는 여자를 품에 안으며 도시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안긴 여자는 핑크색 머리의 여인이었다. 본래 고급스러운 원단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지금은 나체로 내게 들려져 박히고 있었다.

"아, 그래. 보지맛이 꽤 좋네. 너, 이름이 뭐라고?"

“고르네 카이시아스다…! 이 나라의 첫 번째 공주가 바로 이몸… 꼭! 캬아아아아아악…!"

퍽퍽퍽!

허리를 잡고 거칠게 자지를 박아주자 고르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처녀였던 그녀는 눈을 까뒤집으며 짐승 같은 교성을 질렀다.

카이시아스의 공주.

카이시아스라는 국가는 잘 모르겠지만, 공주라 그런지 보지가 쫄깃하다. 거기다 이 공주는 방금까지 처녀였었다.

"네 덕분에 프리실라를 찾는 일은 지루하지 않겠어."

가다가 내 취향의 괜찮은 여자가 나오면 바로 버리고 갈아탈 생각이었다.

철퍽철퍽.

콧노래를 부르며 도시 밖을 나와 길을 걸을 때였다.

들고 박던 고르네 공주가 사라졌다.

도망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발기한 자지에서 차가운 공기가 느껴진다. 자지를 잔뜩 적셨던 애액도 없었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불타는 도시가 있어야 할 그곳에는 무성한 나무만 가득했다.

'…몽환 세계라 어쩔 수 없나."

혀를 쯧쯧 찼다.

몽환 세계를 탐방한 지 일주일째.

지루함을 느꼈다. 슬슬 빨리 현실로 나가고 싶었다.

미녀를 만나도 오래가지 못한다. 정해진 장소에서 벗어나거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미녀가 사라져 버린다. 섹스 도중에 갑자기 여자가 사라지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더럽게 넓군. 너무 넓어.'

이 몽상 세계는 프리실라의 기억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그게 문제였다. 프리실라는 에이션트 드래곤이다. 즉, 고룡이다.

수천 년을 살아오며 축적된 기억이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이다.

나는 일주일 동안 섹스하는 시간 배고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프리실라는 발견하지 못했다.

'몽상 세계와 현실의 흐르는 시간이 달라서 다행이군.'

황무지를 걷고 있는데 느닷없이 동굴이 나타났다. 나는 괜히 동굴 입구를 두들기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입구부터 시작해서 통로까지 지나칠 정도로 넓었다.

동굴 안의 넓은 동공에는 두 마리의 블루드래곤이 똬리를 틀고 잠들어 있었다.

50m에 달하는 커다란 블루드래곤과 10m 정도의 작은 블루드래곤이다. 나는 작은 블루드래곤이 프리실라임을 알았다. 몽상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 봤던 블루드래곤의 얼굴과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프리실라의 과거인가? 저 커다란 드래곤은 아마 부모 계층이겠지.'

부모와 같이 지내는 건 좀 의외였다. 드래곤은 자식과 50년 정도 함께 지내며 마법을 비롯한 지식을 알려주고 떠나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예외는 있는… 큭?'

어마어마한 위압감에 몸이 굳어졌다.

파직.

나는 뇌천류로 뇌기를 운용하며 간신히 굳어진 몸을 움직였다.

위압감의 근원은 바로 앞에 있었다. 커다란 블루드래곤이 길쭉한 검은 동공의 푸른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복장을 보니 이 근방의 인간이 아니구나. 여행자인가? 여기까지 온 걸 보니 실력이 제법이구나. 딱 한 번의 기회를 주마. 돌아가거라.

나는 유리아가 아니다. 드래곤. 그것도 고룡급과 일대일로 맞짱 떠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옙, 옙. 나가야죠. 나가고 말고요.”

바로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나갔다.

큰 드래곤 옆에 있던 블루드래곤.

그 작은 드래곤이 정말 이 세계의 중심인 진짜 프리실라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아마 아닐 거야. 그 프리실라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까.'

가짜 프리실라와 진짜 프리실라를 잘 구분해야 한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걸었다.

이 몽상 세계에서 멈추는 순간, 나도 이 세계에 갇히게 된다. 이 더럽게 넓은 세계에 갇혀도 당분간은 즐길 수 있겠지만…

이 세계가 가짜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25일째 이제 나도 슬슬 지치는데…. 어떻게 할 방법 없나?'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샤르넬. 얘는 또 어디서 뭐 하는 거야? 나처럼 프리실라를 찾지 못하고 방황 중인가? 어휴, 믿고 맡겼는데 이러면 안 되지.'

냄새나는 늪지대의 환경이 확 바뀌었다.

철썩.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린다. 나는 공기에 섞인 짠맛을 느끼며 볼을 긁적였다.

'저기 작은 마을이 있군. 인구수는 딱 봐도 100명이 안 될 수준…. 이런 곳에 프리실라가 있을 리 없지. 하아. 이번에도 꽝인가.'

의욕이 나지 않아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어촌으로 향한다. 저런 작은 마을에서는 미녀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충 쉬다가 떠나자.'

마을을 걸어가는데 하얀 저택이 보였다. 언덕 위에 있었다. 다른 집들에 비해 때깔이 고운 집이다.

'귀족의 집인가. 아마 이 어촌의 주인이겠지. 작은 영지를 가진 귀족도 있으니까. 어쩌면 준귀족인 기사일 수도 있고.'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기왕이면 좋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