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17화 (1,317/1,497)

< 1317화 > 1317.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로르프!!!!!”

웨인이 로르프의 이름을 부르며 계약한 악마의 힘을 사용했다.

검은 번개에 당해 즉사했던 로르프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로르프의 안색은 창백했다.

번개의 악마는 검은 번개가 꽃혔던 가슴을 매만졌다. 상처는 없다. 옷이 찢어진 흔적도 없다. 고통도 없었다.

하지만 방금 검은 번개가 가슴에 꽃히면서 느낀 격통은 분명 현실이었다. 현생은 물론이고 악마의 삶을 통틀어 처음 느껴보는 격통. 그것은 두려움이 되어 로르프를 잠식한다.

'위험하다…! 그 검은 번개는 영혼이 찢어지는 느낌이었어!'

로르프는 마왕의 힘 일부를 모방해 불멸의 비술을 손에 넣었다. 자신의 영혼을 임신한 여인이 품은 아기에게 빙의시키는 비술. 인간이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영혼이 멀쩡할 것.

'확실하다…! 저 여자의 검은 번개는 마왕처럼 영혼을 소멸시키는 힘이 있다.'

로르프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웨인의 힘을 믿고 싸운다. 이 자리에서 도망친다.

'…도망칠 수는 있는 건가? 난 저 인간 여자의 검은 번개를 피할 자신이 없어….'

선택지가 정해졌다.

웨인의 힘을 믿고 싸운다. 웨인의 힘만 있다면 무한한 시간 동안 싸울 수 있다. 저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여자도 언젠가는 지칠 것이다.

"나는!! 번개의 악마 로르프다!!!"

로르프가 포효하며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그는 최상급 악마다. 순수 전투력만 따지면 마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강자다.

파지지지지직!

로르프의 몸이 황금빛 번개로 변한다. 번개는 발광하며 압축된다.

전력을 개방하면 육체가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리겠지만, 지금 자신의 뒤에는 웨인이 있다. 죽더라도 웨인이 살려줄 것이다.

"죽여주마!"

은발의 여자 뒤에 있는 블루드래곤이 휘말려 함께 죽을 테지만, 로르프에겐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네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거다!"

압축된 황금 번개가 쏘아진다. 그리고 멈췄다. 번개가 된 로르프가 앞으로 나아간 거리는 1m도 되지 않았다. 바닥에서 치솟은 시커먼 그림자가 황금 번개를 붙잡은 것이다.

"웃기지 마라, 이따위…!"

파지지지직.

로르프는 그림자를 뿌리치기 위해 황금 번개를 방전했다. 오우거쯤은 단숨에 태워버릴 수 있는 황금 번개는 그림자에 어떤 손상도 줄 수 없었다.

유리아는 차가운 눈으로 황금 번개를 보다가 턱을 살짝 까딱였다. 황금 번개를 붙잡은 그림자가 다시 그림자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

3초간의 짧은 침묵 끝에 그림자가 다시 로르프의 육체를 뱉었다. 살과 뼈, 내장과 피. 육체를 구성하는 전부가 해체되어 있었다. 철푸덕. 바닥에 떨어진 고깃덩어리는 그로테스크했다.

“로르프!!!!!!!!”

"우욱…."

웨인이 경악하며 외치고, 뒤에 있는 베젤은 입을 막고 헛구역질했다.

"로르프! 넌 이곳에서 죽어선 안 된다!"

웨인이 능력을 사용했다.

뼈와 살, 피와 내장이 동시에 움직여 한 지점에 뭉쳤다. 순식간에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허억!"

다시 살아난 로르프가 억지로 숨을 토했다. 그의 몸을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그림자 속에서 8시간 동안 천천히 해체당했다. 그러나 그림자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듯했다.

'그림자 속에서는 몸이 천천히 해체당했는데도 죽지 못했다…! 그림자 속의 공간은 완전히 저 여자의 영역이다! 그림자에 빠지는 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

"……."

로르프가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을 내려봤다. 그림자가 흔들렸다.

깜짝 놀란 로르프가 위로 솟구쳤다. 천장에 달라붙은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는 아무 반응 없는 그림자를 보고 안심했다. 다만, 그림자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아는 단검을 던졌다. 기습적인 투척. 단검은 너무도 간단히 음속을 초월해 웨인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단검은 벽에 박히다 못해 안쪽으로 파고들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즉사한 웨인의 몸이 비틀거리며 아래로 쓰러진다. 웨인의 머리가 바닥에 닿기 직전, 그의 몸이 다시 균형을 잡고 꼿꼿이 섰다. 그는 두 눈을 끔뻑이며 상처 하나 없는 목을 매만졌다.

'…과연 기습적으로 죽여도 능력이 발동하는군요.'

판테움의 회장인 웨인 라이시스의 능력은 시간 조작이다. 한정적으로 시간을 조작할 수 있다. 로르프가 죽었음에도 다시 멀쩡히 살아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육체의 시간을 되돌린 것이다.

'육체와 영혼은 되돌릴 수 있으나, 기억은 되돌리지 못하는군요. 아니, 이 경우엔 되돌리지 않는다는 게 맞겠죠.'

유리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사고 속도를 기준으로 잠깐이다. 실제로는 5초도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요.'

유리아는 혼자 생각하면서도 존댓말을 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존댓말이 지나치게 익숙해진 것이다.

'원작의 방식대로 악마와 계약자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쪽이 편하겠지만… 그래서는 악마를 놓치게 되겠지요.'

시간의 악마, 무파파.

시간을 조작하는 권능을 가진 악마를 놓치게 되면 이후에 일이 귀찮아질 수 있었다.

'아마 원작대로 시간의 틈 속에 숨어 있겠죠. 아무리 생각해도 계약자인 웨인을 몰아치는 게 최선이군요.'

시간의 힘도 무한하지 않다.

웨인과 로르프를 죽이다 보면 웨인의 힘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에서 악마는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악마가 강력한 힘을 사용하려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까.

영천류(影天流) 극기(極技) 영뢰(影雷).

유리아의 손가락 끝에서 쏘아진 검은 번개 두 줄기가 로르프와 웨인을 노렸다. 둘은 피하지 못하고 감전당했다. 즉사한 그들은 죽기 전으로 되돌아갔다.

"크윽…. 이 번개는 대체…."

“빌어먹을…. 영혼이 찢기는 고통은 몇 번을 받아도 익숙해지지 않는군. 웨인, 저 여자는 괴물이다. 싸울 생각 말고 최대한 버텨라."

“의외군. 로르프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그만큼 강적인가?"

"저 여자는 괴물이다. 마왕과 동등…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 과대평가군. 네 자존심을 세우려고 마왕을 팔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병신 새끼. 지랄 말고 버텨라. 그리고 한 번 정도는 그림자 속에 들어가 봐라. 어머니의 뱃속만큼이나 아늑하더군."

"어미의 배를 가르고 태어난 네가 말하니 설득력이 없군. 그림자에 빠지는 것만큼은 반드시 조심하겠다."

“눈치 빠른 새…."

픽.

단검이 날아가 로르프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로르프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진다.

"로르프!!!!!!”

웨인이 다시 능력을 사용했다.

"헉! 젠장! 봤을 때는 이미 늦었… 어?"

천장에서 그림자 망치가 로르프에게 떨어졌다. 로르프는 단번에 곤죽이 되어 죽었다.

“로르프으!!!!!!!!"

"이런 망할…?!"

부활한 로르프의 콧구멍으로 약간의 그림자가 들어갔다. 직후, 로르프의 몸이 폭발한다. 육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로르프!"

웨인은 아까와 달리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눈동자에도 감흥이 없었다. 그는 기계처럼 능력을 사용했다.

"크악…!”

로르프는 부활하자마자 단말마를 내뱉었다. 그림자 수십 개의 그림자 가시가 그의 온몸을 꿰뚫은 것이다.

“로르프…"

웨인이 시간을 되돌린다.

“씹… 꺽꺽!"

로르프는 그림자 교수형에 처했다.

"……."

웨인은 로르프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되살렸다.

로르프의 죽음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죽음의 횟수가 세자릿수에 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미 미치고 남았을 테지만, 로르프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였다. 악마의 정신은 겨우 그 정도로 미치지 않는다.

"빌어먹을…. 대체 날 몇 번이나 죽이는 거냐."

"121번째다. 이번에는… 그림자 기생충인가? 검은 지렁이 같은 것들이 네 몸을 파먹고 있다."

웨인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탄사가 섞여 있었다. 로르프가 121번 죽을 동안 단 한 번도 똑같이 죽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로르프를 대상으로 힘을 실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 그만 좀 해라! 네년! 나 말고 웨인을 죽여라! 웨인이 시간 능력자다!"

"로르프… 여기서 배신하는 거냐? 실망이군. 우리 사이의 신뢰는 방금 깨졌다."

"씹새끼야! 내가 죽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한 주제에! 신뢰? 그딴 건 처음부터 없었어, 이 새끼야! 능력 쓰지 마라! 죽고 살아 나는 것도 질렸다! 내가 죽게 내버려 둬라!!"

“그럴 수는 없다. 네가 죽으면 내가 몇백 번이나 죽게 된다. 나는…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다. 단시간에 수많은 죽음을 겪고 너처럼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자신이 없다."

“개새끼가! 나를 이용한다는 거잖냐!! 웨인! 네놈도 죽여버리… 끄억!"

로르프가 죽었다. 웨인은 시간을 되돌렸다.

부활한 로르프는 팔다리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오그라드는 걸 확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 전체가 오그라들어 죽을 것이다. 안 봐도 뻔했다.

“이 개샹년아. 왜 나만 죽이는 거냐…?"

"……."

유리아는 요지부동이었다. 서늘하고 무감정한 눈으로 로르프를 바라봤다.

"대답해라!"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당신이 악마라 그렇습니다."

"죽인다!"

분노한 로르프가 번개로 변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한발 앞서 그의 전신이 오그라들었다. 분노를 매개로 타올랐던 전의가 팍 꺾인다.

271번째의 죽음.

로르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악마보다 악마 같은 여자가 지친 것이다.

유리아의 호흡은 거칠었고, 이마에는 땀이 주르륵 흐른다. 로르프를 죽이는 속도도 30분부터 급격히 느려지고 있다.

아무리 드래곤의 심장을 가진 유리아라도 2시간 동안 연속으로 힘을 쓰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친 건 그녀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웨인도 거의 한계였다.

“크하하하! 지쳤구나!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웨인의 능력을 이용해 내가 당했던 것 이상으로 갚아줄 테니…!"

“로르프… 초치는 것같아 미안하지만, 지금 내겐 여력이 없다. 앞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건 앞으로 10번… 그것도 3초가 한계다."

“이런 젠장! 무파파에게 힘을 빌려라!"

"겨우 네 만족을 위해 내 수명을 바칠 순 없다. 나는 너와 달리 수명이 한정되어 있다."

유리아는 그림자 창을 로르프에게 던졌다. 방심하지 않고 있던 로르프는 가볍게 몸을 비틀며 그림자 창을 피했다.

"하하! 공격의 날카로움이 사라졌군!"

"……레오시오는 어딨습니까?"

유리아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레오시오? 그 빨간 도마뱀? 그놈이라면 귀찮은 일을 우리에게 떠맡긴 채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로르프!!"

“시끄럽다, 웨인.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지 마라.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군. 그리고 정보가 유출될 일은 없다. 저년은 여기서 죽을 거다."

"좀 빨리 끝내지 그래?"

뒤에서 팔짱을 낀 베젤이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초조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던 그녀는 유리아의 지친 모습을 보자마자 태도를 싹 바꿨다.

"크큭. 그래. 우선은 오른팔이다!"

황금색 번개로 변한 로르프가 유리아를 향해 날아간다. 유리아는 차분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얻은 맞은 로르프가 바닥에 처박혔다가,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천장으로 내려온다. 농구공처럼 위아래로 드리블했다. 어느 순간 그의 몸이 찢겨 사방으로 떨어졌다.

“로르프!!!!”

웨인이 힘을 사용한다. 무려 6초를 되돌려야 했다. 지친 웨인의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겼다.

"젠장. 아직 여력이 남아 있었나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 발악이겠지. 네년의 주먹을 맞는 순간 알았다. 힘이 어느 정도 빠졌다는걸. 이번에야말로 죽여… 뭐 하는 거지?"

파지직.

전투를 준비하던 웨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유리아를 바라봤다.

유리아는 직접 공들여 만든 포션을 마시고 있었다. 유진이 준 영약으로 만든 포션이다. 엘릭서 같은 극적인 효과는 없으나, 체력과 마나를 회복시켜준다.

"보시는 바와 같이 포션을 마셨습니다."

"…체력과 마나를 회복했다고…? 망할. 처음부터 우리를 가지고 놀았군…. 웨인! 이젠 방법이 없다! 네 힘을 사용해라!"

로르프의 지면에서 그림자가 치솟았다. 단숨에 로르프의 육체를 토막 낸 그림자는 번개로 변해 로르프의 영혼까지 소멸시켰다. 로르프의 시체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다.

유리아는 가늘게 뜬 눈으로 웨인을 바라봤다.

"살리지 않으십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