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5화 > 1315.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근데 이거 내가 들어가도 돼?"
유리아는 프리실라와 접점이 없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말해 프리실라의 정신 세계에 들어가려면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프리실라가 주인님을 어떤 의미냐에 따라 다릅니다. 저는 프리실라와 스쳐 지나가듯 대화를 나눈 게 전부입니다. 명백한 타인이죠. 샤르넬은 프리실라의 제자입니다.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니 프리실라의 무의식이 샤르넬을 배척하지 않을겁니다."
나는 포털을 노려봤다.
프리실라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솔직히 말해 프리실라와 내가 만나고 대화를 나눈 시간은 짧다. 그 시간을 다 합쳐도 일주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리실라와 성관계를 맺은 첫 남자다. 그녀에게 섹스의 쾌락이 무엇인지 알려준 남자.
"주인님이라면 괜찮습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첫 관계의 대상을 잊을 리 없으니까요."
"네 말이 맞아."
하물며 프리실라는 불감증 드래곤이다. 처음으로 쾌락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나를 평범한 타인처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근데 배척받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들어가자마자 죽어?"
"죽을 가능성은 작습니다. 몽상 세계에서 튕겨 나오거나, 운이 좋아 튕겨 나오지 않더라도 몽상 세계의 심층부에 다가가지 못하고 겉에서 배회하겠죠."
“…그래? 이거 버프를 받고 들어가야겠어. 유리아, 내게 행운의 축복을 내려줘."
유리아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유리아가 다가왔다. 양팔로 내 목을 감싸고 발꿈치를 살짝 위로 들었다. 그리고 내게 입을 맞춰온다. 나는 유리아의 허리와 엉덩이를 잡으며 키스를 이어갔다. 탱탱한 입술이 열리고 혀가 들어온다. 타액을 교환하고 혀를 뒤섞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유리아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흐웅, 읍… 으응."
3분간의 키스 끝에 입술이 멀어졌다.
나는 유리아의 턱을 잡고 그녀의 달아오른 얼굴을 감상했다. 자지가 단숨에 뻐근해질 정도로 꼴리는 얼굴이었다. 단번에 자지가 빼근해지며 섹스 충동이 밀려온다.
하지만 지금 유리아와 여기서 섹스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샤르넬만으로 불안하니 몽상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적들이 언제 우리의 침입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달래듯 유리아의 입에 짧게 키스했다.
“유리아. 갔다 올게.”
"네. 주인님. 다녀오세요."
나는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스칼렛은 전장을 보며 웃었다. 전쟁의 현 상황은 그녀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군은 끊임없이 죽어 나가지만, 성벽의 공성전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그녀는 노예병들이 든 공성추가 성문을 뚫는 걸 보았다. 본래라면 요새의 악마가 성문을 수복해야 정상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7시간. 성벽과 성문을 수복할 힘이 없겠지. 악마의 힘도 무한한 건 아니니까.'
단순히 말해서 적들에게 한계가 온 것이다. 아군은 거의 10만 명 이상이 죽었지만, 모두 계획 내에 있는 희생이었다.
“스칼렛."
골든 로즈 기사단의 단장인 플로이가 스칼렛의 옆으로 다가왔다.
"네. 기사단장. 말씀하시죠."
"우리는 언제 출전하면 되지?"
"날뛰고 싶으십니까?”
"우리는 기사다. 전장에서 살고 전장에서 죽는다. 전장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 투쟁심은 높이 삽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기사단이 출전하는 건 거의 막바지 무렵입니다."
"왜지?”
"간단하게 3가지 이유를 말해드리죠. 첫째는 골든 로즈 기사단이 참전하면 전쟁의 판세가 이쪽으로 확 기울어 버립니다. 저와 주군이 바라는 일이 아닙니다."
주군.
그 단어가 나온 이상 플로이는 더 이상 스칼렛에게 따질 수 없었다.
“……둘째는?”
"저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혹시 모를 첩자가 지휘관인 저를 노릴 수 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제가 무력은 조금 약한 편이지 않습니까."
"그렇군.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긴 하지. 셋째는?"
"별동대겠죠. 주군에게 듣기로는 판테움에 속한 악마 중에는 공간과 관련된 힘을 가진 악마가 있다더군요. 그 힘을 이용해 별동대를 움직이면 상당히 귀찮아집니다. 보급품을 쌓아둔 창고를 태우거나…."
스칼렛의 눈이 뒤쪽으로 향한다. 임시로 만들어둔 보급품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뭉게뭉게 치솟는다.
플로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말하기가 무섭게 별동대가 쳐들어온 건가. 처리하고 오지."
"기사단원에게 명령하십시오. 기사단장은 제 곁에 있어 주시면 합니다. 적들은 1차 목표를 달성했으니 2차 목표를 달성하러 올 겁니다."
플로이는 여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여기사들이 보급품 창고를 향해 달려 나간다. 아군의 것인지, 혹은 적군의 것인지 모를 비명이 들려왔다.
스르르릉.
플로이는 하나밖에 없는 오른쪽 눈으로 정면을 노려봤다.
"네놈들의 존재는 알고 있다. 정체를 드러내라."
키이잉.
공기가 떨리는 소리와 함께 투명화로 모습을 감췄던 적들이 드러났다. 15명. 입고 있는 장비는 경갑. 모두 오러 익스퍼트의 실력자다. 그러나 기사는 아니다.
"모험가인가."
"좋은 의뢰를 받아서 말입니다. 뭐, 원망하려면 코발트 국왕을 원망하십시오. 그쪽이 의뢰인입니다."
"코발트 국왕은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딱히 너희를 원망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마주치는 적들을 원망하기에는… 너무많거든."
플로이의 오러 블레이드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단숨에 모험가들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 있는 모험가의 목을 치고 근처에 있는 모험가와 전투를 벌인다.
“쫄지 마!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처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공격해!"
모험가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항상 전장에 나서는 플로이는 일대일의 전투보다 일대다수의 경험이 더 많다는 것이다. 모험가들은 플로이의 검을 막지 못 하고 점점 죽어 나갔다.
"전쟁에 미친년! 죽어라."
스칼렛은 고개를 숙였다. 목을 목표로 휘둘러진 단검을 피하고 허리춤의 검을 뽑아 암살자에게 찌른다. 암살자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뒤로 물러났다.
“…제법이군."
"뻔했습니다. 제가 암살 시도를 몇 번 받았을 것 같습니까?”
"대충 5번 정도 받았나?”
"당신이 124번째입니다."
"하. 허세 부리지 마라. 123명의 암살자가 널 어쩌지 못했다고? 방금 반격은 좋았으나,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네. 그렇겠죠. 저는 기사가 아닌지라 육체의 단련도는 평범한 수준이니까요. 그렇지만 암살자를 죽이는데 꼭 기사 수준의 무력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그럼 123명의 암살자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은 거냐? 마법이라도 썼냐?”
스칼렛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암살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스칼렛의 손에 들린 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패문이다.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마도구는 아니다.
"저는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 123명은 암살자는 그저 무지했습니다. 당신처럼 말이지요.”
탕!
총구가 불을 뿜었다. 총알은 정확히 암살자의 미간을 꿰뚫었다.
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암살자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하기 힘들었다. 총성이 들렸을 때는 이미 총알이 이마에 박히고 난 뒤니까.
암살자의 운명은 총구가 겨눠진 순간부터 정해진 것이다.
스칼렛은 고개를 돌렸다. 플로이의 전투도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플로이. 근처에 악마가 숨어 있을 겁니다. 투명의 악마, 기그레는 근처에 있는 자들만 투명화 시킬 수 있습니다. 아마 본인도 투명해진 상태겠지요."
"알겠다. 존재한다는 걸 알면 기척으로 찾아내 죽일 수 있다."
"살려두면 성가셔 질 테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30분 후.
플로이는 수풀에 숨어 있던 50cm의 난쟁이 악마를 찾아내 죽였다.
"정면의 성문이 뚫렸다! 적들은 당황하고 있다! 돌격하라! 마법 병단은 성문을 부수는 데 집중해라!"
멜리사가 있는 힘껏 외쳤다.
그녀의 명령은 반란군 전체로 퍼져나갔다. 다소 미적지근하게 전쟁에 임하던 반란군의 태도가 바뀌었다. 반란군의 사기가 올라가다 못해 하늘을 찌른다.
유진 프루커스와 스칼렛은 채찍과 당근으로 군대를 운영했다. 채찍은 공포였고, 당근은 약탈이었다. 멜리사는 달랐다. 규율과 신념으로 군대를 운영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반란군은 돌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병사들의 돌격. 그 뒤에는 멜리사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멜리사는 갑옷을 입은 그라우스 아르헨에게 말했다.
“아버지. 현장을 부탁드립니다. 둘리바드 국왕은 라펠리 군대가 붙잡아 처형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왕좌를 차지하셔야 합니다."
그라우스 아르헨이 기사들과 함께 달려 나간다. 그의 뒤를 바짝 쫓는 소년이 있었다. 멜리사의 남동생인 베르도였다. 전쟁에 나서기엔 어린 나이지만, 차기 아르헨 왕국의 왕세자로서 업적을 만들기 위해 참여했다. 그라우스와 기사단은 필사적으로 베르도를 지킬 것이다.
'돌격을 두려워해하지 않는군. 그것 하나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휘관인 멜리사는 높은 곳에서 전장을 내려다봤다.
일련의 무리가 멜리사에게 다가온다. 멜리사는 그들을 바라봤다. 보급품 관리를 맡고 있는 장교와 병사들이었다. 그 외에도 다른 부대에서 일하는 병사들이 섞여 있다. 총 70명에 가까운 병력, 적지 않은 숫자다.
"나와 대화하러 왔나? 한가한가 보군. 드라함 자작.”
지팡이를 쥔 절름발이 남자, 드라함 자작은 조용히 멜리사를 노려봤다.
"알고 있었습니까?"
"의심은 하고 있었다.”
"…왜 이때까지 저를 내버려 뒀습니까? 저라면 가장 먼저 첩자를 제거했을 겁니다."
"첩자를 잡더라도 다른 첩자가 또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대는 유능하지 않나.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지."
"대단하십니다. 당신은 정말 유능합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당신의 오만함이 당신을 패배로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일찍이 저를 없애야 했습니다."
"내가 볼 땐 오만한 건 그대인 것 같군. 내가 약해 보이나?"
"네. 약해 보입니다."
그때였다. 드라함 자작의 등 뒤로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근육질의 몸과 염소의 머리를 가진 악마다.
"악마 계약자였나…."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드라함 자작은 손에 쥔 지팡이를 버리고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손에 낀 반지를 빼자, 그의 얼굴도 변했다. 40대 후반의 중년이 30대 초반의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로 변한 것이다. 아니, 돌아온 것이다.
"판테움의 부회장인 루퍼스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