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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314화 (1,314/1,497)

< 1314화 > 1314.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전쟁의 양상을 지켜봤다.

요새화된 코발트 왕성은 워낙 수성이 단단해서 2시간이 지났는데도 뚫지 못했다.

공성탑이 성벽에 다가가면 마법이 날아와 공성탑을 불태우고, 공성 병기는 쉬지 않고 성벽을 두들기고 있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

성벽 아래로 아군의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적당한 높이의 성벽이었다면 아군의 시체를 모아 계단을 만들어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코발트 왕성의 성벽은 높이만 무려 20m다. 아군의 시체로 계단을 만들려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시체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병사들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성벽을 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으니 두려움을 가지는게 당연했다.

코발트 왕성을 향해 돌격하던 병사 중 일부가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이 노예병이다. 충성심이고 뭐고 없었다.

도망치는 노예병들을 반긴 것은 아군의 정예 병사들이다. 손에 도끼를 쥔 병사들은 상대적으로 무장이 빈약한 노예병을 가차 없이 죽였다.

“이 새끼들아! 네놈들은 방향도 구분 못 하는 병신들이냐! 네놈들이 가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저 성이다! 돌격해라!!"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노예병들을 관리했다.

병사들은 노예병들이 적의 성벽을 뚫어야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예병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아군에게 죽거나, 적에게 죽거나.

"언제까지 의미 없는 소모전을 계속할 거야?!"

샤르넬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소리쳤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양 갈래머리가 흔들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가슴이 머리카락 못지않게 출렁거렸다.

"전쟁 중이야. 전혀 의미 없지 않아."

"…나한테 부탁하면 헬파이어 한 방 정도는 날려줄 수 있어."

"네가 협조해준다니 고마운 말이지만, 넌 힘을 아껴야 해. 우리의 진짜 목적은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잖아. 우린 프리실라를 구하러 왔어."

“스승님…. 그래서 왕성에는 언제 돌입할 건데? 설마 성벽이 뚫린 뒤에 돌입하려는 건 아니지?"

“왕성이 가장 소란스럽고 취약할 때, 성벽이 뚫리기 전에 들어갈 거야. 넌 걱정하지 말고 마나나 아끼고 있어. 손은 이미 전부 써뒀으니까."

샤르넬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봤다. 내가 한 말을 믿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의심하고 있다.

"우린 프리실라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잖아? 최악의 경우 프리실라 대신 함정이 있을 수 있어. 그러니 전쟁으로 둘리바드의 시선을 끌고 정찰병을 잠입시켰지."

"정찰병 혼자서 뭐할 수 있다고…"

짜증스레 중얼거리던 샤르넬이 곧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메이드가 정찰병이야?"

"맞아. 유리아의 대단함은 너도 알지?"

“…네가 자신만만한 것도 이해가 가네. 그 여자가 나섰다면 웬만한 일은 전부 해결될 테니까. 하지만 정말 그 여자 혼자 괜찮겠어? 저긴 적진 한복판이잖아. 레드 드래곤 레오시오가 있을지도 모르고."

"괜찮아. 레오시오는 있을지 몰라도 마왕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유리아에겐 프리실라의 구출을 최우선 순위로 두라고 했어."

유리아는 암살자다. 잠입은 그녀의 특기 분야다. 유리아가 전력을 다해 기척을 숨긴다면, 그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콰앙!

굉음이 들렸다. 공성 병기가 드디어 제 몫을 한 소리였다. 성벽 일부에 구멍이 났다. 요새의 악마가 바로 성벽을 수복했으나, 한 번 금이 간 이상 얼마지나지 않아 무너질 것이다.

'뭐, 벌써 3만 정도가 죽은 것 같지만.'

반란군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전투는 하고 있으나 어딘가 미적지근한 느낌이 든다. 멜리사가 휘하의 병사들을 아끼는 것이다.

'나로서는 좀 더 팍팍 싸웠으면 좋겠지만, 멜리사의 성향이 저러니 어쩔 수 없지.'

지지직.

허리춤에 걸어두었던 무전기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이 무전기를 통해 연락 올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유리아. 프리실라는 찾았어?"

"네, 주인님. 찾았습니다. 왕궁 비고를 개조해 봉인한 그녀를 감금하고 있었습니다. 보관하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군요."

“스승님을 찾았다고? 스승님은 무사하시지?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샤르넬이 눈을 빛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내 몸을 안으면서 무전기를 향해 묻는다. 나는 샤르넬의 지나치게 커다란 가슴을 만지면서 말했다.

“워, 워, 진정해. 지금 내가 유리아랑 대화 중이잖아. 유리아. 거기는 어때? 위험한 놈은 없어?"

“입구에 악마 계약자 둘이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보자마자 바로 처리했습니다. 적들은 아직 저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한 듯 합니다."

“프리실라의 상태는 어때?"

"인간이 아닌 드래곤의 모습인지라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내리긴 어렵군요."

"봉인은? 풀 수 있겠어?"

"몽상의 악마, 리브레의 봉인으로 보입니다. 봉인을 풀기 위해선 몽상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만, 저는 프리실라와 큰 접점이 없어서 힘듭니다. 봉인 해제는 샤르넬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몽상의 악마, 리브레.

그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이 구겨졌다.

리브레는 판테움에서 가장 성가신 악마였다. 물론 그게 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전에 프리실라랑 몽상 세계에 갇혔었지. 이번에는 나 없이 프리실라 혼자 갇혔다는 건가?'

어쨌든 상황은 좋게 흘러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프리실라를 발견했다. 이 작전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유리아. 우리도 그쪽으로 가야겠어. 준비해줘."

"준비는 이미 끝마쳤습니다. 언제든지 오시면 됩니다."

"역시."

나는 감탄하며 무전기를 끊었다. 샤르넬이 부담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스칼렛은 담담히 전장을 지켜보고 있다.

"스칼렛. 네게 전장을 맡긴다. 괜찮겠지?"

"언제는 안 맡은 적 있습니까? 문제없습니다. 주군께선 주군이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스칼렛은 내가 없어도 잘할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날 한 번도 실망 시킨 적 없다.

"샤르넬. 넌 나랑 간다. 따라와."

“스승님이 계신 곳으로 갈 생각이지? 어떻게 갈 거야? 말해두지만, 텔레포트는 안 돼. 왕성에서 흘러나오는 파장이 공간 마법을 방해하고 있어."

“알고 있는 사실이니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 없어. 따라와."

샤르넬을 데리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거울을 꺼내 막사 중심에 세워두었다.

“…거울?"

"평범한 거울이 아니야. 미러 터널이란 이름의 특별한 거울이지. 거울 표면에 뜨거운 물을 뿌려."

샤르넬은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날 보다가, 마법으로 뜨거운 물을 만들어 거울 표면에 뿌렸다. 수증기가 거울 주위에 자욱하게 깔렸다. 미러 터널은 활성화되어 우리가 아닌 유리아를 비추고 있었다.

메이드복의 유리아가 나를 보며 싱긋 웃는다. 그녀가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건 본인의 취향이었다. 본인의 말로는 메이드복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나는 망설임 없이 거울 표면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몸이 쑤욱 들어간다.

"오셨군요. 왕궁의 비고치고는 좀 누추한 곳이었던지라 주인님이 오시기 전에 대충이나마 청소했습니다. 먼지가 거슬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뒤쪽을 쳐다봤다. 샤르넬이 긴장한 얼굴로 미러 터널을 통해 이쪽으로 왔다. 잠깐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한 그녀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바로 섰다.

"방해 파장을 무시하고 공간 이동이 가능한 능력이라니. 엄청난 유물을 가지고 있었잖아. 보면 볼수록 놀랍네."

유물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가져온 물건이지만, 굳이 정정해주지는 않았다. 설명하기 귀찮았다.

나는 샤르넬을 뒤로하고 주위를 살펴봤다.

유리아는 누추한 곳이라고 말했으나, 내가 볼 때는 제법 고풍스러운 공간이었다. 천장은 5m 정도로 높고, 벽 쪽에는 선반이 가득하다.

“왕국의 비고라 하기에는 물건이 없군."

"이미 전부 챙겼습니다. 대부분이 예술품이었고, 유물 몇 개와 드워프가 만든 갑옷과 무기들이 있더군요. 보여드릴까요?"

"아니, 됐어. 정산은 나중에 하자. 프리실라는?"

"저기 안쪽에 있습니다. 드래곤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더군요."

나와 샤르넬은 유리아를 따라 프리실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대한 동공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입을 벌렸다. 그곳에는 커다란 공동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블루드래곤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로 잠들어 있었다. 대충 따져봐도 그 크기는 50m에 육박해 보인다.

머리에 4개의 뿔이 자라 있다. 잠들어 있으니 눈꺼풀은 당연히 감겨 있었다. 무심코 드래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비늘은 의외로 꺼슬꺼슬하지 않고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스승님…!"

샤르넬은 젖탱이를 흔들며 프리실라에게 다가갔다. 양팔로 프리실라의 머리 일부는 안으며 연신 프리실라를 불렀다.

"스승님…! 스승님! 제가 왔어요!!"

제자와 스승의 감동적인 재회 장면이었다.

"유리아. 샤르넬을 어떻게 생각해? 좀 멍청한 것 같지 않아? 프리실라는 여전히 봉인된 상태라 말을 들을 리 없는데 말이야."

"확실히…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좀 모자라 보이기는 하군요. 그녀가 아크 메지라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

우리 말을 들은 것일까. 프리실라의 머리를 안고 몸을 비비며 커다래진 가슴을 자랑하던 샤르넬이 어색한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마법으로 프리실라의 상태를 확인한다.

"…몽상 세계의 봉인…. 일종의 정신세계에 정신이 봉인된 거네. 믿을 수 없어. 스승님은 수천 년을 살아온 고룡이야. 오래 살아온 만큼 강대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겨우 이런 봉인에서 깨어나지 못하시다니…."

“그저 그런 정신 봉인이 아닙니다. 정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시험하는 종류의 봉인입니다. 아마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몇 분 만에 정신이 붕괴했을 겁니다."

샤르넬은 유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런 쪽에 대해서 잘 몰라. 스승님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가르쳐줘."

"제가 마법으로 프리실라의 정신이 갇혀 있는 몽상 세계를 열겠습니다. 샤르넬은 몽상 세계로 들어가서 프리실라를 구하세요."

“…내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프리실라와 접점이 없습니다. 프리실라의 무의식이 저를 거부할 겁니다. 하지만 제자인 당신은 쉽게 받아들일 테죠.”

"스승님의 봉인을 해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프리실라의 정신을 깨우면 됩니다. 그 방식에 대해선 당신에게 맡기도록 하죠."

샤르넬은 각오를 굳힌 표정이었다.

"알았어. 바로 시작해줘."

"5분 정도 기다려주세요.”

5분이 지났다.

13개의 마법진이 거대한 블루드래곤을 감싸며 공명한다. 나는 유리아가 그린 마법진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샤르넬이 감탄하다 못해 경악하는 걸 봐서는 존나게 대단한 마법인 듯했다.

"말도 안 돼…. 마법진 하나, 하나가 대규모 의식용 마법이잖아. 이런 걸 어떻게 5분 만에…."

"몽상의 악마에게 당한 게 있어서 그동안 간간이 연구해온 것들이 있습니다. 익숙해지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자, 몽상 세계의 입구를 열겠습니다."

유리아가 프리실라의 미간을 가리켰다.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포털같은 것이 생겼다. 포털 너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밖에서 확인할 수 없는 구조인 모양이다.

샤르넬은 마른침을 삼키며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포털을 보다가 앞으로 다가갔다.

"유리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도 들어갈게. 샤르넬 만으로는 불안해."

“…네. 모쪼록 조심하시길."

"처음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문제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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