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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313화 (1,313/1,497)

< 1313화 > 131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네크로맨서가 사라지면서 상황은 끝났다.

날뛰던 언데드는 사라지고, 미궁으로 변했던 저택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미궁화로 인해 저택과 외부를 차단했던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졌다. 저택의 부서진 부분도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멀쩡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저택 곳곳에 널린 사람의 시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주인님. 미안하지만, 아버지에게 가봐야겠다.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기사와 병사들을 다독여야 한다."

그녀는 오늘 아르헨 공작이 될 것이다. 가신과 병사들의 충성심을 챙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옷이 좀 그을렸다. 리치는 리치더군. 솔직히 시간이 더 지났으면 위험했을 거다. 아, 저놈은 내가 데려가도 되겠지?"

멜리사가 쉼터 위에 놓인 남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사지가 잘린 채로 벌레에게 갉아 먹히던 놈이다. 정신은 잃었으나, 숨을 쉬고 살아 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음대로 해. 근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별로 없을걸?"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예를 들면, 판테움의 약점 같은 정보라던가."

"뭐, 추가 정보가 생기면 좋고. 딱히 없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이미 알고 있는 정보는 다 알고 있으니까."

"주인님의 말이 그렇다면…. 음. 적당히 심문하다가 처형해야겠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해야 복수심을 자극할 수 있겠지."

"……."

"주인님.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네크로맨서가 했던 말이 신경 쓰이나?"

"네크로맨서는 비록 악마의 힘으로 만들어진 가짜였다곤 하나, 이 세계와 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평행 세계의 나야. 놈이 했던 말에는 신빙성이 있어."

네크로맨서는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를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이 구현된 존재다.

무엇보다 내가 그를 믿는 건, 그가 유희 생활 어플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내 능력인 유희 생활 어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 딱 한 사람밖에 없다.

유리아.

그녀가 내 능력에 관해 떠벌리고 다녔을 일은 없을 것이다.

멜리사는 내 능력을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확신하는 것과 짐작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정보를 누군가에게 발설할 일도 없다.

"나는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의외네. 너라면 그놈의 말을 믿을 줄 알았는데."

"마님. 그러니까 유리아가 죽은 것에서부터 신뢰성이 없다. 나는 상대가 마왕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패배하고 살해당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뭐, 나도 그래. 하지만… 상대가 마왕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그런가. 알겠다. 네크로맨서에 관해서는 주인님에게 맡기지. 나는 이만 저놈을 데리고 가봐야겠군. 바람이 제법 차다. 너무 오래 밖에 나와 있지 마라."

멜리사는 악마 계약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본관으로 향한다.

"멜리사."

“응?"

“나는 여자가 없으면 잠을 못 자. 알지?"

"하핫. 알고말고. 자정이 되기 전까지 돌아가 봉사해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멜리사가 떠나고 백합 정원에는 나 홀로 남았다. 사방이 조용했다.

죽은 유리아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그녀의 죽은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죽은 자의 소생]과 [생살권]이 있으니 유리아가 죽더라도 살릴 수 있어. 근데 영혼이 소멸해도 살릴 수 있나…?'

모르겠다.

보통 창작물을 보면 영혼이 소멸하면 부활 마법이나 아이템이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많다.

'유희 생활 어플에 통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실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신할 수 없을 때는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물론, 소생이 가능하더라도 유리아를 죽게 놔둘 생각은 없다.

'일단 유리아에게 이 정보를 알리고 함부로 행동 못 하게 해야겠어. 마왕이 인간계에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일러.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두고 조심하는 편이 최선이겠지.'

악마회, 판테움의 목적은 마왕을 인간계에 소환하는 것이다. 판테움이 목적을 이미 달성했다면 둘리바드와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 나와 멜리사를 죽이려 하지도 않았을 테고.

'판테움은 마왕이 인간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나는 원작의 전개를 신뢰하지 않는다. 원작의 전개를 믿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네크로맨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원작의 정보를 맹신하지 말라고.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건 있어. 원작의 설정이지. 유리아가 세계관 최고의 천재이고, 카일이 환생자라는 기본적인 설정은 변하지 않았어. 그러니 마왕이 가진 능력들도 설정대로겠지.'

마왕이라면 자신의 힘을 이용해 인간계에 넘어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힘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나서서 활동하지 않고 모습을 감추고 힘을 회복하는 중이다. 라는 가설은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미궁 도시 라비트라…. 나중에 조심스럽게 가봐야겠군. 그림자 사슬 글레이프도 얻어야 하고.'

결론은 하나였다. 직접 확인하는 것. 그게 가장 빠르고 편하다.

'완전 회복.'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옆구리의 상처와 몸에 쌓인 피로가 싹 사라졌다.

가벼워진 몸에 상쾌함이 느껴진다. 컨디션이 좋아지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내일부터 둘리바드와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마왕에 관해서는 나중에 생각한다.

'둘리바드를 죽이고 프리실라를 구출한다. 마왕을 찾는 건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거야. …아마도.'

네크로맨서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죽은 유리아의 시체를 끌어안고 사라지는 내 모습.

나는 절대 그 꼴이 되지 않을 거다.

저 앞에 코발트 왕국의 수도가 보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로 우뚝 솟은 코발트 왕국의 수도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저 도시를 공략해야 할 입장에서 말하자면… 아름답기는커녕 토악질이 나온다.

"뭔 놈의 성벽이 20m가 넘어?"

작게 중얼거린 내 불평을 들은 건 내 곁에 있던 스칼렛이었다. 그녀는 며칠 전에 새로이 내 가신이 된 레오나 데이커드 후작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다.

"정보에 따르면 원래 저 정도의 성벽이 아니었습니다. 심어둔 첩자들의 보고로는 둘리바드 국왕이 마법사들을 시켜 성벽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마법이라도 며칠 만에 저런 정교한 성벽을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요새의 악마 클라우드덴의 능력이겠죠."

“그 빌어먹을 악마 새끼. 처음 진격할 때도 내 발목을 잡더니, 여기서도 성가시게 구는군.”

“조급함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은 우리들의 편입니다. 멜리사 아니, 아르헨 공작이 반란을 성공적으로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코발트 왕성과 이어진 보급로를 완벽히 끊고 지금처럼 포위했습니다."

현재 코발트 왕성은 포위되어 있었다. 왕성의 정면에는 내가 이끌고 온 군대가 있고, 후문에는 멜리사가 이끄는 반란군이있다.

"아군의 병력은 25만. 반면에 코발트 왕군은 5만으로 추정됩니다. 자그마치 5배입니다. 아무리 적이 높고 단단한 성벽을 가졌더라도 20만의 차이는 절대적입니다."

“그 절대를 바꾸는 놈들이 있어서 문제지."

"악마들 말이군요."

“그래. 궁지에 몰렸으니 아끼지 않고 힘을 쓰겠지. 그리고 힘을 쓴다면."

“지휘관인 저를 먼저 노리겠군요. 그에 대한 대비는 해뒀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악의 경우 레드 드래곤이 나타나 브레스를 군대에 브레스를 뿜을 수도 있다."

"그때는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해 도망치겠습니다."

스칼렛이 단호하게 말했다. 냉철한 그녀에게 군대와 함께 장렬히 산화하겠다는 고결한 의지 같은 건 없었다.

“스칼렛.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해."

"예.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게 마지막 대륙 전쟁이 되겠죠. 이 전쟁을 끝으로 대규모 전쟁은 20년 동안은 없겠군요. 아쉽습니다."

"최대한 처절하게 이겨야 해. 아군의 손해가 7할 이상이었으면 좋겠군."

"계획은 이미 짜뒀습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아군의 병사들은 8할 이상 죽을 겁니다. 저는 희대의 졸장으로 남을 테고요. 아니지. 승리할 테니 희대의 졸장 정도는 아니겠죠."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명성 따위 바랐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주군의 아래에서 충분히 즐겼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즐거울 테지요.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스칼렛이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는 일말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 스칼렛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내게 말했다.

"주군. 시간 됐습니다. 사령관으로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나는 준비된 단상 위로 올라갔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고 왕성을 가리켰다.

“전군 돌격하라!!!"

복부에 힘을 주며 외쳤다. 내 목소리는 마나에 의해 증폭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을 가득 채우는 함성과 함께 병사들이 적의 성벽을 향해 돌격했다. 물론 아무것도 없이 돌격한 건 아니다. 준비된 공성병기가 일을 시작하고, 높이 세워진 공성 탑이 성벽을 향해 진격한다.

나는 단상 위에서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장관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아, 아아아아…."

스칼렛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황홀한 얼굴로 돌격하는 군대를 바라봤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가…."

뚝뚝.

예민한 청각은 물 떨어지는 소리를 포착했다. 스칼렛의 발아래에서 들린 소리다. 보짓물이 확실했다. 나는 스칼렛을 배려해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이제부터 그녀는 엄청나게 바빠질 것이다.

"오?"

왕성에서 무언가가 일직선으로 날아온다. 노리는 건 정확히 내 머리다. 나는 검을 그것을 튕겨냈다. 강철 화살이었다.

"3km 이상 떨어져 있는데 화살이 여기까지 정확히 날아 온다라…. 기술? 유물? 마법? 악마의 힘? 어느 쪽인지 몰라도 범상치 않은 놈이 있군. 예상 대로야."

받았으면 답례를 해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인벤토리에서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해 손에 쥐었다. 거창의 모습을 한 스톰브레이커의 창날이 날카롭게 빛난다.

뇌천류(雷天流) 만뢰(卍雷).

뇌전이 회전하며 창끝으로 압축된다. 나는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뇌전을 압축했다. 창끝을 바라보는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파직.

압축된 뇌전이 풀리려고 한다. 나는 다시금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투창했다.

창은 대기를 찢으며 날아가 성벽에 박혔다. 동시에 압축된 뇌전이 풀렸다. 번개가 창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며 사방을 휩쓴다. 성벽 위에 있던 적병 3명이 감전당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게 전부였다.

“…평범한 성벽이 아니군. 평범한 성벽이었다면 무너지고도 남았을 텐데."

"악마가 만든 성벽입니다. 쉽게 뚫리면 그게 더 이상합니다."

스칼렛의 말이 맞았다. 고작 투창 한 번에 성벽이 무너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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