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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311화 (1,311/1,497)

< 1311화 > 131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끊임없이 쏟아지는 언데드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비록 그게 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과 좀비에 불과할지라도 겉모습만 보면 세상에 종말이 찾아온 것 같았다.

"…이거 안 좋군.”

멜리사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안 좋다고? 어차피 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과 좀비야.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어. 여차하면 폭탄을 사용하면 돼."

스켈레톤과 좀비는 움직이는 뼈와 시체에 불과하다. 끔찍한 비주얼과 다르게 그리 강하지 않다.

"주인님에겐 그렇렇겠지. 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투가 전문이 아닌 귀족이나 하인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리고 수가 너무 많다. 병사들로선 감당하기 힘들겠지."

"기사들이 활약하겠지. 우리만 여기에 있는 건 아니잖아?"

내 말에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헨 공작가의 기사들은 강하다. 지금은 그들을 믿는 수밖에 없겠군."

우리는 다시 복도를 내달렸다. 문이 있으면 열고 내부를 확인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가씨!"

숨어 있던 하인 세 명을 발견했다. 그들은 창고처럼 좁은 방에 벌벌 떨며 숨어 있었다. 그들은 멜리사를 보자마자 얼굴을 폈다.

“이곳에 숨어 있었나. 1층으로 가라. 여기에 따로 있어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

"하, 하지만….”

하인들이 창문 밖을 쳐다본다. 하늘에 나타난 검은 구멍에서 스켈레톤과 좀비가 아직도 쏟아지고 있다.

"위험해 보인다는 거 안다. 무수히 많은 언데드가 나타나니 두렵겠지. 이럴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 1층으로 내려가면 기사와 병사들이 언데드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도와라."

"저, 저희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렇군. 그럼, 여기서 벌벌 떨다가 침입한 언데드에게 죽던가. 설마 이곳이 영원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멜리사에게 말했다.

“아가씨, 함께 1층으로 내려가 주실 수는 없습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영원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1층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직 안전하다. 가라."

"네, 넵! 알겠습니다!"

하인들이 1층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건방진 놈들이군. 자기 주제를 모르는 건가? 너도 하인을 너무 친절히 대하잖아."

"주인님을 본받았다만? 주인님도 메이드를 친절히 대하지 않나?"

“메이드랑 하인은 달라."

"뭐, 너무 화내지 마라. 잠깐이라고 해도 아르헨 가문의 주인이 되기로 한 이상, 저들도 내가 챙겨야 하는 이들이니까."

우리는 다시 악마 계약자를 찾으러 움직였다.

온몸이 갈가리 찢긴 시체를 발견했다. 고기 조각들은 꾸물거리며 움직여 한곳으로 뭉쳤다. 뭉친 고기는 살아있는 것처럼 맥박쳤다.

"언데드를 만드는 건가? 끔찍하군."

멜리사는 혀를 차며 마법을 사용했다. 불길이 일어나 시체를 태웠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들렸다. 나와 멜리사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별관 하나가 통째로 폭발했다. 잔해가 떨어지고, 그 잔해 속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는다.

건물 잔해 위에 검은 로브를 걸친 네크로맨서가 당당히 서 있었다.

"…저기 또 다른 주인님이 있군. 언제 저기로 간 거지?”

"최악인데."

나는 네크로맨서의 손에 붙들린 한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사지는 잘린 채고, 몸통에는 시커먼 애벌레 수백 마리가 꾸물거린다. 남자의 살을 파먹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비명을 내지르며 절규하고 있었다.

"옆구리에 악마 계약의 증거인 마법진이 그려져 있군.”

“저놈은 악마 계약자를 안 죽일 거야. 흑마법을 써서 목적을 이룰 때까지 살려두겠지."

"결국, 남은 선택지는 정면에서 싸운다는 것뿐인가.…"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있는 쪽을 정확히 쳐다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주시하던 네크로맨서는 잔해 속에서 언데드를 일으키더니 백합 정원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당장 전투를 벌일 생각은 없나 보군. 만전을 갖추려는 건가?"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니까. 언데드는 아까부터 계속 끊임없이 쏟아지고… 이 사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놈에게 붙잡혔지."

"주인님. 아무래도 우리도 뭉쳐야겠다. 오러 마스터인 아버지가 협력해준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마스터급 전력이 셋이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도시쯤은 간단히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네크로맨서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주인님. 1층으로 내려가자. 아마 아버지도 1층으로 올 거다. 어쩌면 이미 1층에서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을 수도 있고.”

멜리사의 의견에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로비에 병사와 기사, 귀족과 하인 등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멜리사의 짐작대로 아르헨 공작이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지쳐 있는 병사와 기사들과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을 보니 이미 한 차례 전투를 치른 모양이다. 지금은 소강상태에 빠져 있고.

“프루커스 백작. 그리고 멜리사. 지금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아르헨 공작이 날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네크로맨서 때문이다. 그놈과 나는 피부색과 눈동자 색을 제외하면 쌍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으니까.

“아버지.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이건 악마의 짓입니다. 아마 이 사태의 뒤에는 둘리바드 국왕이 있을 겁니다."

"국왕이 악마 계약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은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믿지 않고 있었다만,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가."

아르헨 공작은 창문 밖을 쳐다봤다.

"기사들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투명한 막이 저택을 둘러싸서 막고 있더군."

"현재 저택은 거울의 악마, 비루비루의 힘에 의해 미궁으로 변했습니다. 악마나 악마 계약자를 죽이면 상황은 해결될 겁니다. 문제는 숨어 있는 악마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악마 계약자는 네크로맨서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네크로맨서와 싸울 수밖에 없다는거군. 그 네크로맨서의 정체는 뭐지?"

이번엔 내가 나섰다.

"평행 세계의 나다. 아, 평행 세계는 알고 있나?"

“그 이론은 언젠가 마법사에게 들은 적 있다."

"거울의 악마, 비루비루는 평행 세계의 나를 구현했다."

"구현했다? 평행 세계에서 불러온 게 아니라?"

“이 세계에 평행 세계는 존재하지 않아."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원작에서 나온 내용이다.

"…그럼 왜 네크로맨서를 평행 세계의 존재라고 말하는 거지?"

"비루비루는 평행 세계라는 가능성으로 네크로맨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서는 정교한 가짜다. 그 존재부터 근원까지 전부 가짜다. 하지만 놈이 가진 힘만큼은 진짜다. 나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을 테지.”

“……그런 게 가능한가?"

“가능하니까 악마다. 악마의 힘은 규격을 벗어났다. 인간의 상식으로 판단하지 마라.”

"둘리바드 국왕과 손을 잡은 악마는 몇이지? 악마 하나, 하나가 전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반란은 실패할 거다."

“이 정도 힘을 가진 악마는 흔하지 않다. 남아 있는 악마 중에 이 정도로 위험한 놈은 몇 없어. 비장의 수단도 준비해뒀다. 악마는 우리가 맡는다. 아르헨 공작가는 반란에만 집중해라."

비장의 수단은 유리아였다. 유리아가 있는 이상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알겠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우리가 밖으로 벗어나려면 네크로맨서와 싸워 이기는 수밖에 없다. 놈도 그걸 알고 있기에 여유롭게 행동하는 거지."

나는 작전을 설명했다.

기사와 병사들이 잡졸, 언데드들을 맡는다. 그리고 나와 멜리사, 아르헨 공작은 네크로맨서를 직접 공격한다.

"알겠다."

아르헨 공작은 가타부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아르헨 공작의 아들인 베르도 아르헨이 튀어나왔다. 갑옷을 걸친 그의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멜리사를 향한 경쟁심이 느껴진다.

"안 된다."

아르헨 공작이 딱 잘라 말했다.

“그 네크로맨서는 강하다. 규격을 벗어나 있다. 너를 지켜줄 여유는 없다."

“아버지의 발목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저는 아르헨 공작가의 후계자입니다! 제게도 놈을 처단할 기회를 주십시오!"

"후계자는 멜리사다. 일이 끝나면 멜리사가 공작위를 계승할 것이다. 그리고 베르도. 너는 아직 약하다. 기사들과 함께 언데드를 막아라."

"아버지!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싸울 수는 있다. 용기와 만용을 구분해라.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지 마라."

“아버지…!"

"명령이다, 베르도."

“큭…."

베르도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손이 멜리사를 가리켰다.

"누님은…! 누님은 되고 왜 저는 안 되는 겁니까?!"

"멜리사는 강하다. 강자를 알아보는 것도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나를 계속 실망시키는구나."

아르헨 공작의 깊은 한숨에 베르도가 당황했다. 그는 다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가신이나 기사들은 그의 시선을 알면서도 무시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르헨 공작에게 따지기엔 상황이 긴박했다.

주제를 모르는 건 베르도 뿐이었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베르도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아르헨 공작은 움직이기 전에 기사단장 하르멜을 불렀다.

“하르멜. 베르도를 부탁한다."

"맡겨주십시오, 가주님."

전투를 앞두고 장비를 점검했다. 나는 만전이었지만, 아르헨 공작과 멜리사는 달랐다. 두 부녀는 꼼꼼하게 장비를 확인한다.

"멜리사."

"네. 아버지."

"베르도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베르도는 아직 어리다.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베르도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르도에겐 미안한 감정뿐입니다."

멜리사가 힐끗 나를 봤다.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그 건방진 놈에게 엿을 먹일 생각이었는데… 멜리사를 봐서 봐주기로 했다.

"베르도가 어렸을 때를 기억하느냐? 베르도는 널 잘 따랐다. 나보다 너를 더 좋아했지."

“…네. 저는 그런 베르도를 아무 말 없이 버리고 떠났지요. 베르도가 저를 원망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베르도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 일이 끝나고 저는 아르헨 가문을 떠날 겁니다."

“멜리사. 네 뿌리는 아르헨이다. 그 사실만은 잊지 말아라."

"제가 죽는 그날까지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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