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5화 > 1295.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오랜만에 메이드복이 아닌 마법사의 복장을 갖춰 입은 샤르넬이 마차 밖으로 나왔다. 검은색 치마와 하얀색 블라우스, 그리고 마법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검은색 로브를 입은 것이다.
문제는 가슴이 너무 커서 옷의 맵시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그나마 낫지만, 멀리서 보면 뚱뚱한 여자처럼 보인다.
'펑퍼짐한 옷이 아니라 허리를 조이는 옷을 입는 게 좋을 것 같군. 가슴 윗부분을 노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고.'
가슴을 L컵으로 만들기 위해 풍유약을 300병 넘게 사용했다. 기껏 만든 L컵 가슴인데 꽁꽁 감싸는 건 좋지 않았다.
정작 샤르넬은 가슴이 커졌음에도 기뻐하는 기색은 없었다. 커다란 가슴이 부끄러운 듯한 팔로 가슴을 감싸며 다른 한 손에는 마법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웃긴 건 가슴이 너무 커서 한쪽 팔로는 가슴이 전부 감싸지 못한다.
마차 뒤를 따르던 남자 병사들은 샤르넬을 보고 경악했다.
"뭐지. 왜 어린아이가 여기에 있어?"
"프루커스 백작님의 노리개인가…?"
"멍청아. 마법 지팡이를 쥐고 있잖아. 입고 있는 옷도 잘 봐라. 마법사의 로브다. 저 어린아이 같은 여자는 마법사님이다. 말조심해. 마법사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근데 가슴이 왜 저래? 진짜 가슴은… 아닐 테지? 천을 뭉쳐서 넣었나?”
"작은 몸에 비해 가슴이 너무 크군. 그래서 가슴이 더 커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진짜 끝내주는 가슴이다. 저런 여자랑 한 번 자봤으면."
"미친놈."
병사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듣지 못했겠지만, 나는 오러 마스터이고, 샤르넬은 아크 메이지다.
특히 지금 샤르넬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다.
샤르넬은 병사들의 반응에 눈물을 글썽이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 멘탈이 흔들리는 모양이다. 뭐, 이해는 한다. 껌딱지였던 가슴이 갑자기 모유가 나오는 커다란 가슴이 됐으니까. 그녀는 자기 하반신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샤르넬의 뒤에 섰다.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었다.
"할 수 있지?"
“어린애 취급하지 마!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프리실라의 제자이자, 아크 메이지 샤르넬."
샤르넬이 고개를 들고 놀란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내 대답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마, 맞아. 잘 알고 있잖아. 난 아크 메이지 샤르넬 구르치야."
그녀가 당당하게 허리를 편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인다.
“저 요새. 네 자랑인 화염계 마법으로 날려버려."
“…꼭 해야 해? 저 요새에 못 해도 수백 명의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요새 전부를 날릴 필요는 없어. 요새의 입구만 날려주면 돼. 나머지는 내 기사단과 병사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네게 학살을 강요하는 게 아니야. 네가 협조해줘야 조금이라도 빨리 프리실라를 구할 수 있어."
"…알고 있어."
샤르넬이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정신을 집중한다. 마나가 요동치며 그녀의 로브가 펄럭인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녀에게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샤르넬이 손에 쥔 지팡이를 위로 올렸다. 뜨거운 마나가 하늘로 올라간다. 동시에 그녀의 발이 땅에서 위로 10cm 정도 떠올랐다.
그녀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하늘에 붉은 선이 그려진다. 선은 이윽고 붉은 마법진이 되어 화르륵 타올랐다. 마법진의 규모는 못 해도 직경 30m는 될 것 같다.
아크 메이지의 마법. 그것도 가장 파괴력이 뛰어나다는 화염계 마법.
아군 병사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샤르넬의 마법을 쳐다보고 있고, 요새에 숨은 적들은 공격받은 개미떼처럼 혼비백산하여 움직인다.
"헬파이어!"
샤르넬이 영창했다.
불타오르던 마법진이 한점으로 뭉치더니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었다. 불덩어리는 샤르넬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커먼 연기 궤적을 남기며 날아간다.
콰아아앙!
요새의 정면에 헬파이어가 부딪혔다.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지축이 흔들리고 요새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마법 한번에 요새의 절반이 무너졌다.
"이게 네 전력이야?"
아크 메이지.
대군전에 있어서 만큼은 오러 마스터를 능가하는 화력을 가진 존재. 그야말로 전쟁에 특화된 존재였다.
왜 사람들이 아크 메이지를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전력으로 마법을 사용하면 이 정도가 아니야. 저 정도 요새는 날려버릴 수 있어."
"하긴. 좀 작은 요새긴 하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골든 로즈 기사단은 이미 완전무장을 끝낸 채로 말에 올라타 있었다. 드워프가 만든 갑옷과 랜스를 걸쳐 입은 그녀들은 전장에서도 화려하게 빛났다.
단전에서부터 마나를 끌어올려 있는 힘껏 외쳤다.
"골든 로즈 기사단! 너희가 선봉이다! 돌격해라!"
요새를 향해 골든 로즈 기사단이 질주한다. 그녀들의 뒤로 흙먼지가 일어난다. 요새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요새의 입구에는 방패와 창을 든 병사들이 막아섰다. 의미 없는 짓이다. 평범한 기병이라면 모를까. 골든 로즈 기사단은 하나, 하나가 전쟁 경험도 풍부한 베테랑 기사였다.
콰아아앙!
골든 로즈 기사단은 적병을 짓밟으며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주군."
짧은 진홍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군복을 입은 그녀는 나를 대신하여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만큼이나 차가운 성격이었다.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약탈을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사기는 충분하지 않나?"
"전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압도적인 승리를 했으니 병사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적의 규모가 작아서 약탈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텐데?"
"약탈을 허락한다. 그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했듯이 전쟁은 이제 시작이니까요. 제가 이끄는 군대뿐이라면 이런 일은 필요없겠지만… 여기저기서 지원 온 병사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에게 전쟁이 곧 인생 역전의 기회임을 알려줘야 합니다."
"뭐 좋아. 적들의 재산 따위엔 관심 없었으니까. 대신… 약탈의 기준은 말하지 않아도 알지?"
"물론입니다. 미녀는 가장 먼저 주군께 바치겠습니다."
"좋군."
나는 흡족하게 웃었다.
원작에서는 카일이 신뢰하던 장군 중 한 명이었던 스칼렛은 일 처리가 확실했다. 지금까지 내 기대를 배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마차에 올라타서 느긋하게 군대를 이끌며 요새로 향했다.
요새로 도착하니 이미 정리는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플로이는 요새를 정리 중이고 스칼렛이 내게 다가와 보고했다.
"플로이 경의 말에 따르면, 기사 같은 고급 인력은 없었다고 합니다. 병사들의 신원을 조사한 결과,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끌려온 농부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말로는 사흘 전에 마법사가 나타나 요새를 순식간에 만들고 자신들 보고 요새를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마법사의 말을 순순히 들었다고? 협박이라도 당했나?”
"카시오드 자작이 직접 찾아와 요새를 지킬 것을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카시오드 자작? 그건 또 뭐 하는 놈이야?"
"솔프메드 왕국의 귀족입니다. 이 근처가 카시오드 자작의 영토입니다. 그리고 카시오드 자작은 데이커드 후작의 파벌에 속한 귀족입니다."
데이커드 후작은 나도 알고 있다.
본래 데이커드 후작은 비명횡사하고, 지금은 그의 딸이 후작위를 계승했다.
레오나 데이커드 후작. 그녀는 꽤 유능했다. 적국의 침략을 3번이나 막으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백성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받고, 그녀를 따르는 귀족들이 생기며 신흥 파벌로 형성했다. 그녀의 별명은 무려 솔프메드의 태양이었다.
솔프메드 왕가는 그런 그녀를 싫어한다. 백성들이 국왕보다 그녀에게 더 충성하고 따르니 싫어할 수밖에 없다.
“솔프메드의 태양이 우리를 가로막았다는 거군.”
이미 우리는 코발트 왕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솔프메드 왕국에는 우리를 막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도 말했다. 그런데도 막았다는 건….
“아무래도 코발트 왕국과 모종의 거래를 한 듯싶습니다."
“그렇지. 예상 밖의 일은 아니야."
정확하게는 내 예상이 아니라 유리아의 예상이다.
솔프메드 왕국은 사실상 붕괴한 상황이다. 솔프메드의 귀족이 이득을 위해 다른 나라에 붙어도 이상하지 않다.
붙잡은 포로는 총 120명이다. 헬파이어에 의해 휘말려 죽은 병사가 50명. 나머지 30명은 기사단의 돌격에 짓밟혀 죽었다.
원래는 200명가량이 요새를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수가 적어서 좀 많이 놀랐다.
"포로는 어떻게 할까요?"
포로의 처분은 보통 두 가지다. 돈을 받고 풀어주거나, 노예로 삼거나.
카시오드 자작이 포로의 값을 치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노예병으로 만들어서 가장 앞에 내세운다. 여자 포로도 있나?"
"있습니다만, 대부분 폐경이 온 늙은 여자들입니다. 카시오드 자작은 처음부터 포로들을 버리기로 작정한 모양입니다."
"늙은 여자들은 병사들에게 뿌려. 병사들이 좋아하려나?"
"병사들의 성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는 병사들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보고 있습니다."
"좋아한다는 말이군. 근데 넌 괜찮아? 병사들이 널 보면 눈이 돌아갈 텐데."
스칼렛은 어지간한 미녀가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군대는 완벽히 제 통제하에 있습니다. 제게 음담패설을 하고, 명령을 무시하는 병사들은 모두 처형했습니다."
스칼렛이 주위를 둘러봤다. 병사들은 감히 그녀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평범하게 처형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게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