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1화 > 129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일어서."
알몸으로 내게 조아리고 있던 샤르넬이 일어났다. 수치심으로 인해 얼굴은 붉게 물들어있고,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그녀는 양손으로 중요 부위를 가렸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나는 이미 그녀의 알몸을 전부 봤다.
'어이가 없군. 가려야 할 정도로 뛰어난 몸매도 아닌데 말이야.'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샤르넬이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깎아지른 절벽처럼 평평했다. 손가락으로 푹 찔러도 살집은커녕 딱딱한 뼈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가슴이다.
'브래지어를 입어도 공간이 많이 남을 텐데… 일종의 자존심인가.'
그나마 봐줄 만한 건 젖꼭지의 색깔이다. 색소침착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분홍색 젖꼭지는 꽤 귀엽게 느껴진다.
"부탁은 고려해 보도록 하지.”
"뭐? 고려?! 내가 이 짓거리까지 했는데 고려해 본다고?!"
“아. 말을 잘못했군.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도록 하지."
“너!!"
샤르넬의 주위로 바람이 일어난다. 그녀의 마나가 요동치는 것이다. 샤르넬의 앞에 붉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내 옆에 앉은 유리아가 마법진을 보고 빙긋 웃었다. 그것만으로 마법진이 깨져나갔다.
샤르넬은 순식간에 독기를 잃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랜드 아크 메이지와 아크 메이지.
그 단어 하나의 차이는 땅과 하늘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샤르넬. 넌 당분간 메이드로 지내라."
"내가 왜?!"
"네가 반문할 처지는 아닐 텐데. 프리실라를 구하고 싶으면 내 말을 따라라. 적어도 프리실라를 구출할 때까지는 말이야."
"크으윽….”
"언제까지 그 빈약한 몸매를 내보이고 있을 거야? 옷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근처 메이드에게 부탁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거야."
주섬주섬 옷을 입은 그녀가 날 노려보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방안에는 나와 유리아, 멜리사만 남았다.
메이드복을 입은 멜리사가 테이블에 엉덩이를 올리며 말했다.
"프리실라를 구하러… 코발트 왕국으로 갈 생각이겠지?"
멜리사는 목잡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코발트 왕국의 대귀족인 아르헨 공작가 출신이었다. 가문과 연을 끊었다고 하지만…
그게 끊었다고 끊어지겠는가.
“가야지. 프리실라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마왕이 이 세계에 강림하면 위험해지는 것도 사실이니까.”
내가 살아가는 세계다. 마왕 하나 때문에 망하게 둘 순 없었다.
"주인님. 함정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리아가 말했다.
"샤르넬이 우리를 꾀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나?”
“그녀는 이용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판테움과 레오시오. 두 세력 모두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가장 큰 방해물이 되리라 판단 내릴 테죠."
"메이드장… 아니, 마님의 말도 일리가 있다. 가장 공교로운 점은 봉인된 프리실라가 코발트 왕국의 수도에 있다는 점이다. 주인님도 알다시피 현 코발트 국왕은 둘리바드다. 주인님에게 지독한 원한을 품고 있지. 저번에는 라펠리 왕국의 침공을 시도하지 않았나."
이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유리아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하나, 적들은 한 둘이 아니다. 판테움의 악마와 프리실라와 맞먹는 에이션트 드래곤인 레오시오. 이것도 상대의 모든 전력이 아니다. 특수한 유물이나, 제삼자가 적들에게 협력하고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골치 아프네."
당장 코발트 왕국으로 쳐들어가는 건 쉽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하면 된다.
'현대 무기로 폭격을 가해도 의미 없겠지. 방어 마법이라던가 여러 가지로 준비해 놓았을 테니까.'
상대는 마법의 종주라고도 불리는 드래곤과 이상한 권능을 가진 악마 계약자들이 모인 판테움이다. 함부로 공간 이동했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프리실라를 산 제물로 사용할 계획일 테니, 시간적 여유는 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군대를 끌고 코발트 왕국을 침략하는 편이 어떨까요?"
유리아의 의견이었다.
기사단과 병사들을 끌고 코발트 왕국으로 진격하는 것이다. 유리아의 전투는 승승장구할 것이고 질과 양으로 적들을 몰아 붙일 수 있다.
"…아르헨 공작가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군."
멜리사가 말했다. 의외의 말이었다.
“아르헨 공작가를? 코발트 왕국을 침략하는 우리에겐 아르헨 공작가가 최대의 적이 아니야?"
아르헨 공작가는 프루커스 백작가 이상의 가문이다.
"현재 아르헨 공작가는 둘리바드 국왕과 대립하고 있다. 나 때문이지. 겉으로는 쉬쉬하고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불이익을 받고 있다. 전쟁이 끝나는 순간, 둘리바드 국왕은 아르헨 공작가를 가장 먼저 숙청할 테지."
"그렇군요. 현 아르헨 공작가의 상황을 보자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르헨 공작가는 수도 후방에 있습니다. 협력만 할 수 있다면 수도를 포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르헨 공작가의 자존심이다. 아르헨 공작가는 쓸데없는 자존심만 엄청나게 높다. 내가 겪어봐서 잘 알지."
"지금 코발트 왕국의 내정은 썩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르헨 공작가만 끌어들인다면… 다른 귀족들도 회유할 수 있습니다."
"둘리바드 국왕은 좋게 말하면 패왕이고, 나쁘게 말하면 폭군이지. 레드 드래곤 레오시오. 그 잔혹한 드래곤의 후손답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마님의 말대로 코발트 왕국의 귀족과 평민들은 둘리바드에 대한 불만이 있을거다."
나는 그녀들의 의견을 듣고 중얼거렸다.
"중요한 건 아르헨 공작가를 끌어들일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주인님이 조금만 양보하면 된다."
"코발트 왕국을 아르헨 공작가에게 주면 됩니다."
“우리는 코발트 왕국의 영지 일부와 돈을 받으면 된다. 요컨대 승전 협상에서 꽤 많이 양보하면 된다는 거지."
결단은 빠르게 내려졌다.
"좋아. 그렇게 하자. 어차피 코발트 왕국에는 별 관심 없어."
나중에 코발트 왕국에 흥미가 생기면, 그때 침략해도 상관없다. 내게는 유리아가 있으니까. 지금 급한 건 프리실라의 구출이다.
“다음 문제는 이동이군. 육로와 해로가 있다. 당연히 해로가 더 빠르지."
“저는 육로를 제의합니다. 바다는 변수가 너무 많아요. 적 중에는 바다와 관련된 권능을 가진 악마 계약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님의 의견에 동감이다. 대규모의 병력을 데리고 이동하려면… 육로로 진군하는 편이 낫다. 중간에 중립 도시 몇 개를 지나야겠지만… 뭐, 저들이 어쩔 텐가."
더 간편한 방법이 있었다. 나는 유리아를 바라봤다.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는 건?"
"워프 게이트는 민감합니다.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죠. 그리고 코발트 왕국에는 레오시오가 있습니다."
"레오시오가 작정하고 방해하면 속수무책이란 말이군."
"네. 그래도 보급용으로는 사용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 워프 게이트의 가치는 충분하다. 원정이 어려운 이유는 보급 때문이니까. 보급만 해결되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병력을 데리고 갈 수 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들을 계산한다. 지금의 나는 프루커스 백작이다. 작정하고 동원하면 대략 8만 병력까지 가능하겠지. 라펠리 왕국의 지원을 받으면 15만 병력까지 가능할 것이다.
실패하면 좆되는 수준으로 안 끝난다. 프루커스 백작가는 쇠락할 것이고, 아일린 공주를 압박할 힘이 사라진다. 마지막에는 유리아의 힘을 이용해 깽판 치는 방법밖에 없어질 수 있다.
반면 성공한다면? 나는 대륙 역사에 획을 긋는 전쟁 영웅이 된다. 정치적 영향력도 커질 테고, 아일린 공주를 보다 압박할 수 있다.
'그쯤 되면 이미 아일린 공주와의 정쟁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지. 내 승리로 말이야.'
계산을 끝낸 내가 씨익 웃었다.
"멜리사. 라펠리 왕국의 모든 귀족들에게 편지 돌려. 앞으로 보름 뒤, 코발트 왕국을 정벌할 것이니 병력과 전비를 보내라고."
"모든 귀족이 협조하진 않을 거다."
"나한테 받은 먹은 게 있는 놈들은 협조하겠지. 그리고 비협조적인 놈들은 따로 적어 놔.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
“아일린 공주 파벌의 귀족들은?"
"아일린 공주를 만나봐야지. 아일린 공주가 거절해도 상관없어. 지원해주면 감사히 받으면 그만이고."
천장에 설치된 형광등을 바라봤다. 반짝이는 빛 사이로 전쟁 영웅이 된 내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히죽 웃었다.
“크크."
"아, 진짜!! 아크 메이지인 내가 왜 메이드 일해야 하는 거야?!"
복도에서 대걸레를 들고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메이드가 있었다. 오늘부로 내 메이드가 된 샤르넬이었다.
그녀는 노출도가 있는 프랑스식 메이드 복장이었다. 치마는 짧고 상의는 민소매에 가슴 부분이 파여 있다. 그러나 샤르넬은 안쓰러울 정도로 가슴이 없었다. 그래도 봐줄 만은 했다. 상반신은 한숨이 나올 지경이지만, 하반신은 그래도 봐줄 만 했기 때문이다. 발달한 골반과 가터벨트 스타킹.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보이는 하얀 팬티도 합격점이다.
“이봐, 메이드. 투덜대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이해할 수 없어. 대체 왜 마법을 쓰지 말라고 하는 거야? 마법 한 번이면 이 복도 정도는 10초 만에 청소할 수 있는데."
"정성과 로망이 없잖아."
"무슨 미친 소리야?!"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샤르넬은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까 내 앞에서 알몸으로 도게자한 주제에 전혀 기죽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녀의 키가 얼마나 작은지 체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한껏 숙여야 했다.
반대로 그녀는 내 얼굴을 보기 위해 턱을 한껏 치켜들어야 했다.
"왜 그따위로 내려다보는 거야? 기분 나쁘거든, 허접."
"허, 허접?”
생각지도 못한 단어를 듣자 굉장히 당황했다. 샤르넬은 그런 내 모습에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메이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허접이라며? 허접~ 허접~”
이런 시발.
아무것도 아닌 단어인데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나는 주먹을 쥐고 손을 부들거렸다.
원인은 대충 짐작간다. 아마 의외로 장난기 넘치는 멜리사가 샤르넬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했겠지.
"허접♡ 한남♡"
“이 샹년이!"
참지 못하고 샤르넬에게 달려들어 초크슬램을 먹였다. 그녀의 등이 바닥에 쿵하고 떨어진다.
"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