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0화 > 1280. 페로몬 몬스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커다란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웃음소리의 주인은 현 미국 대통령인 주지 보시였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주피터라는 이상한 놈이 나타났을 때는 일이 꼬이는가 싶었으나, 그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성가신 놈들
을 제거해줬다는 점에서 감사 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기분이다.
한참을 웃던 주지 보시는 화면을 바라봤다. 마침 기자 회견을 진행 중인 잭 테일러의 얼굴이 화면을 채웠다. 눈이 마주친 것 같
은 기분이 들었다. 주지 보시는 또다시 유쾌해졌다. 자신을 쓰레기 보듯 하던 저놈은 이제 자신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는 허수
아비에 불과하다.
"유능하긴 해도 마음에 안 드는 놈이니, 적당히 쓰다가 1년쯤 뒤에 치워버려야겠군.”
주지 보시는 비서를 호출해 치즈 버거 세트를 사 오라고 명령했다.
"오늘 같은 기쁜 날에 치즈 버거를 먹어야지."
구태여 비서에게 치즈 버거를 사 오라고 시킬 필요는 없다. 그가 주문만 하면 백악관의 셰프가 치즈 버거를 만들어 대령할 것
이니까. 그러나 백안관 셰프가 만드는 치즈 버거와 감자 튀김, 콜라는 뭔가 맛이 없었다.
그의 또 다른 비서가 집무실에 나타났다.
“보시 대통령님! 중국 대사관이 백안관에 찾아왔습니다."
“언질도 없이 막무가내로 찾아온 건가? 하여간, 차이나치들은…. 쫓아 보내. 나와 대화하고 싶으면 예의를 갖추라 말하고.”
"…한국과 일본 대사관이 접견을 요청했습니다."
“극동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날 귀찮게 하는군. 나중에 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블루캐드의 퇴진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계속 보고만 있으면 더 격렬해질 겁니다."
"블루캐드…. 잭 테일러가 나를 지지한다고 성명했는데도 시위를 계속 진행 중이라고?"
“블루캐드의 뒤에 잭 테일러가 있었으나, 그 성질은 시민단체입니다. 잭 테일러도 블루캐드를 어쩔 수 없습니다."
“마음 같아선 탱크로 밀어버리고 싶지만…. 일단 내버려 둬. 헌터 협회의 반응은 어떻지?”
“똑같습니다. 정치권과 선을 그으려고 합니다. 세계 헌터 협회의 지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선을 긋기는. 결국 그놈들도 내 아래로 오게 될 거다. 세계 헌터 협회는… 언젠간 밀어버려야겠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쓸
모없는 놈들이니."
주지 부시는 치즈 버거가 오기 전에 국정을 어느 정도 봐주기로 했다. 그는 비서가 가져온 서류를 스윽 훑어봤다.
"법이 마음에 안 드는군. 좀 바꿔야겠어. 칼리지 의원에게 준비해두라고 해."
"예."
"나머지 서류는… 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예."
치즈 버거가 찾아왔다.
집무실 책상 위에 치즈 버거 세트를 올린 주지 보시가 씨익 웃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자태로군."
그는 치즈 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콜라를 쪽 빨았다. 자극적인 맛에 혀가 기뻐한다.
주지 보시는 치즈 버거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미국 내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편이다. 건방진 헌터놈들은 권력
과 돈으로 다스리면 된다. 자신의 믿음직한 경호원인 채드 로벨이 죽은 건 아쉽지만, 백악관에는 자신을 지키는 A급 능력자
30명이 있다. 그리고 보디가드들은 차차 늘리면 된다.
"맛있군! 맛있어!"
밝은 미래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치즈 버
맛이 평소보다 좋았다.
3분도 되지 않아 치즈 버거 세트를 해치운 그는 매우 만족스럽게 배를 두들겼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주지 보시의 얼굴에 짜증이 서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5분 전에 비서가 찾아와 책상 위에 놓인 쓰레기를 치워야 했다. 주지
보시는 짜증스럽게 비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불렀냐고? 그래! 불렀다! 어서 빨리 쓰레기를 안 치우나?!"
비서는 살짝 안색을 굳히며 집무실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느릿한 비서의 행동에 못마땅함을 느낀 주지 보시가 있는 힘껏 혀를 찼다.
'비서실장에게 한마디 해야겠군.'
그는 비서실장을 호출했다. 부동자세를 취한 비서실장에게 폭언을 내뱉는다. 평소라면 굽신거릴 비서실장은 조용히 주지 보
시의 말을 경청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왓슨은 제가 다시 교육하겠습니다."
"교육이 아니라 새로 뽑으라고."
"죄송합니다. 지금 왓슨을 해고하면… 비서실 업무가 마비됩니다. 왓슨이 두 번 다시 대통령님에게 무례를 저지르지 않도록
제가 잘 교육하겠습니다."
“…그래?"
주지 보시는 손짓하며 비서를 돌려보냈다.
뭔가 이상했다.
평소의 비서실장이라면 당장에 왓슨인가 뭔가 하는 비서를 해고했을 것이다.
주지 보시는 찝찝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백악관에 머무르는 가족들을 보러 갔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정
치가인 그지만, 가족만큼은 소중했다.
2년 전에 재혼한 그의 마누라는 40살 이상 젊은 모델 출신의 금발 미녀였다. 평소라면 달려와 자신에게 입을 맞췄을 그녀는
소파 앞에 앉아 TV나 보고 있었다.
"세라. 나 왔어."
“아. 왔어요?"
마누라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만 흔들었다.
"나 왔다니까!"
주지 보시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괜히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왔으면 온 거지. 왜 소리 질러요?!”
“오늘 왜 이래? 그날이야? 평소처럼 내게 키스해 줘야지!"
"키스? 당신 이빨이나 닦아요. 입에서 썩은 내가 난다고요!"
“…진짜 왜 이래? 어제는 잘만 키스해 줬잖아."
“어제의 내가 미쳤던 거죠."
“하아. 알았어. 알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주지 보시는 욕실로 직행했다. 옷을 벗고 샤워 했다. 꼼꼼하게 양치질까지 끝내고 몸에 가운을 걸쳤다.
자신감을 충전한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마누라에게 다가갔다. 마누라를 소파에 밀치고 짐승처럼 키스했다.
"꺄아아아아악!"
마누라가 그를 밀쳤다. 늙은 그는 모델 출신의 젊은 마누라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커억! 바닥에 넘어졌잖아! 뭐 하는 짓이야!"
"내가 할 말이에요!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뭐하긴! 부부간의 업무를 하는 것뿐이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민해?! 자, 당신도 빨리 옷 벗어!"
주지 보시가 가운을 벗어 던지고 나체를 드러냈다.
"꺄아아아아아악! 이건 강간이에요!"
“이 여편네가. 진짜 왜 이래?!"
주지 보시가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집 밖으로 도망쳤다. 주지 보시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침대에 앉았다.
"이놈의 여편네가…. 진짜 갑자기 머리가 돌아버렸나?"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이벤트일지도 모른다. 그는 애써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몇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돌아올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누라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비서실장의 전화가 왔다.
"나다."
“…대통령님. 퍼스트레이디께서 변호사를 고용해 대통령님을 고소하셨습니다."
"뭐? 고소?! 뭐로 고소해?”
“가정 폭력과 성폭행으로 고소하셨습니다. 또한 대통령님의 자녀분들께서도 가정 폭력으로 고소하셨습니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그놈들 데려와! 기사 안 나가게 조치하고!”
"죄송합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기사가 퍼졌습니다. 지금 긴급 뉴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미친! 어디 방송국이야?!"
"모든 방송국입니다."
“…뭐?"
주지 보시는 황급히 채널을 돌렸다. 비서실장의 말대로 모든 방송국에서 주지 보시의 가정 폭력과 성폭행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중 한 아나운서가 내뱉는 말이 가관이었다.
-으. 이렇게 먹다 버린 햄버거처럼 끔찍한 인간이 있을 수가…! 하나님! 보시의 존재는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습니다! 부디
1초라도 빨리 지옥으로 데려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지 보시는 어이가 없어 입을 떡 벌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 아나운서는 자신을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라 치켜세우던 놈이었다. 갑자기 태도가 이렇게 확 바뀔 줄이야.
그는 짜증스레 채널을 바꿨다.
-우리가 틀렸습니다. 주피터가 옳았고, 소피아 기자가 옳았습니다! 여기 주지 보시가 저지른 범죄들입니다! 소피아 기자의 기
사를 인용하고, 인터넷에 퍼져 있는 보시의 범죄 이력들을 긁어모았습니다! 증거요? 보시의 역겨운 얼굴이 바로 그 증거입니
다!
“이 미친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삑.
채널을 옮겼다.
-소피아 기자가 옳았습니다! 소피아 기자가 선지자였습니다! 우린 그녀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소피아 기자!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연락해 주세요! 우리와 함께 보시의 진실을 밝힙시다! 다른 방송국에 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삑.
-안녕하십니까, 미국 국민 여러분! 저잭 테일러는 몇 시간 전에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죄송합니다!
쿵! 쿵! 쿵! 쿵!
잭 테일러가 단상에 머리를 연신 박았다. 그의 이마에서 붉은 선혈이 주르르 흐른다. 그럼에도 잭 테일러는 멈추지 않고 머리
를 10번이나 더 박았다.
-사실 저는 보시에게 협박당하는 상태였습니다! 보시가 제 가족을 찢어 죽이고, 제 머리를 자유의 여신상 꼭대기에 걸어둘 거
라고 협박했습니다!
"……내가 언제?"
-저희 신미당은 보시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저희 신미당은 보시를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쿵쿵쿵쿵쿵!
잭 테일러와 정치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주지 보시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짝!
스스로의 뺨을 때렸다. 꿈은 깨지 않았다.
심호흡한 보시는 믿을 수 있는 최측근, 부통령에게 전화했다. 부통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긴급 속보입니다! 보시 대통령의 오른팔인 토머스 부통령이 현재 기자 회견을 진행 중입니다!
-존경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주지 보시 대통령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저와 보시는 30년
전에 처음 만났습니다. 보시는 100만 달러를 들고 제게….
가족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오른팔이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패닉에 빠진 주지 보시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그는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던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린 건 익숙한 목소리의 욕설이었다.
-씹어 죽일 새끼.
증오의 감정이 묻어있는 어머니의 목소리.
주지 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굳어버렸다.
-주지. 너 같은 놈은 낳지 말아야 했다. 왜 하필이면 너 같은 놈을 내가 낳아서.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인간 버러지
를 낳아 하나님의 세계를 더럽혔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나님….
-죽어라, 주지. 총으로 네 머리를 쏴! 그게 세계를 위한 일이야! 어서 빨리! 1초라도 빨리 죽으렴! 엄마의 마지막 부탁이란다!
죽어 제발!
-죽어!
-빨리 죽으라고 이 쓰레기 새끼야!!!
뚝.
주지 보시는 전화를 끊었다. 부르르르. 그의 어머니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 전화를 걸어댔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넘긴 그
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적대적인 보디 가드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집무실로 향한다.
복도에서 비서실장과 마주했다. 비서실장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대통령님. 국민들이 백악관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일단 대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 잘 듣는 애완견들은?"
"…모두 등을 돌렸습니다. 특히 스미스 대법관은 아예 작정한 듯합니다. 국방부도 공식적으로 대통령님을 비난했습니다."
"너는?"
비서실장이 씨익 웃는다. 그가 손을 들었다. 도청기가 들려 있었다.
"물론 저도 등을 돌렸습니다. 네가 내게 지시한 모든 범죄를 고발했지.”
"……."
주지 보시의 안면이 경련했다. 그는 비서실장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몸을 돌려 집무실로 달려갔다.
집무실에 들어온 그는 방 중심에 무릎부터 끓었다.
“브라마센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룬 모든 것들이 무너지려고 합니다! 브라마센이
시여! 제게 또 힘을 내려주십시오!"
지이이이잉.
머릿속의 뇌가 뒤틀리는 감각!
주지 보시는 기뻐했다. 이건 위대한 존재와 이어진 증거였으니까.
-역겹다.
“예?”
-네놈은 너무 역겹다. 내가 이딴 하찮고 역겨운 놈에게 힘을 빌려줬었다니…. 난생처음으로 자살 충동을 느껴보는군. 네놈의
영혼을 끄집어내어 만갈래로 찢어버리고 싶으나, 지금 내겐 그럴 힘이 없구나…. 안타깝도다….
뚝.
연결이 끊겼다.
"브라마센이시여! 브라마센!!!”
그가 처절하게 외쳤으나,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리고 3일 뒤.
주지 보시는 전 세계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사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