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8화 > 1278. 페로몬 몬스터
다크 히어로 주피터 활동 4일째, 결전의 때가 왔다.
나는 뉴욕에서도 유명한 고급 호텔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카메라로 촬영하며 난리 났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내게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스윽.
지나가는 미녀에게 눈길을 줬다.
금발 미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꺄아아아아악! 주피터!!"
"날 봐줘요!!"
"진짜 미칠 것 같아! 주피터! 당신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
씨익 웃었다.
그녀들은 참지 못하고 내게 달려들었다. 페로몬 뿜뿜 향수의 효과였다. 그녀들은 진심으로 내 아이를 임신하고 싶어 했다.
"모두 물러나 계십시오. 나는 잭 테일러를 만나러 갑니다."
주피터로서의 마지막 일은 고급 호텔에 구류된 잭 테일러를 구출하는 일이었다.
삐용삐용삐용!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나타났다. 경찰들이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노려보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상부의 지시를 받은 모양이다. 하긴, 평범한 경찰들이 내게 덤벼봤자 결과는 개죽음밖에 되지 않는다.
그때, 한 마이크를 든 한 여기자가 내 앞에 튀어나왔다. 마이크에 유명 방송사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주피터 씨! FKFK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인터뷰 괜찮을까요?!"
검은 긴 생머리의 미녀 여기자는 다짜고짜 마이크를 내밀었다. 나는 씩 웃으며 그녀의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다. 그녀의 입술은 푹신했다.
"나. 중. 에."
"…아."
여기자가 얼굴이 붉어졌다. 페로몬 향수의 효과로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몽롱하게 변했다. 그녀는 허벅지를 떨다가 다시 내 뒤를 쫓았다. 경찰들이 다가와 그녀를 막았다.
도로를 걷는다.
이미 차량 통제까지 완벽히 끝났는지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온다는 걸 예측한 건가?'
블루캐드로부터 정보가 빠져나갔을 수도 있었다.
다만, 그런 것 치고는 경찰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그리고 나를 막을 헌터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소피아가 말했던 것처럼, 미국 헌터 협회가 돕는 걸지도 모르겠군.'
'나를 이용하고 있을 뿐인 가능성도 있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나를 잡는 것이다. 사자성어로 토사구팽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했다. 미국 헌터 협회가 나서지 않는 이유를 검색한다.
'브루클린 근처에 대규모 던전 게이트의 발생으로 인해 미국 헌터 협회 뉴욕 지부 전체가 나섰다라…. 참으로 공교롭군.'
너무 노골적이라 웃음이 나왔다.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미국 헌터 협회가 토사구팽을 노리든 말든 상관없었다. 일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소피아의 안전은 풀려난 잭 테일러가 책임질 테지.
하늘에서 빛이 내리쨌다. 슬쩍 고개를 드니 방송국 소속 헬리콥터가 하늘 위에 떠 있었다. 상황은 생중계되고 있었다. 예상 범위 내였기에 당혹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고개를 내리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을 앞에 두고 아스팔트 도로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살을 에는 듯한 살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후.
호텔 고층에서 한 남자가 뛰었다. 남자의 근육질투성이의 몸은 바로 내 앞으로 떨어졌다. 아스팔트가 박살 나고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남자는 여유롭게 무릎을 피며 허리를 세웠다. 키만 2m가 넘는 거구의 남자였다. 청바지와 하얀 티셔츠의 무척 가벼운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범죄자가 이렇게 당당하게 걸어오다니. 말세군, 말세야."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2m가 넘는 거구의 근육질 몸, 대머리, 눈 밑에 그려진 태양 문신.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예전에 소피아가 말한 적 있는보시 측 인물이다. 소피아가 내게 마주치지 말라고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채드 로벨."
블러디 드레이크라는 별명을 가진 헌터다.
"날 알고 있나? 크큭. 하긴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지…. 이 몸은 미국의 새로운 S급 헌터니까 말이야!"
채드는 2달 전에 S급이 된 헌터였다.
"나는 S급을 만난 본적 있다. 하나같이 괴물이었지. 가진 존재감 자체가 남달랐어. 그런데 네게선 S급의 압도적인 존재감이안 느껴지는군."
"내가 S급이 아니다? 하하하. 5분 뒤에도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군. 내가 S급인 이유를 네 몸에 똑똑히 알려주마."
"보시의 똥닦개 브라운 드레이크 채드 로벨! 혹시 보시의 거시기도 빨아줬나? 그렇지 않고서야 너 같은 좆밥이 S급이 될 리없…."
채드의 주먹이 날아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양팔을 들어 올려 가드했다.
하체에 단단히 힘을 주었음에도 몸이 3m 넘게 밀려났다. 채드의 신체 능력은 내 신체 능력을 상회하고 있다. 아마 이 주먹질도 그의 전력이 아닐 것이다.
"주둥이를 놀리는 것치고는 약해 빠졌군. 넌 기껏해야 A급 중간. 딱 그 정도야."
채드가 씨익 웃는다. 자신만만한 그 얼굴이 거슬렸다.
'뇌전. 떨어져라.
내 몸의 마나 일부가 사라지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시퍼런 낙뢰는 정확히 채드의 머리에 떨어졌다.
그러나 채드는 멀쩡했다.
그의 피부는 변해 있었다. 흑갈색의 돌덩어리 같은 가죽으로.
'A급 보스 몬스터인 드레이크의 가죽…… 변이 능력으로 피부를 순식간에 바꿔 낙뢰에 대항했다.'
놈이 블러디 드레이크란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 그건 놈이 드레이크로 변이할 수 있어서 붙은 별명이다. 블러디라는 수식어는 채드의 성정을 설명해준다.
'실력은 대충 A급 최상위인가. S급을 칭할 정도의 최소한의 힘은 갖췄군.'
신체 능력으로는 채드가 앞서 있다. 그러니 속도와 기술로 대항해야 한다.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해 오른손에 쥔다.
"느리다, 멍청아."
채드의 목소리에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분명 위에서 들렸으나, 채드의 모습은 없었다.
"여기다."
내 등 뒤를 점한 채드가 발차기를 날렸다. 옆구리를 얻어맞은 나는 물수제비의 돌멩이처럼 날아갔다.
몸을 때리는 충격에 이를 악물며 마나를 움직인다. 이대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뇌전.…!'
채드를 향해 벼락이 내려쳤다. 총 5번. 그냥 벼락이 아니다. 내 마나가 담긴 벼락이었다.
"그거 아나? 드레이크는 용암에서 헤엄치고 놀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지. 너 따위의 번개로는 내 몸에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채드가 오른팔이 10m가 넘는 드레이크의 꼬리로 변이했다. 그는 오른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채드의 공격을 피하고 오른손에 화련비도를 소환했다.
콰앙!
드레이크의 꼬리가 아스팔트 도로를 때렸다. 아스팔트가 부서지며 그 파편이 튀었다. 채드는 낄낄 웃으며 꼬리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놈은 마구잡이로 드레이크의 꼬리를 휘두르는 듯하지만, 잘 보면 나름의 묘리가 스며들어 있다. 전투 경험으로 체득한 채드 나름의 채찍술인 것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를 연속으로 사용했다.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드레이크의 꼬리를 피해 놈에게 접근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몸을 회전시키며 채드를 베고 지나갔다. 붉은 뇌광이 놈의 옆구리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채드의 피가 바닥으로 튀었다.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생각했던 것보다 놈이 입은 상처가 얕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놈에게 비아냥거렸다.
"용암에서 헤엄치는 드레이크의 가죽으로도 내 칼은 못 막나 보지?"
채드는 몸을 드레이크로 변이할 수 있으나, 진짜 드레이크의 능력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놈의 변이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거다.
"이 새끼가…!"
드레이크의 꼬리를 원래의 오른팔로 바꾼 그가 나를 향해 달려들며 인파이팅을 시도한다.
'자신 있나 보군. 어울려주지.'
나는 칼을 휘두르고, 채드는 주먹을 뻗었다.
피가 튄다.
대부분이 내 몸에서 나오는 피였다.
기술과 속도만으로 대응하기에는 신체 능력 차이가 너무 컸다. 최소 두 단계 이상이다. 내가 지금 뇌천류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인 점도 컸다.
뇌전을 머금은 칼끝이 채드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고작해야 1cm다. 그러나 이 경우엔 칼끝이 놈의 몸을 찔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뇌천류(雷天流) 극기(極技) 봉뢰(封雷).
붉은 뇌전의 채드의 몸속으로 흘려들어 간다.
"크윽?!"
채드의 드레이크 가죽 피부가 원래의 사람의 것으로 돌아온다. 상대의 일시적으로 봉하는 봉뢰의 효과다. 이것으로 채드의 성가신 방어력이 사라졌다.
물론 이걸로 채드가 일반인 수준으로 약해진 건 아니었다. 봉뢰는 일시적으로 마나를 억누를 뿐이지, 신체 능력을 없애는 게 아니니까.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다크 문' 세상의 나처럼 찰나를 사용했다. 느려진 세상에서 다음 공격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뇌천류(雷天流) 만뢰(卍雷).
본래의 만뢰를 뇌천류식으로 개조했다.
화련비도를 중심으로 붉은 뇌전이 회전한다. 수천 개의 번개 줄기가 회전하며 사방을 휩쓰는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악!"
채드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면서 손을 움직였다. 양손으로 화련비도를 움켜쥐고 어깨에서 뽑아냈다. 그리고 내 목을 잡아 사정 없이 내 몸을 지면에 내려쳤다. 나는 이를 악물며 뇌전을 조종했다. 졸지에 근성 싸움이 되었다.
버티지 못한 건 나였다. 채드는 도중에 봉뢰의 효과가 풀려 마나를 사용했다. 놈의 피부는 지긋지긋한 드레이크 가죽으로 뒤덮인다.
"하하하. 내가 이겼군."
놈이 웃으며 나를 가볍게 던졌다.
쓰레기처럼 바닥에 버려진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는 부러졌고, 부서진 뼛조각이 내장을 찌르고 있다. 오른팔은 그나마 멀쩡했지만, 화련비도를 겨우 쥐고 있는 게 전부다. 일어날 힘도 없다.
'완전… 회복…!'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반송장 같던 몸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명한 판단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다. 그러나 놈을 죽일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이는데, 뒤돌아 도망치고 싶지 않다. 놈은 여기서 죽인다.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했다. 화련비도를 합체시키고 거창을 한 손으로 쥔다.
파지지지직!
붉은 번개가 거창에 스며들었다.
나는 있는 힘껏 채드를 향해 투창했다.
창은 문자 그대로 번개처럼 날아갔다.
채드는 오른팔을 드레이크의 뒷다리로 바꿨다. 육식 공룡의 그것과 닮은 육중한 뒷다리가 번개의 창을 위로 올려 찼다. 스톰 브레이커가 붉은 궤적을 그리며 하늘로 치솟았다.
나는 채드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채드는 웃었다.
"하하하! 다 죽어가는 놈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몰라도.… 딱 좋아! 카메라도 있고, 관객도 있다! 처형 쇼를 보여주기 딱 좋은 광경이다!"
채드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4m가 넘는 그 체구는 육식 공룡과 인간을 섞어 놓은 듯한 외형이었다.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모습에 열광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도리어 역겨움만 느꼈다.
"파충류 새끼가…"
콱!
하늘로 치솟았던 스톰브레이커가 지상으로 떨어져 바닥에 꽂혔다. 그 위치는 공교롭게도 나와 채드의 사이였다.
스톰브레이커가 잘게 분해된다. 그 청은색 조각들이 내게 날아와 몸에 달라붙었다. 청은색 조각들은 이윽고 단단한 갑옷이 되었다.
키이이이잉.
스톰브레이커가 내 의지에 반응한다. 스톰브레이커에서 분열된 5개의 검을 자기력으로 조종해 등 뒤로 도열시켰다.
파지지직.
갑옷과 검에서 붉은 뇌전이 위협적으로 튀었다.
뇌천류(雷天流) 질풍신뢰(疾風迅雷).
나는 등 뒤에 나립한 검 중 하나를 손에 쥐고 채드를 향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