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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277화 (1,277/1,497)

< 1277화 > 1277. 페로몬 몬스터

나는 뉴욕의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빌딩 위로 올라갔다.

펄럭펄럭.

바람에 붉은 망토가 휘날린다.

망토 아래에 입고 있는 건 경갑이었다. 옛날 슈퍼 히어로 코스튬에는 쫄쫄이가 대세였는데, 지금은 판타지 느낌이 나는 경갑이 대세라고 한다.

나는 오른쪽 어깨를 힐끗 봤다. 곡선을 그리는 금속이 내 어깨를 감싸고 있다. 그 표면에는 벼락 맞는 해골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오늘 낮에 급조한 주피터의 마크였다.

신중하게 마크를 디자인하던 소피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슈퍼 히어로에게 있어 코스튬은 필수예요. 당신을 상징하는 마크도 당연히 있어야 하죠. 코스튬이 없는 슈퍼 히어로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에요.

그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무수히 많은 헌터들을 내게 보여줬다. A급 이상의 상위 헌터는 물론이고 E급 이하의 헌터들도 나름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옷을 입고 활동한다.

뭐, 다른 국가 헌터도 몬스터 사냥을 할 때는 특수한 옷을 입으니 반박할 수 없었다. 헌터에게 목숨이 달린 만큼 갑옷은 중대한 문제다. 미국과 일본은 코스튬에 유독 진심일 뿐이다. 일본 쪽은 코스튬 방향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빌딩 아래를 내려다본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속전속결로 활동해야 해요. 그렇다고 아무나 죽여서는 안 돼요. 당신이 범죄자를 죽이면, 미국 국민들이 죽인 범죄자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거예요. 그 점을 이용해 보시와 관련된 범죄자들을 죽이는 거예요. 국민들이 스스로 보시의 추악한 면을 알 수 있도록!

파직.

내 주위로 창백한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손을 위로 들었다. 나는 다크 히어로지만, 사람들 모르게 활동해서는 안 된다. 나와 소피아의 목적을 위해선 국민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후우우우웅.

마나가 빠져나간다.

공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바뀐 듯한 느낌과 함께 굵은 번개가 빌딩에 내려쳤다. 주변이 번쩍 밝아졌다. 그리고 한발 늦게 천둥 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뉴욕 시민들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려친 번개에 의아함을 느끼고 빌딩을 쳐다봤다. 그리고 눈이 좋은 자들은 빌딩 위에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펄럭펄럭.

나는 가만히 서서 시민들에게 포토 시간을 주었다. 그들이 나를 찍어 인터넷에 올려야 더 빠르게 유명해질 수 있다.

‘1분 지났다. 이쯤이면 스마트폰을 꺼내서 영상을 찍는 건 물론이고 생중계도 할 수 있는 시간이지.'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했다. 오른손에 쥐고 창을 들어 올린다.

거창의 형태를 한 스톰브레이커는 화련비도보다 눈에 띄었다.

파지직.

스톰브레이커에서 푸른 전격이 튀었다.

발광하는 전류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이펙트다. 그러나 나는 부족함을 느꼈다. 나는 화련비도를 소환해 스톰브레이커와 합체시켰다. 스톰브레이커 속으로 화련비도가 스르륵 빨려 들어간다. 겉보기에는 합체라기보다는 흡수에 가까웠다.

파지지지직!

스톰브레이커를 중심으로 타오르는 푸른 전류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화련비도의 효과를 받아 뇌전도 강해졌다.

나는 붉은 전격의 창을 맞은편 빌딩을 향해 던졌다.

빌딩에 거창이 처박히며 붉은 전류가 빌딩 일부를 뒤덮었다. 나는 다리에 마나를 밀어 넣고 맞은편 빌딩을 향해 점프했다.

30m는 족히 될 것 같은 거리를 뛰어넘으며 스톰브레이커로 부순 빌딩에 성공적으로 착지했다.

나는 정면을 바라봤다. 의자에 앉아 있던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네가 그 주피터인가?”

"너는 하이트리교의 교주, 빌 하이튼 맞지?”

하이트리교.

주지 보시와 연관된 사이비 종교다. 이번에 주지 보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뉴욕으로 왔다고 한다.

나는 바닥에 꽂힌 스톰브레이커를 들고 놈을 죽이려다가 멈칫했다. 빌 하이튼의 소매에서 익숙한 문장을 봤기 때문이다.

빙글빙글 도는 5개의 물방울.

문신 세계의 악신, 브라마센의 상징이다.

머릿속이 번뜩인다. 브라마센, 사이비 종교, 광원교. 키워드가 뒤섞이며 하나로 귀결한다.

"광원교의 잔당인가…."

빌 하이튼의 두 눈이 번뜩였다.

"호오. 광원교를 알고 있나? 광원교를 무너뜨린 놈들과 관련 있는 놈인 모양이군. 네놈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내게 알려줘야겠다."

빌 하이튼이 양팔을 벌렸다. 그의 양팔이 거무죽죽하게 변하더니 촉수처럼 늘어졌다. 나는 왼손에 뇌전을 튀기며 사방에 흩뿌렸다. 지면을 타고 질주하는 뇌전이 빌 하이튼의 양팔에 달라붙었다.

아무일도 없었다. 빌 하이튼은 감전당하지 않은 채 나를 비웃으며 양팔을 채찍처럼 움직였다.

"고작 정전기 따위에 내가 당할 것 같으냐? 간지럽지도 않다!"

좌우에서 동시에 휘감겨 오는 양팔에 거창을 휘두른다. 양팔은 검기가 일렁이는 창날에 닿았음에도 조금도 베이지 않았다. 양팔은 거창과 함께 내 몸을 칭칭 휘감았다.

'기분 나쁘군.'

놈의 양팔은 생물 같으면서도, 생물 같지 않았다. 검기가 아예 통하지 않는 걸 보면 물리력에 면역인 것 같았다.

내 몸을 휘감은 양팔에 힘이 들어간다. 내 뼈를 으스러뜨릴 모양이다.

쿵.

진각을 밟았다.

발끝에서 생성된 붉은 번개가 지면을 타고 빌 하이튼에게 직격했다.

"소용없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나?"

빌 하이튼이 폭소를 터트렸다.

개의치 않고 놈을 향해 전류를 흘려보낸다. 파직, 파지직. 빌 하이튼의 몸에서 붉은 전류가 튀었다. 전류는 놈의 몸에 계속 쌓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기폭제를 누르듯 왼 주먹을 꽉 쥐었다.

뇌천류(雷天流) 극기(極技) 폭진뢰(爆震雷).

콰아앙!

빌 하이튼의 체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한 번의 폭발이 아니다. 지금까지 쌓인 적뢰가 조금씩 연속으로 폭발을 일으킨다.

콰아앙! 쾅! 콰아아아아앙!

툭. 내 몸을 칭칭 감았던 놈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나는 늘어진 놈의 거무죽죽한 양팔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찬 뒤, 느긋한 걸음으로 놈에게 다가갔다.

빌 하이튼은 바닥에 무릎 끓은 채로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입과 코, 귀에서 검북은 피가 줄줄 흐른다.

"몸 내부에서 30번은 폭발했을 텐데 형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니. 이건 좀 놀랍네."

놈은 검붉은 피를 울컥울컥 토하며 나를 노려봤다.

"브라… 마센… 이시여.…! 놈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려주십시오…!"

"그 새낀 아무것도 못 해."

스톰브레이커의 형태를 검으로 바꾸어 휘둘렀다. 빌 하이튼의 목이 베이고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나는 책상 옆에 떨어진 노트북을 들었다. 화면은 깨졌으나 작동은 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화면이 떴다.

'해킹할 필요는 없나. 그냥 노트북을 챙기면 되니까."

노트북을 챙긴 나는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굳게 잠겨 있는 철문을 검으로 찢어발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남녀가 나체 상태로 누군가를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에 심취한 그들은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기도를 이어갔다.

지극히 사이비스러운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광원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며 짜증이 치솟는다.

전격의 해일로 나체의 남녀를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천천히 주위를 돌면서 이 역겨운 기도회를 촬영한다.

'오, 이 여자 좀 예쁜데?'

미녀가 나체로 기도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끓어오르는 성욕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사이비 신도랑 질펀하게 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경찰이 몰려오기 전에, 미국 협회 소속 직원이 이곳을 떠야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크 히어로다.

동영상 촬영을 끝낸 나는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었다.

주피터.

새롭게 등장한 범죄자의 이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누군가는 그를 미친 빌런이라고 했으며, 누군가는 그를 다크 히어로라고 말했다. 인터넷 여론은 후자 쪽이 압도적이었다.

내가 하룻밤 만에 죽인 범죄자 3명은 각각 아동 성폭행범, 마약 밀매 조직 보스, 사이비 종교 교주였기 때문이다.

소피아와 블루캐드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선동하고 이끌었다. 증거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쉬운 일이었다고 한다.

위기감을 느낀 보시 행정부가 다크 히어로 주피터를 범죄자로 규정하며 현상금을 대폭 늘렸다. 3,000만 달러. 내 목에 걸린 현상금이었다.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앉은 나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피아를 바라봤다. 어제의 의기소침하던 모습은 없었다. 키보드를 누비는 손가락은 경쾌했다.

"일은 잘 풀려요?"

"네. 잘 풀리고 있어요. 사람들은 미국을 좀 먹는 범죄자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실에 기뻐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기쁨은 곧 주피터 당신을 향한 찬양으로 바뀌었죠."

"보시 행정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앵무새처럼 당신을 비난하고 있어요. 그 외에는… 딱히 없네요. 섣불리 움직였다가 역풍만 맞는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그 리고 지금쯤 흔적을 지우느라 무척 바쁠 거예요. 당신이 심판한 3명은 모두 보시와 관련 있는 범죄자들이니까요. 후후. 제가 예전에 썼던 기사들이 조금씩 각광 받고 있네요. 정말.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이 잘 풀리고 있어요."

"블루캐드의 화력이 뛰어난가 보군요."

"블루캐드가 아니에요. 블루캐드의 화력으로 이 정도로 격렬한 반응을 끌어내는 건 불가능해요. 다른 어떤 조직이…. 흐음.

뭐, 이건 제 상상에 불과하니 말을 아낄게요."

"미국 헌터 협회의 반응은요?"

나와 소피아가 가장 걱정한 건 미국 헌터 협회였다. 미국 헌터 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아무리 나라도 다크 히어로 노릇을 하기 힘들어진다.

"미국 헌터 협회는 당신에 대해 비난했어요. 당신은 다크 히어로가 아니라 사적제재를 행하는 범죄자에 불과하다고요."

"…음. 그렇겠죠. 그래서요?"

"그게 다예요."

"네?"

"그 외의 반응은 없어요. 미국 헌터 협회는 이 일에 미온적인 태도예요. 미국 헌터 협회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한발 물러나 있는 느낌이 강해요."

"어쨌든 저희에겐 좋은 일이라는 거군요."

"네.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어요."

소피아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이 묘하게 상기 되어 있다. 그녀는 어딘가 요염한 걸음으로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고마워요.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뺨을 잡고 그대로 키스한 것이다. 그녀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이윽고 좁은 작업실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찼다.

"오 예쓰! 퍽 미! 퍽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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