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273화 (1,273/1,497)

< 1273화 > 1273. 페로몬 몬스터

여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내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는지 TV 화면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다행히 그녀는 한국말을 모

르는 듯했다. 자지 보지의 뜻을 알면 경멸의 찬 눈으로 날 바라봤을 것이다.

슬쩍 그녀의 앞에 칵테일을 밀었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멋쩍어진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는 이

번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뉴스가 그렇게 재밌나? 아니면 자지 보지.아니, 주지 보시의 열렬한 지지자인가 뭔가인가?'

TV 화면에 시선을 옮겼다.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면, 대통령을 지지하는 척하면서 그녀를 꼬시면 된다.

주지 보시는 정면의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명색이 미국 대통령인데 자신감이

없으면 더 이상하다.

"중국은 우리의 신뢰를 깼습니다! 국제법을 어겼음에도 반성의 태도가 전혀 없습니다! 중국에 철퇴를 가해야 합니다! 앞으

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780개의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겠습니다!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중국! 당신은 우리 미국을 우습게

봤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국가다!"

주지 보시가 외쳤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사를 흘렀다.

"와우."

이런 화끈한 놈이 미국 대통령이 되다니…. 미국은 내 생각보다 더 화끈한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주지 보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일본! 우리 국방부는 미일 동맹 관계에서 심각한 안보 위협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일본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

다! 분담금을 2배로 늘리겠습니다!"

술집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바텐더는 물론이고 손님들까지 TV를 바라봤다. 손님 대부분이 경악하

고 있었다.

"지금 보시가 뭐라 지껄인 거야?"

"보시가 동아시아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말이 있던데…. 이건 좀 미친 짓 아닌가?"

"마음에 들어! 미국은 이래야지!"

그리고 주지 보시의 말이 이어졌다.

"한국에는 작은 땅에 비해 너무 많은 헌터가 몰려있습니다! 한국의 헌터들을 미국으로 불러오겠습니다! 미국은 빌어먹을

몬스터와 던전으로부터 더 안전해질 겁니다!"

한국에 헌터가 많긴 하지. 나는 느긋하게 맥주을 마셨다.

"로켓맨! 잘 들어라! 너의 어설픈 도발은 통하지 않는다!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평화는 필요 없다! 나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

해 전쟁을 불사할 것이다! 로켓맨! 너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너의 왕국에 틀어박혀 있도록!"

"……."

느긋하던 내 얼굴도 심각해졌다.

주지 보시는 또라이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머리가 헤까닥 돌아간 미친놈 같았다. 주지 보시는 이어 세금과 노동자 임금에

대해 말했다.

"내년부터 세금을 0.5% 줄이고, 최저 임금을 5% 인상하겠습니다! 미국 국민들을 위해 준비된 정책들을 실행할 것입니

다!"

주지 보시는 제 할 말만을 쏟아내고 몸을 돌려 사라졌다.

조용하던 술집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야, 저 미친놈은!"

"그냥 말만 저렇게 하는 거겠지!"

"대체 누가 저 병신을 뽑은 거냐?"

"네가 뽑았잖아, 병신아."

나는 술이나 홀짝였다.

'네놈들이 뽑은 대통령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치솟았으나 참았다. 어그로를 끌어봤자 좋은 것 없다. 지금은 내 옆에 앉은 금발 섹시 미녀에게 집중하

자.

"하하. 미국이란 나라는 정말 어매이징하군요."

".…당신은 미국인이 아닌가 보군요."

금발 섹시녀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녀는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미국에 있다고 꼭 미국인이어야 합니까?"

“그건.… 아니죠.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시죠?"

“미국인입니다."

"……."

금발 섹시녀가 푸른 눈으로 날 째릿 노려봤다. 나는 섹스 온 더 비치를 그녀에게 건네면서 웃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칵테일을 받았다.

"다시 한번 자기소개 하죠. 카일이라 합니다. 그쪽은?"

"…소피아 메이버스에요."

"소피아. 음. 좋은 이름이군요."

“칵테일은 맛있게 마실게요. 대신 제게 관심 꺼주세요. 저랑 엮여서 좋을 일 하나 없어요."

"사정이 있으신가 보군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책임지지도 못 할 말을 함부로 하시는군요. 그런 식으로 여자에게 치근덕대나 봐요?"

"전 제가 내뱉은 말에는 책임지려고 하는 편입니다. 아무 여자에게나 치근덕대는 것도 아니고요. 솔직히 말하죠. 전 소피아.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어차피 제 몸이 목적이시잖아요?"

"하룻밤의 달콤한 꿈…. 때로는 그게 더 좋죠. …혹시 남편이 계십니까?"

"반년 전까지는 있었죠. 애도 있었어요. 양육권은 빼앗겼지만…. 난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매력적인 여자가 아니에요. 나이

는 30대 중반이고, 성격도 지랄 맞죠."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30대 중반이라고?'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겉보기에 그녀는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화장이 진한 것도 아니다.

'…타고난 동안인가. 거기에 이혼녀라. 으으음. 꼴리네.'

소피아는 칵테일을 원샷 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힐끗, 눈동자가 움직이며 나를 의식한다. 눈동자가 아까보다 부드러

워졌다. 페로몬 향수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가끔 다 잊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 잊고 오늘 밤만 즐기죠."

"하. 너무 노골적이라 산뜻하게까지 느껴지네요. 제가 누군지 모르는 걸 보니… 다른 곳에서 오셨나 보죠?"

"이 바에는 오늘 처음 옵니다."

"…스마트폰 가지고 계시죠?"

"최신 기종입니다. 보여드릴까요?"

"인터넷에 들어가서 제 이름을 검색해보세요."

"혹시 연예인이십니까?"

"……."

대답이 없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소피아 메이버스.

그녀는 연예인이 아니라 기자였다. 그것도 주지 보시 대통령의 비리를 까발린 기자. 물론 주지 보시가 대통령이 되기 전, 버

지니아 주의 상원의원으로서 지낼 때의 일들이다. 나는 기사 내용을 쭉 훑어봤다.

"정의로운 기자님이셨군요."

"……비꼬는 건가요?"

"아뇨. 존경합니다. 이런 기사를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근데 주지 보시가 사이비 종교에 돈을 받고,

뒤를 봐줬다는 게 사실입니까?"

"전 진실만을 추구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당신도 믿지 않으시죠?"

"믿습니다. 그 외에도 기업에서 뇌물을 받고…. 사촌이 교통사고를 치고 구속됐는데, 힘을 써서 구해주기까지 했군요."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비리는 많을 거예요."

"이렇게 비리가 많은데 어떻게 대통령이 된 겁니까?"

"그걸 묻는 걸 보니 역시 당신은 미국인이 아니군요."

"음. 네.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상관없어요. 저번 중국 사태는 아시나요?"

"중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던전 브레이크 사태 말입니까?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은 수습됐지만, 아주 위험한 일이었죠. 중국이 망했으면 그대로 전 세계의 경제가 흔들렸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때, 미국은 중국을 돕지 않았어요. 보시를 대표로 한 의원들이 중국을 돕는 걸 극렬히 반대한 탓이죠. 미국의 여론도 그

들의 편이었고요."

"음. 중국인의 이미지가 안 좋긴 하죠. 중국을 적대하니 인기를 얻었다는 거군요."

"그 외에도 대외이미지 관리를 잘했어요. 제가 쓴 기사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이 부분은 좀 이상하긴 한데…. 하아. 아무튼, 이제 저랑 엮이지 않아야 할 이유를 아시겠죠?"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보시는 저를 주시하고 있어요.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죠. 제 친구는 저 때문에 직장을 잃었고, 부

모님 회사는 갑자기 휘청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저는… 가정을 잃었어요."

"하하. 뭔가 영화 같은 일이군요. 섹스 온 더 비치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농담으로 들리시나요?"

소피아의 목소리가 변했다. 차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누군가를 노려봤고, 내 눈이 그녀의 시선

을 따라 움직였다. 와인잔을 닦고 있는 바텐더가 눈을 치떴다. 그는 내 앞에 맥주 한 잔을 올려두었다.

"…마스터. 맥주를 시킨 적은 없는데?"

"제가 손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바텐더가 상체를 기울였다. 나를 내려다보며 기세를 드러낸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위압적인 마나가 주변을 훑는다.

'…C급인가.'

바텐더뿐만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진다. 느껴지는 감각으로 파악하자면, 바텐더 수준은 되지 않는다. F~E급의

어중이떠중이들이다.

“경고하지. 오래 살고 싶다면, 중간 다리 관리를 잘하는 게 좋을 거야. 넌 특히나 멍청한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말해주지. 발

정난 개새끼처럼 굴지 말고 개오줌같은 차이나치 맥주나 마시고 여기서 꺼져."

내가 입을 다물자, 바텐더는 빙긋 웃으며 기세를 거둬들였다. 그는 어서 마시라는 듯 맥주를 턱짓한다.

나는 맥주잔을 잡고 그대로 바텐더의 머리에 후려쳤다.

쨍그랑!

맥주잔이 부서지고, 노란 맥주가 바텐더의 머리를 흠뻑 적신다.

바텐더가 마나를 끌어올리기 전에 먼저 놈의 후두부를 잡아 바(Bar)에 처박는다.

'뇌전.'

파지지지지지직!

오른손에서 발생한 시퍼런 전류 수천 줄기가 발광하며 바텐더를 감전시킨다. 심장을 멈추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나

는 놈의 뇌를 구워주기로 했다. 뇌가 바싹 익다 못해 슬라임이 되어 녹아내릴 때까지.

"젠장! 마이클이다! 변수 발생! 지원 요청한다! 바텐더가 순식간에 당했다! 상대는 최소 A급의 일렉트로키네시스다! 지원

바란다!"

"꺄아아아아아악!"

"쏴! 특수 탄환에 당하면 A급이라도 죽는다! 총을 갈겨!"

뇌천류(雷天流) 전자기막(電磁氣幕).

날 향해 쏘아진 금속 탄환이 전자기막에 닿는 순간 멈췄다. 나는 손을 휘저었다. 금속 탄환이 180도 돌아 날아간다.

"아아아아아악!"

총을 쥔 남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원래는 죽여버릴 생각이었는데, 처음 하는 거라 위력이 약했다. 끝장을 내기 위해 그들에

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소피아가 내 팔을 잡았다.

"그만 해요! 지금은 도망가야 해요!"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어디로요?"

"뒷문으로 가요!"

소피아가 뛰어갔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으며 사방에 기감을 퍼뜨렸다. 위험 요소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뒷문에 나가기 전에 벽에 걸려 있는 코트에서 차 키를 꺼냈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검은색 승용차로 내달렸다. 그녀

가 운전대를 잡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녀가 차에 시동을 걸고 액셀을 있는 힘껏 밟는다. 의외로 대범하고 화끈한 여자

였다.

"블루캐드에서 나오셨죠? 아무리 그래도 너무 거칠었어요."

"블루캐드요? 그건 또 뭐예요?"

"…블루캐드가 아니라고요?"

"아닌데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