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2화 > 1272. 페로몬 몬스터
흥겨움 EDM 사운드가 내 심장을 때린다.
나는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이 여성의 것이었다. 여성들이 나를 보니 남자들도 호기심이 생겨 나를 본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왜 나를 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지었다. 지금 나는 평범하게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따라온 박수호는 압도된 듯 쭈뼛거렸다. 박수호는 클럽에 자주 오는 타입이 아니었다.
"박수호. 여자들이 술 준다고 막 받아먹지 마."
"…술에 약 같은 거 타서요?"
"아니. 넌 술이 너무 약해."
"에이. 형이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여차하면 마나로 술기운을 털어버리면 돼요."
"그래."
귀찮아져서 적당히 대꾸했다.
술을 먹다 한번 취하면 마나로 취기를 몰아내기 싫어진다.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C급 이상의 헌터가 만취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일단 테이블로 걸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매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마음에 드는 여자는 별로 없었다.
'VIP룸을 잡으면 더 편했을 텐데.'
오늘은 금요일이었고, 예악이 꽉 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이 테이블도 운이 좋아서 구한 거다.
"유, 유진 형. 오늘 인기 좋으신 것 같네요. 여자들이 형만 쳐다봐요."
"살다 보면 인기 좋은 날 몇 번 있잖아.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지."
여자들이 테이블로 다가온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못생긴 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예쁘장한데,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화장빨이다. 몸매도 별로다.
여자들이 보내면 또 다른 여자들이 다가왔다.
여긴 클럽. 성욕에 찬 젊은 남녀들이 가득하다. 페로몬 뿜뿜 향수가 여자들을 부르고 있었다.
'얘 정도는 괜찮은데…. 아니.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어. 더 예쁜 여자도 있을 거야.'
다가오는 여자들을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다.
나는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무대 위로 올라가서 직접 여자를 찾는 게 나을 것 같다.
"박수호. 난 춤추러 갈 건데…. 괜찮냐?"
"아, 춤추고 오세요. 전 술좀 마시고 있을게요."
박수호는 새삼 서글픈 얼굴로 맥주잔을 비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20명이 넘는 여자들이 다가왔으나, 정작 박수호에게 관심을 보인 여자는 1명도 없었다. 박수호는 현실을 확인하고 실의에 빠진 것이다.
박수호를 버리고 무대 위로 올라가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가만히 춤만 추고 있을 뿐인데 여자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중에 내 얼굴을 알아보는 여자는 없었다.
'요새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없다 보니 아예 날 알아보지 못하는군.'
원래부터 대중들에겐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내 유명세는 헌터계에 퍼져있으니까.
"혼자 왔어요?"
한 여자가 다가왔다. 블라우스의 윗단추를 풀어 가슴골과 브래지어를 은근히 보여준다. 보통의 남자였다면 바로 흥분해서 달려들었겠지만, 나는 아니다.
'화장빨의 못생긴 년이군. 가슴도 A컵인 주제에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B컵으로 만들었어.'
나는 여자와 거리를 벌렸다.
"친구랑 왔습니다. 춤만 추러 온 거예요."
"흐음. 그래요? 춤을 얼마나 잘 추시려나…."
여자가 가까이 다가와서 스킨십을 시도한다. 나는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미친년. 홍어 냄새 나잖아. 저리 꺼져!"
"뭐? 이 미친 새끼가! 방금 뭐라 그랬어?!"
"보지 홍어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한다고! 이 개걸레년아!!"
있는 힘껏 소리쳤다.
시선이 이쪽으로 모인다. 나보다는 여자에게 시선이 더 몰렸다. 여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여자는 입술을 곱씹더니 몸을 돌려 도망쳤다.
"저, 손님. 잠깐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하시죠."
가드들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오늘 밤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순순히 가드들을 따라갔다.
구석진 곳에서 가드 셋과 마주했다. 그들은 인상을 쓰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피식 웃으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손님. 가게에서 이러시면 곤란…."
가드들의 무릎이 거의 동시에 바닥을 찍었다. 내 기세에 압도당한 그들이 몸을 덜덜 떨었다.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흐른다.
나는 살기를 일으키며 그들을 조용히 바라봤다. 클럽 가드도 헌터다. 그러나 헌터라 부르기도 민망한 전투력을 가진 F등급 헌터들이 대부분이다.
"그, 그만…."
마나로 공간을 장악한다. 숨 쉬는 것도 불편해진 가드들이 컥컥거렸다. 나는 놈들이 바지를 적시는 걸 보고 기세를 거뒀다.
"또 내게 할 말 있나?"
"…어,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직원 한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평범한 직원이 아니란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보안 책임자인 것 같다.
"보시다시피 이 친구들이 갑자기 실금하더군. 네가 좀 도와줘."
"……A급 헌터셨군요. 저희 가드들이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과의 뜻으로… VVIP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VVIP룸? 그런 것도 있었나?"
"특별한 분들을 모시는 공간입니다."
듣자마자 구린내가 진동했다. 좀 궁금하긴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여긴 현실이었다. 귀찮은 일에 엮이는 건 사양이다.
"난 놀러 왔어. 사고 안 칠 테니 간섭하지 마."
"알겠습니다."
그를 지나치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여자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움직였다.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갈색 머리를 흔들며 춤에 열중하고 있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뛰어났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춤 잘 추시네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실실 웃는다.
"그쪽도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도도함이 느껴졌다. 자기 미모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페로몬 향수 효과가 통하지 않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성큼 다가갔다. 옷깃이 스치는 거리다. 그녀는 물러나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여기 자주 오세요?"
그녀에게 물었다.
"가끔 기분 전환 삼아 와요."
"기분 전환 삼아? 안 좋은 일 있었어요?"
"남자친구가 제 속을 썩여서요."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러고 있어도 돼요?"
"못할 이유는 없죠."
어느새 우리는 합을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슬쩍슬쩍 몸이 닿고 있다. 서로의 땀과 호흡이 섞인다. 나를 보는 그녀의 시선이 뜨겁다. 페로몬 향수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제아 씨, 잠깐 밖에 나가서 쉬지 않을래요?"
"……좋아요."
우리는 클럽 밖으로 나갔다. 클럽 안의 화장실에서 일을 치르는 건 미친 짓이다.
스마트폰을 들어 근처에 있는 모텔을 확인하려는데, 제아가 내 손목을 잡고 끌었다.
"이쪽으로 가요."
야외 주차장이었다.
그녀는 검은색 SUV 차량에 나를 태웠다. 그리고 바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팬티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아아앙! 앙!"
자동차는 거의 1시간 동안 덜컹거렸다.
나는 총 5명의 여자와 섹스했다.
자동차에서, 모텔에서, 건물 뒤편에서 섹스했다. 스릴 있는 건 건물 뒤편에서 하는 섹스였다. 성욕을 해소한 그녀들과는 깔끔하게 헤어졌다. 애초에 그녀들도 원나잇을 즐기려고 클럽을 찾은 것이다.
아침 8시.
나는 술에 취해 뻗어 있는 박수호를 데리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집까지 데려다주기 귀찮아서 대충 모텔에 던져주었다.
'이 새끼 아리랑치기 당했네?'
박수호는 소지품이 하나도 없었다. 지갑은 물론이고 스마트폰까지 잃어버린 듯했다. 덤으로 왼쪽 신발까지.
뭐, 내 알 바 아니었다.
근처 식당에서 든든하게 국밥을 조진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어. 좀 더 놀고 싶다…!'
시간은 아침 9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클럽도 모두 문 닫을 시간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공중화장실로 들어갔다. 유희 생활 어플을 실행한다.
[사용 가능 포인트: 105]
5포인트를 이용해 얼굴을 바꿨다.
백환 세계의 카일의 얼굴로.
'소설 주인공답게 얼굴은 잘생겼군.'
귀공자처럼 생긴 얼굴이었다. 얼굴을 바꾼 나는 인벤토리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냈다.
목적지는 뉴욕이다.
한국과 뉴욕의 시차는 14시간. 즉, 지금 뉴욕은 아직 금요일 저녁 7시로 놀기 딱 좋은 시간대다.
찌이익…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었다.
'가자! 퍽스 아메리카!'
스트립 클럽으로 달려가기 전에 좀 오래되어 보이는 바에 찾아갔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자주 등장해서 궁금했다.
바텐더는 꽤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였다. 나는 맥주 한 잔 시켜놓고 조용히 주위 분위기를 살폈다.
불금이라 그런지 꽤 사람이 붐볐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내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우울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갈색 코트를 입었고, 금발 롱 스트레이트 헤어다.
나는 손을 들어 바텐더를 불렀다.
"마스터! 저 아리따운 레이디에게 섹스 온 더 비치 한 잔!"
바텐더가 날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마주 봤다.
그는 수염을 한차례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을 위해 하는 말입니다."
"건들면 누가 날 죽이기라도 합니까?"
"…그럴지도 모르지요."
"제가 실력에 좀 자신 있어서요. 섹스 온 더 비치는 제게 주십시오. 직접 저 여인에게 건네겠습니다."
"…전 경고했습니다."
바텐더는 칵테일 하나를 뚝딱 만들었다. 실력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나는 칵테일을 들고 금발 백마에게 다가갔다. 스윽. 테이블로 섹스 온 더 비치를 내민다.
"제가 사는 겁니다."
여자가 날 쳐다봤다.
나는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지금의 나는 페로몬 몬스터다. 어떤 여자라도 함락시킬 자신이 있었다.
"칵테일은 고마워요. 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이런이런. 내 마음을 받아버리다니. 저도 당신의 마음을 받고 싶군요."
"…음.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당신 좀 많이 머저리 같아요."
"하하. 자주 듣는 말이지요."
"그 뻔뻔함이 부럽네요."
"오, 이런. 지금 시간이 몇시지? 내가 시계를 어디에다 뒀더라…."
"저기 벽에 전자시계 있잖아요. 7시 20분이네요."
"나는 전자시계를 안 믿습니다. 음. 여기 있군요. 내 10만 달러 손목시계…"
주머니에서 손목시계를 꺼내 왼쪽 손목에 착용했다. 여자에게 자연스럽게 재력을 과시하는 필살기였다. 어지간한 여자는 손목시계를 보일 것이다.
"하…. 당신 진짜 머리 괜찮아요?"
"…음. 이거 진짜 10만 달러짜리 시계입니다."
"알아요. 올해 초에 나온 한정판이죠."
“…잘 아시는군요."
재력 과시가 통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녀는 부자인 것 같았다. 머쓱해진 나는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다음 방법을 떠올렸다. 페로몬 향수로 자연스럽게 꼬시면 좋을 텐데.
"커홈. 저는 카일이라 합니다. 이번에 뉴욕을…. 헤이?"
그녀의 시선은 내 뒤편에 있는 TV로 향해 있었다. TV 화면에는 정장을 입은 백인 남자가 서 있었다. 금발 머리에 갈라진 턱을 가진 60대 남자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머리를 굴리자 남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오. 3개월 전에 미국 대통령이 된 자지 보지군요."
"자지 보지? 그는 주지 보시에요."
여자가 말했다. 묘하게 날 서 있는 목소리다.
"이런 실례를. 근데 사람 이름이 어떻게 주지 보시일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