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1화 > 1271. 페로몬 몬스터
[유희를 종료합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다크 문 세계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두통이 있다거나, 머릿속이 혼란스럽다는 건 아니었다. 단지, 조금 기억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뿐이었다.
[성유진
레벨: 82
근력: 105 체력: 100 민첩: 100 지능: 100 정력: 110 마나: 103]
[사용 가능 포인트: 28,105]
포인트를 확인한다.
착실하게 쌓였다.
'원래는 이것보다 더 많았지.'
약 4,000 포인트를 사용해 페널티 중 하나인 기억 부분을 완화했다. 현실의 기억을 아주 약간 떠올리는 정도다.
"현실의 기억이 있어야 어느 정도 원활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겠지."
그래도 불안감이 없잖아 있었다. 네오 런던의 나는 사업도, 기반도 전혀 없었다.
[다크 문] 세계의 나는 시원스럽지 않고 답답한 감도 있었다. 특히, 31호를 비롯한 동기들과 헤어졌을 때는 우울함까지 느껴야 했다.
유희가 종료될 때마다 꼭 고구마 수백 개를 꾸역꾸역 머는 기분이었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 [유희 세계 동반 입장권]으로 유리아를 다크 문 세계에 투입했다. 그녀라면 다크 문 세계의 날 충분히 케어하고 사업 부분에서도 보조해줄 것이다.
‘그런데 설마 유리아가 날 덮쳐버릴 줄이야. 유혹은 하되 먼저 덮치지는 말라고 했는데.… 백환 세계로 돌아가면 혼을 내줘야겠군.'
다크 문 세계의 유리아를 떠올리자, 자지가 불끈불끈 서기 시작했다. 그녀를 어떻게 혼내줄지 머릿속으로 정했다.
'그나저나 유희 세계 동반 입장권. 이거 꽤 많이 도움이 되는데.… 하나 더 살까?'
[유희 세계 동반 입장권
대상을 한 명 지정해 유희 세계에 함께 들어갈 수 있다.
함께 들어간 자는 유희를 종료할 때 함께 나오며, 들어갈 때도 함께 들어가게 된다.
유희 세계에 따라 동반자의 능력치가 조정될 수 있다.
가격: 7,000 포인트
※주의
대상이 동의해야 한다.
동반자는 유희 세계에서 죽으면 본래 세계로 돌아간다. 입장권을 다시 쓰면 다시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간 유희 세계의 엔딩을 보게 될 때까지 동반자와 함께한다.]
7,000 포인트밖에 하지 않는다.
내 입장에선 싼 편이었다. 다수 구입해 다른 유희 세계의 여자들과 함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유리아와 엘레나, 미령과 성하리를 다 데려가면 유희 세계 하나쯤은 쉽게 지배할 수 있지 않을까?'
실없는 생각은 지웠다.
지금 당장 동반 입장권을 구매할 필요는 없었다.
포인트를 사용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포인트를 모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25,000 포인트를 사용해 영천류를 뇌천류로 진화하시겠습니까?]
'사용한다.'
파지직…
내 몸에서 푸른 전류가 튀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릿속으로 직접 뇌천류에 대한 지식이 꽃힌다. 또한 뇌기()가 기혈을 타고 움직였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경로로 뇌기가 질주하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는 뇌천류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이건 설마…!'
위유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뇌천류는 완성된 무공이 아니었다. 그저 천단뢰결(天斷雷結)과 영천류(影天流) 를 결합하여 뇌천류(雷天流)의 기본 토대를 만들었을 뿐이다. 뇌천류는 지금까지 쌓은 것보다 앞으로 쌓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은 무공이다.
'유희 생활 어플의 뇌천류 특성은. 완성된 뇌천류인가?!'
흥분되려는 찰나 알림창이 떠올랐다.
[영천류(影天流) 뇌천류(雷天流) 로 진화했습니다.]
[뇌천류(雷天流) Lv.3
뇌천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50,000 포인트를 사용해 뇌천류(雷天流) Lv.3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그럼 그렇지. 쉽게 될 리 없지."
정상에 오른 줄 알았는데 실은 중간지점이었다.
그래도 Lv.1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얻었다.
나는 거실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정신을 집중한다. 기를 움직이려 하자, 자연스럽게 뇌기가 파직 거리며 반응한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뇌기가 꼭 내 몸에 일부가 된 것처럼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 뭐냐 신검합일? 딱 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나쁘지는 않았다.
[성유진
레벨: 82
근력: 105 체력: 100 민첩: 100 지능: 100 정력: 110 마나: 103]
[사용 가능 포인트: 3,105]
남은 포인트 3,105. 어디에 써야 할까?
'당연히 뽑기지. 유희 세계 동반 입장권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딱 3,000번만 하자.'
3,000번의 뽑기 중에서 유희 세계 동반 입장권 딱 하나만 나와도 대박치는 것이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랜덤 뽑기를 눌렀다.
해가 질 때까지 3,000번의 뽑기를 했다. 내 주위에는 쓸데없는 잡동사니들이 산을 이루었다.
"…이럴 수가."
뽑기는 망하지 않았다.
3,000번의 뽑기 중에서 쓸만한 물건 2개를 건졌다. 본전은 뽑고도 남았다. 내가 경악한 건 다른 것이었다.
'작정하고 3,000번이나 뽑았는데 겨우 2개밖에 못 건지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쌓인 잡동사니들은 대충 [백환] 세계에 넣어둘 것이다. 말이 잡동사니지, 유희 생활 어플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하나, 하나 따져보면 그 품질이 매우 뛰어났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천상의 물티슈]다. 1포인트밖에 하지 않는 이 물티슈로 몸을 닦으면 매우 기분 좋다. 나는 이 천상의 물티슈를 항상 화장실에 구비해 둔다.
'이번에 얻은 대박 물건 2개를 확인해볼까.'
첫 번째로 고급스러운 유리병을 들었다. 유리병 안에는 분홍색 액체가 들어 있었다.
[페로몬 뿜뿜 향수
이성을 유혹하는 페로몬 향수입니다.
향수를 맡은 이성은 성욕을 느낍니다. 느끼는 성욕의 강도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페로몬 뿜뿜 향수의 효과는 1회에 24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총 5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 가능한 횟수 5회입니다.
가격: 2,000 포인트
※주의
동성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아주 마음에 드는군.'
설명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페로몬 뿜뿜 향수는 몸에 뿌렸다.
칙칙!
[페로몬 뿜뿜 향수를 1회 사용했습니다.]
[남은 사용 횟수: 4회]
킁킁. 킁킁!
코를 몸에 대고 연신 킁킁거렸다. 향수는 확실히 뿌려졌는데,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다.
'페로몬이라 그런가? 그 뭐냐, 페로몬은 코로 못 맡는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실험해보고 싶은 걸 참았다.
다른 걸 확인했다. 푸른곰팡이처럼 칙칙한 색깔의 알약이었다.
[미움받는 약
약을 복용하면 열흘 동안 미움받습니다.
가격: 15,000 포인트
※주의
한 번 먹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미움받는 약을 바라봤다. 이게 어느 정도 효과인지,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굳이 미움받을 필요가 있나?'
조금 더 깊게 생각해봤다.
꼴리는 유부녀의 남편에게 몰래 약을 먹이는 거다. 유부녀는 남편을 미워하게 될 테고, 나는 그 틈을 노려 유부녀를 꼬신다.
'완벽한 계획이군.…'
미움받는 약을 인벤토리에 쟁긴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우선은 페로몬 뿜뿜 향수의 효과부터 확인해 보고 싶었다.
길거리로 나섰다. 당당하게 걷는다. 향수의 효과는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나를 본 여자들이 한 번씩 시선을 줬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날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다. 눈빛이 뜨겁다. 내게 말을 거는 여자들도 있었다.
"저기요.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나는 여자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못생긴 년이었다.
"죄송합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번호 좀 주실 수 있으세요? 그쪽이랑 대화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시간이 괜찮으면… 같이 술 한잔해요."
"저 그런 쉬운 남자 아닙니다."
철벽 치며 여자를 지나쳤다.
다른 여자들이 은근슬쩍 내 주위로 다가온다. 말을 걸거나, 번호가 적힌 커피를 건넨다. 가슴골을 보이거나,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노골적으로 섹스 어필을 하는 여자들도 존재했다.
'후우. 이게 존잘러의 삶인가.…. 좀 피곤하군.'
문제는 내 눈에 차지 않는 못생기거나 평범한 여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내 몸은 하나고, 시간은 유한해. 못생긴 년들이랑 평범한 여자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어.'
내가 노리는 건 대어였다.
한하린 수준의 미모는 바라지도 않는다. 대한민국을 뒤져봐도 한하린 만큼 뛰어난 미모의 여자는 100명도 되지 않을 거다.
'얼굴은 한하린과 비등한 미녀들이 많아도.… 하린이는 몸매가 사기지.'
한하린을 생삭하니 돌아가고 싶어졌다.
‘기껏 나왔는데 좀 더 있자. 월척이 걸릴지도 모르잖아.'
거리를 좀 더 걸었다. 유부녀는 물론이고 교복 입은 고등학생도 날 보며 눈을 빛낸다. 그녀들도 성욕을 느끼는 여자라 그렇다.
반대로 성욕이 없는 어린아이나, 할망구들은 내게 관심도 없다.
'대부분은 날 보고 그냥 지나가는군.'
내게 말을 걸며 적극적으로 대시해오는 여자들은 모두 성욕이 강해 보이는 여자들이다.
'젠장.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 눈이 너무 높아졌나?'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승희는 헤빌의 촉진제의 복제품인 HB-1 관련 문제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으니 만나지 못할 거다.
'진세영은 던전 공략중이고… 하린이는…'
한하린에게 연락했다. 지금 집으로 갈 테니 보지나 데워두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하린은 본가에 내려간 상태였다.
'어쩔 수 없지. 박수호나 오준혁을 불러서 클럽이나 갈까.'
오준혁은 바빴다. 파이브새드인가 뭔가 하는 길드에 들어가고 나서 요즘 만나기 힘들었다.
'왜 갑자기 열심히 사는 거야. 어차피 그 재능이면 C급 헌터도 간당간당할 텐데. 예전엔 클럽에서 놀기만 했으면서.'
박수호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박수호는 평소처럼 몬스터 사냥에 나서려 했지만, 이런저런 말로 설득했다. 내게 받은 것들이 있는 박수호는 내 말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다.
'박수호한테 미움받는 약을 몰래 먹여볼까?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잠시 생각해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움받는 약은 15,000 포인트짜리 물건이었다. 호기심으로 박수호에게 먹이기엔 너무 아깝다.
"형!"
약속 장소에서 조금 기다리니 박수호가 나타났다.
최근에 C급 헌터가 된 박수호는 나름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청바지와 흑백 맨투맨이다. 문제는 옷이 낡은 느낌이 라는 것이다.
"그 옷 어디서 났냐?"
"이거요? 가지마켓에서 샀어요. 청바지가 5,000원이고 맨투맨이 7,000원이요. 진짜 싸게 산 거예요."
"청바지 아랫단에 구멍 났고, 맨투맨은 색이 바랬잖아."
"에이. 자세히 보면 티도 안 나요."
"…그래. 뭐, 넌 몸이 좋으니까 클럽에서도 인기 있을 거야."
"형. 저 여자 관심 없어요. 그냥 형이 불러서 온 거예요."
풉.
비웃음을 흘릴 뻔번했다. 나는 간신히 터져 나오려는 비웃음을 참았다.
나와 박수호는 근처에서 한우집에서 고기를 먹었다. 박수호는 구워지는 한우를 보며 연신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마음껏 먹어. 내가 쏜다."
"고마워요, 형. 한우 먹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너 힘든 거 아는 내가 당연히 챙겨줘야지."
"형…"
감동한 박수호가 아련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좀 기분 나빴다. 불판을 뒤집어엎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