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8화 > 1268. 다크문
부르르르르르르.
품 안에 넣어 두었던 회중시계가 진동한다.
신사의 품격을 보이듯 느긋하게 회중시계를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X 인력소의 소장인 로즈였다. 통화를 받았다.
"나다."
-아, 그래. 너겠지. 신사라고 거드럭대더니 정작 이런 부분에서 야만인 같네.
무안함을 느낀 나는 헛기침을 터트렸다.
"일은 끝났다. 보수가 입금되지 않았나?"
-입금은 확인했어. 수수료 100만 크레딧을 제외한 400만 크레딧은 조금 있다가 네 계좌에 입금될 거야.
"겨우 그걸 말하려고 전화했나?"
-의뢰자의 말로는 오염체를 만든 흑마법사의 공방으로 쳐들어갔다며? 지금 어디 있어?
"흑마법사를 처리하고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흑마법사는 이미 죽어 있었고, 악마와 맞닥뜨렸다. 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보고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건 의뢰일도 아니었고, 이미 내 선에서 끝난 일이었다.
-아직 웨이웨이 마을 근처에 있다는 거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이지?"
-의뢰자가 새로운 의뢰를 했어. 의뢰 내용은 바이크 폭주족 프래커로부터 웨이웨이 마을을 구출하는 것.
"폭주족에게 습격받고 있나…."
-평소라면 약탈 정도로 끝났겠지만, 오늘은 좀 달라. 기존의 리더가 죽고 새로운 리더가 탄생한 날이거든. 이건 새로운 리더의 신고식이야. 최악의 경우 1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거야.
프래커 폭주족. 오늘 낮에 습격한 놈들이 틀림없었다.
나는 바이크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의뢰를 수행할 거야? 여력은 있고?
여력은 아슬아슬하다.
악마에게 반격할 때 마나를 좀 많이 사용했다.
현명한 판단은 W구역 쪽으로 도망치는 거다. 보수는 이미 입금됐으니 바이크 폭주족을 상대하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바이크 폭주족 놈들은 내 심기를 건드렸다. 낮에 날 공격한 놈들이니 이참에 정리하고 싶었다.
"보수는 얼마지?"
-800만 크레딧. 꽤 급한 상황이야.
"놓칠 수 없는 보수군."
-의외네.
"뭔 소리지?"
바이크가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 쪽을 바라본다. 마을 주위를 돌아다니는 불빛이 보였다. 폭주족들의 바이크 조명이다. 나는 조명을 끄고 달렸다. 놈들에게 내 위치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이런 상황에선 빼기 마련이거든.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가장 좋은 건 역시 자기 목숨이잖아.
"나는 할만하다고 판단 내렸을 뿐이다."
-아, 그러셔? 행운을 빌어줄게. 열심히 해.
통화가 끊겼다.
나는 회중시계를 품 안에 넣었다. 마을에서 총성이 울린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폭주족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폭주족들은 마을 회관 자체를 박살 내려는 듯 대포를 설치하고 있다.
7명이 모여있다. 광역 마법을 쓰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파이어 레인]
하늘에서 불의 비가 놈들에게 떨어진다. 당황한 놈들이 대포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포탄에 불이 떨어지면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앙!
놈들 전원이 폭발에 휩쓸렸다.
"이런 쉿!"
"마법사다! 저기 마법사가 있다!"
"전 대장을 죽인 놈이잖아! 대장! 저놈은 우리 프래커의 원수입니다!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좋다! 내가 저놈의 목을 따서 전 대장을 원혼을 위로하겠다! 나를 따라라! 끼얏호오오!"
"끼얏호오오오오오!"
대략 20명에 달하는 놈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내 뒤를 쫓는다. 나는 상체를 숙이며 바이크의 속도를 높였다. 최고 속도인 300km/h는 진작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기체 차이군.'
내가 탄 바이크는 샵에서 적당히 빌린 물건이다. 반면에 저놈들은 불법 개조로 떡칠한 바이크다. 성능이 밀리는 건 당연했다.
"그딴 고물로 우리랑 데스 레이스를 벌이겠다고?"
"그 배짱만큼은 인정해주마, 마법사!"
"끼야앗호! 데스 레이스다!!"
미사일과 총탄이 날아온다. 배리어 덕분에 총탄은 그럭저럭 버틸 만 한데, 미사일은 성가시다.
[그래비티]
날아오던 미사일과 총탄이 지면에 처박힌다. 미사일이 폭발을 일으켰고 폭주족 2명이 휩쓸려 날아갔다. 놀랍게도 그들은 족히 20m 높이로 떠올랐다가 지면에 떨어졌다. 목이 절망적인 방향으로 꺾였다. 즉사였다.
"멍청한 놈들!"
"우리가 네놈들 몫까지 달려주마!"
"먼저 지옥에서 달리고 있어라! 끼야아아아앗호!"
바이크 폭주족의 사기는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동료의 피를 보고 더욱 흥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놈에게 따라잡혔다. 내 오른편에 바짝 붙은 놈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쇠지렛대를 들어 올렸다.
"안녕하신가, 마법사 양반! 내 예쁜이가 보이지? 이제부터 이 예쁜이로 네놈의 소중한 바이크에 쑤셔 넣을 거야! 바이크를 강간하는 거라고!!"
"미친놈."
놈이 손에 쥔 쇠지렛대가 붉게 빛났다. 오러다.
"흐, 흐흐흐하하하하하!"
광소를 흘린 놈이 오러가 담긴 쇠지렛대를 바이크에 쑤시려는 순간이었다. 타앙! 총성이 울러퍼지고 놈의 머리가 터졌다.
놈의 바이크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콰앙! 뒤편에서 바이크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 쪽에서 날아온 저격이다. …막스 인가.'
이어서 탄환이 날아와 나를 엄호한다. 아쉽게도 첫발처럼 명중하지 못했다.
'엄호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다.'
나는 숨을 삼켰다.
지금 마나의 양으로 봐서 앞으로 발동할 수 있는 마법은 2~3개가 전부다. 반면, 내 뒤를 쫓는 폭주족은 여전히 20명에 가깝다.
'.…저기는.'
바위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울퉁불퉁한 바위가 가득한 곳. 지금 속도로 저곳에서 내달란린다면… 십중팔구 바위에 부딪혀 죽을 것이다.
나는 바이크의 방향을 바위 지대로 틀었다.
"아앙? 갑자기 미친 거냐?"
놀란 폭주족들이 주춤하며 속도를 약간 낮췄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데스 레이스니, 뭐니 떠들어 대더니 막상 죽음이 가까워지니 쫄았나?"
도발은 아주 잘 먹혀들었다.
"쫄아? 누가 쫄아?"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끼, 끼얏호오오!"
바위 지대를 향해 질주한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두 개의 커다란 바위 사이로 들어가자마자 찰나를 사용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이대로 정면으로 계속 달리면 바위에 부딪혀 죽는다. 오른쪽과 왼쪽. 길이 있는 쪽은 왼쪽이었다. 운전대를 있는 힘껏 왼쪽으로 틀었다. 바이크가 내지르는 비명에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콰앙! 쾅! 쾅!
폭발 소리가 들렸다. 폭주족들이 벽에 부딪혀 바이크와 함께 유명을 달리하는 소리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찰나를 사용해 연속해서 방향을 틀었다.
쾅! 쾅쾅쾅!
방향을 한 번 틀 때마다 푹주족들이 죽어 나갔고, 졸지에는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폭주족의 대장이었다. 놈은 광기에 찬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재밌네! 재밌다고! 끝내주게 재밌어!!"
마지막 고비가 보였다. 커다란 바위가 정면을 막고 있다. 좌우도 바위로 막혀 있어서 방향을 틀어도 결국 바위에 부딪힌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레비테이션]
바이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찰나 덕분에 어렵지 않게 타이밍을 맞췄다. 바이크는 바위 위를 가뿐히 넘어갔다.
슬쩍 뒤로 돌아본다. 폭주족 대장은 온몸에 오러를 휘감고 바위에 부딪혔다.
콰앙!
부서지는 바위 조각들을 밟으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내게 들이받으려고 한다.
"하하하! 즐거운 주행이었다! 이제 그만 죽어라! 데스 차징!"
놈의 바이크 정면에 날카로운 가시가 철컹 튀어나왔다.
"멍청하군. 너무 흥분해서 느낀 못했나."
"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밤하늘에는 커다란 마법진 하나가 구름 사이에 그려져 있었다. 바위 지대에 들어설 때부터 준비해둔 마법진이었다. 푸른 마법진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압축된 번개가 번뜩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폭주족의 주행 속도였다. 아무리 나라도 생명을 도외시하고 질주하는 놈들을 정확히 맞히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공중에 부유한 지금, 바이크의 바퀴 회전이 의미 없어진 지금은 다르다.
[썬더 볼트]
초속 100,000km의 번개가 놈에게 떨어졌다.
놈은 지면에 내려꽂혀 폭발했다.
나는 지면에 생긴 크레이터를 확인하고 유유히 웨이웨이 마을로 이동했다.
'음속이 초속 340m였나? 그 번개는 대체 얼마나 빠른 거야.'
속도만 따지면 번개가 무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단순한 번개는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번개를 다루는 이상 한계가 생기고 만다. 썬더 볼트의 경우 3급 이상의 마나 친화력만 있어도 전조를 느낄 수 있다.
'결국 사람이 다루는 번개는 빠른 총알이라고 보면 되지.'
음속이나, 뇌속이나 인간으로서 그 빠르기를 체감하는 건 어렵다.
"도와줘서 고맙소!"
막스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를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나는 손을 휘저으며 그들의 인사를 막았다.
"의뢰를 수생했을 뿐이다."
“그래도 고맙소. 보통은 이런 상황이 오면 나 몰라라 떠나길 마련이오. 당신은 그러지 않았지."
"그놈들과는 나름의 악연도 있어서 상대했을 뿐이다."
"하하. 그렇소?"
막스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니 그냥 좋게 좋게 가기로 했다.
"바이크 연료가 아슬아슬하다. 연료를 구매하고 싶은데…… 얼마지?"
"하하. 무료로 채워드리겠소. 우리의 골칫거리를 치워줬는데 그 정도도 못 할까. 오늘은 자고 가시오. 내일은 아침은 성대하게 차려주겠소."
"흐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연료를 채워줄 테니 바이크를 끌고 오시오."
그를 따라갔다. 막스는 바이크의 연료를 가득 채워줬다.
"한잔하시겠소? 내 비장의 술을 대접해 드리리다. 설마 한 잔 먹고 취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은 하지 마시오. 지나가던 개도안 믿을 거요."
"…한 잔 정도면 괜찮겠지."
"잠시만 기다리시오."
막스가 술병과 술잔을 가져왔다. 술병의 술은 반쯤 남아 있었다.
“아주 귀한 술이오. 마지막으로 먹은 게 아마 20년 전… 내가 보안관으로 취임했을 때군."
"너무 오래되지 않았나?"
"가문 비장의 술이오. 한 잔만 마시시오. 더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요."
"…무슨 술이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뱀술이오. 어떤 뱀인지는 나도 모르오."
나는 술잔에 찬 황금빛 액체를 보다가 한입에 털어 넣었다.
차가웠다.
정신이 번쩍 들다 못해 뼛속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리고 한기는 활력이 되었다. 마나 로드가 반응한다.
"…마나가 조금 늘었군. 영약이었나."
탐욕스러운 눈으로 술병을 바라봤다.
"그렇게 봐도 안 줄 거요. 그리고 두 잔째부터는 효과가 없소."
"그런 영약들은 흔하지. 고맙다. 덕분에 귀한 걸 먹었어."
"조심히 가시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집에 도착했다.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588274.
삑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흠칫 놀랐다. 현관에 유리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사부터 드시겠나요? 목욕부터 하시겠나요? 아니면, 저.부.터?"
유리아가 요염하게 웃으며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렸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음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허벅지 사이로 끈적한 애액 한 줄기가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이, 일단."
"네에."
"목욕부터."
"…잘못 들었습니다?"
"내 몸은 땀과 먼지로 더러워진 상태야. 이 상태로 널 안고 싶지 않아."
유리아가 놀란 듯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했네요. 목욕 시중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주인님."
뚝. 뚜욱.
가까운 곳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