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6화 > 1266. 다크문
쿠웅. 쿵…
목책 너머로 성인 남성을 10배 이상 키워놓은 듯한 존재가 다가온다. 괴물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땅에서는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오우거를 베이스로 한 오염체다. 그 피부는 지저분한 주황색이고 오른팔이 지나칠 정도로 컸다. 자세히 보면 오른팔에 철심 같은 게 박혀 있음을 볼 수 있다.
4급 오염체.
내가 토벌해야 할 놈이었다.
"언제봐도 끔찍한 놈이군."
내 옆에서 막스가 투덜거렸다.
"굳이 네가 내 옆에 있을 필요는 없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 회관에서 기다려라."
"오해하지 마시오. 당신을 믿지 않는 게 아니오. 나는 저 빌어먹을 놈이 죽는 꼴을 보고 싶소.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 것을 맹세할 테니 부디 꺼지란 말은 하지 마시오."
그와의 실랑이는 귀찮았기에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날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다시 4급 오염체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오염체는 폐기물과 오염물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다크 문의 영향을 받아 변이를 일으킨 놈들을 말한다.
오염체의 가장 큰 특징은 꼭 생물이 아니어도 오염체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시체나 폐기물과 고물이 뭉쳐져 오염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지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작은 짐승도 오염체보다는 지능이 높을 것이다. 오염체의 지능은 좀비 수준이라 보면 된다.
"4급 오염체는 언제 나타난 거지?"
"사흘 전에 처음 나타났소. 그때는 어떤 대비도 못 했던지라… 마을 사람 두 명이 놈에게 먹혔소. 새벽이 되니 보란 듯이 마을 앞에 똥을 싸고 가더군 빌어먹을 그 똥 속에 내 술친구가 섞여 있었소!"
관심 없었다. 나는 달리 물었다.
"그 이후로 저놈을 상대로 어떻게 대처했지?"
".…저놈은 힘이 엄청나게 강하긴 하나, 둔하고 멍청하오. 바이크를 타고 놈을 유인했소. 마을 밖으로는 나가려 하지 않기에 마을 주위를 밤새도록 빙글빙글 돌아야 했소. 그러다 해가 뜨면 땅속으로 들어가더군.
"직접 없애버릴 생각은 안 했나?""
"왜 안 했겠소. 총알은 물론이고 폭탄까지 통하지 않았소.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지."
"힘이 내구성이 엄청나다는 거군. 알겠다."
나는 바이크를 타고 오염체를 향해 달려갔다. 막스가 내 뒤를 따른다.
"어떻게 할 것이오?"
"우선은… 태워봐야지."
[파이어 볼]
화염구가 붉은 꼬리를 밤하늘에 수놓으며 오염체에게 날아간다. 화염구가 오염체의 커다란 몸뚱이에 명중하며 폭발한다.
시뻘건 불꽃이 오염체의 몸을 뒤덮는다.
오염체는 몸이 불타는 데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다.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오염체의 상태를 확인했다. 불꽃은 타오르고 있으나, 정작 오염체의 몸을 조금도 태우지 못하고 있다.
밤바람이 불어오고 불꽃이 점점 사그라들더니 사라졌다.
'화염 내성이나 마법 내성 쪽은 아니군. 그냥 불에 타는 재질이 아닌 거다.'
[격류]
내 발밑에서 대량의 물이 나타나 오염체를 향해 날아갔다. 오염체의 몸을 흠뻑 적신다.
[아이스 스피어]
얼음창이 오염체의 가슴에 명중했다. 냉기가 터지며 오염체의 몸을 뒤덮는다.
쩌저저정!
순식간에 오염체의 몸이 얼어붙는다.
오염체는 아무렇지 않게 다리를 들어 앞으로 걸었다. 얼음이 부서져 사방에 흩날렸다. 불도 안 되고, 얼음도 안 된다.
"좀 더 강력한 마법은 없소? 저놈을 단번에 없애버릴 위력의 마법 말이오!"
"시끄럽다. 재촉하지 마라."
염력으로 바닥을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물질 변환]
돌멩이를 금속으로 바꾸고 푸른색 마법진을 그린다. 각도를 조정하는 것을 끝으로 마법의 발동을 끝마쳤다.
[레일건]
굉음과 함께 레일건이 발사되었다. 소리의 속도를 아득히 넘어선 탄환이 오염체의 복부를 꿰뚫고 지나갔다. 오염체의 복부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오, 오오오!"
유의미한 타격에 막스가 감탄했다.
반면, 나는 굳은 얼굴로 오염체를 노려봤다.
"골때리는 군."
"왜 그렇소? 저건 이미 끝난 거나 다를 바 없지 않소."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잘 봐라."
"회복하고 있다고…?! 이 무슨 터무니없는…"
오염체의 뻥 뚫린 복부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앞으로 3분 정도면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회복할 것이다.
"더 강력한 마법은 없소?!"
"없다."
"…우리 망한 거요?"
망연자실한 막스를 뒤로하고 바이크를 몰아 오염체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오염체가 풍기는 악취가 느껴졌다.
쿵쿵쿵· 오염체가 내게 다가온다.
'놈이 가진 건 초회복 특성이 확실하다.'
원작 게임에서도 오염체가 가지는 특성 중 하나다. 정통 공략법은 회복력을 저하하는 스킬, 아이템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들마저 없다면 답은 하나다.
‘딜찍누. 압도적인 화력으로 회복하기 전에 조져버리면 돼.'
레일건이 통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멩이 3개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물질 변환]
돌멩이가 탄환으로 바뀐다. 나는 이어 3개의 마법진을 완성했다.
[레일건]
3개의 레일건이 동시에 발사된다.
어두운 공간이 번쩍이고, 후폭풍이 바닥을 휩쓸었다. 동시에 오염체의 몸이 박살 나 지상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오오. 엄청나군. 이게 5급 마법사의 마법인가! 의뢰 보수 500만 크레딧은 약속된 계좌로 입금하겠소!"
떠드는 막스를 뒤로하고 속성검으로 오염체의 시체를 뒤적거렸다.
"…혹시 시체를 가지고 노는 취미라도 있소?"
"흑마법의 흔적이 보인다."
"…무슨 뜻이오?"
"여길 봐라. 내장 안쪽에 흑마법진의 흔적이 있다."
"내 눈에는 검은 반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소만…"
"눈썰미가 없군. 이 내장들을 봐라. 흑마법의 술식을 쪼개서 내장 하나, 하나에 새겨 놓았다. 이 내장들이 호환하면 흑마법진이 완성되도록."
"그렇게 말해도 난 마법사가 아니라 잘 모르겠소. 다만, 이 일에 흑마법사가 관련된 건 알겠소. 흑마법진은 무슨 효과를 가지고 있는 거요?"
"모른다."
막스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내장이 심하게 손상됐다. 흑마법진도 멀쩡해야 해석할 수 있는 법이다. 이래서는 흑마법진이 있었다는 사실만 추측할 뿐이다."
아무리 나라도 흑마법진의 흔적만으로 그게 어떤 흑마법진인지 알 수는 없었다.
"젠장. 흑마법사가 우릴 노리고 있다는 말이오? 의회에 보고하고 지원이 최대한 빨리 오기를 바라야 하나…"
"흥미가 생겼다. 흑마법사는 내가 추적한다."
흑마법사는 아마도 오염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냈을 것이다. 오염체를 대충 풀어 놓은 걸 보면 연구자료를 쌓으려고 했던게 틀림없다. 나는 흑마법사의 연구자료와 흑마법에 관심이 생겼다.
덤으로 흑마법사를 죽이고 다크 홀을 척출할 기회다. 보너스가 눈앞에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흑마법사가 어디 있는지 아시오?"
"네가 말하지 않았나. 오염체는 땅에서 나오고, 땅으로 돌아간다고. 아마 흑마법사는 지하에 공방을 차렸겠지."
"위험한 거 아니오?"
"위험하겠지."
나는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버로드 앰플이 느껴졌다. 만일의 사태 때는 오버로드 앰플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갈 거다."
"…왜? 왜 굳이 위험을 자초하는 거요?"
"위험을 자초하는 게 아니라 기회를 잡으려는 거다."
난 제법 자신 있었다.
5급 이상의 흑마법사라면, 굳이 이런 곳에 공방을 차릴 이유가 없다. 오우거 오염체도 감당하지 못하기에 밖으로 내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넌 마을로 돌아가라."
"그러겠소. 이 이상 당신을 따라가봤자 발목을 잡을 게 뻔하니… 돌아가서 마을 사람들을 지키겠소. 그리고… 고맙소."
"네게 감사 인사를 받을 이유는 없다. 나는 내가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래도 고맙소. 그냥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오."
막스는 바이크를 타고 마을로 돌아갔다.
나는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땅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마법을 사용한다.
[디텍션]
마나의 파동이 초음파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려는 찰나, 서쪽 끄트머리에서 지하 공간의 존재가 느껴졌다. 바로 움직였다. 바이크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갔다.
[디텍션]
확실하게 느껴졌다. 지하에 공간이 느껴졌다. 흑마법사의 위치도 찾아내려고 했는데.… 결계가 있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디그 아웃]
땅바닥이 움푹 파인다. 디그 아웃 마법을 3번 더 사용한 끝에 지하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하 공간은 어둡고 조용했다.
[라이트]
머리 위에 빛의 구체를 만들고 정면으로 걸었다. 물론 탐지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중하게 나아가다가 멈칫했다. 바로 앞에 보이지 않는 벽이 내 발걸음을 막아선 것이다.
'결계군. 결계 자체는 수준이 낮아. 기껏해야 3급.'
손으로 결계를 조심스레 만졌다. 마나를 살짝 흘리며 결계의 술식을 해석한다.
'쉽군. 약간 비틀어 놓은 술식만 제대로 파헤치면….'
지이이잉.
결계가 갈라졌다. 나는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던 통로에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사람의 발자국, 사람이 버려 놓은 듯한 쓰레기 등등.
'아마 내가 침입했다는 걸 눈치챘겠지. 날 보자마자 공격할 테니 배리어로 막고… 일렉트릭 필드로 공간을 장악한 뒤에…'
흑마법사와의 전투를 상상하며 걸을 때였다. 피 냄새가 느껴졌다. 신선하지 않다. 부패한 냄새가 섞여 있다. 최소 사흘은 된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괴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전투 경험을 쌓다 보면, 괴물과 인간의 피 냄새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된다. 그리고 지금 맡아지는 피 냄새는 인간의 것이었다.
동공이 나왔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책과 실험 도구들을 보니 여기가 흑마법사의 공방 중심으로 보였다.
흑마법사를 찾았다. 실험대 위에 죽어 있었다. 그 시체의 복부는 텅 비어 있었다. 그 시체 위에 한 마리의 괴물이 앉아 있었다. 박쥐 날개, 원숭이의 몸, 염소의 머리를 한 괴물이다.
몬스터가 아니다.
몬스터라고 하기엔 너무 이질적이었다. 다른 무언가다.
나를 본 괴물은 염소 머리를 180도 돌렸다.
"인간? 뭐지? 친숙함이 느껴진다. 계약자냐?"
그 말에 놈의 정체를 직감한 나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악마 비오다. 너는?"
"악마 따위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다."
"응. 나랑 계약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