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5화 > 1265. 다크문
Z구역에 도착했다.
Z구역은 드넓은 황무지, 그 자체였다.
다른 어떤 구역보다 넓은 Z구역은 도시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낡은 건물과 더러운 골목으로 가득한 X구역은 그래도 도시 분위기는 가지고 있었다.
Z구역은 그저 네오 런던의 영토에 포함된 땅일 뿐이다.
네오 런던은 Z구역의 관리를 거의 포기하고 있다. 네오 런던의 법은 이 구역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Z구역은 무법지대다.
'네오 런던 시민증을 가지지 못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곳이 여기 Z구역이라고 하지.'
그래도 영토라고 네오 런던은 Z구역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는 하려고 한다. 행정기관도 존재한다.
'문제는 그 행정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지.'
나는 W구역에서 빌린 바이크를 탔다. 네오 런던은 기본적으로 탈것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Z구역은 예외였다.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황무지를 달렸다. 넓은 Z구역에는 탈것이 필수였다.
그리고 치안도 개판이었다. 황무지를 달린 지 15분 만에 바이크 폭주족들이 나타나 내 뒤를 따른다. 그들의 목적은 당연히 내 주머니를 털어먹는 것에 있다.
"끼얏호!"
"감히 우리 구역을 겁도 없이 혼자 다닌다고?!"
"당장 멈춰서라, 이 또라이 자식아!”
"크크. 불붙은 망아지처럼 밟는구먼. 그렇게 우리가 두렵나?!"
"밟아라, 밟아! 끼얏호오오오!"
폭주족들이 뒤로 따라붙는다.
'성가시게 구는군.'
폭주족은 갱스터처럼 조직적이지 않지만, 하루살이처럼 사는 미친놈들이 많았다.
등 뒤에서 총알 수십 발이 날아와 배리어에 튕겨 나갔다. 배리어가 출렁인다.
'5급 배리어가 고작 총탄 수십 발에 반응한다? 마탄이군.'
나는 배리어를 하나 더 중첩했다.
"끼얏호!! 마법사잖아! 두둑하게 털 수 있겠어!"
"마법사라면 우리가 도망칠 줄 아나?!"
"뭐라고 해도 여긴 우리 구역이다!!"
폭주족들의 진형에 변화가 생긴다. 서로 뭉치지 않고 거리를 벌려 마법에 대비하는 것이다. 기민한 행동을 보니 전투 경험이 많은 놈들인 것 같았다.
[에어 붐]
쾅!
공기를 폭발시켜 충격파를 일으켰다. 3급 마법인데 보이지 않고, 위력도 괜찮은 편이라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마법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 에어 붐은 나를 실망시켰다. 폭주족 중 단 한 명도 에어 붐에 당하지 않은 것이다. 에어 붐이 일어나기 전에 마나 반응으로 에어 붐을 미리 감지 한 것이다.
'에어 붐이 발동하기 전에 미리 반응하고 바이크를 돌렸다. 에어 붐을 피하려면 최소 2급 이상의 마나 친화력을 갖춰야 하는데…. 저놈들 전원이 2급 마나 친화력을 가졌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허나 그것보다는 불법 전투 마약을 투여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멈추라는 말이 안 들리나? 하여간 마법사란 놈들은 말을 더럽게 안 듣는군!"
폭주족 중 하나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바닥 중심에서 동그란 구멍이 났다. 구멍 안에는 회색의 기계 부품들이 촤르륵 돌아간다.
피슈우웅!
와이어가 내게 날아와 배리어에 닿았다. 배리어에 튕겨 나갈 거라 생각했으나, 와이어는 멈추지 않고 배리어를 칭칭 감쌌다. 와이어에서 알 수 없는 물질이 흘러나와 배리어를 녹이기 시작한다.
"켈켈. 안티 배리어 산성액이다! 네놈 배리어가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쉽게 녹여버릴 수 있지!"
"거참, 설명 고맙군."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느려진 세계에서 여유롭게 술식을 계산했다.
[스파크]
녹아내리는 배리어에 전격 속성을 인챈트했다. 배리어를 녹이던 와이어를 타고 전류가 흐른다.
"끼에에에에에엑?!"
와이어를 통해 감전당한 폭주족이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고꾸라졌다.
"대장이 당했다!"
"이런 젠장! 그럼 이제 누가 대장이지?!"
"당연히 부대장인 내가 대장이다!"
"웃기지 마라! 너 같은 좆밥을 대장으로 인정하겠냐!"
나를 쫓던 폭주족들은 저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병신 새끼들.'
바이크는 쭉쭉 앞으로 나아간다. 나를 쫓던 폭주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나를 건든 폭주족들을 처리하고 싶으나, 4급 오염체를 상대할 때를 대비해 마나를 아껴야 한다.
황무지를 내달리며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딸칵. 시계 뚜껑을 연다. 분침이 은은하게 빛나며 오른쪽을 가리켰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렸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웨이웨이라는 마을이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서부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Z구역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마을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카우보이 복장이고 허리춤에는 리볼버를 무장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선 나는 바이크에서 내렸다.
일련의 무리가 입구로 걸어온다. 그 중심에는 카우보이를 모자를 쓰고 번쩍이는 보안관 뱃지를 착용한 남자가 있었다. 뱃지에는 '네오 런던'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네오 런던이 인정한 보안관. 즉, 공권력을 등에 입은 경찰이었다.
그는 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이었다. 등에는 머스킷 총, 허리춤에는 4자루의 리볼버를 무장했다. 그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요?"
묵직한 목소리였다.
"X 인력소에서 나왔다."
“아, 여기로 온 마법사인 모양이군. 5급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너무 젊어서 깜짝 놀랐소."
"많이들 놀라더군."
"몇 살이오?"
"알아서 뭐 하게? 미성년자 검열이라도 하려고?"
"거, 까다롭게 구는구먼. 그냥 한 번 물어볼 수 있지 않소?"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이를 먹었다. 겉 모습에 집착하지 마라."
주위를 둘러봤다. 보안관을 포함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의심이 가득하다.
물론, 그들이 날 의심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었다. 나는 의뢰를 수행하고 돈만 받으면 된다.
"오염체는 어디에 있지?"
"동쪽 어딘가에 있을 것이오."
"마을 주위를 어슬렁거린다더니… 떠난 건가? 설마 지금 와서 의뢰를 취소하진 않겠지?"
"놈은 사람의 피 맛을 봤소. 한 번 피 맛을 봤으니 결코 우리를 놓치지 않을 것이오. 놈에겐 우리 마을은 음식 가득한 냉장고처럼 보일 테니."
"밤이 될 때까지 음. 최소 3시간은 대기해야 하나."
"5시간은 기다려야 할 거요. 거처로 안내해주겠소. 따라오시오. 다른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저녁이 되면 마을 회관으로 모이시오!"
보안관이 외쳤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잘 따랐다. 그를 존중하는 게 느껴졌다.
그가 내게 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요청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손을 잡고 싶지 않았지만, 신사답게 행동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웨이웨이 마을의 보안관인 막스 맥심이오."
"X 인력소의 5급 마법사 유진 마이어다."
"흐음. 가까이서 봐도 5급 마법사인지는 잘 모르겠군."
"네 머리에 썬더 볼트를 꽂아주면 믿겠나?"
"왜 그렇게 날카롭게 구는 거요? 우리가 당신을 제대로 환영하지 못한 건 알고 있소만…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는 없잖소."
"…미안하다. 여기로오는 중에 폭주족을 만나서 기분이 안 좋다."
"그 미친놈들을 만났다니… 이해하겠소."
보안관이 앞장서서 걸어갔고, 나는 바이크를 끌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보다시피 허름한 집이오만, 이해해 주시오. 마땅한 집이 없소."
“어차피 몇 시간만 머물 집이다."
바이크는 벽에 세워 놓고 낡은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근데 그 복장은 불편하지 않으시오? 내게 안 쓰는 옷이 몇 벌 있소. 원한다면 빌려주겠소."
"난 이 복장이 편해. 다른 할 일은 없나?"
"내가 방해되는 모양이군. 나는 지금 일하는 중이오."
날 주시하는 게 일이란 뜻이었다. 성가시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마을 입장에선 나는 신뢰할 수 없는 외지인이니까.
"일은 할 만하오?"
"뭐?"
"댁이 하는 일 말이오. 해결사, 인부, 프린새, 용병 등으로 불린다지? 수익은 어느 정도 되오?"
“이쪽 일에 흥미 있나?"
"내 나이가 벌써 48이오. 내후년이면 이 자랑스러운 뱃지를 내려놓아야 하지."
"50에 퇴직한다고? 너무 이르지 않나?"
"어쩔 수 없소. 보안관은 50이 되면 떠나야 하오. 그게 Z구역의 규칙이오."
"…내가 하는 일의 수익은 실력에 따라 다르다. 항상 좋은 의뢰만 있는 것도 아니니 운도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하지."
"당신은 5급 마법사인데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요? 당신에겐 더 안정적인 일자리가 많을 텐데."
"이 일만큼 떼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
"…X 인력소는 괜찮은 곳이오? 네오 런던의 다른 중개업자들보다 수수료를 많이 받는다고 들었소. 그래서 다른 곳보다 경쟁력이 좀 떨어진다던데."
"수수료가 높으면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X 인력소는 자유가 보장된다. 발을 빼고 싶을 때 발을 빼도 되지. 그리고.…."
"그리고?"
나는 고민했다. 막스에게 이런 말까지 해줘야 하나 싶었다.
무료했기에 그냥 말하기로 했다.
"X 인력소 소장은 네오 런던 상부와 끈이 있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건 대단하군."
막스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머리를 푹 숙이고는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나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더럽게 시간이 안 가는군.'
"저녁 식사는 내가 쏘겠소. 페러 부인이 비프 스튜를 아주 잘한다오."
"됐다. 저녁은 챙겨왔다."
"설마 영양 캡슐이나 전투 식량 같은 거요? 그딴건 안 먹는 편이 좋을 텐데."
"도시락이다."
그가 묘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바이크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유리아가 싸준 도시락이다. 유리아의 요리에 맛 들인 나는 다른 요리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도시락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오픈했다.
도시락을 여니 그 안에 보지가 가득했다. 보지 도시락이었다.
'…아니. 잠깐. 내가 잘못 봤군.'
보지가 아니라 전복구이였다. 나는 포크로 전복을 찍어 입 안에 넣었다. 고소하고 쫄깃한 전복의 맛이 느껴졌다. 전복을 씹을수록 입가가 풀어진다. 그러고 보니 전복이 정력에도 좋다는 말이 떠오른다.
“참 맛있게도 드시는군. 한 입만 주면 안 되겠소?"
보지. 아니, 전복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도시락 구석에 있는 야채 한 조각을 막스에게 던졌다. 막스는 야채 조각을 손가락을 잡고는 혀를 찼다.
"보기와 달리 많이 쪼잔하시구만."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라."
막스가 야채를 입에 넣었다. 그의 두 눈이 번쩍 떠진다.
"오, 오오오! 한 입만! 전복 하나만 맛보게 해주시오!"
[배리어]
나는 배리어를 두들기는 막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전복 하나를 찍어 입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