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2화 > 1262. 다크문
마차가 X구역에 들어섰다. 나는 마차 창문으로 바깥을 쳐다봤다.
가장 치안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곳답게 분위기가 무척 어둡다. 부서진 도로, 허물어진 벽, 기동을 멈춘 공장.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에는 녹슨 냄새와 바다 냄새가 섞여 있다.
아주 오래전. X구역은 활발한 구역이었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물선이 들락거렸고, X구역에서 일하는 인부도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D 구역에 새로운 항구가 생기면서 X구역은 몰락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이 이상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마부가 말했다. 긴장한 목소리에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X구역은 네오 런던에서 치안이 좋지 않은 곳으로 손꼽히는 구역이다.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갔다간 피를 보기 십상이다.
나는 항의하는 대신 회중시계형 스마트 워치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빠르게 결제했다.
"이해한다.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군. 돌아갈 때는 다른 마차를 이용하지."
"X구역으로 올 마차는 없을 겁니다. W구역에서 마차를 부르십시오."
"조언 고맙다. 도움이 되는군."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차가 떠났다.
나는 원작 게임의 지식을 X구역의 길거리를 걸었다. 부서진 도로가 조금 불편했다.
'유리아의 말대로 정장의 브랜드를 바꿨을 뿐인데 네오 런던 시민들이 날 좀 더 존중하는군.'
유리아는 대단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를 해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기에 무시하고 걸었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이 구역에서 유일하게 밝은 하늘도 골목길에선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골목길을 한참 걸었다. 이 골목길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이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내 뒤를 미행하고 있던 놈이었다.
"뭐지?"
"인력소를 찾아온 게 아닌가? 안내해주지. 따라와라."
그를 따라간다. 이리저리 쫓아간 끝에 'X 인력소' 간판이 걸린 건물에 도착했다. 남자는 망설임 없이 인력소 안으로 들어갔다. 인력소 1층에는 의자와 테이블 등이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술병을 보면 여기가 주점인지, 인력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테이블에 앞에 앉아 있는 몇몇 남자들이 나를 조용히 주시하며 경계한다.
"로즈! 한 놈 데려왔다! 손님인지. 아니면 인부인지는 모른다! 꽤 잘 차려입은 신사다!"
나를 안내해준 남자가 소리쳤다.
"2층 사무실로 올라와! 마이클! 넌 1층에 있고."
2층에서 여자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목청 한번 끝내주게 좋은 여자다.
"경고하는데 사고 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올라가 봐."
나는 이 건방진 놈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마법사의 냉철한 이성으로 충동을 참았다. 아쉬운 건 나였다. 그리고 남자의 저 정도 태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안내비는 얼마지?"
"나중에 술이나 한병사."
고개를 끄덕여주고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3개 나왔다. 그중에 사무실이라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간다.
따닥, 따다다다닥.
한 여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묶은 검은색 헤어다. 와인색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입은 여자다. 오른팔은 기계 팔이며 가슴은 꽤 컸다. 블라우스의 윗부분 단추 2개가 풀려있어서 가슴골이 보였다. 검은색 브래지어도 살짝 보였다. 오른쪽 목에는 검은색 장미 문신이 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를 가리켰다.
"편하게 앉으세요. 저희 인력소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일거리가 필요하다."
"뭐야, 손님이 아니라 인부였어?"
노골적으로 실망한 그녀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킨다. 정수기와 인스턴트 커피가 있었다.
"인부는 셀프야. 알아서 먹어."
"싸구려는 안 먹는다."
"아, 그러셔. 대단하신 분 납시었네."
타타타타타타탁!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경쾌하다.
나는 그녀를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앉았다.
네오 런던에서 사업을 하려면 신사가 되어야 한다. 설령 그게 겉보기에 불과할지라도.
10분 동안 이어진 침묵 속에서 로즈가 먼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내게 말했다.
"저기 말이야. 우리 인력소는 신사가 할만한 일은 없어. 애초에 신사는 이런 저급한 노동을 하지 않아."
"여기가 단순히 인부를 파견하는 인력소가 아니란 건 알고 있다."
"뭐,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으니 부정하진 않을게. 근데 난 아무에게나 의뢰를 중개해주지 않아. 추천서라도 있어?"
"없다."
"좋네. 신뢰도가 확 떨어졌어. 중개는 신뢰가 바탕이어야 해. 내가 당신에게 의뢰를 중개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 봐."
"너한테도 확실한 실력을 가진 일꾼이 필요할 텐데."
"난 당신을 처음 봐. 내가 당신을 처음 본다는 뜻은, 당신이 런던 루키라는 거지. 누가 루키를 믿고 같이 일하겠어."
"5급 마법사."
"뭐?"
"5급 마법사다. 신뢰는 차차 쌓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정말이야? 못 믿겠는데."
로즈가 가늘게 눈을 뜨고 날 바라봤다.
나는 아스트랄을 개방했다. 내 존재감이 한순간에 강렬해졌다. 로즈는 기계 팔로 책상을 꽉 쥐었다.
"…5급인지. 4급인지 모르겠지만,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겠어. 이름이 뭐야?"
"유진 마이어."
"나이랑 거주지는?"
“그런 것도 말해야 하나?"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우리 인력소를 찾아온 이유는? 이건 꼭 말해야 할 거야."
"5급 마법사가 제 발로 인력소를 찾아온 게 안 믿기나 모양이군."
"장난해? 5급 마법사는 대기업도 원하는 인재야. 당장 네오 원탁 의회를 찾아가서 일을 달라고 하면 거기 공무원들이 아주 기뻐할걸?"
“내가 그런 거랑은 안 맞는 편인지라."
“흐음. 어떤 의뢰를 원해?"
"일단은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의뢰를 원한다."
"꺼리는 일은? 설마 살인은 싫다는 건 아니겠지?"
"살인 의뢰라도 상관없다. 다만, 상전을 모시는 의뢰 같은 건 딱 이쪽에서 거절이다. 그 상전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흐음. 당신이 원하는 건 다른 중개업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이야. 진짜 날 찾아온 이유는 뭐야?"
"다른 업자들과 달리 깊게 간섭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 일을 그만둬도 붙잡지 않는다지?"
"맞아. 우리만큼 인부를 자유롭게 대해주는 곳은 없지. 대신 수수료는 다른 곳보다 비싸. 20%."
다른 곳보다 수수료가 5% 이상 비쌌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로즈의 정체를 알고 있다. X 인력소는 다른 곳보다 훨씬 안전한 곳이다. 비싼 수수료를 감안해도 좋을 만큼.
"원소 마법사지? 주로 사용하는 원소는 어느 계열이야?"
"전격계다. 다른 원소도 그럭저럭 쓴다."
"흐음. 혹시 마탑에서 왔어? 아니면 마도협회?"
"둘 다 아니다."
"말하기 싫다면 됐어. 마침 의뢰가 하나 있긴 한데…. 할래? 발전소에 가서 전격 마법을 써주면 되는 간단한 의뢰야."
어이가 없어 로즈를 빤히 바라봤다. 로즈는 뻔뻔하게 다 식은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인다.
"나보고 1급 마법사들이나 하는 일을 하라고?"
"요즘 전기가 부족하다고 난리야. 기본 5만 크레딧에 전력에 따라 추가 보수를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5만 크레딧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야."
"마법사 자존심 다 구기는군."
"돈 버는데 그딴 자존심은 방해만 될 뿐이야. 안 할 거야? 하기 싫으면 됐어."
"…하겠다. 어디로 가면 되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시한 의뢰부터 시작하는 점은 원작과 똑같았다.
로즈는 내가 일하는 태도를 보고 내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인지 판단하려고 한다.
"W구역의 로우 발전소. 70년 전에 원자력 발전소에서 마나 발전소 바꿨지."
"마나가 부족해졌나?"
"글쎄. 자세한 사정은 나도 몰라. 아마 원탁 의회에서 또 시답잖은 실험을 하겠다고 전기를 끌어다 쓰는 거겠지. 발전소에는 내가 미리 연락해둘 테니 가서 X 인력소에서 왔다고 말해."
"알겠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본 보수인 5만 크레딧. 그녀의 말대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잘 부탁해, 5급 마법사 양반. 네오 런던의 전력 사정은 네게 달렸어!"
로즈는 건물 옥상에 서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를 로즈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그는 로즈가 고용한 탐정이었다.
"일을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러 오셨나?"
"보고를 안 하니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잖아.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로즈는 품에서 망원경을 꺼내 눈에 갖다 댔다. 탐정이 감시하고 있던 낡은 주택을 바라본다.
"왜 사서 고생하는 거야. 적당한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감시하면 되잖아."
"함부로 카메라를 설치하다간 고소당한다."
"…고소당했어?”
"예전에. 100만 크레딧을 물어야 했지."
현재 시각 오전 6시. 날씨는 쌀쌀했다.
"유진 마이어. 3급 시민. 확인해보니 신분은 최근 만들어졌더군."
"최근에 런던에 왔다고 했어. 어디 출신이야?"
"유감스럽게도 밝혀내지는 못했다. 다만, 빌슈타인 코퍼레이션이 신분 제작에 관여했음을 확인했다."
"…제국의 그 빌슈타인? 거물이셨네. 그 외의 다른 건?"
"없다. 너무 깨끗하다. 빌슈타인이 개입했다고 해도 이상할 정도로 깨끗하다."
“깨끗하면 좋지.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다는 거니까. 음?"
주택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나온다. 메이드였다. 빗자루를 든 청은발의 메이드가 정문 주위를 청소했다.
"메이드네. 돈 없다더니 메이드를 고용할 정도로 풍족하시군."
"내 생각엔 돈이 없는 이유가 저 메이드 때문일 것 같군."
"…메이드가 비싼 인력이긴 해. 하지만 그게 5급 마법사가 쩔쩔맬 정도야?"
"메이드는 외모도 많이 따지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저 정도면 아무 능력이 없더라도 달에 수십만 크레딧은 우습게 벌 거다."
"흐음. 5급 마법사랑 아름다운 메이드라….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허업?!"
로즈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망원경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했다.
"로즈? 왜 그러지?"
"…저 메이드와 눈이 마주쳤어."
"재미없는 농담이군. 저기서 여기까지 3km 떨어져 있다. 메이드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그런가?"
"정말 우리 존재는 눈치챘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봐라. 마당 청소에 집중하고 있지 않나."
"그러네. 내가 잘못 본 것 같아."
"로즈. 나는 언제까지 이 지루한 감시를 이어가야 하나?"
"사흘만 더 고생해줘."
로즈는 몸을 뒤로 돌렸다.
유리아를 메이드로 고용한 지 열흘이 지났다.
유리아는 업무에 있어 거의 완벽하지만, 어딘가 빈틈이 있었다.
저번에는 메이드복을 잘못 빠는 바람에 셔츠 한 장만 입고 일했다. 옷을 빌려주거나, 사준다고 해도 반나절만 이러면 된다고 듣지 않았다. 나는 신사답게 행동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유리아는 의외로 허술한 부분이 있었다. 청소를 할때 치마가 뒤집혀서 엉덩이를 드러낸다거나, 보기 민망한 청소를 한다거나. 요리를 하다가 물에 흠뻑 젖어 몸매를 은근히 드러낸다거나.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 방을 착각해 내 침대에 들어와 잠을 잔다. 본인 말로는 화장실에서 방으로 돌아갈 때 무심코 내 방에 들어와 잔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게 사과했지만, 나는 딱히 나쁘지 않았다.
유리아는 방문을 잘 닫지 않는다. 어렸을 때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몰라도 그녀는 항상 방문을 조금씩 열어둔다. 다행히 현관문과 창문은 철저하게 관리한다.
문제는 화장실 문도 닫지 않아서 무심코 그녀가 볼일을 보고 있을 때 내가 들어가 민망한 상황이 벌어진 적 있었다.
그리고 사흘 전에는 방을 지나가다가 그녀의 자위를 보고 말았다. 자위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자위는 무척음란했다. 침대에 누워 하반신을 위로 올리고 손으로 보지를 마구 문대는 자위. 나는 숨을 죽이며 그녀의 자위를 지켜봤다.
그 외에도 이상하게 유리아와는 야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요즘에는 조금만 자극적이어도 자지가 발기해서 곤란했다. 창관에라도 찾아가 성욕을 풀어야 하나 고민됐다.
그리고 오늘 밤. 잠들었던 나는 묘한 서늘함을 느끼고 눈을 떴다.
보라색 속옷을 입은 유리아가 내 옷을 벗기고 있었다.
"유리아…?!"
"죄송해요, 주인님. 도저히 못 참겠어요. 주인님께서 절 덮쳐주시길 원했는데… 제가 주인님의 자제력을 너무 과소평가한것 같네요."
내가 당황하는 사이 그녀가 내 팬티를 벗겼다.
짝!
발기한 자지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유리아의 뺨을 때렸다.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