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0화 > 1260. 다크문
"나도 침대의 성능을 확인 중이야. 잠깐만 기다려 봐. 침대는 1분 정도 앉아봐야 좋은 침대인지 알 수 있어."
“그런가요. 그럼 저도 옆에 앉아 확인해 보겠습니다."
유리아는 내 옆에 앉았다. 어깨가 은근슬쩍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그녀의 향기가 나를 아찔하게 만든다.
"주인님."
"어, 응?"
"1분 지났습니다."
발기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단단해졌다.
"…으음. 침대의 성능을 잘 모르겠군. 3분 정도 앉아 있어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잠시 침대에 누워봐도 될까요?"
"되고 말고. 네가 사용할 침대잖아?"
유리아가 침대에 누웠다. 아까와 달리 정자세로 누웠다. 힐곳 그녀를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눈이 갔다가, 근엄한 표정으로 시선을 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웃었다. 어쩐지 요염하게 느껴지는 웃음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 상태로 5분이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이후 다른 가구를 보러 갔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가구를 이상하게 확인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가령 의자의 경우 보통 사람은 의자에 앉아 보기 마련인데, 유리아는 의자의 등받이부터 잡아 내구성을 확인한다. 그 후에 팔걸이를 살짝 두들기고는 의자 앞에 쪼그려 앉는다.
"…왜 의자 앞에 쪼그려 앉는 거야?”
도무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좌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어요."
"어때? 만족스러워?"
"네,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네요."
책상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모서리부터 잡고 그립감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이렇게 앉으면 아슬아슬하게 발이 닿지 않아요."
"책상에 그런 점이 중요할까?”
“제겐 중요해요. 이렇게 앉으면 튼튼함을 알 수 있거든요."
"내구성은 중요하지."
옷장과 오픈장을 구매한 뒤에야 가구 가게를 나설 수 있었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유리아와의 쇼핑은 당황스럽긴 했으나, 무척 즐거웠다.
마차 택시를 타고 그녀와 함께 귀가했다.
"여기가…"
"좀 부끄럽네. 오래된 집이야. 크지도 않고. 여기저기 부족한 것들이 많아."
"정취가 느껴지는 훌륭한 집입니다. 그리고 집은 관리하기 나름이지요."
나는 검은색 철 울타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철컥. 문이 열린다.
"주인님. 제게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우리 집 메이드에게 안 가르쳐 줄 수는 없지."
바로 비밀번호를 말하려는데 유리아가 내게 바싹 몸을 붙여왔다. 그리고 귀를 내민다. 잠시 머뭇거린 나는 그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588274."
유리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웃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숫자의 의미를 알 리 없을 테니, 내 입김이 간지러웠던 모양이다.
"외울 수 있겠어?"
"이미 외웠답니다."
그녀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여느 때처럼 조용했고 어두웠다. 딸칵.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밝혔다. 가구와 장식품 등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집이 차갑고 널찍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유리아가 반짝이는 눈으로 천천히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것만으로 집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1층은 주방과 거실, 다용도실이 있어. 지하는… 내 공방으로 만들 예정이야."
"제가 주인님의 공방에 들어가도 될까요?"
"청소는 해야 하니까. 물건은 함부로 만지지 말아 줘. 위험할 수 있어. 네가 지낼 방은 2층에 있어. 내 방 맞은편에 있는 방이지. 내 방이랑 크기가 같으니 나쁘지 않을 거야. 화장실과 욕실도 2층에 있어."
"주택의 외면을 보니 다락방도 있던 것 같던데요."
"있긴 해. 용도가 딱히 없어서 내버려 두고 있어. 쓸 일이 있으면 네가 써도 돼."
"우선… 짐을 정리하고 주방부터 둘러봐도 될까요?"
"물론. 이번에 이사하고 가전제품을 구매하면서 싹 다 최신형으로 바꿨어."
“기대되네요."
1시간 정도 지나자 음식과 가구들이 배달되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유리아가 메이드로서 그들을 맞이했다.
메이드로서 경력이 없다고 했는데, 사람들을 다루는 솜씨가 무척 능숙해 보였다. 딱히 내가 나설 일도 없었다. 2급 기사라 그런지 무거운 가구도 번쩍번쩍 들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기엔 뭐했기에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었다. 생수밖에 없던 800리터 냉장고가 채워진다. 묘한 쾌감이 있었다.
'역시 최신형을 사기 잘했어. 언젠가 쓸모 있을 줄 알았지.'
배달원들이 모두 떠나고 유리아가 주방에 들어섰다.
"저녁 식사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천천히 해. 시간은 많아."
나는 그녀의 방해가 되지 않게 위로 올라갔다. 의자에 앉았으나, 앞으로 그녀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유진아. 정신 차려라. 메이드는 노예가 아니야. 함부로 대해선 안 돼.'
함부로 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직 그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그녀와 나는 오늘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것치고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좀 당황스럽지만.
'우선은 돈이야. 사업 구상은 나중에 하고 돈부터 모아야겠다. 내일 오후에 그곳에 가봐야겠군.'
의욕이 나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두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의욕이 났다. 돈을 벌어서 유리아에게 급료를 줘야 한다.
"음. 사업을 하려면 인건비를 필수적으로 생각해야겠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유리아가 방문을 두들겼다.
"주인님. 식사 준비 끝났습니다."
"내려갈게."
준비된 식탁에 앉았다. 유리아는 내 옆에 섰다.
“ 유리아. 같이 먹으면 안 될까?"
"주인님. 저는 메이드입니다."
"혼자 먹으려니 적막해서 그래."
"…알겠습니다. 지금 제 몫의 식사를 준비하기에는 늦었으니, 내일 아침부터 2인분을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 포크와 나이프는 항상 아래로 향해야 합니다."
"어, 그래?"
"네. 네오 런던에서는 식사 예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전에는 식사 예절이 없다는 이유로 모욕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게 일어났습니다."
"거참, 피곤하게들 사는군. 난 그러고 싶지 않지만… 사업을 하려면 익혀야겠지?"
"상류층의 신사들은 예절 없는 인간은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제가 주인님께 예절을 알려드려도 괜찮을까요?"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을 정도야."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우주가 눈앞에 있었다. 내 입안에서는 스테이크의 육즙이 팡팡 터진다. 너무 강하지 않은 소스가 육즙을 옆에서 보좌한다.
홀린 듯이 스테이크를 씹다가 꿀꺽 삼켰다. 10초가 1분 같았다.
"입에는 맞으신지요?"
"완벽해. 내 입맛을 이렇게 만족시켜주는 음식은 이게 처음이야!"
"다행이네요."
유리아가 싱긋 웃는다. 들뜬 나는 일단 예절이고 나발이고 스테이크를 썰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는 난생처음이었던 탓이다. 무심코 마신 이름 모를 와인도 완벽했다. 스테이크와 찰떡이다. 비싼 값은 확실히 한다.
내 곁에 계속 서 있던 그녀는 우아한 동작으로 와인을 잔에 따랐다.
나는 그제야 예절 없이 스테이크를 탐식했다는 것을 깨닫고 헛웃음을 지었다.
"…미디움이네. 미디움인데 이렇게 풍부한 육즙이라니 정말 대단해."
"고기의 질이 좋았습니다."
"근데 내가 미디움을 좋아한다는 걸 말했던가?"
"…제 실수군요. 주인님께 미리 물어봤어야 했는데."
"아니, 탓하려는 건 아니야. 오히려 만족스러워."
디저트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망고였다. 마침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먹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는 날 기분 좋게 만들었다.
‘메이드가 이렇게 편하고 뛰어났다면 네오 런던에 오자마자 고용했을 텐데. 아니지. 유리아가 특별한 거야. 이 정도 요리는 고급 레스토랑 셰프도 못해.'
나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유리아. 최고의 스테이크였어. 막 우주가 번쩍거리더라."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녀에게 찬사를 늘어놓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순간 유리아가 떠올랐으나, 아무리 그래도 그녀에게 목욕 시중을 들게 할 수 없었다.
밤 11시.
문제가 발생했다. 유리아의 침대 다리 하나가 부서진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부서진 다리 조각이 침대 매트리스에 박혔다. 이래서는 침대를 이용하지 못한다.
"취침 준비를 끝마치고 침대에 앉은 순간 갑자기 부서졌습니다. 아무래도 불량품이 온 것 같네요."
"지금 가게에 따지기에는 너무 늦었어. 일단 오늘은 내 침대를 사용해. 나는 거실 소파에서 자면 돼."
"안 됩니다. 메이드가 어찌 감히 주인님의 침대를 빼앗을 수 있을까요."
유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아래로 내려가려는 눈에 필사적으로 힘을 줬다. 유리아는 속이 비치는 검은색 네글리제를 입고 있었다. 대놓고 봤다간 성희룡롱 고용주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조금씩 보자. 조금씩. 저 툭 튀어나온 부위는 젖꼭지겠지? 만지고 싶다.'
"…알았어.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소파에서 자."
"주인님. 소파는 잠자는 곳이 아닙니다."
유리아가 정색했다.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럼?"
"주인님의 침대는 넓더군요."
"그리 안 커. 슈퍼 싱글이야."
"둘이서 자기엔 충분한 크기죠. 오늘 하루만 절 주인님의 침대에서 재워주세요."
나는 그녀가 와인을 너무 마신 게 아닌지 의심됐다. 눈이 맑다. 술에 취한 건 아닌 듯하다.
머리를 굴렸다. 그녀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자에게 환장해서? 그럴 리가. 유리아가 나랑 몸을 섞고 싶었다면, 옷을 벗고 내게 달려들었겠지. 렉시나 212호처럼.
'나를 시험하는 건가. 내가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긴장되기 시작했다.
유리아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도 미모지만, 내 입맛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요리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좋아, 오늘 밤은 같이 자자."
"네. 주인님."
그렇게 우리는 같은 침대에 누웠다. 슈퍼 싱글 사이즈라 비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단지, 같은 이불을 덮고 있는 유리아의 존재감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쉽게 잠들 수 없을 뿐이다. 귀를 기울이면 그녀의 숨소리도 들린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나와는 다르게 유리아는 아무렇지 않은 듯 5분 만에 잠들었다. 일정한 숨소리를 보니 잠든 게 확실했다. 그 허술함에 깜짝 놀랐다.
‘…가구를 고를 때도 어딘가 허술한 면이 있었지. 지금까지 기사수련원에서 자라서 그런 건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잠든 그녀가 보인다. 이불을 덮은 커다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반복했다. 유리아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
자지가 발기한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난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
30분 뒤에 겨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도중에 눈을 떴다. 유리아가 내 오른팔을 베고 내 몸에 기댄 상태로 자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럽고 풍만한 가슴이 내 상체를 누른다.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녀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녀는 잠든 얼굴도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깊이 고민하다가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일어날까 봐 차마 혀를 넣지 못하고 입술만 비볐다.
그리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눈을 감았다.
꿈을 꿨다.
유리아가 나오는 꿈이었다. 나체인 그녀는 개 목줄을 찼고, 나는 그녀의 목줄을 쥐고 밤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유리아가 멍멍 짖었다. 나는 따스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줬다. 턱 아래를 만져주면 나른한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그리고 유리아는 자지를 잘 빨았다. 나는 상으로 그녀의 보지에 자지를 찔러주었다.
".…곤란하네요. 이래서는 주인님에게 부탁받은.…"
"멍멍! 멍멍멍!"
행복한 꿈속에서 유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멍멍 짖는 유리아의 목소리와 겹쳐져 알아 듣기 힘들었다.
“오, 유리아! 나의 암캐!"
꿈속의 내가 소리쳤다.
…꿈속에서만 소리쳤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