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7화 > 1257. 다크문
"마셔라! 마셔!"
"술을 더 가져와!"
"난 고기를 더 먹고 싶다."
"여자는 없나?"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기껏 열차 우등석을 탔는데, 뒷좌석이 엄청나게 시끄럽다. 어떻게 된 게 우등석은 개인실인데도 불구하고 방음이 전혀 안된다.
참다못한 나는 열차 승무원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손님."
제복을 갖춰 입은 승무원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나는 엄지로 내 등 뒤를 가리켰다.
"푸하하하! 뭐냐, 그 춤은!"
"디바인 프랑스에서 요즘 유행하는 춤입니다! 이 춤으로 기원제를 올린다더군요."
“그딴 창녀 같은 춤으로? 신들을 위한 코미디인가! 존나 웃기군!"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승무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들리지? 아까부터 시끄럽더군. 가서 조용히 시켜."
"…저, 손님. 창문을 닫으시면 소음이 줄어들 겁니다."
"내가 왜 저것들 때문에 창문을 닫아야 하지? 매너를 지키지 않는 건 내가 아니라 저놈들이다."
승무원은 내 말에도 불구하고 행동하지 않았다. 대신 짙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현재 뒷좌석에 계신 분들은 플루토 갱단 소속 갱들입니다. 조금 시끄럽더라도 참아주십시오. 갱단을 건드려봤자 좋을 것 없다는 건 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군.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한다."
"네?"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벽에 마법진이 그려진다.
[에어 붐]
콰앙!
벽을 박살 내고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술을 마시고 있던 7명의 거친 남자들이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이 새낀 또 뭐야?"
"습격인 것 같은데요, 형님."
"아니. 애새끼 같은 놈이 뭔데 습격하냐고. 무기도 없이 말이야."
"그거야… 물어보면 되겠죠. 제가 이런 건 전문입니다. 딱 3분만 기다려주십시오. 흐흐흐."
두목 옆의 졸개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권총을 쥐더니 나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내 허벅지를 향해 날아오다 튕겨 나갔다.
"어엉? 배리어…?"
"씨발! 뭐해! 마법사잖아! 한 번에 죽여!!"
갱스터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총을 갈겼다.
팅팅팅팅팅팅!
총알은 배리어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5급 배리어다. 평범한 총탄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마탄이 섞여 있는 듯 하지만 배리어를 뚫기에는 위력이 부족하다.
철컥철컥.
총알이 떨어진 갱스터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환영 인사는 끝났나? 이번엔 내 차례레군."
[에어 붐]
위력을 극도로 낮춘 에어 붐을 연속으로 발동한다.
펑! 펑펑펑펑펑!
갱스터들의 사지가 터져나갔다. 그들의 팔다리는 마치 폭죽처럼 허공을 날았고, 스프링클러처럼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난무한다.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배리어 덕분에 내 몸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는다.
퍽.
바닥에 쓰러진 시체 하나를 밟는다.
"넌 화형."
갱스터의 몸통이 불타오른다. 갱스터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너는 익사해라."
커다란 물방울이 다른 갱스터의 머리를 감싼다. 팔다리가 없는 갱스터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다.
"너는 얼어 죽어라."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갱스터를 죽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던 한 놈이 남았다. 의자에 파묻혀 있는 놈은 지독한 지린내를 풍겼다.
"마, 마법사님. 왜, 왜 이러십니까. 호, 혹시 다른 갱단의 의뢰를 받으신 겁니까?"
"시끄럽다. 너희는 너무 시끄러웠다.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 알고 있다.
시끄럽다는 건 핑계다. 그냥 짜증이 났고, 이 갱스터들은 시끄러웠다는 이유로 화풀이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고맙다. 너희 덕분에 내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리는군."
"이… 미친놈…!!"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나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염력을 사용했다.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공중에서 그의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돌리기만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팽이가 된 놈은 사방에 체액을 흩뿌렸다. 더러운 광경이었다. 15초 정도 지나자 놈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나는 계속 놈을 돌렸다.
우당탕탕!
복도가 시끄럽더니 문이 열리고 무장한 병력이 들이닥쳤다.
"꼼짝… 이런 홀리 쉿!"
"런던 가드다.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본부! 상대는 최소 3급 이상의 마법사로 추정된다! 지원이 필요하다!"
나는 허공에서 돌리던 갱스터 시체를 바닥에 내던지고 열차 창문에 마법을 사용했다.
[에어 붐]
콰아아아앙!
창문을 통해 열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쏴!!"
런던 가드들이 총을 갈긴다. 물론 내 배리어를 뚫지 못했다.
염력을 이용해 몸을 감싼 나는 어렵지 않게 지상으로 착지했다. 황무지였다. 딱딱한 바위만이 나를 반겼다.
‘갱스터와 달리 런던 가드를 건들면 귀찮아져. 네오 런던까지 걸어가야겠군. 4시간 정도면 되겠지.'
열차는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진다. 철도를 따라가면 네오 런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큭."
웃음이 나왔다.
"크크큭."
당혹스러웠다. 별로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크크큭, 큭크큭… 크하하하하하하하!”
미친놈처럼 웃으며 철도를 따라 걸었다.
왜 웃음이 나오는 건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냥 웃었다.
얼마나 웃었을까.
저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바이크 12대가 보인다. 바이크 위에는 세기말 패션을 한 놈들이 핸들을 잡고 있다. 이 근처에서 활동하는 도적들로 보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들이 오든 말든 웃어 젖혔다.
놈들은 내 앞을 가로막듯 바이크를 멈췄다.
"미친놈인가. 아니면 미친놈인 척하는 놈인가. 어느 쪽이든 우리에게 걸린 이상 넌 끝장이다. 가진 건 모조리 털고, 마지막에는 노예로 팔아주마."
녹색 선글라스 모히칸이 말했다. 카리스마가 있었다. 도적들의 두목인 모양이다.
후우우우웅.
마나 로드가 활성화한다.
공기가 붕뜨는 전조는 언제 느껴도 기분 좋다.
"헉! 퍽킹-쉿! 이, 이건…!"
두목이 경악한다. 전조를 느낀 모양이다. 아마 최소 3급 이상의 마나 각성자겠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이 빌어먹을 감각.….! 놈은 5급 이상의 전격계 마법사다! 당장 도망쳐라!!!"
두목이 외친다.
이미 늦었다.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이 황무지에서 내 눈을 피해 도망갈 수 없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썬더 볼트]
마른 하늘에서 거대한 벼락이 내려친다. 두목을 비롯한 도적 몇몇이 공격에 휩쓸렸다. 바닥에는 거대한 크레이터와 함께 번개가 잔류했다.
[썬더 볼트]
콰아아아아아앙!
또 다른 번개가 황무지에 내리꽃힌다. 그 위력은 폭격 미사일이 땅에 떨어진 것보다 더하다.
[썬더 볼트]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썬더 볼트를 연속 발동했다. 도망가는 도적들의 머리 위에 번개를 꽂는다.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함을 느꼈다.
썬더 볼트를 총 6번 연속 사용한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마나를 전부 써버렸다. 마나가 고갈되어 움직이기 힘들 정도다.
혹사 당한 마나 로드는 항의라도 하듯 화끈거렸다.
"씨발. 몸은 힘들어 죽겠는데 기분은 최고다!"
그날 이후 늘 느껴지던 공허함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내일이 되면 공허함은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아, 섹스하고 싶다!!"
일주일 전, 네오 런던에 들어온 나는 가장 먼저 집을 구했다.
네오 런던은 구역이 나뉘어있다. A~Z 구역. 총 26구역이다. A구역에 가까울수록 부유층이고 Z구역에 가까울수록 빈민층이다.
나는 S구역에 집을 샀다.
S구역은 중산층과 하류층이 공존하는 곳이다. 중산층 중에서는 가장 아래에 속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이고, 하류층 중에서는 가장 위에 속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이다.
지하가 있는 낡은 2층 주택이다. 전 집주인은 20년밖에 안 된 건물이라고 했는데, 내가 볼 때는 35년은 된 건물이다. 가격은 4,800만 크레딧.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지하에 공방을 차릴 거다. 최소한의 치안이 보장되어 있으니 좋아. 근처에 갱단도 없어서 조용할 테고.
무리해서 S 구역의 집을 구매한 이유에는 공방에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집을 수리하고 가전제품과 가구를 구입하니 70만 크레딧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다.
당연하지만, 마법사의 공방에는 마법 재료와 마법 도구가 필수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럽게 비싸다.
'시발. 돈이 부족해. 돈이. 집수리에 돈이 너무 들어가서 가구도 침실밖에 못 채웠어. 마법 연구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사업을 하려고 해도 돈이 필요해. 돈, 돈. 은행을 털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여긴 네오 런던이었다.
나보다 강한 놈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리더라도 마법이나 초능력으로 금방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었다.
은행 강도는 미친 짓이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해서는 큰돈을 벌 수 없다.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르긴 하는데… 고민 좀 해봐야겠군.'
집 밖으로 나갔다.
네오 런던의 지리도 익힐 겸 머리도 식힐 겸 매일 꾸준히 산책을 했다.
네오 런던의 도시 풍경은 이질적이었다. 거주 지역을 나와 상가로 나서면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우중충한 하늘에는 비행선이 떠다니고, 벽에 달린 디스플레이에선 의미 모를 광고가 끊임없이 재생된다.
어처구니가 없는 건 런던의 도로를 달리는 마차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술력이 발달한 도시라 일컬어지는 네오 런던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자동차가 아닌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물론 마차는 미래적인 느낌이 난다.
네오 런던에서 자동차를 타려면 따로 시청에서 허락받아야 한다.
시민들의 복장은 19세기 초반 느낌의 패션이었다. 남자는 신사처럼 정장을 입고, 여자는 드레스를 입는다. 그게 기본 복장이었다.
'…원작 지식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압도적으로 느껴지는군.'
그리고 거리에서는 집사와 메이드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고양이 귀를 한 집사와 엘프 귀의 메이드가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돌아다닌다. 집사와 메이드 대부분이 무장을 했다. 대포를 등에 메고 다니는 집사와 허리춤에 검을 장비한 메이드가 보인다.
네오 런던에서 집사와 메이드는 고급 인력이었다. 그들의 급료는 기본 30만 크레딧이 넘어간다. 따로 자격증까지 존재할 정도다. 엘리트 집사와 메이드일 경우 기본 급료만 최소 100만 크레딧에 달한다.
"신문이요! 오늘 발간한 최신 신문 팝니다!"
빵모자를 쓴 꼬마가 거리를 돌아다닌다. 신문. 인터넷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신문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네오 런던의 시민들은 종이 신문을 보는 것을 품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기 멋진 형아. 신문 필요하지 않으세요?"
"필요 없다."
단호한 내 말에 신문팔이 소년은 당황하며 도망쳤다.
신문팔이 소년 다음으로 꽃을 파는 소녀가 나타났다. 예쁘장한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권유했다.
"오빠. 장미꽃 필요하지 않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장미꽃의 향기를 맡고 싶던 참이었다. 한 송이 다오."
"감사합니다, 멋진 오빠!"
결제는 스마트 워치로 했다.
최신 기술과 고리타분한 문화가 공존하는 네오 런던은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저 멀리, 런던 중심에 보이는 빅벤이 인상적이다. 강철로 이루어진 빅벤은 홀로그램과 네온사인으로 반짝거린다. 빅벤 표면에는 네오 런던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네오 런던을 구경하며 산책하던 나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한 메이드가 내 시선을 끌었다.
한 손으로는 검은색 캐리어를 끌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은색 우산을 쥐고 있는 청은발의 메이드였다. 주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 정도로 무척이나 뛰어난 미모를 가졌다. 앞치마에는 나이프를 장비했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익숙함을 느꼈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메이드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나 또한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혹시 메이드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