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5화 > 1255. 다크문
키이이이잉.
마나 로드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마법을 준비한다.
비누스는 허수아비처럼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에 얼음창을 쥔 채로 지면을 박차고 내게 달려들었다. 쾅! 그의 발아래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발을 배리어로 감싼 뒤 그 주위에 일으킨 작은 폭발을 추진력 삼아 순간 가속하는 기술이다.
'언제 봐도 배리어 마법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다루는군.'
나는 염력으로 속성검을 제어했다. 속성검이 비누스를 겨누며 쏜살같이 날아간다.
접근을 허락해선 안 된다. 비누스는 아까 상대했던 202호랑은 비교도 되지 않는 배틀 메이지다. 202호가 전사를 흉내 낸 마법사라면, 비누스는 전사 그 자체인 마법사였다.
비누스는 얼음창으로 속성검을 쳐내며 내게 접근한다.
[에어 붐]
비누스는 내가 마법을 발동하기 직전에 배리어를 사용해 몸을 감싸고선 공기 폭발을 버티며 돌진했다. 내 앞에 당도한 그가 얼음창을 휘둘렀다.
[배리어]
급하게 배리어를 생성했다. 쨍그랑! 얼음창의 타격에 배리어가 부서졌다.
"정말 유감이군. 211호. 넌 내가 본 어떤 놈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너 같은 실험체는 다시 찾기 힘들겠지. 정말… 유감이다."
얼음창의 형태가 커다란 말뚝 모양으로 바뀐다.
"아이스 스트라이크."
비누스가 영창한다.
얼음 말뚝이 내게 쇄도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느려진 세상에서 술식을 계산한다.
[배리어]
아까 비누스 교관이 썬더 볼트를 막아낸 것처럼 손바닥의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의 배리어를 만들어내 얼음 말뚝을 막아낸다. 쩌적. 배리어와 얼음 말뚝이 부딪치는 순간 동시에 금이 가며 충격파가 발생했다. 충격파에 휩쓸린 나는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바로 몸을 일으켰다.
오버로드의 효과로 통증은 미약하다. 설령 통증이 심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비누스가 내 목숨을 가져갈 테니까.
"붉은 설산의 정상에서."
비누스가 말했다. 내게 말하는 게 아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센 마나가 느껴진다. 그의 목소리에 마나가 반응하고 있다. 이건 영창이다.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최소 세 구절 이상의 영창 마법인가. 터무니없는 걸 숨겨두고 있었군."
비누스의 오른손이 불꽃으로 일렁인다. 그가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불의 벽이 내게 날아온다.
'이건 영창에 의한 마법이 아니다. 견제일 뿐이다.'
[격류]
발을 구르며 마법을 사용했다. 지면에서 물길이 일어나 불의 벽을 상쇄한다. 대량의 수증기가 한 번에 발생한다.
"세상은 비명만이 가득했다."
수증기 속에서 비누스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영창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마나가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탄식하여 그곳에서 맹세했노라."
그의 마나가 술식으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정면을 향해 손을 들었다. 파지직. 손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라이트닝 스피어]
번개를 쏘아낸다. 같은 4급 마법인 라이트닝 스트라이크에 비해 위력은 떨어져도 캐스팅 속도만큼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라이트닝 스피어는 수증기를 가르며 비누스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비누스는 오른 주먹으로 번개를 쳐냈다.
'주먹에 배리어를 감싼 건가. 하지만 이건 어쩔 거지.'
[프로스트]
수증기를 단숨에 얼려 수백 개의 얼음 조각으로 바꾼다.
[강철 연금]
얼음 조각이 날카로운 쇳조각으로 변했다.
[염력]
수백 개의 쇳조각이 동시에 움직여 비누스를 포위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수백 개의 쇳조각이 비누스에게 쏟아졌다.
비누스는 오른팔을 들고 얼굴을 감쌌다. 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머리와 심장을 포함한 급소만을 배리어를 이용해 보호한다.
쇳조각 공격은 유효했으나, 그의 몸에 깊숙이 파고들지는 못했다. 그의 육체 내구성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그의 육체는 마법이 아닌 단련의 결과물이다.
"이 세상 모든 비명을 지울 것임을."
공간을 가득 채운 그의 마나가 한순간에 술식으로 변하더니 그의 육체에 스며들었다.
비누스의 몸에 파고들었던 쇳조각이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지고, 그의 피부에 난 자잘한 상처들이 모조리 사라진다.
"붉은 설산의 맹세."
비누스의 피부가 붉게 변하고, 눈동자가 녹색으로 변한다. 그의 이마 중심에 유니콘을 연상케 하는 붉은 뿔이 돋아났다.
'강령술 계열의 비전 마법인가. 내 원작 게임 지식에도 없는 마법이다. 붉은 설산·… 아예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니긴 한
데.'
비누스의 마법에 관해 고찰할 시간은 없었다. 비누스가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내 앞으로 접근한 비누스가 오른 주먹을 들어 올렸다.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너무 빨라서 그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느려진 세상에서 염력으로 내 몸을 감싸고 미끄러지듯 옆으로 움직였다. 비누스의 주먹이 벽을 때렸다. 벽이 박살 나며 와르르 무너진다.
"이걸 피할 줄이야. 놀랍군. 염력 마법 따위를 잘도 거기까지 구사하는군."
"…그건 강령술이냐?"
"역시 바로 알아보는가. 그래. 강령술이다. 옛 붉은 설산의 주민을 불러 내 몸에 강령시켰다."
"네 마나 흐름이 바뀌었다. 아마 그 상태에선 마법을 못 쓰겠지."
"이 육체가 곧 마법이다."
[일렉트릭 필드]
전류가 지면을 타고 비누스에게 질주한다. 비누스는 피하지도 않았다. 힘에 취한 듯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전류는 그의 다리를 멈추지 못했다.
'전기 내성. 아니, 마법 내성에 가깝군.'
비누스의 오만한 태도도 이해 간다. 그는 현재 마법사의 천적이 된 상태다.
'그래도 한계는 있을 거다. 정말 저 상태가 무적이라면, 비누스는 667부대가 아니라 좀 더 높은 직위에 앉아 있었겠지.'
몸을 일으켰다. 다가오는 비누스를 노려본다.
“다시 생각해보니 211호, 너는 표본으로서 가치가 있을 것 같군. 편히 죽을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마라."
"표본이라.. 좋은 생각이다. 역시 그냥 죽이기에는 아쉽지."
키이이이이잉.
마나 로드가 비명을 지르며 발광한다. 전기가 내 몸을 구석구석 누비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래도 마나 진액을 투여받았을 때보다 버틸만했다.
속성검이 날아가 비누스의 등허리를 노린다. 비누스는 알고 있다. 그러나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의 오만을 비웃었다.
[물질변환= 미스릴]
속성검의 재질을 미스릴로 변환시켰다. 미스릴 속성검은 그대로 비누스의 허리에 박혔다.
“이딴 검 따위에…!"
경악한 비누스가 속성검을 붙잡았다.
"붉은 설산. 기억났다. 그곳에는 반마족이 살고 있었지. 그리고 마족 계열이 다 그렇듯 성스러운 것에 맥을 못 추지."
나는 속성검의 속성을 아이스로 바꿨다. 쩌엉! 순식간에 그의 허리가 얼어붙는다.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비누스의 얼굴이 볼만했다. 얼음은 녹기 시작한다. 그래도 5초 정도의 시간은 벌었다.
속성검은 유유히 날아와 허공에 부유했다.
"이놈, 211호…!!"
"내 승리다, 비누스. 네놈에게 지옥이 뭔지 보여줄 테니 기대해라."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마지막 찰나를 사용한다.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앞으로 해야 할 연산을 위해 생각을 리셋한 것이다.
술식을 계산한다. 방대한 술식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어지러운 것들은 치우고, 실수한 술식은 처음부터 다시 계산한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12개의 마법진과 3개의 마법이 완성된다.
아무리 그래도 12개의 마법진은 지나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치지 않으면 비누스를 확실하게 제압할 수 없다.
'비누스는 강적이다. 어중간하게 했다간 역습당한다.'
각오는 이미 예전에 세웠다.
키이이이이이이이잉!
50개의 마나 로드가 일제히 과부하 된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마나가 마나 로드를 미친 듯이 질주한다. 그 여파로 마나 로드 일부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오버로드를 도핑한 순간부터 마나 로드를 몇 개 희생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12개의 마법진이 공간 곳곳에 그려진다.
"이런 미친놈이! 멀티 캐스팅에도 정도가 있다! 아스트랄은 둘째치고 마나 로드가… 아니, 잠깐. 어떻게 이 정도 출력이 가능한 거냐?"
"비장의 수는 너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오른손이 덜덜 떨렸다. 무겁기 짝이 없는 오른손에 힘을 주며 정면의 푸른빛을 내뿜는 마법진에 검지를 뻗었다. 검지는 마법진 중심에 있는 속성검의 검자루로 향했다. 속성검의 검끝은 당연히 비누스를 겨누고 있었다.
툭.
검지가 검자루를 가볍게 밀었다.
[레일건]
속성검이 음속을 초월해 뻗어나간다. 비누스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그의 뒤쪽 허공에 비스듬히 떠 있는 마법진이 속성검의 궤도를 틀었다. 그 끝에는 또 다른 마법진이 있었다. 마법진에 닿은 속성검이 이번에는 비누스의 왼쪽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이어서 그의 남은 팔다리와 몸통 그리고 목까지 베어낸 속성검이 천장을 부수며 하늘 위로 솟구친다.
사실. 속성검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예측한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나는 속성검을 레일건으로 발사하자마자 앞으로 움직였다. 그때는 이미 속성검이 천장을 뚫은 뒤였다.
처참하게 토막 나 무너지는 비누스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붙잡는다.
[프로스트]
[프로스트]
[프로스트]
세 개의 마법을 중첩해 비누스의 머리를 얼렸다. 그리고 바로 결계 술식을 짜내어 그의 머리를 봉한다.
'…성공했다. 뇌를 얼리고 결계로 봉인했으니 당장 죽지 않는다.'
하루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후속 조치를 취하기에 충분하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비누스의 시체는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아직 내 임무는 끝이 아니었다. 마나 진액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내 복수 대상에는 이 연구실에서 일하는 알파 티어 제약회사 소속의 연구자들도 포함된다.
[디텍션]
연구실 내에 숨어 있는 21명의 연구자들을 발견했다.
"지옥을 만들어야겠군."
쾅!
연구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무장한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그중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도 한 명 있었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 짧은 회색 머리 남자였다.
"…네가 한 짓인가. 유진."
"그 목소리. 오더를 내리던 갈색 도마뱀이군. 뭐, 문제 있나?"
"문제는 없다. 다만.… 보기에 좀 그렇군."
병사들이 보고 경악한 것은 내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연구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팔다리를 염력으로 비틀고 극소량의 마나 진액을 투여했다. 그것만으로 연구자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온갖 체액을 흩뿌리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비틀린 사지를 휘젓는 꼴은 꼭 날개 잘린 벌레가 버둥거리는 모습 같았다.
"대장. 이 정도면 죽지 않더라도 백치가 될 것 같은데. 차라리 여기서 죽이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고용주가 알아서 판단하겠지. 유진. 마나 진액과 연구 자료는 어딨지?"
나는 턱짓으로 오른쪽 벽을 가리켰다. 마나 진액과 연구 자료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갈색 도마뱀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진다.
"많군. 이 정도면 보너스를 기대해도 좋겠어."
“오오오오오오오!"
병사들이 기뻐한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조용히 몸을 일으키자 그들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들은 내 왼손에 들린 얼어붙은 비누스의 머리를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의 두려움과 경계심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간다.
"어디 가나?"
"쉬러 간다."
"흠. 확실히 꼴이 안 좋아 보이긴 하는군. 응급 치료가 필요하나?"
"아니."
"무전기는 계속 귀에 꽃고 있어라. 50분 뒤에 탈출기가 온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