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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253화 (1,253/1,497)

< 1253화 > 1253. 다크문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계획한 디데이는 다가왔다.

나는 디데이가 올 때까지 마나 로드를 최대한 늘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2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마나 로드의 개수를 늘리는 건 불가능했다.

마나 로드는 아스트랄과 이어진 마나의 길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복잡해지고, 경지가 높아질수록 마나 로드 또한 단단해진다. 질이 향상되어 출력이 좋아지는 것이다.

'안 그래도 마나 로드를 늘리는 건 힘든 일인데 약물의 힘을 빌려 5급이 되면서 더 힘들어졌군.'

감안하는 수밖에 없다. 이건 플레이로드 마약을 복용하기 전에 예상했던 문제였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절망하여 실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5급 마법사가 마나 로드를 30개 이상 늘리려면 못해도 10년 이상은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수명이 100년으로 잡으면 10년은 무려 인생의 10%다. 그 시간을 오직 마나 로드를 늘리는 것에만 사용해야 한다.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난이 몸의 재능과 다크 문의 정보를 믿는다. 늦어도 3년이면 복구하고 6급을 준비한다.'

그리고 디데이의 날이 밝았다.

항상 역겹게 느껴졌던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이 빌어먹을 소리를 마지막으로 듣는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역겨운 정도가 줄어들었다.

습관처럼 잠자리를 정리하고 아침 점호를 준비한다. 나는 내무실을 쭉 둘러봤다. 나를 포함해 10명이 한 방에 있었지만, 모두가 입을 다물고 제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내무실은 언제나 아침만큼은 가장 조용했다.

내무실 정리를 끝낸 뒤에는 아침 점호를 시작한다. 오늘은 공휴일인 프리셀 데이인지라 아침 점호는 간략하게 진행되었다.

프리셀 데이는 프리셀의 초대 국왕이 탄생한 날이다.

아침은 특식으로 나왔다.

삶은 랍스터.

랍스터가 특식으로 나오다니 대단하다고? 내가 살던 세계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랍스터는 값싼 음식이었다.

치킨보다 더 싸다. 차라리 치킨을 줬으면 한다.

'아니지. 이 세상 치킨은 존나 맛없지. 그냥 고기 스튜를 먹는 게 나아.'

조리병에 대한 살의가 솟구치는 걸 억지로 참으며 아침 식사를 이어 나갔다.

"사단은 숫자가 낮을수록 좋대. 수도와 붙어 있어서 훈련은 많지만, 전방 부대보다는 느슨한 분위기야. 무엇보다 휴일마다 수도에 놀러 갈 수 있어."

"17사단은 좀 그래. 얼마 전에 병사 한 명이 상관을 죽이고 자살했다더라. 부조리가 심한 것 같아."

"난 어딜 배치받아도 상관없으니, 제발 눈만 안 내리는 곳이면 좋겠어."

최근 동기들의 대화 주제는 항상 비슷했다. 프리셀 왕국의 군대에 관한 것이었다.

"211호. 넌 어딜 배치받았으면 좋겠어? 물론 넌 수도 방위군에 배치받겠지만, 수도 방위군을 제외하고 원하는 부대는 어디야?"

212호가 물었다.

동기들의 시선이 내게 몰린다. 특히 여자들의 시선이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수도 근처가 좋겠지. 수도 근처 부대는 여러 가지로 편리하니까."

"그렇지! 역시 수도 근처가 좋지!"

동기들이 수도 근처에 있는 부대를 주제로 조잘거린다.

나는 대부분 듣기만 했다. 수도 근처의 부대니, 편한 보직이 어쩌고…. 대화 주제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나랑은 상관없는 대화 주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군대에서 나간다.

동기들을 스윽 둘러봤다. 아쉬운 감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생각은 결코 없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212호의 팔뚝을 툭툭 치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212호. 점심 식사 끝나고 오후 1시까지 여자들 전원 욕탕에 불러 모을 수 있어?"

“으응? 네가 먼저? 웬일이야? 우리 전부 감당할 수 있겠어?"

"피아그라를 한 알 구했거든."

“그래? 좋아. 오늘은 기대해도 되는 거지?"

212호가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무언가를 속삭인다. 여자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음흉하면서도 음탕한 미소를 짓는다.

이후에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도서실로 들어갔다. 도서실을 관리하고 있던 병사와 마주쳤다. 병사는 책장 구석을 가리켰다. 책장에 가려져 감시 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가방 하나가 놓여졌다.

가방 지퍼를 내렸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권총과 속성검, 총알, 폭탄, 오버로드 앰플 등이 들어 있었다. 나는 가방 내부를 확인하고 물건 몇 개를 챙겼다. 무기 전부를 챙길 수는 없었다.

"오후 1시에 시작이다. 잊지 마라."

도서실을 떠나기 직전에 병사가 내게 말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도서실 밖으로 나갔다.

이후에는 내무실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여자들 몇몇이 은근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심지어 31호마저 책을 읽는 척하며 나를 주시한다.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미안했다.

점심에는 튀긴 생선이 나왔다.

최악이었다. 그래도 이게 군대에서 마지막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나름 먹을만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여자 목욕탕으로 향했다. 옷을 벗고 온탕에 들어가 여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가장 먼저 212호가 욕탕에 들어왔다.

"후후. 대충 먹고 욕탕에 뛰어왔어. 202호가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

알몸의 그녀가 온탕으로 들어왔다. 탕 내의 물이 출렁인다. 내 옆에 앉은 그녀가 내게 손을 뻗어왔다.

"먼저 시작할래?"

"…아니. 1시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전부 올 때까지 기다리자."

"아앙."

나는 212호의 풍만한 가슴을 주물렀다.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이 가슴을 두 번 다시 만질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자 탕의 문이 열리며 여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모두 몸매가 뛰어났다. 규칙적인 생활, 맛은 없지만 균형 잡힌 식사, 꾸준한 운동으로 가꿔진 몸매들이었다.

"211호. 뭔가 평소와 다르네?"

"으음. 오늘따라 수증기가 많아진 느낌이야."

"저녁까지 할 수 있는 거지? 한 사람당 두 번은 할 수 있겠어."

31호도 도도한 얼굴로 목욕탕에 들어왔다. 이걸로 여자들 전원이 목욕탕에 왔다.

연기가 점점 짙어진다.

"미안."

그녀들에게 사과했다.

"왜 갑자기 사과야?"

"우리에게 뭘 잘못 했어? 그나저나 수증기가 너무 많은데."

"설마. 피아그라를 얻었다는 건 거짓말이야?"

"흐으음…. 뭐, 뭐지.… 갑자기 몸에서 힘이."

털썩털썩털썩.

비틀거리던 여자들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목욕탕 구석에서 발생한 수면 가스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미리 정화 마법으로 호흡기를 보호하고 있던 나만이 멀쩡하게 움직였다.

"깨어나면 끝나있을 거야.…그리고 날 원망해도 돼."

그녀들이 기절한다.

나는 온탕내에 들어가 있는 212호를 비롯한 여자들을 모두 밖으로 꺼내 바닥에 눕혔다. 그녀들을 한 차례 둘러보고는 목욕탕 밖으로 나간다.

"211호. 하지 마.…!"

쓰러진 31호가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버티며 말했다.

"멈추기엔 이미 늦었어."

"211호!"

"여기에 있었나! 31호와 다른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나?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몇 번 대화를 나눠본 적 있다.

조용히 시선을 내려 그들의 어깨를 확인했다. 노랑색 끈이 묶여 있다. 적이었다.

텁.

양손을 뻗어 그들의 머리를 잡았다.

[라이트닝 그랩]

파지지지지지직!

손아귀에 일어난 전류가 그들의 몸을 타고 흘렀다.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그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들의 시체를 넘어 도서실로 들어갔다.

[디텍션]

반사적으로 탐지 마법을 사용해 숨어 있는 적이 없음을 확인하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구석에 놓인 가방을 열어 장비를 하나씩 챙겼다. 가장 중요한 오버로드 앰플이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무선 무전기를 귀에 꽃았다.

"여긴 2…. 아니, 유진이다."

무심코 211호라 말할 뻔한 걸 정정한다. 나는 이제 211호가 아니다.

-여긴 갈색 도마뱀. 오더를 맡고 있다. 식당은 장악 완료. 지통실과 무기고에선 교전이 진행 중이다.

"연구실은?"

-연구실로 움직였던 6조가 전멸했다. 비누스가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예상대로군. 연구실은 내가 간다."

-비누스는 사령부에 지원 요청했다. 근처 지원 부대가 도착하기까지 2시간이 예상된다. 2시간 내로 작전을 끝마쳐야 한다.

"1시간도 안 걸릴 거다. 너희는 계획대로 지휘통제실을 장악하는 데 집중해라."

-알겠다.

연구실로 향한다.

병사들이 튀어나온다. 그들이 무언가를 하기 전에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정확히 그들의 얼굴에 처박혔다.

내가 운동신경이 떨어진다고 해도 5급 마법사다. 육체 능력은 둘째치고, 사고 속도와 반사 신경만큼은 일반인들은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탕! 탕탕탕!

계속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마법을 쓰면 더 편하게 연구실로 갈 수 있지만, 비누스와의 전투를 위해 마나를 최대한 아껴야 했다.

"끄억..! 211호… 네, 네가 왜…?!"

어깨에 총을 맞은 병사 한 명이 내 얼굴을 보고 경악한다. 나도 병사의 얼굴을 알고 있다. 식당 쪽에서 일하는 조리병 중 한명이다.

"식당을 버리고 연구실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나. 누구 지시일지는 뻔하군."

총구를 그의 얼굴을 겨눴다.

"사, 살려줘, 211호! 난 이미 전투 불능이야!"

"네가 만드는 밥. 존나 맛없었어."

탕!

총알이 병사의 미간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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