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8화 > 1248. 다크문
"테러다! 어떤 미친놈들이 테러를 저질렀다!! 특종이다! 뭐해, 아나운서! 당장 움직일 준비해!"
카메라 감독이 외쳤다. 광기에 찬 희열이 담긴 목소리였다.
"네! 감독님!"
카메라 감독을 비롯한 카메라맨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투장을 빠져나갔다. 아나운서는 그 와중에도 시청자들에게 테러 당했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나와 31호는 뻘품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가면을 만지며 무전을 취했다.
"비누스 교관님. 들리십니까?"
-...테러가 발생했다. 귀빈석과 일반석에 숨어 있던 테러범들이 국왕 전하를 노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국왕이 테러당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국왕이 뒤지든, 말든 나랑 상관없었다.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건 이번 테러가 원작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국왕 전하는 무사하십니까?"
-수호 성녀가 근처에 있었던 게 행운이었다. 그녀가 힘을 써준 덕분에 국왕 전하와 귀빈들은 무사하다. 일반인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비누스 교관의 목소리에 은은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비누스 교관은 애국자였으니까.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테러가 실패하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쳤다. 테러범의 수는 약 80명이며 레지스탕스 에코즈로 추정된다. 현재 사령부에서 모든 부대에 추격 명령을 내렸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저희가 테러범을 추격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번 일은 프리셀 국군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반드시 테러범 놈들을 잡아야 한다.
지금 상황은 생중계로 방송되고 있었다. 이미 테러가 벌어졌는데 테러범을 놓치기까지 한다? 국제적 당연했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테러범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특히 높으신 분들은 똥줄이 바삭바삭 타고 있을 것이다.
-테러범 몇몇이 그쪽으로 도망치고 있다. 반드시 잡아라. 죽여도 상관없다. 놓치지만 마라.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211호. 너를 믿는다. 31호. 너는 그 자리에서 대기한다.
조용하던 31호에게서 불만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도 움직이겠습니다. 211호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저와 함께하는 편이 성공 가능성이 큽니다."
-31호.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너는 그 자리에서 대기해라.
평소 31호의 편의를 봐주던 비누스 교관의 목소리는 더없이 단호했다. 이 상태의 비누스 교관은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31호가 대답했다. 항명은 하지 않는다. 항명의 대가가 지독할 만큼 가혹하다는 것을 나와 31호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무장을 한 번 확인하고 비누스 교관이 보내준 테러범의 위치를 확인했다.
떠나기 직전에 31호가 내게 말을 걸었다.
"211호. 조심해. 국왕 전하를 노린 놈들이야. 평범한 놈들은 아닐 거야."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간단히 대답한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도망치고 있는 테러범 셋을 발견했다. 하늘에 뜬 헬리콥터가 테러범들을 추적하고 있다.
투다다다다다!
헬리콥터에서 기관총을 쏜다. 도망치던 테러범 셋이 멈추더니 배리어를 발동했다. 허나 기관총의 탄환은 마탄이었다. 배리어가 손쉽게 꿰뚫리고 테러범 중 하나가 죽는다. 2명의 테러범이 이를 악물며 흑마법을 사용했다.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검은색 불꽃들이 헬리콥터를 명중시켰다.
헬리콥터가 지상으로 추락해 폭발한다. 유감스럽게도 조종사는 탈출하지 못하고 헬리콥터와 운명을 함께했다.
살아남은 테러범 둘이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비누스 교관님. 적을 발견했습니다. 한 명은 죽었고, 두 명은 도망 중입니다. 쫓겠습니다. 비누스 교관님?"
무전을 몇 번 시도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건 아닐 것이다. 무전기가 박살 났거나, 무전을 할 여유도 없거나. 지금 상황을 보면 아마 후자 쪽으로보인다.
일단 도망치는 테러범들을 뒤쫓는데, 강렬한 충동이 찾아왔다. 테러범들을 잡는 걸 도외시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노예 인장? 지난 시간 동안 틈만 나면 연구해온 게 노예 인장이다. 문제는 노예 인장뿐만이 아니다. 반년 전, 목 부분에 심어진 추적기도 해결해야 한다.
'마법으로 며칠 정도는 추적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 그동안 불법 의사든, 뭐든 전문가를 찾아가서 추적기를 빼내면 돼. 일단 도망치기만 한다면 돈은 마법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도망칠 방법과 계획을 떠올렸으나,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비누스 교관의 추적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렉시와 212호를 비롯한 나와 몸을 섞은 여자 동기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들을 버리고 나만 도망치는 게 옳나? 그래도 되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기회는 이용하기에는.…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상대는 한 국가의 군대다. 준비된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행동하기에는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충동을 털어낸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테러범들은 도시 외곽에 준비해둔 자동차에 탑승 중이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느려진 세상에서 마법 술식을 계산한다.
[쇼크 웨이브]
테러범이 방금 막 탄 자동차에 충격파가 명중했다. 자동차가 충격파에 의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펑!
자동차 보닛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 아래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핏물이 보였다.
[배리어]
자동차 전부가 폭발한 건 아니었기에 신중함을 유지하며 다가갔다.
[스트렝스]
2급 보조 마법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근력을 강화한다. 조수석 문을 잡아 강제로 뜯어냈다. 조수석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남자를 끄집어냈다. 남자는 아직 살아 있었다. 기절한 것뿐이다.
'다른 한 명은 어디에….'
쨍그랑!
뒷좌석에서 창문을 부수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튀어나왔다. 남자가 살의를 내뿜으며 외친다.
"다크 플레임!!"
검은 불꽃이 나를 덮친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배리어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린다. 나는 배리어를 중첩해 방어하는 대신 공격을 택했다. 염력을 발동한다. 부서진 파편들이 위로 떠 올라 흑마법사에게 날아가 박혔다.
"크윽, 아아아악…!"
흑마법사가 비명을 내지른다. 배리어를 녹이던 검은 불꽃이 사라진다.
[일렉트릭 스파크]
전기 구체가 흑마법사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수십 줄기의 뇌전이 발생하며 흑마법사를 감전시켜 죽였다.
나는 시체 두 구를 끌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자동차가 언제 또 재차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한 놈은 살아있다. 다른 한 놈은 내 손에 죽었고, 헬기의 공격에 당한 놈은 다른 곳에 있다.'
살아 있는 남자도 살펴본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알겠다. 이놈도 흑마법사다. 아마 헬기 공격에 당한 그놈도 흑마법사일것이다.
"비누스 교관님. 여긴 211호입니다. 비누스 교관님?"
무전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선을 저 멀리 던진다. 쾅! 콰앙! 쾅!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아마 이곳에서 벗어나는 테러범은 10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휴식입니까? 뭐, 이해합니다. 남들 일할 때 맛보는 휴식이야말로 꿀처럼 달콤하죠."
검은색 정장을 입은 금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키가 2m가 넘는 것에 반해 몸은 호리호리했다. 얼굴에는 검은색 가면을쓰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에게 총을 겨눴다.
"누구냐."
"안심하십시오. 테러리스트는 아닙니다. 저는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말해 봐."
“그 전에 듣는 귀를 없애두고 싶군요."
그의 시선은 아직 살아있는 테러리스트에게 향한다.
"갑자기 너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는군."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 마나 진액. 667 부대. 저는 당신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 원하는 게 뭐야?”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의 자료와 마나 진액을 원합니다. 그 과정에서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를 세상에 알리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프리셀 국군은 프로젝트를 영구히 폐기시킬 수는 없어도 최소 10년간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하페일 공화국과 하이스트 제국. 어느 쪽이지?"
"벌써 거기까지 눈치채신 겁니까? 대단하시군요."
“대답해라."
"제 소속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다."
"하이스트 제국입니다."
총을 쥔 손이 움직인다. 총구는 눈앞의 금발 남자가 아닌 쓰러져 있는 흑마법사에게 향했다. 방아쇠를 당간긴다. 쏘아진 총알은 정확히 흑마법사의 미간을 꿰뚫었다.
“과감한 결단.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하페일 공화국이라 했어도 그를 죽였을 겁니까?"
"아니, 총알은 네 머리를 노렸을 거다.”
"하페일 공화국을 믿지 않는 이유는?"
“하페일 공화국과 프리셀 왕국의 상층부는 은밀히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은 둘 다 휴전을 원하니까. 큰 소란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근데 제가 의심스럽지는 않으십니까?"
"네 정체는 대충 감이 잡힌다."
"호오. 전 딱히 제 정체에 대한 정보를 준 적 없습니다만?"
원작의 정보를 바탕으로 정체를 추측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내가 침묵하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말하기 싫으신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존중하죠."
"구체적인 제안은?"
"제 제안을 받아들이실 겁니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아까도 말했듯이 제가 원하는 건 두 개입니다.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의 자료와 마나 진액."
"마나 진액은 부대 옆에 있는 연구소를 습격해 빼앗을 수밖에 없다."
"알고 있습니다. 그를 위한 준비가 진행 중입니다. 계획은 거의 완벽합니다. 당신이 협력해준다면 더 완벽해지겠죠."
"…왜 나지?"
사실 당신과 접촉하는 것도 꽤 큰 도박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그 도박은 멋지게 성공한 듯싶지만요. 당신을 선택한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당신이 31호를 제외하고 가장 강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임무 성공률만 따지면 31호 이상이지 않습니다. 임무 성공률 92%…. 전율스러울 지경이군요."
"…31호의 정체를 알고 있나?"
"예. 그녀는 프리셀 왕국의 세 명의 공작 중 한 명인 렐티어스 공작의 사생아입니다. 마녀의 혼혈이죠. 렐티어스 공작은 그녀를 후계자로 지명할 겁니다."
“왜지?"
"지금 렐티어스의 적정자는 너무 멍청해서 말이죠."
"그렇군."
31호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건 알았으나, 설마 공작의 딸일 줄이야. 상당히 놀랐다.
'렐티어스 공작이라… 원작에서도 언급만 되는 수준이라 잘 모르겠군.'
역시 비누스 교관이 31호에게 쩔쩔매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계획은 두 달 뒤에 시작합니다."
"석 달."
"예?"
"석 달 뒤에 시작한다. 석 달 뒤가 아니면 안 한다."
"곤란합니다. 이쪽은 이미 두 달 뒤를 디데이로 정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석 달 뒤면 비누스 교관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다. 내가 비누스 교관을 죽일 수만 있다면 네 계획도 수월하게 진행될 텐데?"
"확실히… 비누스 교관만 확실하게 죽일 수만 있다면 성공률은 10% 이상 올라가겠죠. 좋습니다. 디데이를 한 달 미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