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3화 > 1243. 다크문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저택 위에서 경계를 서던 나는 두 눈을 좁히며 정면을 노려봤다. 저 멀리서 빛무리가 제법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텔레스코프]
마법으로 시력을 강화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빛무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자전거였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전거 페달을 맹렬히 밟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속도는 가히 300km/h에 가까웠다. 자전거에 불법 개조를 한 것이 확실했다.
나는 가면을 두들겨 무전을 때렸다.
"212호! 31호! 적습이다!!"
-여긴 212호. 적의 정체와 위치는?!
"적은 약 30명. 모두 불법 개조 자전거를 타고 있어. 약 3분 뒤에 저택 정문에 도착. 총기로 무장한 것 같아."
-불법 개조 자전거…? 혹시 화난 표정의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
"확인해 볼게."
두 눈에 집중했다. 시력이 올라가고 적들이 좀 더 선명하게 보였다.
"212호. 네 말대로 전원이 화난 표정의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앵그리 싸이클이네.
"앵그리 싸이클?"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폭주족이야. 인터넷에서는 세력 싸움에 패배해 잠적했다고 들었는데… 내 생각엔 노동자 측의 의뢰를 받은 게 틀림없어. 마지막으로 한탕하고 이 도시를 떠나려는 거야.
"뭐, 귀족을 건들고도 이 도시에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
저택 아래가 부산스럽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앵그리 싸이클의 출현을 깨달은 경호원들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
"212호. 상대가 폭주족이라고 해도 너무 요란해. 일부러 시선을 끌려는 작전일 수도 있어. 남작 방의 결계 확인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줘.. 경호원 친구들에게 보조 마법도 걸어주고."
-맡겨둬. 그게 내 임무니까.
"31호. 너는 어쩔래? 나서고 싶어?"
-지시에 따를게.
31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녀에겐 전투광 기질이 있기에 한번 물어본 것인데 폭주족 따위에는 흥미 없는 모양이었다.
"212호와 함께 프텔가르 남작을 지켜."
-알았어.
31호의 대답을 끝으로 앵그리 싸이클이 저택 정문에 들이닥쳤다. 총을 갈기고 폭탄을 던진다. 경호원들은 프텔가르 남작이 지급한 치신 장비로 대응했다.
'아무리 폭주족이라 해도 너무 마구잡이로 전투를 벌이는군.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어. 광기마저 느껴지는군. 이런 경우는 하나지. 마약.'
아스트랄을 개방한다.
내 주위에 있는 마나가 느껴지고, 마나 로드가 활성화된다. 4급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도록, 3급 마법이라도 위력을 조절하며 마법 술식을 계산한다. 마나가 마나 로드를 내달리며 술식으로 변해 마법이 된다.
[파이어 레인]
3급 불의 마법을 발동한다.
공중에서 만들어진 불꽃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놀란 적들이 뒤로 물러난다. 아무리 마약으로 투지가 고조되었다 하더라도 불나방처럼 자기 목숨을 버리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위력은 역시 파이어볼보다 약하군.'
그러나 파이어 레인의 목적은 전투 영역을 장악하는 것에 있었다. 나는 파이어 레인으로 경호원들이 숨을 돌릴 틈을 만들어줬다.
-지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 미친놈들의 사기도 한풀 꺾였습니다.
경호 대장 레이크막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놈들. 전투 마약을 복용했습니다. 상대하기가 영 쉽지 않군요. 마법으로 지원해주실 수 있습니까?
“말했을 텐데. 해야 할 일을 한다고."
화력 지원은 배틀 메이지의 역할이다. 직접 앞으로 나서서 싸우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마법사 자체가 고급인력이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군에 있는 이상 고급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혀를 차며 잡념을 치운다. 지금은 전투 중이다.
"이얏아아아아호!"
앵그리 싸이클 폭주족 중 한 명이 소리친다. 그건 마치 전염병처럼 주위로 퍼져나갔다.
"이야아아아호!"
“이야호!!!"
"이야호오오오오!!"
폭주족들이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이 밟는다. 그러나 자전거 바퀴는 달리지 않았다. 마치 힘을 비축하듯 가만히 대기한다.
“이얏아아아아아호오오오!!"
폭주족들이 소리친다. 저택 지붕 위에 서 있는 내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다.
'꼴을 보아하니 불나방…. 아니, 자라니가 되기로 한 모양이군.'
놈들의 자전거 바퀴가 땅을 긁으며 질주하는 순간, 나 또한 마법을 사용했다.
[스톤 월]
땅에서 여러 개의 벽이 솟구쳤다. 벽은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질주하던 자라니들은 스톤월을 피하지 못하고 벽을 내달려하늘로 날아갔다.
그들은 하늘에서 미친 듯이 패달을 밟았다. 허나 자전거는 하늘을 달리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그 높이만 무려 10m에 달한다. 아무리 전투 마약으로 신체 능력이 상승했다고 해도 떨어지면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높이다.
퍽! 퍼억! 퍽!
폭주족들이 덧없이 추락한다. 경호원들은 추락한 놈들에게 자비 없이 총을 쏴대며 확인 사살을 끝마쳤다.
'이걸로 절반 정도 죽었군. 경호원들의 피해는 미미하다. 이 전투는 곧 끝난다.'
다음 바법을 고민할 때였다. 212호로부터 무전이 왔다.
-211호! 31호가 전투 중이야!
“전투 중이라고? 저택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 놈은 한 명도 없어! 어디에서 나타난 거야?!"
-프텔가르 남작에게 물어보니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비밀 통로가 있었던 모양이야!
"…씨발."
욕설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목숨 걸고 프텔가르 남작을 호위하고 있는데, 정작 호위 대상인 프텔가르 남작은 우리를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프텔가르 남작이 우리들을 믿고 있지 않다는 사실쯤은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던가.
"상대의 수준은?"
-3급 전사로 보여. 31호가 맞서고 있어. 위험한 느낌은 아니야.
"31호가 이기고 있다는 말이군. 내 도움이 필요해?"
-아니. 괜찮아. 바깥을 신경 써줘.
"알았어."
무전을 끊었다.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이럴 때는 냉철하게 행동해야 한다. 동료가 위험하다고 내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다. 그랬다간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진다. 지금 해야 할 건 눈앞에 있는 자라니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우우웅.
마나가 가동한다.
나는 허공에 새하얀 마법진을 그렸다. 바로 마법을 발현하는 것보다 캐스팅 속도는 느려지지만, 마법의 위력을 더 올릴 수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스 스피어]
마법진 중심에서 얼음의 창이 쏘아졌다. 창끝이 향하는 대상은 폭주족이 아니라 경호대장인 레이크막이었다. 나를 경계하고 있던 레이크막은 당황하지 않고 백덤블링으로 아이스 스피어를 피했다.
땅에 박힌 아이스 스피어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냉기가 휘몰아친다. 새파란 냉기는 주위를 얼렸다. 레이크막의 몸도 얼렸으나, 그는 몸을 흔들며 얼음 조각들을 털어냈다.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레이크막의 몸이 둔해졌다. 냉기가 몸속까지 침범했었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배신입니까?
"배신자는 너다. 방금 비밀 통로를 통해 적이 저택 내로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넌 저택의 비밀 통로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나?"
레이크막은 명색의 경호대장이다. 프텔가르 남작이 아무나 경호 대장의 위치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대충 몇 년은 프텔가르 남작 밑에서 일했을 것이고, 저택의 비밀 통로의 존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겨우 그것만으로 절 배신자라고 확신하십니까? 어이가 없군요."
"그래서 아니냐는 거냐?"
"아니요. 맞습니다."
레이크막이 지면을 박찼다. 그는 곁에 있던 경호원들의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쳐 박살 내고는 내게 달려온다.
당황하는 경호원들에게 외쳤다.
"배신자 레이크막은 내가 처리한다. 너희는 앵그리 싸이클을 막아라."
경호원들이 앵그리 싸이클에게 총을 갈기며 전투를 이어나갔다. 경호원들은 아마 군인에게 훈련받은 것 같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레이크막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3급 전사.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마치 원숭이가 빙의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저택 지붕으로 올라온다. 그 신체는 쓰는 법에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운동에 대한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순수 신체 능력만으로 저렇게 하지 못하니까.
"레지스탕스 에코즈냐?"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빌 클랙슨을 의심해야 정상 아닙니까?"
"생체 폭탄 마법에는 한계가 있다. 쥐같이 작은 동물은 행동을 조작할 수 있지만, 사람 정도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사람은 마나 저항력과 자아가 있으니까. 흑마법사가 생체 폭탄이 된 인간을 조작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점이 뭡니까?"
"중요한 건 생체 폭탄을 터트릴 타이밍이다. 저택 내부의 누군가가 타이밍을 알려줘야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이다."
"…뭐, 맞습니다. 완벽한 계획이었죠. 당신이 괜히 창녀들을 의심만 하지 않았더라면 말이죠."
“앵그리 싸이클도 네가 고용했나?"
"네. 빌 클랙슨은 저들을 고용할 돈이 없으니까요. 계획이 틀어지자마자 저들을 고용했습니다. 여기서 제안입니다만, 못 본 척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왜?"
"프텔가르 남작은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 그게 세계 평화를 위한 일입니다. 놈이 계속 살아있는 이상, 수많은 평민은 그에게 수탈당하고 농락당할 뿐입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내 임무를 수행한다."
".군바리는 이래서 싫다니까요. 인간이 아니라 꼭 기계 같단 말이죠."
레이크막이 달려든다. 나는 백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벌린다. 동시에 대화 도중에 준비해두었던 마법을 발동한다.
[격류]
레이크막의 발아래에서 물줄기들이 위로 치솟았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물줄기들이 레이크막의 몸을 베어낸다. 일반인이었 다면 그대로 몸을 토막나도 이상하지 않은 3급 물 속성 공격 마법이지만, 레이크막은 피부가 베이는 수준에서 끝났다.
[아이스]
물이 얼어붙는다.
물론 그의 몸을 흠뻑 적시고 있는 물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강제로 얼음 구속구를 착용 해야했다.
"하아아앗!"
그가 기합과 함께 오러를 터트렸다. 그의 몸에서 투명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그는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내게 달려들었다.
염력을 사용해 부서지는 얼음 파편으로 그를 공격했다. 소용없었다. 얼음 파편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오러를 뚫지 못했다.
뒤로 물러난다.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내 몸은 무방비하게 지붕에서 떨어졌다.
"끝이다!"
승리를 확신한 레이크막이 주먹을 치켜들며 나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허공에서 멈췄다.
나는 눈동자를 돌려 저택 창문을 바라봤다. 212호와 두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혀를 살짝 내밀더니 장난스럽게 자신의 오른쪽 가슴을 손으로 꽉 쥐었다. 지금 상황에서 성희롱이라니. 약간 기가 막혔다.
"무, 무슨 마법을 쓴 겁니까?!"
"내가 쓴 게 아니다. 내 동료가 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