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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241화 (1,241/1,497)

< 1241화 > 1241. 다크문

흑마법사의 시체로 다가갔다.

수천 개의 조각에 찔린 흑마법사의 시체는 고슴도치를 연상케 했다. 물론 고슴도치처럼 귀엽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봤다. 이 시체를 가져가서 프텔가르 남작에게 보여줘야 한다. 생각만 해도 귀찮다.

‘사람을 시키면 되는 일이긴 한데….'

문득, 흑마법사를 죽인 건 이번이 처음이란 걸 깨닫는다.

마법사는 몇 번 상대해 본 적 있다. 임무를 받아 전투 현장에서 맞닥뜨려 싸우기도 했다.

'그때는 전장에서 맞닥뜨려 죽인 거지. 지금처럼 흑마법사를 쫓아, 흑마법사의 거처에서 죽인 경우는 없어.'

마법사의 거처를 흔히 공방이라고 한다.

이 폐기물이 쌓여 있는 이곳도 엄연히 흑마법사의 공방이다. 뒤적거리다보면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 나는 보고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 트랜스패런시 마법으로 실제 경지를 숨기고 있었다.

표면적으로 3급 배틀 메이지다. 마나 로드는 25개를 보유 중이다. 이것만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있으나, 실제 내 경지는 4급이며 마나 로드는 33개다.

반년 전에 4급에 올랐고, 그 후로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4급 중에서도 초반이라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내 생활 환경은 마법 경지를 높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마법에 대한 자료와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고, 개인 연구를 할 공방도 없었다.

그렇다고 초조해하지 않는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정체를 겪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정체 시기를 얼마나 짧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돌파하느냐는 마법사의역량과 재능, 그리고 행운에 걸려있다.

'이딴 곳에 처박혀 있어서 좀 신뢰가 안 가긴 해도 3급의 흑마법사다. 뭔가가 있겠지.'

장갑을 끼고 나이프를 꺼내 흑마법사의 시체를 뒤적거렸다.

새삼스레 시체를 만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래도 좀 놀랐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떤 감흥도 없었다.

'조각이 너무 많이 박혀서 거슬리네. 좀 깨끗하게 죽일 걸 그랬나.?

시체에 박힌 조각들을 대충 뽑아내고 품과 주머니를 확인한다.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약? 시약인가. 피에 흠뻑 젖어서 쓸 수 있을 것 같진 않군.'

그 외에도 볼펜이나 돌조각 같은 게 나왔다. 돌조각도 마법 재료의 하나인 것 같은데.… 내 흥미를 끌진 못했다.

놈의 왼쪽 어깨에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문양이다.

조각을 빼내고 더러운 천으로 피를 닦아냈다. 문양이 확실하게 보였다. 세 개의 원. 원 안에 원이 들어가 있는 방식의 그림.

'레지스탕스 에코즈의 상징. 이놈은 레지스탕스였나.'

레지스탕스 에코즈는 계급 사회에 저항하는 세력이다. 달리 혁명군이라고도 불린다. 레지스탕스 에코즈는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고, 주로 계급이 존재하는 국가를 테러한다.

귀족과 왕족은 그들의 숙적이다. 그들은 신분제가 사라져야 평등한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다.

'내가 봤을 땐 가지지 못해서 빡친 놈들일 뿐이지만.'

뭐, 그놈들이 뭘 하든 아무래도 좋았다. 나와 관계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레지스탕스 에코즈가 아니다.

'할까, 말까.'

나이프를 쥐고 고민한다.

흑마법사는 일반 마법사와 다르게 '다크홀'이라는 장기를 가지고 있다. 마나를 흑마나로 변환하고 저장하는 특수 장기다.

다크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는 장기 이식, 특수 의식을 통한 장기 생성 등이 있다.

'원작 게임에서 흑마법사를 죽이면 다크홀을 얻을 수 있지. 이게 꽤 비싸게 팔렸단 말이지.'

마나 각성자가 다크홀을 이식하면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흑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다 경험을 쌓고 흑마법을 배우면 흑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한다. 흑마법사를 죽였는데 다크홀을 척출하지 않는 건 멍청한 짓이야. 그리고 다크홀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마나를 흑마나로 변환하는 특수 장기.

지금이 아니면 다크홀을 얻을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이프를 꽉 쥐고 흑마법사의 배를 갈랐다. 다크홀은 흑마법사마다 위치한 곳이 다르다. 심장 밑에 있을 수도 있고, 콩팥 옆에 붙어 있을 수도 있었다.

다행이라고 할까. 이 흑마법사의 다크홀은 소장 사이에 있던 덕분에 상처 없이 멀쩡했다. 다크홀을 척출한다. 크기는 직경 3cm 정도로 검은색 구슬처럼 생겼다. 다크홀에서 흑마나가 느껴진다.

'다크홀은 척출하는 순간 마나를 흑마나로 변환하는 능력을 잃는다. 대신, 다시 장기를 이식하면 흑마나 변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

척출한 다크홀에는 흑마나를 저장하는 능력이 있다. 일종의 흑마나 배터리가 되는 것이다.

'다크홀을 이식할 생각은 없어. 그랬다간 마나의 순수성이 떨어지고, 원소 마법의 위력을 끌어내기 쉽지 않으니까.'

나는 다크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 상태에서 흑마나를 이용해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흑마법의 술식은 단 하나도 없기에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다크홀을 감쌌다. 평범한 장기라면 이런 허술한 처리는 하지 않겠지만, 다크홀은 특수 장기다.

'다음은 시체 처리군. 다크홀을 내가 빼돌렸다는 걸 알면 안 되니…. 훼손해야겠군.'

프텔가르 남작은 영악한 놈이다. 내가 다크홀을 빼돌렸다는 걸 분명 의심할 것이다.

'의심하라지. 결정적인 증거만 없으면 돼.'

약간 회복된 마나를 끌어내 마법을 사용한다. 바람 마법으로 흑마법사의 시체를 훼손한다. 썩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마나가 회복되면 추가로 시체를 불태워야겠군.'

나는 흑마법사의 시체에서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뒤적거렸다. 아무리 허름한 곳이라도 흑마법사의 거처다.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찾았다.'

거의 40분을 뒤적거린 끝에 찾아냈다.

하나는 마법서였다. 3급 흑마법인 생체 폭탄을 문신으로 발현하는 연구가 담긴 마법서.

'직접 연구했나 보군. 문신을 이용해 생체 폭탄을 비전 마법으로 승화시키려 했나.'

생체 폭탄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 알 바 아니었으나, 꽤 획기적이었다.

'흠. 문신 생체 폭탄은 성공했어. 생체 폭탄의 위력을 끌어올리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군.'

찾아낸 물건, 다른 하나는 강화 유리로 만든 케이지였다. 케이지 안에는 쥐가 들어 있었다. 하얀 쥐였는데 몸에 생체 폭탄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흑마법사가 죽으면서 생체 폭탄 마법진은 흑마나가 휘발된 단순한 문신이 됐어. 폭발하지 않아. 이건 마법진 문신을 한 평범한 쥐야.

마법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대표적으로 발동형과 지속형이 있다. 생체 폭탄 마법진은 발동형이다.

나는 마법서를 들었다. 연구서에 가까운 책이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내게 도움이 되었다.

'적혀 있는 마법이 생체 폭탄 흑마법밖에 없어서 아쉽군. 그래도 도움은 돼.'

흑마법의 술식 자체는 특별한 게 없었다. 술식이 좀 비틀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해하는데 어렵진 않다.

흑마법 술식이 특별한 건 하나다. 일반적인 마나에 반응하지 않고 오직 흑마나에만 반응한다는 것.

‘ 흑마나만 다룰 수 있다면, 나도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마법서를 재독한 나는 파이어 마법을 일으켜 불태웠다. 그리고 다크홀을 한 손에 쥐고 노려본다.

'다크홀의 흑마나를 움직여 보자. 마나를 장악하는 방식으로…'

다크홀의 흑마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게 아닌가.'

눈가를 좁혔다. 몇 번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던 나는 마법사의 정신, 아스트랄을 개방했다.

아스트랄로 다크홀을 인식한다. 손바닥 위에 놓인 다크홀이 마치 내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흑마나가 느껴진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 마나가 마법이 되기 위해선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나 로드를 통해 마나를 술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크홀은 외부에 있기에 내 마나 로드를 사용할 수 없어. 하지만…'

마나를 술식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꼭 마나 로드로만 하라는 법은 없다.

'눈앞에 딱 좋은 게 있잖아.'

유리 케이지 속에 갇혀 있는 쥐의 몸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

다크홀에서 흑마나가 움직여 쥐에게 스며든다. 마법진이 활성화된다. 단순히 흑마나를 불어넣어서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마법진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기에 활성화되는 것이다.

'성공했다.'

다크홀을 통해 생체 폭탄 마법진과 이어져 있는 게 느껴진다.

[배리어]

우선 배리어로 몸을 감쌌다.

'터져라.'

쾅!

쥐가 폭발한다. 유리 케이지가 박살 나고 충격파가 배리어를 뒤흔들었다. 이내 폭발이 사라졌다. 바닥에는 쥐의 피와 내장조각 같은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

“하, 하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마법사는 흑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게 이 세계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 상식이 깨졌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손쉽게.

'설마 내 아스트랄이 이식도 하지 않은 다크홀을 장악하고 사용할 줄이야…. 다른 마법사도 가능한가? . 아니. 불가능해.

가능했다면 이미 알려졌겠지. 원작에서도 마법사는 흑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으니까.'

나는 낄낄 웃으며 워치를 조작해 212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임무 완료.]

"푸하핫! 설마 하루 만에 흑마법사를 찾아내 죽일 줄이야! 어떻게 찾아냈지?"

프텔가르 남작은 흑마법사의 시체를 비웃으며 내게 물었다. 나는 타투이스트를 찾아간 것부터 적당히 설명했다.

"크크. 꼴통처럼 움직였다는 거군. 지금쯤 경찰은 널 쫓으려고 난리를 치고 있을 거다."

“상관없습니다. 제 모습은 철저하게 숨겼습니다."

"211호라고 했나? 상당히 유능하군. 내 밑으로 들어와 일해라. 연봉은 남부럽지 않게 챙겨주지."

“절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전 군인입니다."

“제대하면 되잖나."

“제대는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상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허락이 떨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프텔가르 남작이 불만스럽다는 듯 입가를 비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정리한다. 아무리 그가 귀족이라 하더라도 군에 개입할 권한은 없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제대하면 연락해라. 섭섭지 않게 대우해주지."

"예. 그러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프텔가르는 턱으로 흑마법사의 시체를 가리켰다. 뒤쪽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흑마법사의 시체를 끌고 간다.

"흑마법사인데 다크홀이 없다더군."

"전투가 격렬했습니다."

"네가 빼돌린 건 아니고?"

"…결코 아닙니다."

“흥, 됐다. 흑마법사를 잡아 죽였다는 것에 만족하지. 설마 레지스탕스 에코즈가 날 노릴 줄이야. 다시 생각하니 열받는

군."

프텔가르 남작은 창녀들을 향해 짧고 굵은 팔을 뻗었다. 창녀들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안긴다. 그는 날 힐끔 보더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뭘 보고 있나. 이만 꺼져라."

그를 향한 살의를 숨기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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