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237화 (1,237/1,497)

< 1237화 > 1237. 다크문

수호 성녀 마르타와 런던제일검 퍽시발 경.

둘 다 이 세상에서 무시하지 못하는 강자다.

그걸 알기에 부대원들은 모두 얼어붙어서 홀로그램만을 바라봤다.

"긴장하지 마라. 너희들에게 수호 성녀와 런던제일검을 상대하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는다. 너희들이 해야 할 건 기념행사에서 실력을 선보이는 것뿐이다. 행사에서 너희의 쓸모를 증명해라."

무감정하게 말한 비누스 교관은 홀로그램을 넘겼다.

행사 일정이 주르륵 떠오른다. 아침 9시에 간략한 리허설을 시작하고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부터 본 행사를 시작한다.

“행사는 전 세계에 송출된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게 주의하도록."

비누스 교관은 일정 중 하나를 가리켰다.

오후 5시에 예정된 신규 마도 특수부대 소개.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은 30분. 이때, 우리는 마법 화력을 선보인다. 또한 31호과 211호가 10분간 대련을 한다.”

부대원들의 시선이 나와 31호에게 향했다. 보라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가진 그녀는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자신이 언급되었음에도 어떤 동요도 없다.

나는 손을 들었다.

"뭐지, 211호."

“이게 보여주기식 대련이란 건 알겠습니다. 그러나 굳이 저와 31호가 서로 대련해야 합니까?"

"보여주기식 대련이기 때문이다. 부대에서 가장 강한 두 명은 너와 31호가 아닌가."

"교관님들을 제외하면 그렇지요."

"나를 비롯한 교관들이 나서는 건 의미 없다. 높으신 분들이 보고 싶은 건 너희들의 힘이다."

그게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과를 보고 싶은 거겠지.

나는 조용히 손을 내렸다. 보아하니 결정은 끝난 모양이다. 내가 하기 싫다고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까라면 까야 한다. 그게 현재 내 위치다.

"31호와 211호. 보여주기식 대련이라도 최선을 다해라. 살인은 금지이나, 약간의 부상을 입는 정도는 상관없다. 너희들의전투력을 국왕 전하와 국민들에게 선보여라."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1호와 211호가 대답했다.

비누스 교관은 계속해서 행사에 관한 설명을 이어갔다.

브리핑이 끝나고, 비누스 교관은 나를 따로 불렀다.

"211호."

"네. 비누스 교관님."

"나를 비롯한 667부대의 교관들은 너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너는 우수한 군인이다."

“…칭찬 감사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번 행사의 대련에서 패배해라."

“…높으신 분과 관련 있습니까?”

“그렇다. 너도 31호의 신분이 높다는 걸 알고 있겠지."

"대체 얼마나 대단한 배경입니까?"

"말할 수 없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높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원래 대련에서 이길 생각이 없었다. 내 힘을 숨겨야 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말을 들으니 반항심이 올라온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너를 믿는다. 211호."

“예."

속을 식혔다. 차가운 이성을 유지한다. 대련에서는 패배해야 한다. 내 힘을 숨기고, 비누스 교관에겐 내가 반항 의지가 없음을 증명한다.

'이건 기회가 아니야.'

행사는 생중계된다. 그걸 이용해 667 부대와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를 폭로한다?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 세상은 권력자의 것이다. 설령 폭로하더라도 날 도와줄 사람은 없다.

'자칭 인권 운동가란 놈들은 모두 매수되어 있지.'

원작을 통해 알고 있다. 인권 운동가는 권력과 돈의 노예다.

그리고 그딴 방식에 의한 복수는 용납할 수 없다.

단순하게 죽이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놈들은 내가 당했던 것 이상으로 고통받아야 한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211호."

"네. 비누스 교관님."

"지금대로만 해라. 지금대로만 한다면…수도 방위군에 배치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도 방위군. 프리셀 왕국의 수도를 방위하는 군부대. 이곳에 부임되면 앞날이 보장된다는 말이 군인들 사이에서 떠돈다.

특히 배치 받은 첫 부대가 수도 방위군이다? 최고의 인생을 향한 골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고 보면 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내일 너와 31호, 212호에게 임무가 배정될 거다. 자세한 임무 내용은 내일 담당 교관에게 듣도록."

나는 그에게 경례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212호와 함께하는 임무였다. 반면 31호와는 익숙했다. 부대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나와 31호이기 때문에 자주 임무를 함께하는 편이었다.

이번 임무는 귀족 호위 임무였다.

사흘 동안 귀족을 호위하는 임무다. 나와 31호는 호위 임무를 몇 번 해봤으나, 귀족을 호위하는 임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호위 대상은 프텔가르 남작이다.

프리셀 왕국의 하위 귀족이다. 기계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현재 그의 공장은 멈춘 상태였다.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파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일 뒤, 프텔가르 남작은 노동자 조합과 협상을 할 예정이다.

"나 원, 나한테서 빌어먹고 사는 놈들 때문에 집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니 정말이지 최악이군."

프텔가르 남작은 뒤룩뒤룩 살찐 중년 남성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나와 31호, 212호를 훑어본다. 대외적인 임무였기에 가면을 쓰고 있으나, 31호와 212호는 얼굴을 가렸음에도 몸매가 뛰어났고 분위기 자체가 미녀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프텔가르 남작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31호에 관해 무언가를 들은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군과 얽히고 싶지 않다거나. 귀족이라도 군은 마냥 무시하지 못하니까. 내 생각에는 아마 전자에 가깝다.

"너희들 전원이 배틀 메이지라고 들었다."

"저희 셋 모두 3급 배틀 메이지입니다."

"알고 있다. 몰랐다면 받지도 않았겠지. 뭐, 쓸 만은 하겠군."

그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섹시한 란제리를 입은 여자가 그의 손에 맥주잔을 올렸다. 분위기를 보니 애인은 아니다. 아마 창녀일 것이다.

"이번 작전의 기본 정보는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3일 동안 남작님을 호위하겠습니다."

"내 친구가 너희의 일 처리를 칭찬하더군.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남작님.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습니다.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지?"

"3일 뒤가 최후 협상일이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10번이 넘는 협상 기회가 있지 않았습니까. 왜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시지 않는 겁니까?"

"너 뭐냐, 내 호위면서 그놈들을 두둔하는 거냐?"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노동자 파업이 넉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 이득이지 않습니까?"

“아하. 그런 질문이었군. 크큭. 사업에 좀 관심 있나 보지?"

"별거 아니니 대답해주지. 네 말대로 공장이 멈추면 손해가 이어진다. 아주 막대한 손해지. 단순히 당일 완성될 수 있었던제품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협력 업체로부터 신뢰를 잃는다는 거지. 고객님들이 사라진다는 거다."

"파업자들의 요구는 근무 환경 개선과 임금 5% 상승이라 들었습니다. 그 정도면 들어줄 만 하지 않습니까?"

원래는 근무 환경 개선과 임금 15% 상승, 추가 직원 고용, 성과금 지급 등이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줄어든 것이다.

"건방지잖냐."

"…예?"

“지금까지 내가 주는 돈으로 살아온 개돼지들 주제에 먹이를 더 달라고 내게 반기를 일으켰지. 그 행동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괘씸하다!"

"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 겨우 그것 때문에 매년 수억 크레딧을 벌어들이는 공장을 박살 내는 짓을 했으니까. 그러나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내게는 돈과 인맥이 있다. 사업은 새롭게 시작하면 그만이다."

"최후 협상은.… 결과가 정해져 있군요."

“크크. 그래. 난 공장의 권리를 포기할 것이다. 공장은 경매로 넘어간 뒤 내 친구가 싼값에 낙찰하겠지. 내 친구는 산업부에서 사업 보조금을 받을 거다."

그 보조금이 노동자에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남작님을 노리는 이유는…?"

"개돼지 중에서 가끔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죽으면 공장 소유권은 경매가 아닌 지방 정부에게 돌아간다. 지방 정부는 공장을 정상으로 만든 뒤에 누군가에게 팔아 치우겠지."

"노동자 입장으로는 차라리 공장이 지방 정부에 넘어가는 게 낫다는 거군요."

"아예 일자리가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거지. 하하. 질문은 끝났나?"

"예. 질문에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났으면 일하러 가 봐. 난 3일 동안 이 방안에서 즐기고 있을 테니까."

우리는 뒤로 돌아 방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창녀의 작위적인 교성이 울렸다. 212호는 민망하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고, 31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주어진 방으로 돌아갔다.

방안으로 돌아온 우리는 테이블 위에 홀로그램을 띄우고 상황을 확인했다.

212호가 홀로그램을 조작하며 설명했다.

“이게 저택의 구조야. 총 4층이고 방은 19개. 지하에는 와인 창고와 식량 창고가 있어. 남작의 경호원은 우리를 제외한 20명. 절반은 마나 사용자고, 나머지 절반은 특수 훈련을 받은 용병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보기에는 철저해 보이지만, 실속은 별로였다. 프텔가르 남작이 군에 돈을 주고 호위 병력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경호원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이 정도 경호원들이 있으니 지겨운 순찰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

"우리 중 한 명씩 돌아가면서 불침번은 서야 해. 여기 경호원들을 믿을 수 없으니까."

브리핑이 끝나갈 무렵, 나는 31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뭘?"

"암살자 말이야. 앞으로 3일 내로 습격해 올까?"

프텔가르 남작은 노동자들이 암살자를 고용할 거라는 정보가 없음에도 불안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고용했다. 내가 봤을 때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벌써 넉 달이나 파업 진행 중인 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게 암살자를 고용할 돈이 어디에 있겠는가.

"올 거야."

“근거는?"

"감."

"……"

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감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31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해오면서 그녀의 직감 덕분에 이득을 봤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212호. 너는 어떻게 생각해?"

"파업을 주도하는 노동자 대표 빌 클랙슨은 궁지에 몰려 있어. 궁지에 몰린 사람은.… 때때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야."

"암살자가 올 거라 보는 거군. 좋아. 좀 더 본격적으로 임해볼까. 212호, 저택 내부와 외부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줘. 31호는 남작의 방 주위에 결계를 설치하고. 나는 잠깐 나가서 지형 좀 파악하고 올게."

그녀들은 별 불만없이 내 지시에 따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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