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1화 > 1231. 광명승천도
"123번. 당신이었군요."
연예하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느닷없고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짐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리가 획획 돌아갔다. 연예하가 무엇을 근거로 내가 범인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을 되짚어 본다. 딱히 그녀에게 실수한 것도 없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나는 발뺌했다. 여기서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연예하가 나를 떠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연예하는 입을 다물고 이쪽을 빤히 쳐다봤다.
나는 그녀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뒤로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지하 호수는 크고 어두웠다. 천장에서 물과 함께 새어 나오는 빛 덕분에 그나마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나는 천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호수는 고여 있지 않았다. 호수 속의 벽면을 보면 구멍이 있다. 그 구멍으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만큼 빠져나가고 있다.
'여기를 통해 입마굴을 나갈 수 있을 것 같군.'
혹시 몰라 주위를 샅샅이 살핀다. 함정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여긴 우릴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요."
"뭐?"
"입마굴 시험은 입마소장을 비롯해 천마신교의 각 부대에서 나온 대원들이 지켜보고 있어요. 입소자들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여긴 예외예요. 엄밀히 말하면 여긴 입마굴도 아니죠."
"입마굴이 아니면 어디라는 거지?"
"인공적으로 만든 지하수로예요. 여기 물은 밖으로 빠져나가 강물이 되어 흐르죠."
"즉, 여길 통해 입마굴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거군."
"정상적인 출구는 아니에요.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얼마나 긴지도 알 수 없고요.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교관이 찾아와 도와줄 테죠.”
“교관의 도움을 받는 순간 시험에 떨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교관이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리라는 거지?"
"네 번째 시험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틀은 기다려야겠죠. 그게 아니면 다시 입마굴로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겠군요."
연예하가 고개를 들었다. 물이 흘러나오는 곳을 바라본다. 우리가 밀려온 그곳이다. 높이는 30m가 넘어서 폭포나 다름없었다. 올라가는 건 가능하다. 문제는 저 위로 올라간 후에도 물살을 가르면서 한동안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물의 축복이 있으니 그럭저럭 가능하겠지만, 연예하는 다르다. 무인이라고 해서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고수 중에는 아예 헤엄조차 못 치는 자들도 있었다. 뭐, 고수들은 수영 정도는 금방 배울 테지만.
'벽을 부서서 나가는 건.. 불가능하군. 벽의 두께만 해도 수십 장에 달하는군.'
그때였다. 연예하가 불쑥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당신이에요, 당신이 범인입니다."
“내가 범인이라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123번, 아까처럼 절 안아보세요."
"뭐?"
"방금 한 손으로 제 허리를 끌어안았잖아요. 그것처럼 한 손으로 제 허리를 끌어안으세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 연예하가 몸을 돌렸다. 그녀의 등과 긴 검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녀는 팔을 약간 들더니 뒷걸음질로 내게 다가왔다. 잘록한 허리와 커다란 엉덩이를 보며 손을 움찔거렸다. 하마터면 그녀의 말대로 허리를 안을 뻔했다.
"567번. 네 의도를 모르겠다. 이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123번. 당신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여자 허리를 안는 것뿐입니다. 아니면 제 허리를 안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여기서 너무 빼면 도리어 의심받는 상황이 된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가늘고 탄탄한 허리 감촉이 손가락을 통해 느껴진다. 익숙한 감촉이었다.
연예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부러 아까와 다른 방식으로 제 허리를 만지는군요."
연예하가 손을 내렸다. 그녀는 허리에 얹어진 내 손을 잡고 위치를 수정한다. 내 손바닥 전체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숨 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연예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느낌…. 당신이었군요."
"아까부터 영문 모를 소리만 해대는군."
그녀의 허리에서 손을 뗐다. 그러다 갑자기 연예하가 몸을 돌리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내 목에 팔을 걸고 연인처럼 끌어안는다.
나는 당황해서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어깨를 잡아 밀어내려고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확실하군요. 당신이 범인이에요. 이 촉각, 이 체온, 이 냄새.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물로 흠뻑 젖어 있는 그녀는 평소와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촉촉한 피부와 망설임 없는 눈동자, 젖어서 드러난 몸의 윤곽. 나는 치밀어 오르는 음욕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다시 한번 말하지. 난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나를 유혹하고 있는 거냐?"
"유혹하고 있다면요?"
연예하가 까치발을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더 가까워졌다. 익숙한 그녀의 호흡이 느껴진다. 아마 그녀 또한 내 호흡을 익숙하게 느끼고 있겠지.
“난 도사나 중이 아니다. 여자가 유혹해오면 거절하지 않는다."
연예하는 물러나지 않는다. 그 눈동자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이 날 지켜보고 있다.
정말로 내가 범인이라고 확신한 건가?
여기서 당황하며 물러날 수 없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 물을 먹어 축축한 무복과 머리카락이 느껴진다. 연예하는 가만히 있었다. 손이 내려가 그녀의 허리띠를 풀었다. 그녀의 앞섬이 풀어지며 가슴을 압박하고 있는 붕대가 보였다. 물론 붕대도 젖어 있었다.
힐끗.
시선이 그녀의 가슴으로 향한다. 그때, 연예하가 스스로 가슴의 붕대를 풀었다. 아니, 손가락 힘으로 뜯었다. 붕대가 풀리고 압박당하던 가슴이 폭발하듯 풀어졌다. 하얀 젖가슴에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분홍색의 커다란 유두는 딱딱하게 발기해 있었다.
"567번! 지, 진정해라. 넌 지금 제정신이… 읍?!"
연예하가 내게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여성의 입술과 상체를 누르는 풍만한 가슴 감촉에 하반신으로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안 된다. 참아야 한다. 자지가 발기하면 빼도 박도 못한다…!'
나는 그녀를 범할 때마다 모습을 바꿨다. 그러나 딱 하나, 자지 모양만큼은 바꾸지 않았다. 그녀의 보지에 내 자지를 각인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연예하에게 혀와 타액이 빨린다. 그동안 쌓은 테크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건 진짜 위험하다.'
연예하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그녀의 손이 내 고간을 붙잡았다. 남자의 약점이 붙잡히자마자 손에서 힘이 빠졌다. 자지가 꿈틀거리며 발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옷 너머의 내 자지를 손으로 훑으며 입을 뗐다.
깜짝 놀랐다. 그녀의 분홍색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며 미소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소는 한여름의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당신의 타액은 평소와 맛이 똑같군요. 당신의 자지도 여느 때와 같이 뜨겁고 단단해요. 이래도 발뺌할 생각인가요?"
난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녀는 훨씬 전에 내가 범인임을 확신했다. 지금 그녀는 쐐기를 박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오른쪽 젖가슴을 꽉 움켜쥐면서, 그녀의 바지를 벗기고 커다란 엉덩이를 만졌다.
"흐으응…."
연예하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래. 내가 널 밤마다 범한 남자다. 이제 어쩔 거지?"
"정체를 알아냈으니… 복수를 해야겠죠."
살기를 감지했다. 다급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내가 있던 장소에 검이 번뜩였다. 피하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베였을 것이다.
연예하는 절제된 살기를 발산하며 자세를 잡는다. 양손으로 검자루를 쥐고 백색 검기를 일으킨다.
꿀꺽.
나는 군침을 삼켰다.
'젠장. 위험한 상황인데… 존나 꼴리네.'
그녀는 현재 팬티 한 장만 입고 있었다. 내가 선물한 하얀색 T팬티다. 물에 젖어서 두툼한 보지 형태가 보였다. 그 중심에 클리토리스가 삐죽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도끼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거대한 가슴 또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발기한 분홍색 젖꼭지가 커다란 존재감을 내뿜는다. 젖꼭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맺힌 물방울이 뚝 하고 떨어지는 모습이 매우 음탕하다.
그녀의 길쭉한 팔다리와 잘록하고 탄탄한 허리. 물에 젖어 하얀 피부에 달라붙은 검은색 머리카락. 그 모든 게 섹시했다. 자지가 너무 발기해서 바지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를 죽일 셈이냐."
"거의 1년 동안 당신에게 범해졌습니다. 당신을 증오해 죽일 이유는 충분하지 않나요. 저는 늘 당신을 죽일 순간을 바라
왔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치욕의 나날에 종지부를 찍을 시간입니다."
그녀가 바닥을 박차고 나를 향해 뛰어온다. 그녀의 젖가슴이 물리 법칙에 따라 크게 출렁거렸다. 내 시선이 자꾸만 그녀의가슴으로 향한다.
'설마 이것도 그녀의 작전인가?!'
경악하면서 칼을 뽑아 그녀의 검을 막아냈다.
그녀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검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검이 늘어난다. 그녀의 특기인 환검이다. 동시에 젖가슴이 출렁이며 늘어나는 것 같았다.
'환검에 이은 환젖인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당한다. 나는 약간 무리하며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무리한 탓에 다리 근육이 욱신거린다.
'찰나를 사용할 수 없고, 지금 내 상태로는 전력을 끌어내도 오래 유지 못 해. 금제를 풀어야 하나…? 아니, 입마굴과 가까워. 금제를 풀었다가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어. 완전 회복도 있으니 지금 상태로 어떻게든 한다.'
우선 옷을 벗었다.
“…왜 갑자기 옷을 벗는 거죠?”
"내가 네 작전을 모를 줄 아나? 옷을 벗어서 내 시선을 끌어 집중력을 흩뜨릴 속셈이겠지. 나도 똑같은 전술을 사용해주마."
"어이가 없군요. 내가 이런 남자에게 1년 동안 범해졌다니"
연예하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태도와 달리 의외로 효과는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사타구니 사이를 힐끗거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 자지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1년 동안 매일 내게 범해졌으면서도 정작 내 자지와 몸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후우우…"
연예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당신에게서 투기가 느껴지지 않는군요. 제대로 하세요. 전 당신을 죽일 생각입니다."
"난 내 여자를 죽일 생각이 없어."
흠칫.
그녀의 몸이 조금 떨렸다. 그녀의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으나, 바로 자세를 되잡았다.
"누가 당신의 여자입니까."
"당연히 너지."
연예하가 유령처럼 내게 다가와 환검을 휘두른다. 소리 없는 보법과 시야를 어지럽히는 환검은 무척 어울렸다. 나는 최대한 그녀의 검을 받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받아내고, 받아내고 또 받아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리해졌다. 잔상처가 늘어난다. 팔이 무거워지고 호흡도 거칠어진다.
내가 노리는 건 그녀를 한 방에 기절시킬 수 있는 일격.
'…빈틈이 없어.'
연예하의 검이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빼곡하게 허공에 그려진 환검은 그야말로 커다란 벽과 같았다.
'찰나를 쓸 수 없다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그녀의 실수를 바랄 수밖에 없다. 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발이 미끄러졌다. 내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완전히 넘어지기 전에 균형을 잡으려고 했으나, 연예하의 검이 방해한다.
까앙!
연예하의 공격에 칼이 손에서 날아가고, 내 뒷머리는 단단한 땅바닥에 부딪혔다.
그리고 내 위에 올라선 연예하가 내 목에 검을 겨누었다.